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명은 산그림자처럼 다가온다

조송원 승인 2019.05.07 10:34 | 최종 수정 2019.05.07 10:50 의견 0
pixabay
출처 : pixabay

붕어빵에는 붕어가 없다. 빈대떡에도 빈대가 없고, 국화빵에도 국화가 없다. 칼국수에 칼이 들어있지 않고, 눈깔사탕에 눈깔이 들어가지 않고, 곰탕에도 곰은 없다. 그러나 아무도 그 존재에 대해 시비를 걸지 않는다. 이 음식들은 우리 주위에 확실히 존재하고, 그것을 즐길 수 있는 구체적 현존물이기 때문이다. 더구나 어원을 따지고 들어가면 그렇게 이름한 연유에 고개를 끄덕거릴 수 있다. 모름지기 ‘이름’은 ‘실체’가 증명하는 법이다.

군사독재 정당의 후예들이 연일 “독재 타도, 헌법 수호”를 외치고 있다. 황교안 대표는 ‘저의 부르짖음을 들어주십시오’라는 글을 통해 “좌파세력들은 의회 쿠데타에 성공했다”며 “독재촛불에 맞서 자유민주주의 횃불을 들자”고 외쳤다. 그러나 우리는 구호와 행동이 얼마나 모순되며, 정당한 표결마저 폭력으로 막아선 이들이 의회민주주의의 장애물이라는 것을 잘 안다.

‘자유와 방종’, ‘민주와 독재’의 실체에 개의치 않는 저들은 정치·사법 개혁법안의 패스트트랙(신속처리 대상 안건) 지정 구실로 장외투쟁에 돌입했다. 황 대표는 7일 부산을 출발해 서울까지 이어지는 ‘문재인 정부 규탄 국토대장정’을 한다. 이와는 별개로 매주 토요일 광화문에서 ‘문재인 스톱(STOP)! 국민이 심판합니다’라는 이름의 규탄대회와 청와대 행진도 이어가고 있다. 지난 4일 제3차 규탄대회에서 나경원 원내대표는 레드카펫 위에서 지지자들에게 손을 흔들며 “좌파독재를 막고, 헌법수호를 위해 한국당이 나서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선거제와 검찰 개혁을 위한 패스트트랙 지정과 ‘좌파독재’니 ‘촛불독재’와는 전혀 상관이 없다. 선거제 개혁은 우리 정치의 문제를 극복하기 위한 시대적 과제다. 표의 등가성과 비례성을 강화해, 국민주권의 행사 결과가 왜곡 없이 의회에 반영되게 하는 민주국가의 당위이다.

촛불시민의 개혁과제 1순위가 검찰개혁이다. 무소불위의 검찰 권력을 견제할 공수처가 있었다면, 김학의·장자연 사건 관련자들이 거리를 활보하지 못했을 것이다. 공수처의 수사 대상은 7000명 정도이며 기소권이 적용되는 대상은 5100으로 조정된다. 공수처는 정치·사법·검찰 권력의 비리를 겨냥한 것일 뿐, 시민을 상대로 하지 않는다. 공포를 느낄 대상은 비리권력일 뿐이다.

한국당은 선거제도 개혁도, 검찰 개혁도 반대한다. 이를 반대하는 건 지지율보다 의석을 더 많이 갖고, 공수처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겠다는 집단이기주의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지금 이대로’가 좋다는 것이요, 기득권을 놓지 않겠다는 심보다.* 따라서 자유한국당의 행위는 반독재 투쟁이 아니다. 저들의 밥그릇을 지키기 위한 기득권 투쟁일 뿐이다.

한국당이 연일 외치는 ‘좌파독재’, ‘촛불독재’, ‘독재 타도’, ‘헌법 수호’에는 실체가 없다. 그러나 자한당의 이 실체가 없는 도깨비놀음에는 더 심각한 함의가 있다. 우리의 목숨이 걸려 있는 문제다.

지난해 일터에서 산업재해로 숨진 노동자가 971명이다. 일과 관련한 질병에 걸려 숨진 것으로 인정받은 노동자는 1년 전(993명)보다 178명이 늘어 1171명이다. 경제력은 세계 10위권인데 왜 이런 산재 후진국 오명을 쓰고 있는 것일까?

이상윤 노동건강연대 대표(직업환경의학 전문의)는 한국의 산업재해 사망은 사고라기보다는 ‘살인’에 가깝다고 말한다. 노동자들이 일하다 죽고, 비슷한 사고가 매년 반복되는 이유는 노동자 개인의 ‘불운’이 아니라, 죽음을 막으려 애쓰지 않는 기업의 ‘구조적 살인’이라는 것이다.

한국 산재 사망 사고의 특징은, 추락·협착·전도와 같은 ‘재래형 사고’가 여전히 산재의 대다수를 차지한다. 쉽게 말해 떨어져 죽고, 끼여 죽고, 넘어져 죽는다. 이는 적은 비용으로 손쉽게 예방할 수 있는 유형이다. 바꿔 말하면 한국 사회가 산재 예방에 그 정도의 노력과 관심도 없다는 얘기다. 또 하나는 반복적이다. 떨어진 데서 또 떨어지고, 끼인 데도 또 끼여 죽거나 다친다. 사고가 발생해도 달라지는 게 별로 없다는 뜻이다.**

기업주들은 왜 반복되는 산업재해를 방치하는 것일까? 안전설비를 하는 것보다 개인에게 보상하는 게 더 싸게 먹히고 손쉽기 때문이다. 처벌도 받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산재 유가족은 책임자 처벌이 일터에서의 죽음을 방지할 수 있다고 보고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을 요구하고 있다.

