우리는 왜 고귀한 존재가 되려고 하는가? ㊥이타성의 진화 역사

우리는 왜 고귀한 존재가 되려고 하는가? ㊥이타성의 진화 역사

이상오 승인 2017.05.23 00:00 의견 0

진화는 궁극적으로 이타주의에 의해 이루어진다고 주장한 에드워드 윌슨(오른쪽)과 호혜성 이타주의 이론을 발표한 로버트 트리버스.

리차드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론이 단순하고 강력한 논거로 진화론의 다양한 논쟁들을 잠재우려 하고 있지만, 생물학 연구가 깊어질수록 유전자는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풀기 어려운 복잡성을 가졌음이 드러나고 있고, 그 비밀을 완벽히 알아내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고 한다. 유전자의 모든 비밀이 풀리지 않는 한 유전자에 대한 의존은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기독교가 모든 난해한 숙제들을 유일신에게 넘겼듯이 도킨스주의자들은 진화론적 난제들을 손쉽게 모두 유전자에게 넘기고 있다는 비판도 있다.

한때 도킨스와 함께 개체선택론의 대표주자였던 에드워드 윌슨의 극적인 태도 변화가 인상적이었던 것도 보이지 않는 어떤 존재에 모든 책임을 미루지 않고 있는 그대로의 현상을 재해석해내었기 때문이다. 에드워드 윌슨은 사회적 동물의 진화는 개체차원뿐 아니라 집단차원에서도 이루어진다는 다수준 선택이론을 받아들였다. 개체의 이타적인 행위가 그 개체의 생존을 위해 발현되기도 하지만, 그 개체가 속한 집단 전체의 이익을 위해 발현되기도 한다는 입장으로 선회한 것이다.

그러한 입장 변화로 인해 윌슨은 도킨스 같은 개체선택론 진영학자들로부터 배신자 취급을 당하고 모욕적인 말을 듣기도 하였다.

섬에는 자원이 한정되어 있다. 만약 이기적인 개체들끼리 고립된 섬, 이타적인 개체들끼리 고립된 섬, 이타적인인 개체와 이기적인 개체가 함께 고립된 섬이 있다고 가정해보자. 이기적인 개체들이 모인 섬에서는 개체의 생존과 번식만을 추구하기 때문에 극한투쟁이 일어나고 결국 그 개체들은 섬에서 절멸한다.

이에 반해 이타적인 개체들이 모인 섬은 서로를 도와 고립된 섬에서 탈출하는 노력을 하게 되고 결국 한정된 자원을 극복하고 함께 살아남는다. 이기적인 개체와 이타적인 개체가 함께 모인 섬은 당연히 이기적인 개체의 생존 본능으로 인해 이타적인 개체는 결국 완전히 배제되고 이기적인 개체만으로 남은 섬이 되어 결국 개체 전체가 멸종하고 만다.

윌슨은 이러한 논지를 핵심으로 하여 오랫동안 연구를 거듭한 끝에 집단(종)의 생존과 진화는 궁극적으로 이타주의에 의해 이루어졌고, 인간진화의 역사에서도 이기주의보다 이타주의가 인간을 더 특별하게 진화시킨 원동력이 되었다는 요지로 평생의 학문적 태도를 완성하였다. 즉, "집단 내에서는 이기적인 개체가 이타적인 개체를 이긴다. 그러나 이타적인 집단이 이기적인 집단을 이긴다. 다른 모든 것은 사변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 윌슨이 선언한 진화의 비밀이다.

윌슨보다 훨씬 이전, 20세기 초 러시아의 동물학자이자 무정부주의자인 크로포트킨은 동물세계에서 보이는 상호부조 본능이 충분히 인간 사회에서도 통할 수 있음을 주장하면서 진화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경쟁이 아닌 협력이라는 신념하에 실천적인 혁명운동에 뛰어들었다. 너무 이상적인 목적으로 인해 시대와의 불화를 겪고 결국 실패한 혁명가로 남았지만 인간에게 진화적으로 충분히 이타적인 형질이 있고 이를 사회변혁의 요체로 활용하고자 함으로서 인간의 본성에 대한 새로운 실천적 인식을 보여주기도 하였다.

