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최 부자와 ‘정치검찰’의 종언

조송원 승인 2020.01.08 11:26 | 최종 수정 2020.01.08 11:34 의견 0
검찰개혁 촉구 촛불 집회. YTN 화면 캡처.
검찰개혁 촉구 촛불 집회. YTN 화면 캡처.

평범한 봉급생활자인 정 씨의 일상은 단조로웠다. 출근하고 퇴근하며 봉급날 기다리는 단순한 생활인이었다. ‘단조로움은 불행의 부존재다’라는 냉정한 분석을 내면화한 정 씨는 매사에 착실했다. 전형적인 직장인인 정 씨는 어느 날 개꿈을 용꿈으로 해몽하여 로또 복권 만 원치를 샀다. 번호를 휴대폰으로 찍어두고 아무렇게나 양복 윗주머니에 쑤셔 넣었다. ‘요행수를 바라다니······.’ 피식 쓴웃음을 지었다.

잊고 있었다, 복권 산 일을. 몇 주가 지났다. 오후 늦게 서류는 이미 캐비닛에 챙겨 넣어둔 터라, 무작정 퇴근 시간을 기다리려니 무료했다. 심심파적으로 휴대폰을 만지작거리다 복권 번호를 보게 됐다. 검색을 했다. 자신이 산 회차의 1등 당첨번호를 적었다. 휴대폰의 복권 번호와 비교했다. 10줄의 번호 중 1줄이 당첨번호와 정확히 일치했다. ‘아니 이럴 수가!’

사무실 문을 박차고 나갔다. 신호등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고 집으로 차를 몰았다. 그 양복을 찾았다. 한데 그 양복은 세탁소를 한 번 다녀왔다. 얇은 투명비닐을 쓰고 있었다. 윗주머니를 뒤졌다. 물경 20여 억의 복권이 씹다 버린 껌 같은 종이뭉텅이가 되어 있었다.

정 씨가 잃은 것은 단돈 1만 원에 불과하다. 그러나 그 후로 정 씨는 온전한 정신까지 잃어버렸다. 지금 ‘정치검찰’의 심중은 정 씨와 같지 않을까?

주역 64괘 중 제1괘가 중천건重天乾(䷀)이다. 건삼련(乾三連·)이란 소성괘가 내외상하로 합쳐진 6획괘이다. 쉽게 말하자면, 하늘 건乾()이 아래위로 두 개가 합쳐진 것이다. 6획의 명칭은 밑에서부터 위로 읽어, 초구初九·구이九二·구삼九三·구사九四·구오九五·상구上九라 한다. 이 상구, 곧 가장 높은 하늘인 상구를 대산 김석진 선생은 다음과 같이 풀이한다.

上九는 항룡亢龍이니 유회有悔리라.
상구는 높은 용이니 뉘우침이 있으리라.

상구(上九)는 하늘의 용이 가장 위에 있는 것을 뜻합니다. 맨 윗자리에 있어서 더 나아갈 수 없으므로 ‘높은 용’인 항룡(亢龍)격이 되어 뉘우침만 남는다고 하였습니다(有悔). ‘윗 상(상)’은 올라가는 것이고 높은 자리 위에 있는 것이지만, ‘높을 항(亢)’은 올라가서는 안 되는 곳까지 극도로 올라간 것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中이 중요한 것입니다. 상구는 외괘에 있으면서 中에 처한 구오를 지났기 때문에 中을 벗어나 너무 치우치고 과극(過極)하여 후회만 있게 됩니다.(김석진 『대산 주역강의』).

항용은 유회라! 이 주역의 이치를 ‘정치검찰’은 이제 비로소 깨닫고 있지 않을까?

경주 최 부자 가문의 육훈六訓은 다음과 같다.

과거를 보되 진사 이상의 벼슬은 하지 마라
만 석 이상의 재산의 사회에 환원하라
흉년기에는 땅을 늘리지 마라
과객을 후하게 대접하라
주변 100리 안에 굶어 죽는 사람이 없게 하라
시집 온 며느리들은 3년간 무명옷을 입게 하라

‘정치검찰’도 이 유명한 경주 최 부자의 육훈쯤은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머리로 아는 것과 가슴에 새기는 것은 다르다. 나아가 가슴에 새겨 손발로 실천하는 일은 또 다르다. 300년 동안 부를 지키는 일은 예삿일이 아니다. 정치검찰이 폭주기관차에 편승한 것은 노태우 정부 때부터다. 이제 겨우 30년 남짓이다. 세상의 이치는 ‘지금 여기’에서는 작동하지 않는 것 같지만, 너, 나 우리에게도 어김이 없다. 하여 ‘천망회회 소이불실(天網恢恢 疎而不失)’, 하늘의 그물은 느슨하고 성겨 보이지만, 아무리 작은 것이라도 빠져 나갈 수 없다고 했던가.

조송원 작가

공수처 설치 법안 통과로 검찰의 독점적 권한은 무너졌다. 정치검찰의 선택적·편의적·자의적 기소·불기소는 불가능하게 되었다. 공수처 검사들이 영장을 발부 받아 검찰총장의 사무실도 압수·수색도 할 수 있게 되었다. 이런 마당에 ‘먼지털기식 수사’나 ‘피의사실 공표’는 언감생심이겠지. 언어도 제 자리를 찾아 주어야 한다. ‘조국 사태’가 아니라 ‘검찰 사태’이다. 조만간 검경 수사권 조정안이 통과되면 공수처·검·경의 상시적인 견제와 경쟁의 구도가 완성되리라. 누가 잃고 누가 얻은 게 아니라 다들 제자리로 돌아가는 국가형벌권의 정상화일 뿐이다.

빈대가 밉다고 초가삼간을 다 태울 수는 없는 일이다. 2300여 명의 검사 중 정치검찰은 한 줌에 불과할 것이다. 영화 <블랙머니>(감독 정지영)의 ‘막프로’ 양민혁 검사 같은, 압력에 굴하지 않고 거악 척결에 몸을 던지는 참 검사들에 대한 신뢰를 저버려서는 안 될 것이다. 현실에서 임은정 검사 같은 분들도 있지 않은가.

<작가·인저리타임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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