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충하는 두 원리를 어떻게 공준으로 삼을 생각을 했을까?!

상충하는 두 원리를 어떻게 공준으로 삼을 생각을 했을까?!

조송현 승인 2017.05.10 00:00 | 최종 수정 2023.04.05 11:39 의견 0
특수상대성이론을 발표한 해인 1905년의 아인슈타인. 출처: 아인슈타인하우스-베른
특수상대성이론을 발표한 해인 1905년의 아인슈타인. 출처: 아인슈타인하우스-베른

우주관 오디세이-혁명적 천재 아인슈타인, 시간과 공간 개념의 혁명

아인슈타인은 새로운 시간·공간 개념에 대한 통찰을 얻은 이후 6주 만에 신들린 듯 논문을 작성해 발표했습니다. 이 논문이 「움직이는 물체의 전기역학에 관하여」입니다. 바로 물리학사의 기념비적 이론인 특수상대성이론인 것입니다.

이 논문은 놀랍게도 단 두 가지의 단순한 공준(postulate)으로부터 모든 결론을 이끌어냈습니다. 공준은 하나의 이론체계에서 기본 전제가 되는 가정을 말합니다. 수학에서 공리(axion)와 거의 같은 뜻으로 쓰입니다. 뉴턴은 세 개의 운동법칙(관성의 법칙, 힘과 가속도 법칙, 작용과 반작용 법칙)을 공리(axiom)로 내세워 이론 물리학 체계인 『프린키피아』를 완성했습니다.

그 두 가지 공준은 놀랍게도 서로 충돌하는 것처럼 보이던 상대성의 원리(the principle of relativity)와 광속불변의 원리(the principle of invariant light speed)입니다. 양립할 수 없는 것처럼 보였고, 물리학을 딜레마에 빠뜨린 두 가지 원리를 시간 개념에 대한 새로운 분석을 통해 융합점을 찾고, 이를 토대로 불세출의 이론을 직조해낸 것입니다.

아인슈타인은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시간과 공간에 관한 물리적 개념을 해석해 본 결과 실제로 상대성 원리와 광속불변의 원리 사이에는 아무런 모순이 없다는 사실이 분명해졌다. 또 이들 두 법칙에 계통적으로 충실하면서도 논리적으로 튼튼한 이론에 도달할 수 있다는 사실도 분명해졌다.”1)

아인슈타인은 이론물리 학자에게 있어 이론의 출발점이 되는 '원리'의 발견이 가장 중요하다고 역설했습니다. '원리'만 세운다면 나머지는 이를 수학적으로 연역하면 되기 때문입니다. 아인슈타인이 여기서 말하는 '원리'는 곧 이론의 기본 출발이 되는 공준이나 공리를 의미합니다.

아인슈타인은 특수상대성이론의 두 기둥인 2대 공준을 어떻게 채용했을까요? 특수상대성이론의 2대 공준은 다음과 같습니다.

물리 법칙은 모든 관성계에서 동일하다(상대성의 원리).
 빛의 속도는 모든 관성계에서 일정하다(광속불변의 원리).

아인슈타인은 갈릴레이의 상대성 이론이 실험과 관측에 의한 빛의 성질과 배치돼 둘 중 어느 하나를 버려야 하는 상황에서 둘 모두를 원리(공준)로 채택했습니다. 그가 이들 원리를 과감하게 공준으로 채택한 것은 섬광과도 같은 직관과 통찰에 의존한 것이라기보다 그동안 과학계에 누적된 실험과 관측 사실들의 분석에 따른 결론이라고 보는 것이 타당합니다.

먼저 첫 번째 공준인 ‘상대성 원리’를 채택한 과정을 보겠습니다. 이는 아인슈타인이 1916년에 대중을 위해 직접 쓴 『상대성이론(Relativity-The Special and General Theory)』에 잘 설명되어 있습니다. 앞에서 설명한 대로 당시 물리학계는 빛이 상대성 원리를 따르지 않는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상대성 원리나 광속불변의 원리 둘 중 어느 하나를 버리지 않으면 안 되는 딜레마에 빠져 있었습니다.

아인슈타인이 1916년에 대중을 위해 직접 쓴 『상대성이론(Relativity-The Special and General Theory)』. 가운데 책은 국내 번역본(김종오 역).
아인슈타인이 1916년에 대중을 위해 직접 쓴 『상대성이론(Relativity-The Special and General Theory)』. 가운데 책은 국내 번역본(김종오 역).

많은 물리학자들은 이 딜레마를 극복하기 위해선 상대성 원리를 버려야 한다고 막연히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아인슈타인은 고전역학이 비록 완전하지는 않지만 천체의 운행을 놀라울 정도로 상세하게 설명해 주고 있다는 사실에 비춰볼 때 고전역학의 근간이 되고 있는 상대성 원리의 타당성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아인슈타인은 애당초 상대성 원리가 타당하다는 주장을 지지해주는 두 가지 일반적인 사실이 있음을 직시했습니다. 아인슈타인의 논리를 따라가 보겠습니다.

첫째, 고전역학이 비록 물리현상 전반에 대해 완전한 이론의 기초를 제공해주지는 못하지만, 천체의 실제적인 운행에 대해서는 놀랍다고밖에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상세하게 설명해 줍니다. 따라서 고전역학이 상당한 정도의 ‘진리(truth)’를 내포하고 있다고 인정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고전역학의 기초가 된 상대성 원리는 역학 분야에 높은 정밀도로 적용되어야 합니다.