그렇다면 이타성이 어떻게 진화의 역사에 들어왔는가? 미국의 진화생물학자 로버트 트리버스는 혈연을 넘어선 이타적 행위에 대해서 호혜성 이타주의 이론으로 설명하였는데, 이타적 행위는 일방적인 것이 아니라 그 반대급부를 가정함으로서 성립한다는 것이다. 이타적 행위가 기본적으로 비합리적인 행위이기는 하나, 그에 상응하는 반대급부가 있다면 합리성을 획득하게 되고 그것은 생존과 번식에 유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 ‘Give and Take’는 누가 가르치지 않아도 알게 되는 것이므로 이는 하나의 형질로서 진화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이러한 상호주의는 지속적인 관계가 형성되는 동일 집단 내 개체 간의 이타적 행위를 설명하는 데는 적합할지 몰라도 집단을 벗어나거나 일회적인 관계에서 일어나는 이타적 행위를 설명하기는 부족하다. 우리는 평생 다시 만날 것 같지 않은 사람에게 호의를 베풀고 길에서 곤경에 처한 사람을 도와주고 심지어 우리와 전혀 다른 종이 겪는 고통에 공감하기도 한다. 로드 킬을 당한 길고양이나, 기후변화로 앙상하게 말라가는 북극곰을 보면서 연민을 느끼는 것은 보편적인 정서이지만 그러한 정서는 생존경쟁과는 전혀 무관하게 일어난다.

인간의 마음은 백지 상태에서 태어나기 때문에 인간이 가진 도덕적 심성은 타고난 것이 아니라 환경과 학습에 의해 형성된다는 것이 오랜 세월 흔들리지 않은 가설이었다. 그러나 인간에게서만 나타난다고 여기는 도덕적 행동들이 동물세계에서도 일어난다는 증거들이 드러나고 있고, 특히 침팬지, 보노보와 같은 유인원에서는 인간의 특유한 본성이라고 여겨지는 공감, 연민, 협력을 의미하는 행위들이 무수히 관찰된다.

인간의 경우도 사회화를 통해 경험과 학습이 진행되기 전인 영·유아시기에 아름다움과 추함의 구별이 가능하며, 단순한 형태의 공감과 연민의 행동을 보이는 경우가 연구를 통해 확인되고 있기도 하다.

생명체에서 나타나는 이타적 행위가 상당부분 보편성을 가지는 것이라면 이는 개체의 개별적인 경험이나 학습만으로 습득될 수는 없는 성질의 그 무엇이 있는 것이다. 진화의 기본원리인 변이와 적응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기나긴 진화의 역사에서 어느 선택의 수준에서든 도덕적 심성이 뛰어난 돌연변이가 나타나고 그러한 변이가 적합도를 높이는 방향으로 선택을 받았을 수도 있을 것이라는 설명도 가능하다. 분자생물학의 발달로 세포단위에서의 협력과 공생 관계가 연구되면서, 최초의 생명체에 까지 그 기원이 올라가고 있다.

생물학적 진화와는 직접적인 관련은 없는 이야기지만, 변이와 적응이라는 관점에서 간접적으로 참고할 만한 사례를 소개한다. 한 집단 내에서 어떻게 최초의 문화적 변이가 일어나고 전승되는지에 대한 것이다.

1952년 일본 교토대 영장류 연구소에서는 미야자키현 고지마의 야생원숭이 집단 20마리에게 흙이 묻은 고구마를 나눠주고 원숭이들이 고구마를 어떻게 먹는지를 관찰했다. 처음에는 모든 원숭이들이 고구마를 몸에 문지르거나 손으로 흙을 털어내고 먹었는데, 어느 날 18개월 된 어린 원숭이 ‘이모’가 고구마를 근처 개울에 씻어먹는 법을 알게 되었다. 그 이후 다른 원숭이들 일부가 이모의 행동을 따라하게 되었고 그러한 현상은 일종의 문화적인 전승으로서 원숭이 집단에 퍼져나갔다.

