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대성이론에 먼저 다가간 로렌츠와 푸앵카레는 왜 최후의 한 발을 내딛지 못했을까?

상대성이론에 먼저 다가간 로렌츠와 푸앵카레는 왜 최후의 한 발을 내딛지 못했을까?

조송현 승인 2017.05.15 00:00 | 최종 수정 2018.09.21 11:23 의견 0
로렌츠(왼쪽)와 푸앵카레. 이들은 아인슈타인보다 먼저 특수상대성이론의 수학적 핵심에 다가갔으나 물리적 의미를 파악하는 데는 실패했다. 출처: 위키피디아
로렌츠(왼쪽)와 푸앵카레. 이들은 아인슈타인보다 먼저 특수상대성이론의 수학적 핵심에 다가갔으나 물리적 의미를 파악하는 데는 실패했다. 출처: 위키피디아

우주관 오디세이-특수상대성이론의 수학적 핵심에 한 발 먼저 다가간 로렌츠와 푸앵카레

특수상대성이론의 핵심은 시간과 공간이 절대적인 물리량이 아니라 관측자에 따라 상대적이라는 사실을 확인한 부분입니다. 아인슈타인은 외견상 서로 양립 불가능한 것처럼 보이는 상대성 원리와 광속불변의 원리를 융합하는 과정에서 시간과 공간 개념에 대한 새로운 분석을 통해 이를 통찰했습니다.

그 결과 상대성 원리와 광속불변의 원리가 ‘외견상 양립하지 않는 것’은 정당화될 수 없는 고전역학의 두 가지 가정에서 비롯된 것임을 확인했습니다. 그것은 첫째, 두 사건 사이의 시간 간격은 기준계의 운동 상태와는 무관하다. 둘째, 강체 위의 두 점 사이의 간격(거리)은 기준계의 운동 상태와 무관하다. 아인슈타인은 이들 두 가정을 과감하게 버리고 시간과 공간을 새롭게 정의함으로써 상대성 원리와 광속불변의 원리를 화해시킨 것입니다.

아인슈타인이 화해시킨 방법은 어떤 것일까요? 아인슈타인은 스스로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졌습니다. ‘플랫폼을 기준으로 한 사건의 위치와 시간을 알고 있다면, 플랫폼과 일정한 속도로 움직이는 열차를 기준으로 한 같은 사건의 위치와 시간은 어떻게 알 수 있을까?’

질문을 수학적으로 표현하면, ‘서로 상대방에 대해 등속운동을 하는 두 관측자의 측정값 사이의 관계식은 무엇인가’가 됩니다.

아인슈타인은 2대 공준에서 연역할 수 있는 가장 단순한 수학적 관계를 독자적으로 어렵지 않게 찾아냈습니다. 그런데 기막히게도 그것은 이미 로렌츠(Hendrik Lorentz, 1853~1928)가 유도해낸 관계식과 정확하게 일치했습니다. 이름 하여 ‘로렌츠 변환(Lorentz Transformation)’입니다. 이 로렌츠 변환은 특수상대성이론의 수학적 핵심입니다.

물리 법칙이 좌표변환에 의해 형태가 변하지 않는 것을 공변(共變, covariant)이라고 합니다. 낙하법칙은 정지계에서나 이에 등속운동하는 운동계에서나 꼭 같은 수식으로 쓰여진다는 것입니다. 이때 정지계와 운동계의 좌표변환은 상대성 원리를 만족하는 갈릴레이 변환이라고 합니다. 따라서 상대성 원리(갈릴레이 변환)의 기초 위에 세워진 ‘뉴턴역학은 갈릴레이 변환에 공변’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빛은 상대성의 원리를 만족하지 않는다는 것을 우리는 앞에서 봐 왔습니다. 그래서 ‘빛의 전파 법칙은 갈릴레이 변환에 공변이 아니다’고 말합니다. 골치 덩어리였던 빛의 전파 법칙(광속불변의 원리)의 형태가 두 기준계에서 꼭 같도록(상대성 원리를 만족시키도록) 만드는 좌표변환을 찾아보니 그게 바로 로렌츠 변환이었고, 이는 특수상대성이론으로 귀착되었던 것입니다.

아인슈타인은 이 로렌츠 변환에서 놀라운 결론들을 도출해 냈습니다. 그것은 우리의 상식을 완전히 무너뜨리는 것이어서 경이로움 그 자체였습니다. 바로 시간 지연(time dilation), 거리 수축(length contraction), ‘광속 초과 불가’ 등이 그것입니다.

