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재운 대기자의 '생각을 생각하다' (1) 아무것도 안 하기

진재운 승인 2021.06.10 14:35 | 최종 수정 2021.06.10 22:17 의견 0

비 내리는 날 저녁 시골집 툇마루에 걸터앉아 마당을 기어가는 두꺼비를 본 일이 있습니다. 엉금엉금, 두꺼비는 절대 바쁘지 않습니다. 그러다 땅 밑에서 숨쉬기 힘들어 올라온 지렁이를 보자 날름 삼킵니다. 순간 두꺼비 입장으로 훅 들어가 봅니다. ‘오로지 먹잇감에 집중돼 있습니다. 다른 생각을 할 겨를도, 이유도, 필요도 없습니다. 조금 전 보낸 SNS에 몇 개의 답변이 왔는지 신경 쓰지 않습니다.’ 한 번에 한 생각, 이날 두꺼비가 보여준 것입니다. 

두꺼비가 보여 준 집중력, 요즘 내가 간간히 홀로 시도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그 방법이 ‘아무것도 안 하기’입니다. ‘집중력과 ‘아무것도 안 하기’는 맞닿아 있다고 알았기 때문입니다.

움직임을 없애고 가만히 앉거나 누워도 생각들이 쏟아져 들어옵니다. 그 고리를 끊어도 이번에는 먼 과거로의 기억들이, 또 미래의 환상들이 삐죽 들어옵니다. 결국 방법은 의식을 한 곳에 집중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갑자기 모든 것이 고요해지는 어떤 상태로 훅 들어갑니다. 공간도 시간도 없는 어떤 지점입니다. 누군가는 텅 비었지만 오묘한 것이 있다는 ‘진공묘유’라고 말합니다. 표현이 참 좋습니다. 이 순간 세상은 나 홀로가 아닌 모든 것과 연결되어 있다는 연결성을 느끼게 됩니다.

그러다가 또 다른 생각들이 침투해 들어오면 모든 것이 흐트러져 버립니다. 아무것도 안하기란 가능한 듯하면서도 참으로 불가능해 보입니다.

두꺼비

심리학에서 ‘아무것도 안 하기 실험’을 한 일이 있습니다. 하지만 결과는 좀 공포스럽습니다. 특정 공간에 들어간 피험자들에게 아무것도 하지 않고 시간을 보내도록 했습니다. 그 공간에서 유일하게 할 수 있는 것은 전기충격기 사용입니다. 처음엔 멀쩡히 앉아 있던 피험자들이 시간이 지나자 많은 전기충격기를 찾아 자신의 몸에 들이댑니다. 시간이 갈수록 그 전기충격기의 강도를 높여갑니다. 어떤 피험자는 수십 번 넘게 전기 충격기를 사용했습니다. 이 실험은 아무것도 안 하기가 얼마나 힘든지 보여줍니다.

얼마 전 ‘멍 때리기 부산대회’에서 1등을 한 젊은 친구를 만난 적이 있습니다. 나의 질문은 간단했습니다. “멍 때리기 할 때 정말 멍 때렸냐?” 답변은 생각한 대로였습니다. “아뇨, 그냥 이것저것 떠오르는 대로 계속 생각하고 있었죠.” 말인즉슨 생각의 꼬리를 붙잡고 시간을 보낸 것입니다. 표정만 멍을 때렸던 것입니다.

‘아무것도 안 하기’ ‘멍 때리기’, 모두 쉽지 않은 일인 것만은 분명해 보입니다. 하지만 난 여기서 좀 다른 해석을 하고 싶습니다. 사람도 본질적으로 고도의 집중, 즉 몰입을 하는 존재입니다. 모든 것과 연결돼 있다는 것을 그냥 아는 것이었죠. 이는 단순히 생존, 진화의 문제와는 다른 것입니다. 하지만 그 방법을 점차 잃어버리고, 잊고 있다는 것입니다.

인간을 Human being이라고 합니다. 존재 그 자체에 의미를 둔 것입니다. 하지만 지금의 세상은 ‘Human doing’이라고 해야 맞는 것 같습니다. 뭔가를 끊임없이 하는 존재로 변했다는 것입니다. 한 번에 여러 가지 일, 온 종일 소위 멀티태스킹을 하는 것이지요. 바쁩니다. 심지어 꿈꾸는 시간까지 바쁨이 전염되어 들어왔습니다. 바쁜 걸 일상으로 삼고, 바쁜 것을 정체성으로 여깁니다. 그래서 인사말도 “요즘 많이 바쁘시죠?”라고 합니다. 소위 세상과의 연결성을 잃어버린 결과입니다. 그리고 잃어버린 연결성은 스마트폰을 뚫어지게 쳐다보는 것으로 대체합니다. 하지만 스마트폰은 공허감을 절대 채워주지 않습니다. 

정말 힘든 ‘아무것도 안 하기’, 내겐 툇마루에 앉아서 그냥 두꺼비를 쳐다보는 그것이었습니다.

<다큐멘터리 '위대한 비행'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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