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철수 후보의 정치적 대의(大義)를 아는 국민은 누구일까?

안철수 후보의 정치적 대의(大義)를 아는 국민은 누구일까?

조송현 승인 2017.04.16 00:00 의견 0

안철수 후보의 '사드 번복'에 대한 jtbc 뉴스룸의 팩트체크.

안철수 국민의당 대선 후보의 슬로건 ‘국민이 이긴다’를 보면 고개가 갸웃거려진다. 국민이 누굴 이긴다는 말이지? ‘국민’은 어떤 국민을 말하는 것이지?

국민의당 측은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 사태 과정에서 국민이 촛불의 힘으로 나라를 지켜냈다는 의미를 담았다고 했다. ‘통합의 리더십’의 의미도 담았는데, 대통합을 통해 국민 전체의 승리를 이끌겠다는 취지라고 설명했다.

그런데 필자만의 느낌일까? 이 같은 취지가 전혀 와 닿지 않는다. 오히려 ‘문재인 이길 사람 누구입니까?’라는 안철수 후보 구호의 연장선으로 강하게 다가온다. 촛불을 든 국민 대다수는 안철수 후보가 아니라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후보를 지지하고 있다는 것이 여론조사 결과가 말해주고 있다. 어떻게든 문재인 후보를 이겨야 한다는 일념은 느껴질망정 ‘통합의 리더십’은 도무지 아니다.

대선 슬로건은 유권자의 행동을 이끄는 선전문구 이상의 의미를 갖고 있다고 본다. 바로 후보의 정치적 대의(大義)를 드러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국민이 이긴다’는 안철수 후보의 정치적 대의 부재를 방증한다.

‘새정치’는 너무나 잘 알려졌듯이, 안철수 후보의 정치 입문의 목적이자 정치적 대의였으나 빛이 바랜지 오래다. 안철수의 ‘새정치’라는 이름뿐 그 실체를 아는 국민은 거의 없을 것 같다. 안 후보 자신이 그 실체를 알기나 하는지 의문을 갖는 국민이 오히려 많을 정도다.

2015년 12월 새정치민주연합을 탈당한 이후 안철수 후보는 ‘정치교체’를 부르짖었다. 정치적 대의를 새정치에서 ‘정치교체’로 바꾼 것으로 해석되기에 충분했다. 안 후보는 ‘정치교체’의 의미에 대해 “‘양극단 세력’을 배제한 합리적 개혁 세력이 새로운 정치틀을 만들자는 것”이라고 했다. 안 후보가 언급한 ‘양극단 세력’은 친박과 친문재인 세력이다.

그런데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 사태와 탄핵정국에서 안철수 후보가 ‘정치교체’라는 대의를 외치는 모습을 보기 힘들어졌다. 대신 ‘문재인을 이기는 사람 누구입니까?’를 고래고래 내지를 뿐이었다. 안철수 후보의 정치적 대의가 정치교체에서 다시 ‘문재인을 이기는 안철수’로 바뀐 것이다.

여기에는 ‘박근혜 탄핵’ 정국에 따른 두 가지 요인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하나는, 문재인 후보의 ‘정권교체’ 슬로건이 워낙 강력했던 터라 정치교체가 힘을 쓸 수 없었다. 다른 하나는 , 압도적 지지율 1위인 문재인 후보가 집권세력과 보수층의 ‘공공의 적’이 된 것이다. ‘문재인을 이기는 안철수’는 이들 세력의 지지를 받을 수 있다고 판단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이 전략은 일정 부분 성공했다. 반기문 전 유엔사무총장의 사퇴와 민주당 경선 후 구 집권세력과 보수의 ‘반문재인’ 층이 ‘문재인을 이길 안철수’를 지지했기 때문이다. 대선을 30일 남겨둔 시점에 문재인 후보를 위협하는 수준까지 올라간 것은 성공이라고 봐야 한다. 그래서 15일 대선 후보 등록과 함께 내놓은 슬로건이 ‘국민이 이긴다’이다. 여기서 ‘국민’은 ‘문재인 후보가 대통령이 되는 데에 반대하는 대한민국 유권자’ 쯤 되지 않을까 싶다.

이것이 안철수 후보의 한계라고 봐야 한다. ‘문재인을 이긴다’ 외에 정치적 대의도 신념도 느껴지지 않는 안철수 후보를 지지하는 유권자는 뻔하다. 특정 정치인에게 이기겠다는 것이 대의가 될 수는 없다. 이를 위해 자신의 정체성도 밝히지 못하고, 이를테면 ‘좌파냐 우파냐?’는 물음에 ‘상식파’라며 연습한 멘트를 날리는 궁상이라니!

모름지기 정치인은 대의에 신념을 바치는 것이 ‘소명으로서의 정치’의 기본이다. 정치철학자 막스 베버의 말이다. 베버가 정치가의 자질로 언급한 열정과 책임감, 균형감각은 모두 대의를 전제로 한다. 정치가는 대의에 대한 헌신으로서의 열정을 가져야 하며, 대의에 대한 책임의식을 일깨우는 열정을 가져야 한다. 또한 그 열정은 대의를 그르치지 않게 균형감각을 병행해야 한다.

막스 베버의 말을 조금 더 들어보자. 권력 추구가 대의에 대한 전적인 헌신을 목표로 하는 것이 아니라 순전히 개인적인 자기도취를 목표로 하는 것은 ‘소명으로서의 정치’ 정신에 위배될 뿐 아니라 치명적 죄악을 저지르는 것이 된다. 정치영역에서는 궁극적으로 두 가지 죄악이 있을 뿐인데, 그 하나는 객관성 결여이고 다른 하나는 무책임성이다.

베버의 시각으로 안철수 후보를 분석해보자. 안 후보는 정치인, 대통령 후보의 열정을 헌신할 대의가 없다. 아니 없다기보다 ‘문재인 꺾기’라는 ‘객관성을 결여한 순전히 개인적인 목표’이다. 이것은 소명의 직업정치가의 기본 정신에 위배된다. 이것은 치명적 죄악이다.

대통령 후보라는 정치인에게 걸맞는 대의가 없으니 안철수 후보에게서는 진정한 열정이 느껴지지 않는다. ‘소명의 정치인’의 덕목이자 자질인 열정은 흔히 말하는 열정과 다르다. 베버에 따르며 열정(passion, leidenschaft)은 ‘예수의 고통을 자기의 고통으로 내면적으로 공감하는 강력한 믿음, 감정의 치열함’이다.

국민 대다수는 대통령 후보에게서 시대정신에 걸맞는 대의와 그 대의에 헌신하는 열정을 보고 싶을 것임에 틀림없다. 안철수 후보가 이번 선거에서 실패한다면 ‘문재인을 이기자’는 대의답지 않은 대의 탓임을 깨달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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