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현숙 시인의 '詩의 아고라'(106) 스며들다, 김송포

손현숙 승인 2023.11.04 15:10 | 최종 수정 2023.11.06 11:57 의견 0

스며들다
                           김송포

 

언제부터인지 슬그머니 당신에게 스며들었다 김치의 맛이 배어 그 맛을 생각나게 했다 단어와 단어가 몸 안에서 은근히 밴 언어로 스며들다 닮아 간다는 것이다 저절로 배어든다는 것은 수레바퀴에서 거스를 수 없는 순리다

한겨울 추위가 으슬으슬하게 떨게 할 즈음 두드러기 같은 꽃이 피었다 몸에 핀 발진은 추위를 견디지 못하고 스며든 독소의 증상이다 따뜻한 곳에서 차가운 곳으로 이동하면 살갗이 적응을 하지 못해 칼같이 스며들어 혈액이 반응한다

스며든다는 것은 소통이 가능하다는 것, 몸이 서로를 밀어내지 않고 비슷한 온도와 구름 같은 흐름이 자연을 닮게 되었을 때 하나가 되는 것, 비슬비슬하게 어울린다는 말, 간장과 식초냄새가 발효음식이 되면 몸을 강하게 만들어 준다 틈과 틈 사이 미세하게 서로에게 스며들

김송포 시인

김송포의 시집 《즉석 질문에 즐거울 락》을 읽었다. ‘천년의 시작’ 2023.


시월이 슬몃 지나 11월에 스며들었다. 가을이 조금씩 짙어지더니 겨울 쪽으로 스미는 중이겠다. 누구도 상처 내지 않고 겨울로 가는 가는 길목, 11월은 그림자로 스며들어 뒷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어제는 북극성 옆에 달이 떴다. 먼먼 눈빛으로도 서로가 서로에게 스미는 중이다. 위의 시에서 화자는 당신에게 스미는 여러 일상을 저절로 배어드는 우주의 순환 질서로 보았다. 어쩌면 도무지 모르겠는 당신과도 가만히 스며들어 당신이 가능할지도 모르는 일, 희망이다.  

 

손현숙 시인

◇ 손현숙 시인

▷1999년 『현대시학』으로 등단 
▷시집 《너를 훔친다》 《손》 《일부의 사생활》 《경계의 도시》(공저)  《언어의 모색》(공저) 
▷사진산문집 『시인박물관』 『나는 사랑입니다』  『댕댕아, 꽃길만 걷자』 
▷연구서 『발화의 힘』, 대학교재 『마음 치유와 시』 ▷고려대 일반대학원 문학박사(고려대, 한서대 출강) 
▷현 조병화문학관 상주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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