고 노회찬 의원 등이 대표발의한 중대재해기업처벌법안은 사업주나 법인·기관의 경영책임자가 산안법을 어기거나 안전·보건조치를 위반해 산재 사망사고가 일어나면, 3년 이상의 유기징역이나 5억 원 이하의 벌금을 내리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상윤은 “산재가 발생해도 원청을 엄격하게 처벌하지 못하기 때문에 죽음이 반복되고 있다”면서 “산안법 같은 일부 법안으로 기업이 처벌을 받고 있지만, 직원의 관리·감독을 소홀히 했다는 이유로 지는 책임이다. 벌금이 수백만 원에서 몇 천만 원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또 이상윤은 “기업이 아무것도 하지 않아 발생하는 살인,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은 정부의 책임 방기다. 이것이 우리나라 산재사망의 핵심이자 본질”이라며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을 제정해 정부가 기업에 준 죽음의 면죄부를 끊고 노동자의 생명과 안전을 지켜야 한다”고 밝혔다.***

최근 ‘김용균법’으로 불리는 산업안전보건법 시행령이 입법예고 되었다. 중대재해기업처벌법안에는 훨씬 못 미치는 내용이나, 원청업체에 산재사고의 책임을 일부 물리도록 한 조항이 있다. 이에 한국경영자총협회 등 경영계는 “기업을 범법자로 만들겠다는 것이냐”며 반발했다고 한다.

뭔가 이상하지 않은가. 경영계는 ‘살인면허’라도 있다는 말인가. 사람을 죽이면 살인이고 살인은 명백한 범법이다. 사람을 죽인 기업이 범법자가 아니고 그럼 뭐란 말인가. 이런 상식에 도전하는 경영계는 그만한 뒷배가 있다. 바로 실체가 없는 ‘독재타도’니 ‘촛불독재’니 ‘헌법수호’니 등등의 도깨비놀음을 하는 무리들, ‘청와대를 다이너마이트로 폭파’하자는 무지막지한 발언을 한 김무성 의원 등이 그들이다.

그러나 딱 걸렸다. 물색 모르고 자유와 방종을 구분 못하고 날뛰다 딱 걸렸다. 국민 전체가 아니라 일부 수구·극우의 지지를 놓고 ‘달팽이 뿔 위에서 천하를 다투다(蝸牛角上爭)’가 딱 걸렸다.

국회선진화법의 무게는 지중하다. 야당이 반발했지만 새누리당은 2013년 8월 13일 국회법 ‘제15장 국회 회의 방해 금지’ 규정을 신설했다. ‘5년 이하 징역, 1천만원 이하 벌금’, 다중의 위력을 보이거나 기록 등을 손상한 경우 ‘7년 이하 징역, 2천만원 이하 벌금’을 명시했다. 500만원 이상 벌금형 확정 때 의원직 상실, 집행유예 이상을 선고 받으면 10년 동안 피선거권이 박탈되는 걸 고려하면 의원의 생살여탈을 가를 무시무시한 국회법이 만들어졌다.

조송원

국회법 조문을 고려할 때 상당수가 의원직 상실형을 선고받은 가능성이 크다는 게 법조계의 중론이다. 법안을 탈취·훼손한 이은재 의원은 딱 걸렸다. 회의장 봉쇄를 주도한 나경원 원내대표도 위험하다.****

이종걸 의원은 지난 25일 밤 자신의 페이스북에 “21대 총선 출마가 어려운 의원도 많아질 것이다. 오늘 사태는 ‘기해대란’인 동시에 ‘기해년 집단자해 사건’이라고 불러도 손색없다”고 적었다.

정치·경제·사회·문화 등 모든 분야에서 강자와 가진 자만 과다 대표해 온 대한민국 역사에서, 약자와 소수자가 제 몫의 대표를 낼 수 있는 국회를 갈망함은 혁명을 필요로 했다. 그 혁명이 어느덧 산그림자처럼 성큼 다가왔다. 이 혁명의 완성에는 총과 칼이 필요 없다. 부르쥔 주먹, 피 끓는 함성도 필요 없다. 촛불 하나, 투표지 한 장이면 족하다.

※*사설, 「한국당은 선거제·검찰개혁이 그렇게 두려운가」, 『경향신문』, 2019년 4월 29일. **선명수, 「“개인 불운 아닌 기업 살인···산재를 보는 눈 바꿔야 사고 줄어”」, 『경향신문』, 2019년 4월 26일. ***박종완, 「하청노동자의 눈물(하)고통 해결할 방법은」,『경남도민일보』, 2019년 5월 1일. ****신승근, 「황교안·나경원의 ‘자기희생’」, 『한겨레신문』, 2019년 5월 3일.

<작가·인저리타임 편집위원>

저작권자 ⓒ 인저리타임,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