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을 살아남게 한 능력이 인간을 죽음으로 내몰다 ②식후인슐린 분비

인간을 살아남게 한 능력이 인간을 죽음으로 내몰다 ②식후인슐린 분비

조송현 승인 2017.05.13 00:00 | 최종 수정 2022.07.22 09:39 의견 0

재레드 다이아몬드는 자신을 UCLA 지리학 교수, 진화생물학 현장 연구가, 문화인류학 과련 저술가, 환경운동가로 소개하고 있다. /재레드 다이아몬드 개인 사이트

여러분은 감꽃이나 진달래꽃으로 주린 배를 달랜 적이 있으신가요? 연세가 50대 이상이고 시골에서 자랐다면 한 번쯤 그런 경험을 해보셨을 테지요. 그 시절 우리 몸은 배고픔을 잘 견뎌주었던 것 같습니다. 영양실조에 걸리거나 그로 인한 면역력 저하로 여러 전염병에 걸리는 사람도 있기 했지만요.

우리는 그런 시절을 어렵게 견디고 살아남았고, 먹을 게 풍족한 세상에서 살고 있습니다. 그래서 좀 많이 먹습니다. 좀 많이 먹으면 어떻습니까? 어차피 열심히 일하는 것도 다 잘 먹고 잘 살기 위함이 아니던가요?

그런데 문제가 생겼습니다. 몸이 우리 의지와 상관없이 나쁘게 변하는 것입니다. 비만해지고 당뇨 같은 예전에 없던 병에 걸립니다. 물론 1차적인 책임은 음식물을 과다 섭취한 우리에게 있습니다. 하지만 몸에게도 따져 묻고 싶은 게 있습니다. 음식물이 필요 이상으로 들어오면 적당히 버릴 것이지 왜 꾸역꾸역 지방으로 쌓아뒀느냐고요. 그렇게 필요 이상으로 지방을 축적하지 않았다면 비만도 없고, 또 그로 인한 당뇨도 생기지 않았을 테니까요.

이 글은 ‘우리 몸은 왜 필요 이상의 지방을 축적해 스스로 병을 유발할까?’라는 의문에서 시작했고, 그 답을 진화생물학자이자 인류학자인 재레드 다이아몬드의 근작 ‘나와 세계 - 인류의 내일에 관한 중대한 질문’(김영사, 2016)에서 찾아보고자 합니다. 물론 그 해답은 진화론적·인류학적인 해석이지 실제 병리학적인 처방은 아니라는 점을 미리 밝힙니다.

태평양의 조그만 섬, 나우루(Nauru) 섬에 미크로네시아인들이 살고 있습니다. 이 섬은 면적이 21km² 정도로 부산 가덕도 크기와 비슷합니다. 주민들은 주로 어업과 농업으로 먹고 사는데 식량이 충분치 않아 자주 굶주렸다고 합니다.

2차 세계대전 동안 나우루 섬을 점령한 일본군은 주민들을 투르크 섬으로 강제 이송해 강제노역을 시키면서 하루 250그램의 호박을 식량으로 주었습니다. 강제징집된 주민의 절반이 굶어죽었다고 합니다.

전쟁이 끝난 후 주민들은 나우루 섬으로 돌아왔습니다. 나우루 섬의 지반은 비료의 원료가 되는 인삼염 바위입니다. 주민들은 농업과 어업을 포기하고 인산염 채굴 광산회사에서 일하게 되었습니다. 연봉이 일인당 2만 달러 이상이었기 때문에 주민 모두 갑자기 부자가 되었습니다.

예전에 굶주렸던 주민들은 슈퍼마켓에서 온갖 식품을 사다 실컷 먹었고, 좁은 섬에서도 걷지 않고 자동차를 타고 다녔습니다. 그 결과 불과 70년 만에 주민들, 즉 나우루공화국 국민은 태평양에서 가장 비만한 국민이 되었고, 당뇨의 유병률도 높아져 당뇨가 제1의 사망 원인이 되었다고 합니다. 20세 이상에서 3분의 1, 70세까지 생존한 소수의 나우루 주민 중에서는 70%가 당뇨 환자라고 합니다.

대대로 배고픔에 시달렸고 또 2차 대전 동안에는 일본군에 강제 징집되어 굶어죽다 살아난 나우루 섬 주민들이 이제 비만으로 인한 당뇨에 목숨을 빼앗기고 있는 것입니다. 슬픈 반전이 아닐 수 없습니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한국과 중국 인도에서도 음식 섭취량의 증가로 당뇨 환자가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습니다. 특히 중국과 인도는 제1의 당뇨환자 보유국 오명을 놓고 서로 다투는 실정입니다.

