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초의 과학자 탈레스

최초의 과학자 탈레스

조송현 승인 2016.11.19 00:00 | 최종 수정 2018.06.11 00:00 의견 0

최초의 철학자이자 과학자는 탈레스(Thales, BC 640~546)라고 합니다. 에게 해 밀레토스 출신인 그는 이집트를 여행하면서 피라미드 높이를 측정하는 방법을 알아냈고, 일식현상을 예측했습니다. 또 항해에 필요한 별자리 등 천문과 기상에 관한 지식을 갖고 있었다고 합니다.

플라톤이 남긴 글을 보면 탈레스가 얼마나 비범한 인물이었는지를 짐작할 수 있습니다. 플라톤은 그의 인식론 저서인 『테아이테토스 Theaitetos』에 다음과 같이 기록했습니다.

탈레스. 출처: 위키피디아

‘탈레스가 하늘의 별을 쳐다보다가 우물에 빠졌을 때 한 영리하고 재치 있는 트라키아인 하녀가 말했다고 전해지는 재담이 있다. 그녀는 탈레스가 하늘에 떠다니는 것을 알려는 열망이 너무 강해서 자신의 발 앞에 있는 것을 볼 수 없었다고 말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정치학』에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습니다.

‘탈레스는 가난 때문에 많은 비난을 받았다. 왜냐하면 가난은 철학의 무용성을 증명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어느 해 탈레스는 기상학적 지식을 이용해 다음 해 올리브 풍작을 확신했다. 그는 밀레토스와 키오스의 올리브 착유기(기름짜는 기계) 사용권을 대거 예약했다. 여름이 되자 갑작스럽고도 동시적인 수요가 생겨났다. 탈레스는 선약해 두었던 착유기를 비싼 값에 모두 풀었다. 많은 재산을 모은 그는 철학자들도 그들이 원하면 많은 돈을 벌 수 있지만 실제로 그러기를 원하지 않을 뿐이라는 사실을 증명했다.’

위의 일화는 돈이 되는 실용적인 학문에는 학생이 몰리고 당장 '돈이 안 되는' 인문학과 자연과학은 외면받는 이 시대에도 울림을 줍니다. 그때도 지금처럼 철학이나 수학처럼 순수학문을 하는 사람은 먹고 살기 힘든 세상이었나 봅니다.

탈레스가 최초의 철학자란 칭호를 받는 것은 그가 사유의 새로운 영역을 열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사물의 본성에 관해 탐구했던 것입니다. 즉, 만물은 무엇으로 되어 있는가, 혹은 사물을 구성하는 기본 요소는 무엇인가에 관해 깊이 생각했다고 합니다. 그리하여 그는 모든 물질을 구성하는 ‘일자 the one’ 혹은 재료는 물이라는 해답을 제시하기에 이릅니다. 탈레스는 사유의 기초를 신화적 근거에서 과학적인 탐구로 옮겨 놓았던 것입니다.

탈레스는 왜 물질의 원소가 물이라는 결론을 내렸을까요? 이 의문에 대해서는 그가 젊은 시절 당시 학문적 선진국이었던 이집트와 바빌로니아를 여행했다는 사실에서 유추해볼 수 있습니다. 공교롭게도 이집트와 바빌로니아의 천지창조신화에서는 만물은 물에서 생겨났다고 합니다. 두 문명은 강을 배경으로 생겨나 융성했지요.

이집트 문명은 나일 강이 준 선물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그런 만큼 이집트인들에게 나일 강(물)은 모든 물질의 근원으로 여겨졌다고 해도 하등 이상할 게 없습니다. 메소포타미아와 바빌로니아 문명도 티그리스 유프라테스 강이 형성한  ‘비옥한 초승달’에서 번성했습니다. 강(물)의 축복을 받기는 이집트와 다를 바 없었습니다.

땅을 비옥하게 하는 대홍수는 하늘이 베푸는 큰 선물인 동시에 재난이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강의 범람에 대비해야 했겠지요. 홍수시기를 예측하고, 범람 뒤에 토지를 측량해야 했으며, 또 치수를 위해 토목공사가 필요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이집트에서는 수학과 토목기술이 일찍부터 발달했던 것입니다. 기하학을 뜻하는 단어 ‘geometry’는 땅을 측정한다는 의미란 사실은 잘 알려져 있습니다. 탈레스가 방문하기 전에 이곳에서는 만물의 근원이 물이라는 신화뿐 아니라 수학과 토목기술, 천체 관측기술이 상당히 발전돼 있었다고 합니다.

