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이 울려도 울지 않는다(後篇)

하늘이 울려도 울지 않는다(後篇)

조송원 승인 2017.09.04 00:00 | 최종 수정 2017.09.05 00:00 의견 0

남명 조식 선생은 천왕봉은 하늘이 울려도 울지 않는다고 했다. 천왕봉은 남명 자신의 은유일 것이다. 멀리 가운데 아스름하게 높이 솟은 봉우리가 천왕봉. 촛대봉 쪽에서 본 풍 풍경이다.

금릉의 술집에서 남겨두고 떠남 이 백

버들꽃에 바람 불어 술집 안 온통 향기롭고 오나라 미인들 술 걸러 맛 보라 손님 부르네. 금릉의 젊은이들 나를 전송하러 와 가려다 차마 가지 못하고 잔들을 비우네. 그대들이여 장강(長江)에 물어 보게나 이별하는 마음과 강물 중에 어느 쪽이 더 긴지를.

金陵酒肆留別(금릉주사유별) 李 白

風吹柳花滿店香(풍취유화만점향) 吳姬壓酒喚客嘗(오희압주환객상) 金陵子弟來相送(금릉자제래상송) 欲行不行各盡觴(욕행불행각진상) 請君試問東流水(청군시문동류수) 別意與之誰長短(별의여지수장단)

작가를 가리고 감상해도 이태백 특유의 냄새가 난다. 이태백다운 기발한 착상도 호방하다. 일단 술잔을 다 비운다. 어차피 헤어져야 하는 길, 소소한 잔정을 남기지 않는다.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 적어도 우리의 석별의 정은 저 길고 긴 강물보다 더 긺은 ‘천지지지자지아지’(天知地知子知我知.하늘이 알고 땅이 알고 네가 알고 내가 안다.)이니까. 우린 그만큼 멋진 이별을 하는 것이다. 남성적이다.

정지상은 전편의 ‘송인(送人)’에서 이별이 애달파 눈물 콧물을 뿌려대니 대동강물이 10년 대한(大旱)이라도 마를 수 없다고 노래했다. 착상의 기발함에서는 이태백과 용호상박이다. 여성적이다.

여성성과 남성성 사이에는 우월은 있을 수 없다. ‘스스로 그러한’(自然) 존재들이니까. 존재는 그냥 존재하는 것들이다. 그러므로 존재에 가치를 들이댐은 우치(愚癡) 외는 아무것도 아니다. 봄, 여름, 가을, 겨울에 등급을 매기는 것과 같은 쓸데없는 짓거리이다.

다만 남자의 호방함과 여자의 조신함에 가치를 두는, 필자는 어쩔 수 없는 5060세대임은 고백해야겠다. 그러나 굳이 노자의 가르침을 빌리지 않더라도 평소 강함은 부드러움만 못하다는 천리는 거역하지 않는다.

남자의 호방함이라 하면 문헌을 뒤적이지 않아도 퍼뜩 생각나는 사람이 있다. 백호 임제(1549-1587). 시조 한 수와 관직을 맞바꾼 호남아!

청초 우거진 골에 자난다 누었난다 홍안을 어데 두고 백골만 묻혔나니 잔 잡아 권할 이 없으니 그를 슬퍼하노라

서북도 병마평사로 부임하는 길에 황진이 무덤에 들러 간단한 제수를 차렸다. 그리고 무덤과 권커니 잣거니 하며 이 시조 한 수 읊었다가 임지에 부임도 하기 전에 파직당했다. 파직한 이유가 해괴하다. 천한 기생에게 고개를 숙여 문사의 체면을 손상했다는 것이다. 16세기 시대 현실로서는 있음직한 일이다. 역사적 배경은 이 글의 범위 밖에 있으므로 건너뛴다.

황진이 하면 육감적인 글래머걸(glamour girl)이 연상된다. 그러나 볼그레한 볼과 빨간 입술(홍안)은 이미 썩어문드러졌다. 그 해골바가지가 백호를 무덤으로 불러들였다. 백호는 귀신에 씌었을까?

相思相見只憑夢(상사상견지빙몽) 儂訪歡時歡訪儂(농방환시환방농) 願使遙遙他夜夢(원사요요다야몽) 一時同作路中逢(일시동작로중봉)

서로 그리워도 만나 볼 길 꿈길뿐이라 그대 찾아올 젠 나도 그댈 찾는다오. 바라거니 언제일까, 다음 날 밤 꿈에는 동시에 길을 나서 길 위에서 만나요.

