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기철 장편소설】 저곳 - 8. 신주와 미호③

박기철 승인 2024.03.02 13:12 의견 0

저곳에서
남녀끼리
허심탄회하게
이야기되는
물권색
物權色


8-3. 황후가 되어서도 못 끊는

아니 황제가 애지중지 사랑하는 둘도 없는 정부가 되었는데 또 정상이 있어. 그럼 뭐 중전마마 몰아내고 왕비라도 되었다는 거야?

네 짐작이 맞긴 한데 틀렸어. 나를 사랑하는 남자는 그냥 왕이 아니야 황제였어. 황제의 부인은 왕비가 아니라 황후라고 하지. 난 끝내 황후가 되었어. 그게 어찌 그리 되었냐 하면 좀 복잡해. 자세히 알 건 없어. 한마디로 원래 황후가 황제의 강력한 통치에 반대하는 입장에 섰다가 물러나게 된 거지. 그녀는 원래 그런 정치에 별 관심이 없었대. 그냥 헌신적인 현모양처 스타일의 좀 전통적 구식 여자였다는데… 황제의 반대파들이 그녀를 그렇게 황제 반대파의 상징과 같은 존재로 옹립하며 이용했던 거겠지. 나는 사실 그런 거 잘 몰라. 나는 그냥 이쁜 여자일 뿐이야. 골치아파. 그냥 그랬다고만 들었어. 그런데 황후였던 그녀는 불쌍한 여인이기도 했어. 아들을 셋이나 낳았는데 둘째와 셋째 아들은 어릴 때 죽고 하나 남은 첫째 아들은 황태자 때 황제인 아버지한테 대들다가 맞아 죽었어. 아무리 아버지한테 대든다고 아들을 때려 죽이다니… 황제는 나한텐 자상했지만 무지막지하게 무서운 남자였어. 잔인하기도 했지. 2m 장신의 남자가 화를 낼 땐 정말 미친 악마처럼 보이기도 했지. 변덕이 심한 남자이기도 했어. 아무리 아들을 사랑했어도 아들을 죽이고 말았어. 저기 어느 나라에서는 세자인 아들을 뒤주에 갇혀 죽게 한 왕이 있다고 들었는데 황제는 그 왕보다 더 무섭고 잔인했어. 자기에게 조금이라도 반항하거나 반란의 조짐이 보이면 무시무시하게 처형했어. 내 입으로 말하기 힘들 만큼 잔인잔혹참혹하게 죽였어. 그래도 아들은 몽둥이로 때려죽이는 태형으로 덜 잔인하게 죽였지. 아버지를 무서워했던 아들은 전쟁터 다니기 싫고 아버지 이어서 황제되기도 싫고 그냥 수도원에 들어가 수도사로 살고 싶다며 아버지로부터 도망다녔어. 그러다 잡혀서 그렇게 죽었어. 아들이 죽던 날 아버지는 태연한 척한다고 했다지만 자기가 죽인 아들이라 얼마나 슬펐을거야. 나는 그런 황제의 아픔과 슬픔을 보듬어줄 수 있는 부드러운 여인이었어. 난 일자무식에다 아는 건 별로 없어도 황제는 날 좋아했어. 처음엔 이쁜 여자로 좋아하다가 나중엔 인간적으로 좋아했어. 그런 와중에 원래 황후가 자기를 반대하는 자들의 대표처럼 되자 그녀를 수도원에 가두고 나를 황후로 앉혔어. 하녀가 황후가 되다니?

정말 네 말대로 신데렐라 같은 신분상승이네. 그런데 너 아까 신데렐라보다 더 했다고 했는데 그건 또 뭐야?

뭐 그렇게 급해. 조용히 내 이야기나 잘 들어. 황후가 된 나는 황제와 더 가까워졌어. 그런데 나는 남편이 된 황제에게 나라 돌아가는 국정에 대한 이야기는 별로 하지 않았어. 대개 황후가 되면 그런 이야기를 한다던데 나는 그런 복잡한 이야기를 하고 싪지 않았어. 왜 그랬는지 알아? 내가 뭘 조금이라도 아는 게 없기도 했지만 난 그런 거 아는 것도 몰랐어. 난 그냥 하루하루 황제인 남편에게 사랑받고 맛있는 거 먹고 속편하게 맘편하게 몸편하게 사는 거에 관심 있었어. 나랏일 하느라 매일 골치 아프고 편두통이 심했던 황제는 그런 나한테 와서 두통 치료도 되고 마음의 안정을 얻었어. 그리도 다른 사람들한텐 두려움과 무서움을 주는 황제였지만 내 앞에서는 그저 순한 양이었어. 여자들은 대개 자기 자식에 대한 모성애 본능이 강하다지만 온갖 남자들을 부드럽게 보듬어주었던 나의 모성애 재능은 마음이 늘 아픈 황제에게 더욱 발휘되었어. 난 그렇게만 살면 얼마든지 만족했어. 그런데 그게 또 그렇게만 되지 않았어. 너 도화살(桃花煞)이라는 거 알아? 난 모성에 재능에 도화살을 지닌 여인이었어. 도화살이란 좋게 말해서는 매력살인데 이성이 나한테 끌리는 기운이야. 좋은 기운으로 쓰이면 좋겠지만 나쁜 기운으로 더 쓰이기 쉽지. 내가 이제 남편이 된 황제 한 명의 남편과 잘 살면 되는데 그게 그리 되지 않도록 하는 도화살! 무슨 뜻인지 알겠어! 내가 남편 말고의 이성관계를 딱 끊어야 하는데 그게 내 맘대로 되지 않는 매력살이 도화살이야. 결국 남편 아닌 다른 남자가 나한테 끌렸다는 것이지. 그러면 안 되는 거였지. 무시무시한 최고권력자의 여인을 탐한다는 게 말이 되. 나는 그런 외간남이 오면 막아야 했어. 그 남자를 위해서라도. 근데 도화살이라는 게 막고 끊고 싶어도 내 맘대로 되지 않아. 그러니 어떻게 되었다는 거겠어?

저작권자 ⓒ 인저리타임,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