그러한 단순하고 유익한 문화적 전승이 퍼지는데도 10년 이상이 걸렸고, 시간이 흘러도 원숭이 집단의 상당수는 여전히 그러한 선택을 하지는 않은 것으로 보고되었지만, 변이와 적응이라는 관점에서 우리가 가진 이타성이나 도덕적 심성도 고도의 적응과정을 거쳐 고유한 본성으로 선택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물론 진화의 긴 역사를 재현할 방법이 없으므로 어떤 시기에 어떠한 형태의 선택이 이루어져서 어떻게 하나의 형질로 진화를 이어갔는지 알 수 없으나, 특정한 조건하의 선택에 대한 실험을 통해 진화의 과정을 추론할 수는 있다.

수학, 경제학, 심리학, 생물학 등 많은 학문에서 다양한 연구도구로 활용되는 유명한 ‘죄수의 딜레마’ 게임 모형은 이타적 행위가 어떻게 선택되고 진화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죄수의 딜레마는 인간의 이기심(배신)과 이타심(협력)간의 딜레마를 의미한다. 공범 관계에 있는 두 명의 죄수가 서로 협력하면 최선의 결과를 얻을 수 있으나, 사전 협력이 차단된 상태에서 게임은 배신을 한 쪽에 유리하도록 설계되어 있다. 상대가 협력을 하든 배신을 하든 이쪽에서는 배신을 하는 것이 가장 합리적인 선택이며 최고의 적응이다. 동일한 조건이 상대방에게도 적용되므로 상대방도 배신하는 선택을 할 수밖에 없게 된다.

이러한 게임이 일회적으로 그치지 않고 수백, 수천 차례 반복되고 게임 참가자들이 상대방의 선택을 알게 된다면 어떨까? 그리고 이러한 상황을 사회전체로 확장한다면 어떤 선택들이 적합도(fitness)를 높힐까? 배신(이기심)이 개체에게는 일시적으로 이득을 가져올 수 있지만 집단 내에서의 지속적인 배신은 평판의 저하를 가져 오고 결국 집단으로부터 완전히 배제될 가능성이 높다. 수백만 년에 걸친 적응과정을 압축하게 되면 협력을 선택하는 것이 배신을 선택하는 것보다 개체의 적합도는 물론 집단의 적합도를 높이는 결과에 도달하게 된다.

인간이 포식자를 피해 집단을 구성해온 이래로 상호협력은 집단을 유지하는 필수적인 가치였다. 상호협력을 통해 유대감을 높이게 되면 집단의 결속은 더욱 강해지고 이기심보다는 이타성 또는 이집단성에 대한 선택 압박이 더 공고해짐으로써 오랜 세월에 거쳐 집단 내 개체들에게 이타적 본성이 정착되는 적응이 보편화 되었을 것이다. 우리가 운동경기나 단체 게임을 할 경우 자신의 속하거나 선호하는 팀을 자신과 동일화하고 승리를 기원하면서 열광을 보이는 것도 집단의 정체성이 개인의 정체성에 영향을 미치는 원시적인 본능의 표현일 수 있다.

우리는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 편을 만드는 것을 광적으로 좋아한다. 편을 나누면 열광하고 편 속으로 빠져든다. 어린 아이들끼리 어울려 노는 경우에도 둘 이상만 되면 편을 나누며, 한 편이 되면 개인의 정체성은 그 편 속으로 흡수되어 버린다. 집단은 개인의 집합이 아니라 그 자체로 하나의 정체성을 가지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본능적인 속성이 역사적으로 혈통이나 인종의 우월성을 극단적으로 표방하는 잘못된 방향으로 흘러버린 경우도 있었으나 인간에게는 개체의 적합도를 높이는 진화의 기본 원리와는 부합하지 않는 이타적인 본성이 내재해 있음을 부인할 수 없는 유력한 증거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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