로렌츠 변환에 의한 시간과 거리의 관계식에는 √1-(v/c)² 항이 나타납니다. 이 항을 보면 상대운동하는 물체(운동계)의 속도 v가 광속에 비해 현저히 작을 때는 분모의 √1-(v/c)² 항 전체가 거의 1이 돼 큰 변화가 없지만 속도 v가 커지면 √1-(v/c)² 항이 분자에 있든 분모에 있든 시간과 거리의 변화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또 이 항을 통해 v가 c보다 커지면 √ 안이 허수가 됩니다. 허수에 해당하는 것은 물리적 실체라고 할 수 없으므로 현실세계의 물체의 속도는 광속보다 더 빠를 수 없다는 결론이 도출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앞의 동시성의 상대성을 설명하는 부분에서 시간이 플랫폼과 기차 안에서 각각 다르다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그렇다면 얼마나 차이가 날까요? 로렌츠 변환은 그 차이를 수학적으로 정확하게 알려줍니다. 다만, 현실 세계에서는 v가 빛의 속도에 비해 미미하므로 (v/c)²이 제로(0)나 마찬가지여서 그 효과가 나타나지 않는 것입니다.

이처럼 특수상대성이론의 놀라운 결론들이 이미 로렌츠 변환에 들어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로렌츠 변환이 특수상대론의 수학적 핵심이라는 것은 바로 이런 이유 때문입니다. 특히 더욱 놀라운 사실은 그것이 단순히 광속불변의 원리와 상대성 원리라는 단 두 개의 공준을 연역한 결과라는 것입니다. 아인슈타인이 광속불변의 원리와 상대성 원리를 공준으로 채택한 것이야말로 ‘신의 한 수’였던 것입니다.

그런데, 아인슈타인에 앞서 ‘길이 수축’을 수학적으로 유도한 물리학자가 있었습니다. 다만, 수식에 대한 물리적 해석을 제대로 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로렌츠와 피츠제럴드(George Francis Fitzgerald)가 그들입니다. 이들은 마이컬슨-몰리 실험이 에테르 찾기에 실패하자 물체가 에테르 속에서 운동할 때 길이가 줄어든다는 ‘길이 수축(length contraction)’ 가설을 내놓았던 것입니다.

프랑스의 수학자이자 물리학자인 푸앵카레(Henri Poincare)도 로렌츠 변환을 유도하는 등 상대성의 이론의 문턱까지 접근했습니다. 그러나 그 역시 로렌츠 변환식이 갖는 혁명적인 의미를 간파하지 못했습니다. 로렌츠, 피츠제럴드와 푸앙카레는 정지계 K와 이에 등속운동하는 운동계 K'이 있을 경우, K에서 볼 때 K'의 척도(자, scale)가 수축한다고 해석하면서 반대로 K'에서 볼 때 K의 척도가 수축되는지 여부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하지 않은 것입니다.

이들의 근본적인 문제는 ‘운동은 상대적’이라는 단순한 원리를 적용할 엄두를 내지 못한 데 있습니다. 나아가 ‘물리 법칙은 모든 관성계에서 동일하다’는 상대성 원리를 전적으로 신뢰하는 대담성을 갖지 못한 것입니다.

여기서 특수상대성이론에 근접하고도 최후의 한 발을 더 내딛지 못한 로렌츠와 푸앵카레에 대해 조금 더 살펴보겠습니다. 로렌츠는 에테르가 절대부동의 상태에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따라서 지구와 에테르의 상대적인 운동이 빛의 전파에 영향을 줄 것이므로 빛의 매질인 에테르의 존재를 이론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는 입장이었습니다. 다만 빛의 속도에 비해 지구의 속도가 워낙 미미해 실험적으로는 관측할 수 없다고 로렌츠는 주장했습니다.

하지만 마이컬슨과 몰리는 로렌츠가 설정한 한계보다 더 정밀한 측정 장치로 실험을 했음에도 에테르의 존재를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따라서 로렌츠는 자신의 주장을 폐기해야 할 입장에 빠졌습니다.

로렌츠는 고민 끝에 묘안을 생각해냈습니다. 바로 ‘길이 수축’이라는 가설이었습니다. 에테르와 상대적인 운동을 하는 물체는 그 속도에 해당하는 만큼 그 길이가 줄어든다고 주장한 것입니다. 즉, 마이컬슨-몰리 실험에서 에테르에 대한 지구의 상대적인 움직임이 관측되지 않은 것은 지구 위의 측정기구가 수축돼 지구의 속도 효과를 상쇄시켰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이 같은 가정 아래 도출한 관계식이 로렌츠 변환식입니다.