황진이의 <상사몽>(相思夢)이다. 보고 싶고 보고 싶어 꿈에서나마 당신한테 갔다. 한데 아뿔싸, 당신도 나 보고 싶어 길을 떠나버리고 없다. 그러니 언제 적일지 모르지만 한 날 한 시 같은 시각에 서로 만나러 나서서, 내가 가고 당신이 오는 그 길에서 만나게 되도록 합시다.

과문한 탓이지만 이보다 더 서로 그리는 정을 애틋하고 절절한 읊은 절창은 본 적도 들은 적도 없다. 그러나 황진이의 시재(詩才)가 여기서 그친다면 백골로 호남아의 얼을 빼진 못한다.

동짓달 기나긴 밤 한 허리 베어내어 춘풍 이불 아래 서리서리 넣었다가 고운 님 오신 날 밤에 굽이굽이 펴리라.

시간을 공깃돌 다루듯 쥐락펴락한다. 사랑을 위해서. 임도 없는데 보람 없이 긴 동짓달 밤, 에라 한 뭉치 뚝 떼서 가슴에 담는 게 아니라 임과 같이 잘 금침에 매매 꼬불쳐둔다. 짧고 짧을 수밖에 없는 임과 함께 하는 시간에 그 뭉치를 붙여 시간을 늘린다. 더 무엇을 말하리오. 백호는 귀신에 씔 만했다.

황진이는 시에서만큼은 천재를 타고났기에 불행은 이미 점지되었다. 미인박명, 반만 맞다. 육체의 아름다움은 앞산의 눈이다. 겨울에는 한껏 미를 뽐낸다. 그러나 봄 산의 눈, 반은 녹고 반은 얼어붙어 먼지 뒤집어쓴 추한 눈을 본 적은 없는가. 미인은 미가 머물 동안, 누릴 만큼의 천혜는 누린다. 다만 평생을 보장하지 않을 뿐이다. 왜 미인 박명하다고들 하는가.

시대상황을 고려하면 더욱더 희박해지겠지만, 상위 0.1%의 정신을 가진 여인이 그만한 영혼을 가졌거나 혹은 모자라도 ‘알아줄’ 남자와 만날 확률은 얼마나 될까? 산술적으로 1/1000☓1/1000, 곧 백만분의 일. 그냥 ‘0’이라고 봐도 무리가 없을 것이다.

사랑의 부재, 사랑의 결핍은 만고의 절창의 필요조건이다. 사랑을 듬뿍 받고 있는 사람은 사랑 타령 하지 않는다. 황진이가 제대로 된 집안에 태어나 아껴주는 낭군을 만났으면, 끽해야 현모양처로 곱게 늙어갔을망정 시재를 발휘할 수 없었을 것이다. 뛰어난 시재에다 미천한 신분, 그리고 시대상황이 어우러져 우리의 가슴에 남은 황진이가 된 것이리라.

황진이가 남자였다면? 학문을 할 수 있는 가문에 태어났다면? 필자는 자연스레 남명(조식曺植. 1501-1572)을 떠올린다.

請看千石鐘(청간천석종) 非大扣無聲(비대구무성) 萬古天王峰(만고천왕봉) 天鳴猶不鳴(천명유불명)

천 석들이 저 큰 종을 보게 큰 공이로 안 치고는 소리 안 나리. 만고에 우뚝한 저 천왕봉은 하늘이 울려도 울지 않는다.

남명의 <천왕봉>이다. 큰 종을 울리려면 공이도 커야 한다. 젓가락으로 에밀레종을 울릴 수 없다. 그런데 하늘이 울려보려고 천둥 번개로 꽝꽝 내리쳐도 끄떡도 하지 않고 떡 버티고 있다. 천왕봉을 큰 종으로, 천둥 번개를 공이로 비유한 발상이 정지상이나 이백이나 황진이만큼 혁명적이다.

날마다 산기슭 정자에서 천왕봉을 바라보며 천왕봉을 닮아간 선비, 남명 조식. 하늘이 울리려 해도 울지 않는 선비의 의연함. 닮아야지.

그러려면 우선 천왕봉은 못 되더라도 방문 열어 몇 발짝, 정함봉(경남 하동, 해발 445m)이 보이는 모옥으로 돌아가야 할까 보다.

*참고 문헌. 김달진. 한국 漢詩. 女流詩篇/ 박일봉 편역. 고문진보. 詩篇/ 정민. 한시미학산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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