또 이집트에서는 세제곱표를 작성해 3차방정식 해법에 이용했고, 피타고라스 정리도 이미 알고 응용하고 있었다는 얘기도 전해집니다. 게다가 수학과 천문 분야는 이집트보다 바빌로니아가 더 발전돼 있었다고 합니다. 그리스 지식인들은 이 같은 선진 학문은 배우고 받아들였습니다. 탈레스보다 50년가량 후배인 피타고라스도 이집트와 바빌로니아를 여행하며 수학을 깨쳤다고 합니다. 그리스 철학(과학)의 모태는 바로 이집트와 바빌로니아였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 이후 왜 수학이나 과학이 이집트나 바빌로니아에서는 상대적으로 쇠퇴하고 그리스에서  발전했을까요? 철학자 에마뉴엘 칸트의 다음 말은 이 의문에 대한 답을 시사합니다. “그리스 사람들은 사물의 본질을 규명하였다. 다시 말해서 물질의 실체를 파악하고 수의 뜻을 밝히는 등 하나의 합리적인 통일체로서의 세계를 인식하기 위해 힘썼다.”

한마디로 그리스 사람들은 통일적 지식체계를 추구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철학과 수학을 발전시키는 기본 원동력이 되었음을 두 말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리스 이전의 문명국가인 이집트와 바빌로니아는 단순한 산술적 계산의 차원을 넘어 복잡한 회계학적 계산이나 건물의 구조 계산 등 상당히 발달한 수학적 체계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수학을 ‘실제적인 문제들을 해결하는 수단’으로 보았던 것입니다. 이집트와 바빌로니아에서는 토지측량과 토목공사 등 구체적인 현실 문제를 해결하면서 기하학 법칙을 발견했고, 귀중한 처방전으로 전수되었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일찍 발달한 수학은 더 발전하지 못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수세대를 통해 전수된 이 처방전들은 항상 올바른 답을 주었기 때문에 그들이 사용하던 방정식의 논리적 타당성을 따지고 드는 사람이 없었을테지요. 그들에게 중요한 것은 처방전에 따라 행해진 계산이 실제로 상황과 잘 맞아떨어진다는 사실뿐, 그것이 왜 맞는 결과를 주는지는 문제 삼을 필요가 없었던 것입니다.

이에 비해 그리스 사람들은 관념과 초현실의 세계에 노니는 체질이었습니다. 물론 일상의 일은 모두 노예들에게 맡겨버리고 말입니다. 플라톤의 ‘이데아’ 철학이 그리스 철학 나아가 유럽의 사상을 지배하게 된 것도 플라톤의 천재성 못지 않게 그리스와 유럽인의 사상적 체질을 반영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리스인들은 특히 수학(기하학)을 특별하게 취급했습니다. 즉, 이성은 수학적인 방법에 의해 다듬어진다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수학은 단순히 기술적인 문제를 위한 것이 아니라 모든 학문에 접근하기 위한 기본적인 소양이기도 했던가 봅니다. 당시 그리스에서는 ‘수학을 모르는 자는 철학을 하지 못 한다.’, ‘신은 수학적(기하학적)으로 사고한다.’는 것이 상식이었다고 합니다. 수학은 그들의 이성적 사고인 로고스(logos) 그 자체였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리스에서는 계산술은 로기스티케(logistike)라고 낮춰 부르며 기하학 같은 고상한 수학과 구별했다고 합니다.

수학에 대한 지나친 형이상학적인 태도는 실험과 정량적인 분석이 요구되는 과학의 발전에 걸림돌이 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사물의 본질에 대한 탐구정신과 수학을 중시하는 풍조를 가진 서양에서 근대과학이 탄생하고 과학혁명이 이뤄졌다는 것은 과학과 수학의 본질을 감안하면 하등 이상할 게 없습니다. 자연 현상과 수학 법칙은 오묘하게도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에 있기 때문입니다.

자연현상을  수학적으로 설명하려는 시도가 바로 자연과학, 특히 물리학의 탄생과 발전을 가져온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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