이는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아인슈타인이 상대성 원리와 광속불변의 원리라는 2대 공준을 통해 유도해낸 그 변환식과 정확하게 일치합니다. 따라서 로렌츠는 수학적으로만 따진다면 아인슈타인보다 먼저 특수상대성이론의 문턱까지 다다른 셈입니다.

그러나 로렌츠는 자신이 발견한 변환식의 물리적 의미의 핵심을 파악하지 못했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에테르의 존재를 확신했고, 게다가 에테르가 정지해 있다고 가정했기 때문입니다. 이 가정은 상대성 원리와 명백한 모순입니다. 상대성 원리에 의하면 자연법칙은 모든 관성계에서 똑같이 성립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에테르가 절대정지 상태에 있다는 가정은 자연법칙이 에테르에 비해 등속 운동하는 수많은 관성계 중에서 유독 에테르만을 선호한다는 뜻입니다. 뉴턴이 절대공간을 가정한 것과 꼭 같은 오류를 범한 것입니다. 결국 로렌츠는 에테르가 정지해 있다는 가정에 너무 집착했기 때문에 물리학자에게는 일종의 상식인 상대 운동과 상대성 원리를 신뢰하지 못하고 결국 특수상대성이론 창안에까지 나아가지 못했던 것입니다.

푸앵카레는 로렌츠보다 한 발 더 나아갔습니다. 푸앵카레는 로렌츠가 집착한 ‘에테르는 절대정지 상태’라는 가정의 한계를 파악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로렌츠가 ‘로렌츠 변환’을 너무 제한적으로 해석한다고 생각했습니다. 푸앵카레는 맥스웰의 전자기이론을 검토한 뒤 뉴턴역학이 근본적으로 변혁돼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이는 아인슈타인의 통찰과 맥락을 같이합니다.

푸앵카레는 이를 바탕으로 1905년 6월 아인슈타인과 거의 같은 시기에 ‘전자의 역학에 대하여’라는 논문을 학술지에 보냈습니다. 여기에는 아인슈타인이 유도한 수학적 기본공식들, 즉 로렌츠 변환이 나와 있습니다(물론 아인슈타인은 이때 이 논문을 보지 못했다고 합니다). 그는 운동하는 물체의 전기학에 관한 모든 난점들을 탐색했으며, 로렌츠의 국부적 시간과 피츠제랄드의 길이 수축이라는 단편적인 가설들이 결국에는 일반이론에 흡수되리라는 것을 확실히 깨닫고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푸앵카레는 왜 결정적인 한 발을 내딛지 못했을까요? 우선 푸앵카레는 로렌츠와 마찬가지로 상대성 원리를 전적으로 신뢰하지 못했습니다. 그 역시 에테르의 존재를 믿었으며, 빛의 속도는 에테르에 상대적으로 정지한 기준계에서만 일정하다고 생각했습니다. 푸앵카레는 변환식에서 나타나는, 두 관성계의 관측자가 서로 상대방 쪽의 시간이 지연되고 길이가 수축되는 수학적 결론을 현실의 사실로 믿을 수 없었습니다. 게다가 시간과 공간이 각각 독립적이 아니라 상호 얽혀 있다는 수식의 의미도 포착하지 못했습니다.

다른 중요한 요인은 푸앵카레의 철학 문제입니다. 그는 ‘물리적 실재(physical reality)’를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외부 세계가 인간의 의식과 독립적으로 존재(유물론)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인식하는 주체에 의존한다고 믿는 관념론자였습니다. 즉 푸앵카레는 물질세계가 인간의 의식에 달려 있다고 보았던 것입니다. 그러니 자신의 이론이 말해주는 시간과 공간의 연관성을 물리적 실체로 인식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더욱 믿기 힘든 것은 로렌츠와 푸앵카레가 아인슈타인의 특수상대성이론 논문을 읽은 후에도 아인슈타인의 새로운 시간과 공간 개념을 수용하지 못했다는 사실입니다. 두 사람 모두 자타가 공인하는 천재였는데도 말입니다. 로렌츠와 푸앵카레의 사례는 바로 아인슈타인의 통찰이 얼마나 과감하고 혁명적이었는가를 반증해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주관 오디세이' 저자·인저리타임 편집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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