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현숙 시인의 '詩의 아고라'(113) 월세천, 원구식

인저리타임 승인 2023.12.23 03:31 의견 0

월세천
원구식

낮은 곳에서 높은 곳으로
흐르는 개울이 있네.
그 이름은 월세천.

너는 월세 천에 오십
나는 월세 천에 삼십

우리는 월세천에 사는
월세 인생이라네.

나는 날마다
폭포수를 거슬러 올라가는
옥탑방의
미꾸라지.

너는
월세 천도 안 되는
지하인생.
그러니 나하고 같이 살자.
밤이면 밤마다
은하수를 향해 흐르는
월세천을 보여줄게.

월세천,
이것은 하늘로 가는 개울.

원구식 시인. 1955년 경기 연천에서 태어나 중앙대 문예창작학과와 숭실대 대학원 국문과를 졸업했다. 1979년 동아일보신춘문예에 시 〈塔〉이 당선되어 시단에 나왔으며, 시집으로 《먼지와의 싸움은 끝이 없다》 《마돈나를 위하여》가 있다. 2008년 제40회 한국시인협회상을 수상했다. 현재 월간 『현대시』, 격월간 『시사사』 발행인으로 있다.
문예지 『현대시』 1992년 12월호


원구식 시집 《오리진》을 읽었다. 『문연』 2023.


혹시, 우리는 지금 ‘세상천’에 세 들어서 일수를 찍고 있는 존재들은 아닐까. 낮은 곳에서 높은 곳으로 흐르는 불가능. 즉 삶에서 죽음 쪽으로 거칠게 흘러가는 물줄기를 불온하게 바라보는 견자의 시선. 시인은 시집 한 권을 통틀어서 인간의 근원에 대해 이야기한다. 《오리진》, 인간의 참된 모습을 찾아 몸부림치는 한 시인의 절규를 듣는다, 읽는다, 본다. 시인은 높은 곳에서 높은 곳으로 향한 싸움은 끝났다고 일갈 한다. 낮은 곳에서 더 낮은 곳으로 전락하지 않기 위하여 몸부림치는 작금의 현실과 자본의 논리. 그런 것에 대하여 말하지 않고도 말하는 시의 발화 법을 차용한다. 그러니까 시인은 인간 본연의 위대함을 이야기하기 위해 인간의 비루함을 잔인할 정도로 밀어붙인다. 당신은 자가인가, 전세인가, 월세인가, 빈 칸에 동그라미를 칠 수 있는가.

손현숙 시인

◇손현숙 시인

▷1999년 『현대시학』으로 등단
▷시집 《너를 훔친다》 《손》 《일부의 사생활》《경계의 도시》(공저) 《언어의 모색》(공저)
▷사진산문집 『시인박물관』 『나는 사랑입니다』 『댕댕아, 꽃길만 걷자』
▷연구서『발화의 힘』, 대학교재『마음 치유와 시』▷고려대 일반대학원 문학박사(고려대, 한서대 출강)
▷현 조병화문학관 상주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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