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하소설 「신불산」(741) 제7부 돌아가는 꿈 - 제16장 수남댁, 돈을 들고 튀어라(1)

이득수 승인 2024.05.08 09:44 | 최종 수정 2024.05.08 09:45 의견 0

16. 수남댁, 돈을 들고튀어라(1)

추석 전날 서울의 아들 내외가 내려오면서 늙어가는 내외가 조용조용 살던 아파트에 모처럼 활기가 넘쳤다.

“아버님!”

정석이가 좀 과장된 동작으로 열찬씨와 포옹을 하는 사이 영순씨와 손을 잡고 무어라 이야기를 하던 며느리 상미씨가

“아버님, 안녕하셨어요?”

상냥한 서울말로 깍듯이 인사를 하자

“외숙모!”

학교수업을 마치자말자 주공의 열찬씨네로 와서 위층의 동현이, 7층의 가연이랑 정신없이 놀던 아이가 어떻게 알았는지 헐레벌떡 달려왔다. 손이 큰 영순씨가 넉넉히 갈비를 재어놓은 것으로도 부족했는지 민락동 활어시장의 단골집에 미리 부탁을 해놓고 아이들이 도착하자말자 퀵서비스로 배달하게 해 아이들 말로 아주 거(巨)한 저녁상을 차리는데 딩동 벨이 울리면서 슬비씨 내외도 들이닥쳤다.

거실에 상을 펴고 모처럼 일곱 식구 전 가족이 둘러앉아 저녁을 먹는데 그 날도 열찬씨가 정부미식 폭탄주를 제조해서

“건배!”

를 외치며 한 잔씩 먹게 하고

“우리 집이 다 좋은데 8년째 식구수가 늘지 않아. 초등학생이 된 영서가 이적지 동생이 없단 말이야.”

영순씨가 며느리의 눈치를 살피며 열찬씨를 향해 레이저를 쏘든 말든 절절한 희망을 피력하는데 전과 달리 원 샷으로 폭탄주를 마시지 않고 상위에 놓고 주변의 눈치를 살피던 며느리 상미씨가

“욱!”

하고 두 손으로 입을 막는 것을 보고

“아가! 니 혹시?”

며느리가 조심스레 바라보는데

“예! 맞습니다. 올해 추석에는 아주 큰 선물을 장만해 왔습니다.”

아들이 모처럼 당당하게 가슴을 폈다.

“그런 줄도 모르고. 고생 많았겠구나. 그래 몇 달이나 됐노?”

“아마 한 5개월쯤 됐을 거요. 내년 음력설 전후로 낳을 것 같아요.”

“그럼 여태 왜 말 안 했노? 너거 아부지 일천전심으로 기다리는 것을 빤히 알면서.”

“예. 병원에서 확인한 지 한 달 쯤 되었는데 기왕이면 추석선물로 보따리를 풀려고요.”

며느리는 수줍은 듯 말이 없고 아들이 신이 났다.

“경사 났네! 우리 며느리가 기어이 해냈구나. 자 며늘아!”

소주잔을 건네려던 열찬씨가 영순씨와 눈이 마주치자 움찔하며

“그래. 아가, 몸조심해야지. 아이 가지고 먹고 싶은 것 못 묵으면 눈이 작은 아이가 나온다는데 묵고 싶은 거 있으면 다 말해라. 이 시애비가 다 사줄 게.”

“아, 아닙니다.”

하는데

“입덧이 심하지 않다니 참 다행이구나. 뭐든 고루고루 많이 먹어라.”

영순씨가 매운탕냄비를 들고 와 며느리가 좋아하는 얼큰한 국물을 떠주는데

“엄마, 아빠! 우리도 선물 준비했는데.”

슬비씨가 말끄러미 두 사람을 올려다보는데

“너거사 명절마다 신발에 용돈이면 되지 또 무슨 선물을?”

이미 봉투와 운동화를 받은 열찬씨가 무심히 말하는데

“아이구야! 혹시 니도?”

영순씨가 걱정이 가득한 얼굴로 바라보자

“엄마는 표정이 왜 그래요? 태어나는 생명은 다 같이 소중한 것인데.”

영 섭섭한 딸을 보고

“내가 뭐라 카나? 너거 회사도 어려워 직장이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르는 판에 아아는 자꾸 낳아 우짤기며 보기는 누가 볼 끼고?”