결론적으로 이와 같이 광범위한 일반성을 지닌 원리가 역학 분야에서는 높은 정밀도를 가지고 성립하면서도 다른 분야에서는 전혀 성립하지 않는다는 것은 선험적으로(a priori) 있을 수 없습니다.

둘째, 만약 상대성 원리가 성립하지 않는다고 하면, 상호 간에 등속 운동하는 좌표계 K, K', K'' 등이 자연현상을 기술하는 데 있어 동등하지 않게 될 것입니다. 만약 좌표계 K를 ‘절대적인 정지 계’라고 하며 K', K''는 관성계인데도 불구하고 K에서 성립하는 운동법칙을 만족시키지 못하게 됩니다. 그 이유는 단지 이들 좌표계가 운동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그렇지 않습니다. 정지한 플랫폼의 좌표계에서 공의 운동이나 달리는 열차 내에서의 공의 운동은 같은 물리 법칙을 따릅니다. 따라서 좌표계의 운동이 상대성 원리를 성립하지 않게 한다는 것은 모순입니다. 즉, 역학체계에서는 상대성 원리가 성립한다고 보는 게 타당합니다.

또 만약 상대성 원리가 성립하지 않는다면, 지구 위에서 다른 시각에 꼭 같은 역학 실험을 해도 꼭 같은 결과를 얻을 수 없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지구는 태양을 공전하면서 약 초속 20km의 속도로  움직이기 때문입니다(여기서 방향 변화 등 가속효과는 무시한다). 하지만 우리는 언제, 어디에서 실험을 했건 그 결과를 신뢰합니다. 즉 서로 다른 방향의 물리적 비등가성은 발견되지 않은 것입니다. 이 사실은 상대성 원리의 타당성을 지지해주는 아주 강력한 두 번째 논증이 되는 것이라고 아인슈타인은 판단했습니다.

아인슈타인은 또 전자기파의 운동을 설명하는 맥스웰 방정식을 통해 상대성 원리의 타당성을 분명히 인식할 수 있었습니다. 맥스웰 방정식은 일정한 속도로 상대운동을 하는 모든 관측자에게 빛은 일정한 속도로 달린다고 가르쳐줬기 때문입니다.

아인슈타인이 보기에 발전기의 원리도 상대성 원리의 타당성을 뒷받침해주었습니다. 코일 안에 자석을 넣었다 뺐다 하면 코일에 전류가 생성되는데, 이 과정은 코일과 자석의 상대적인 운동에만 의존할 뿐 이들 시스템이 공장바닥(정지계)에 있든, 아니면 움직이는 열차 안에 있든 상관없습니다. 아인슈타인은 어릴 때 아버지와 삼촌의 전기기구 공장에서 자석을 갖고 놀면서 이 같은 사실을 알게 되었다고 합니다.

이제 아인슈타인이 광속불변의 원리를 공준으로 수용한 과정을 보겠습니다. 당시 로렌츠(Hendrik Antoon Lorentz)는 맥스웰의 전자기학에 대한 연구를 진행했는데, 진공 중에서 빛(전자기파)의 속도가 일정한 것은 필연적이었습니다. 아인슈타인은 그때쯤 이론뿐만 아니라 다양한 실험과 관측에서도 빛의 속도가 광원과 관측자에 관계없이 일정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습니다.

다만, 이와 관련된 중요한 실험인 마이컬슨-몰리 실험(1887년) 결과를 아인슈타인이 사전에 알았느냐 하는 데는 논란이 있습니다. 특수상대성이론을 담은 논문 「움직이는 물체의 전기역학에 관하여」(1905년)에는 이에 관한 언급이 전혀 없습니다.

그러나 아인슈타인은 1922년 일본에서 한 연설에서 마이컬슨-몰리 실험 결과(에테르 찾기 실패)가 특수상대성이론의 원리(광속불변의 원리)를 착상하는 첫걸음이 됐다고 밝혔다고 합니다. 또 1931년 미국 캘리포니아 공과대학에서 열린 만찬에서 마이컬슨의 작업이 상대성이론의 형성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언급했습니다.

실제로 마이컬슨-몰리 실험이 그의 상대성이론을 창안하는 데 얼마만큼 역할을 했는지는 알 수 없으나 에테르와 지구와 상대운동에 관심을 갖고 에테르가 관측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았으리라는 추측은 할 수 있습니다. 결국 이 실험은 빛의 속도가 일정하다는 것으로 귀결됐기 때문에 그가 광속이 일정하다는 사실을 원리로 받아들인 사실과 연관지어볼 때 가볍게 볼 수 없습니다.

이 외에도 아인슈타인이 광속불변의 원리를 내세우는 데 영향을 준 실험적 증거는 또 있습니다. 1899년 아인슈타인이 그의 첫 부인인 밀리바에게 보낸 편지 내용을 살펴보면, 피조(Louis Fizeau)의 실험이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또 아인슈타인은 네덜란드의 천문학자 빌렘 데 시테르(Willem de Sitter)가 빛의 전파속도는 그 빛을 방출하는 물체의 운동속도와는 무관하다는 사실을 증명한 것도 알고 있었습니다.

결국 아인슈타인은 외견상 양립하지 않아 보이지만 상대성 원리와 빛의 본성에 관한 움직일 수 없는 관측 사실을 수용하여 이론의 핵심 기둥인 공준으로 채택했던 것입니다.

※ 1) 아인슈타인, 김종오 역, 상대성이론(Relativity)(미래사, 1992), 34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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