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기철 장편소설】 저곳 - 6. 기백과 사라③
박기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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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2.02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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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곳에서
남녀끼리
허심탄회하게
이야기되는
물권색
物權色
6-3. 사형을 당하지 않은 진숙
네 입에서 뭔 말을 더 하겠다는 것인지 말이 안 나오네. 그러고도 네가 할 말이 있다는 거야. 어이가 없네.
내가 살던 성 주변에 살던 젊은 처녀들이 사라지고 그러는데 마을에서 점점 난리가 났겠지. 그래도 나는 성에 사는 영주급 귀족 여자라 감히 나한테 함부로 뭐라 하지 않았어. 성 주변의 처녀들이 줄어들어 더 이상 끌어올 얘들이 없어지자 나는 내가 아는 귀족의 딸들까지 유인하기 시작했지. 나의 범죄가 더욱 대담해진 거지. 딸을 잃은 평민 부모들은 나한테 대드는 별 행동을 하지 않았지만 딸을 잃은 귀족 부모들은 나를 의심하며 나한테 혐의가 있다고 의심하기 시작했겠지. 그러다 나한테 붙잡혀 있던 처녀 하나가 내가 방심하는 틈을 타 기적적으로 탈출했어. 그렇게 하여 내가 저질렀던 잔인한 일들이 세상에 알려지게 된 거지. 나의 마각이 드러난 거지. 이때부터 수사가 들어오고 나의 악행이 밝혀지기 시작했어. 나의 성과 지하방을 조사하던 수사관들은 나의 잔인한 행각에 경악했어. 특히 지하방의 피비린내와 시체 썩는 냄새에 다들 코를 막았지. 나는 결국 붙잡혀 가며 구속되었어. 그런데 사람들은 나를 마녀로 몰아가기 시작했어. 당시에 마녀사냥이란 게 있었는데 나도 그런 마녀들 중의 하나가 된 거지. 그러면서 나의 악행은 더욱 더 과장되었지. 내가 하지도 않은 일들까지 내가 했다고 몰아갔지. 특히나 항간에 떠도는 소문들은 내가 저지른 악행보다 더 끔찍한 악행과 관련된 거였어.
아니! 네가 저지른 악행들이 얼마나 끔찍한데 또 얼마나 더 끔찍한 마녀의 악행으로 몰아가고 소문이 났다는 거야? 말이 안 되네. 정말. 뭐야!
잔혹함이라는 것엔 한계가 없어. 끔찍한 잔혹의 정도 위에 더 끔찍한 잔혹이 있는 법이야. 그냥 그런 줄 알아. 뭘 안다고 그래. 감히 판단하지마. 네 좁은 머리로… 얼마나 더 끔직한 건지는 일일이 내 말하지 않겠어. 그냥 네 머릿속으로 상상만 해. 물론 네 상상 이상의 끔찍함이라고만 알아둬. 일단 나의 끔찍한 악행 범죄에 가담한 하인들은 금방 사형에 처해졌어. 그런데 나는 꼴에 백작부인 귀족이라고 사형을 당하지는 않았어. 금고형을 받게 되었어. 사람을 가두는 금고(禁錮)라는 형벌은 오히려 사형보다 나한테 더 가혹하고 끔찍했어. 젊은 여자의 피로 내 몸을 씻지 못하니 나는 폭싹 늙어가는 기분이었지. 아직도 반성하지 못한 거지. 내 주제에 끔찍함을 말하다니! 나도 참 웃기는 년이야. 하루에 두 번 먹을 걸 넣어주는 작은 구멍 이외에는 모든 게 밀폐되고 한 줄기 빛조차 들어오지 않았어. 금방 죽을 것같았는데 그래도 생명이란 게 얼마나 질긴지 나는 4년이나 버텼지. 그렇게 나는 54세에 죽었어. 44세부터 악행을 저지르고 10년 만에 죽게 된 나의 극적인 인생 드라마야.
네 말대로 내 머리로는 도무지 상상도 이해도 판단도 안된다. 너란 여자 정말 최고로 잔인한 최고잔녀고 최고로 흉악한 최고흉녀이자 최고악녀네.
그렇다고 나라는 여자를 좀 안다고 생각하면 오산이야. 아직 내 얘기는 끝나지 않았어. 인간세상 세상만사 단순한 건 없어. 이런 건 줄 알았는데 저런 게 되기도 하고 저런 줄 알았는데 또 그런 게 되기도 해. 아무튼 여하간 좌우지간 애니웨이 나는 여기서 반성하고 회개하고 있어. 젊음의 아름다움을 쫒는 나의 어리석은 미색욕 때문에 비참하게 죽어간 젊은 처녀들을 여기서 만나기라도 하면 나는 몰매 맞아 죽을 거야. 난 조용히 숨으며 짱박혀 있어야 해. 그래도 난 여기가 좋아. 나 여기서 나가면 지옥으로 갈 거 같은데 지옥은 너무 무서워. 내 소원은 지옥가지 않는 건데 기백이 네가 사라 날 좀 어찌 도와줄 수 없겠니? 불쌍한 사라는 아니고 처참한 사라 좀 구해줘. 내가 들려줄 나중 이야기를 듣고 좋게 생각해 봐. 나에 대해 좋게 소문난 이야기도 있어. 그게 또 허무맹랑한 소문은 아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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