하며

“빙고! 드디어 우리 김 서방도 한 건 해냈구나. 기왕이면 아들을 낳아 김씨 집안의 대를 이어가면 좋겠네.”

하는 열찬씨를 흘겨보며

“어른이 되서 저렇게 아이 같기만 할꼬?”

하다

“그래 몇 개월째?”

금방 어미로 돌아와 걱정스레 묻자

“3개월, 사실 오늘 병원에 가서 알았다. 엄마는 반대해도 아부지는 찬성했잖아? 한 나이라도 젊을 때 낳아 영서가 동생이랑 사이좋게 자라라고 말이야?”

“아이구, 이 시근 없는 아버지에 딸아. 그래. 아이를 낳아만 놓으면 보기는 누가 볼끼고? 나는 인자 무릎관절이 아파 더는 아아를 못 본다이.”

하다

“당신이 봐 준다 캤으니 당신이 다 보이소.”

열찬씨를 바라보는 사나운 눈길이 차츰 사그라지며

“아이구, 내사 모르겠다. 사람은 누구나 지 묵을 것 타고 태어난다고 했으니 지 알아서 자라겠지. 아니, 하나님아버지가 돌보겠지.”

하며 성호를 그었다.

“그래. 아무튼 우리에게 새 식구로 다가오는 두 생명을 위하여!”

열찬씨가 기어이 또 한 번의 폭탄주를 돌렸다.

[그림 서상균]

추석날 아침. 아이를 가진 며느리가 불편할까 봐 영순씨와 며느리는 집에 남고 부자간에 언양산소를 다녀오기로 했다. 승용차가 통도사 앞 신평마을을 지나며 신불산이 환하게 정면으로 보이기 시작하자

“아들아, 니 요즘도 신불산이 생각나나? 니 조상들의 뿌리는 물론 앞으로 니와 니 자식들의 뿌리가 될 저 웅장한 신불산 말이야?”

“예. 자주는 아니지만 직장에서 등산이니 뭐니 산 이야기가 나오면 가끔은 아버지의 뿌리이자 영혼인 신불산이 생각나지요.”

“그래. 그럼 이렇게 바로 볼 수 있을 때 실컷 보아라. 세상에 저렇게 웅장하면서도 줄기차고 넉넉하고도 포근하게 품을 펼치는 산이 세상에 또 있겠나?”

“예. 업무가 잘 안 풀리고 골치가 아플 때 아버지 말마따나 신불산이나 한 번 쳐다봤으면 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답니다.”

“그래. 광주 출신의 문병란 시인은 날마다 무등산을 등에 메고 평생을 살았으며 마산 합포 출신 이상개 시인은 작은 무인도 하나를 메고 전국을 떠돌았단다. 사람이 비록 객지로 떠돌아도 제가 태어난 고향의 풍경과 바람을 못 있는 법인데 바닷가 사람이라면 늘 바라보던 섬이, 육지 사람이라면 늘 쳐다보던 산이 그 영혼의 뿌리가 되겠지. 명색 시인이라는 나도 평생 신불산을 지고 다니다 이제 그만 내려놓고 그 속에 들어가 작은 움막이라도 짓고 살고 싶단다. 말하자면 귀향을 하는 것인데.”

“예. 아버지. 그렇게 하시든 지요.”

“그런데 사람이 한번 나간 마을엔 다시 돌아오기가 어렵단다. 젊어 객지를 떠돌다 늙어 돌아와도 이미 사람도 낯설고 인심이 변해 옛날의 고향이 아니라는 거지.”

“그렇겠네요.”

“내가 신불산을 떠메고 다니다 지쳐서 내려놓거나 죽으면 니가 대신 신불산을 떠메고 다녔으면 한다. 내 젊어 먹고산다고 고초가 많았지만 그럴 때마다 신불산을 생각하며 힘을 냈지. 그 모든 고난을 다 이겨낸 것으로 보아 역시 신불산이 영산(靈山)은 영산인가 봐.”

“예. 알겠습니다. 저도 아들이 태어나면 언양 산소에 다니면서 신불산이야기를 하겠습니다. 우리집안의 뿌리나 영혼이 모두 신불산에 있다고 말입니다.”