그런데 음식물 섭취량으로 따지면 유럽의 여러 나라와 미국이 평균적으로 중국과 인도보다 적지 않습니다. 하지만 당뇨 환자 비율은 훨씬 낮습니다. 이를테면, 부유한 유럽 국가들과 미국의 경우, 당뇨 유병률은 대략 5~9%인데 반해 중국, 인도, 나우루, 뉴기니 등 생활이 풍족해진 비서구 나라들의 당뇨 유병률은 15~30%로 유럽과 미국보다 훨씬 높습니다. 왜 그럴까요?

재레드 다이아몬드는 이 같은 의문에 진화론적·인류학적 분석으로 해답을 추론합니다. 여기서 언급하는 당뇨병은 생활방식이나 유전에 의한 제2형 당뇨를 말합니다. 당뇨병은 인슐린과 관계가 깊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입니다. 그런데 인슐린은 공복과 식사 사이에 혈당을 지속적으로 조절하는 기저인슐린과 음식 섭취 후 급격히 높아진 혈당을 낮추는 식후인슐린으로 나뉩니다.

당뇨병은 물론 기저인슐린이 제대로 기능하지 못해 나타나는 현상입니다. 하지만 식후인슐린이 기저인슐린의 기능에 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칩니다. 식후인슐린이 비만을 일으키는 데 역할을 하기 때문입니다. 물론 이 외에도 수많은 요인이 있지만요. 재레드 다이아몬드는 ‘근래 풍족해진 비서구 국가들의 당뇨 유병률이 왜 유럽·미국보다 높은가?’라는 의문의 열쇠를 바로 식후인슐린에서 찾고 있습니다.

인슐린(식후인슐린)은 우리가 포식할 때 섭취하는 과도한 칼로리를 지방으로 저장하는 역할을 합니다. 멀리 수렵시대를 상상해보겠습니다. 원시인들이 거대한 맘모스 사냥에 성공했습니다. 모처럼 찾아온 풍요로운 시기에 사람들은 마음껏 먹고 살을 찌워야 했을 것입니다. 곧 닥칠 굶주림과 추위를 견디기 위해서 말입니다.

이때 식후인슐린이 많이 분비된다는 것은 많은 고기를 먹고 이를 곧바로 지방으로 저장하는 능력이 뛰어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이런 사람은 우수한 유전자를 가진 것이며, 그만큼 생존할 확률이 높았을 것입니다. 수렵시대를 지나 기근이 해결되지 않은 고대와 근대까지도 마찬가지였을 것입니다. 식후인슐린 분비량이 많다는 것, 다시 말해 섭취한 음식을 재빨리 지방으로 축적하는 능력은 인간에게 큰 이점이었던 것입니다.

그러다가 어느덧 음식을 언제나 충분히 먹을 수 있는 시대를 맞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우리 몸은 여전히 식후인슐린을 재빨리 많이 분비합니다. 남는 칼로리를 버리지 않고 지방으로 만들어 차곡차곡 쌓아둡니다. 몸을 비만으로 만들어 버리는 것이지요. 과도한 지방은 기저인슐린의 정상적인 기능을 방해합니다. 그 결과 당뇨병이 생기는 것이죠. 당뇨병은 사람을 몹시 불편하게 만들고 심하면 합병증을 유발해 목숨을 앗아가기도 합니다.

결국 수렵시대나 기근이 흔했던 시대에는 생존을 위한 능력이었던 ‘식후인슐린 분비 능력’이 식량이 풍족한 오늘날에는 쓸데없이 지방을 체내에 축적하는 치명적인 약점으로 변하고 말았습니다. 식후인슐린 분비량은 유럽인보다 나우루, 뉴기니, 호주 원주민이나 인도인 중국인이 훨씬 더 많다고 합니다. 이것이 바로 ‘근래 풍족해진 비서구 국가들의 당뇨 유병률이 왜 부유한 유럽·미국보다 높은가?’라는 당초 의문에 대한 해답인 것입니다.

아직 의문이 하나 더 남았습니다. ‘왜 유럽인의 식후인슐린 분비량이 줄었을까요?’ 해답은 유럽에서 1800년대 말 이전에 기근이 사라졌다는 데 있습니다. 유럽에서는 식량이 넉넉해진 100년쯤 전에 당뇨병을 유행병처럼 앓았을 것이고, 식후인슐린을 왕성하게 분비하는 유전자를 지닌 사람들이 도태되었을 것이라는 게 재레드 다이아몬드의 추론입니다. 그래서 지금은 식후인슐린을 적게 분비하는 사람들, 당뇨에 강한 유전인자를 가진 사람들이 유럽인의 주류를 이루고 있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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