“고맙구나. 그렇게만 한 다면 웬만한 어려움은 다 이기고 우리 집안이 아주 번창할 것이야.”

“예.”

차창 밖으로 신불산을 흘낏흘낏 바라보며 진장의 순우네 집에 닿자

“형님, 오능교?”

미리 와 있던 백찬씨와 민우, 성우 두 아들과 울산의 용우, 언양의 홍근씨와 두 아들이 인사를 하자

“부산 대름 왔는가베. 산소부터 보고 오소.”

본래 조그만 체격이 영감이 죽고 더 쪼그라든 형수가 찬합에 과일과 산적을 담은 제수와 술병을 순우에게 챙겨주면서

“관우는 밤새 일하고 와서 제사 지내자 말자 잔다.”

하고 따라나서지 못 하는 둘째 아들의 입막음을 했다.

“그래 철우는 요새도 연락이 안 되나?”

맨 먼저 할머니의 산소에 제물을 차리고 절을 하려 줄을 서는 찰라, 언양의 상찬씨가 다니지 않고부터는 더는 윗사람이 없어 맨 왼쪽에 서는 열찬씨가 종손이 오지 않은 것이 못내 섭섭해서 묻는데

“예. 암만 연락을 해도 전화를 안 받으니 대책이 없고 하 답답해서 임대아파트에 찾아가도 안에 사람이 있는 것 같은데 문을 안 열어주니 방법이 없지요.”

“그래 몸도 성 찮은 기 뭘 묵고 우째 사는고?”

“회사에서 몸을 다치고 허리가 안 낫는다고 평생 산재(産災)에서 보험금을 타서 굶어죽지 않고 명은 이어가는데 말입니다. 젊은 놈이 그래 살아서 언제 장가를 가고 사람행세를 할지 말입니다. 명색 장손이...”

하던 홍근씨가 흘낏 용우씨를 쳐다보며 입을 다물었다. 철우가 나타나지도 않고 장가도 가지 않아 피치 못 해 장손으로 떠밀릴 판인 용우씨의 불편한 심기가 맘에 걸렸던 모양이었다.

“그래도 혹시 친구들이나 무슨 소식을 들을 데는 있을 것 아이가?”

“안 그래도 그 시근없는 아이한테 마을이 뜯기면 보상금이 엄청나게 나온다고 전에는 쳐다보지도 않던 친구들이 요즘은 철우를 감싸고돈답니다.”

“보상이라? 옳지, 집 앞에 조상 답 네 마지기!”

정확한 평수는 모르지만 대강 800평이 넘을 테니 평당 100만 원이면 8억이 넘는 돈이었다. 40년 직장을 다닌 자신보다 무위도식한 종손에게 더 큰 거금이 떨어지다니...

“맞네. 그 돈이 철우 앞으로 나오겠네. 그 돈으로 집도 사고 장가도 가서 제사도 물려받고 하면 좋을 텐데.”

하는데

“벌써 수남의 용선이시집에서 돈 나오는 거 알고 달라든다 캅디다. 많이 모자라는 딸을 데려갔으니 친정재산이라도 받아야 된다고.”

“하긴 그렇기는 하겠네. 그 논이 어떻게 마련한 조상답(祖上沓)인지, 백년도 더 전에 전라도 지리산에서 동학란을 피해서 흘러온 부처손이라는 이름을 가진 우리 할머니가 우리 아버지가 머슴 살아 벌어온 돈으로 앞으로 장손들에게 이어져 집안 대가 끊어지지 않게 장만한 논인데 중간에 사촌형님들이 먹고살기 힘들어 팔아 없애려는 걸 언양에 형님이 대신 돈을 내고 억지로, 억지로 잡아 놓은 땅인데 말이야. 아무것도 모르는 철우, 용선이가 차지하게 생겼네.”

혀를 끌끌 차던 열찬씨가

“억지로 편해도 편하면 그뿐이라고 다 지 복인 걸 우짜겠노? 그런데 보자아, 그라고 보니 또 가야가 있네? 참 가야는 어데 갔지?”

하는 순간 용우, 순우, 홍근씨의 얼굴이 사색이 되자 백찬씨가

“형님, 가야는 시설인가 어데 보냈으니 나중에 이야기합시다.”

말을 돌렸다.

※ 이 글은 故 平里 이득수 선생의 유작임을 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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