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 브로이의 물질파 ... 입자가 파동성을 갖는다면 그 크기의 한계는?

드 브로이의 물질파 ... 입자가 파동성을 갖는다면 그 크기의 한계는?

조송현 승인 2017.08.10 00:00 | 최종 수정 2023.03.15 17:21 의견 0
물질파 개념을 창안한 루이 드 브로이(왼쪽)와 그의 형인 실험물리학자 모리스 드 브로이. 모리스의 엑스선 실험 결과가 루이의 물질파 착상에 영향을 준 것으로 보인다. / 위키피디아.
물질파 개념을 창안한 루이 드 브로이(왼쪽)와 그의 형인 실험물리학자 모리스 드 브로이. 모리스의 엑스선 실험 결과가 루이의 물질파 착상에 영향을 준 것으로 보인다. / 위키피디아.

우주관 오디세이 - 드브로이의 물질파

빛의 입자-파동 이중성을 현실적으로 부정할 수 없게 됨에 따라 많은 물리학자들은 이 외견상의 상호모순은 원자물리학의 본질적인 속성이라고 믿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입자인 빛이 파동의 성질을 갖고 있다면 전자와 같은 다른 입자들도 파동성을 가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묘한 생각을 하게 된 것입니다.

프랑스의 귀족 가문의 물리학자 드 브로이(Louis de Broglie, 1892~1987)는 1924년 빛의 파동-입자 이중성을 물질의 기본입자인 전자에까지 확대하는 획기적인 발상을 시도했습니다. 그는 전자를 비롯한 모든 물질이 파동을 갖는다는 ‘물질파 가설’을 제창한 것입니다. 그는 아인슈타인의 광양자 가설에서 광양자의 운동량과 파장의 관계식을 전자에 적용하여 전자의 파장을 구한 뒤 다른 물질의 파장도 이 식으로부터 구했습니다. 이 파동을 그는 ‘물질파(matter wave)’라고 이름 붙였습니다.

아인슈타인은 친구인 프랑스 물리학자 폴 랑주뱅으로부터 드 브로이의 논문을 읽어보았습니다. 드 브로이의 지도교수인 랑주뱅은 아인슈타인이 어떻게 생각할지 궁금해 건넸던 것입니다.

아인슈타인은 그 논문을 친구인 막스 보른에게 전해주며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읽어보게. 정신 나간 소리 같겠지만 절대적으로 견고한 이론이네.” 아인슈타인은 이어 랑주뱅에게는 “드 브로이가 거대한 베일의 한 자락을 걷어냈네”라고 평가했다고 합니다.

드 브로이가 물질파를 구상하게 된 논리적 과정을 살펴보겠습니다. 드 브로이는 아인슈타인이 특수상대성이론의 에너지-질량 등가 공식에서 영감을 얻었습니다. E=mc² 공식에 따라 질량과 에너지는 본질적으로 같은 것이라는 사실과 플랑크의 에너지 양자 가설아인슈타인의 광양자 가설에서 파동의 진동수와 에너지 사이의 관계식을 결합하면 질량이 파동적 성질을 갖고 있다는 새로운 결론이 도출됩니다.

아인슈타인이 드 브로이의 아이디어에 찬사를 보낸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자신이 창안한 상대성이론과 광양자 가설로부터 자연스럽게 유도된 결과였으니까요.

드 브로이가 물질파 착상을 하게 된 데는 실험물리학자인 친형 모리스 드 브로이가 적지 않은 영향을 끼친 것으로 보입니다. 1911년 제1차 솔베이회의에서 아인슈타인의 광양자론에 깊은 감명을 받은 모리스는 엑스선 실험을 많이 했는데, 동생인 드 브로이에게 ‘엑스선이 어느 때는 파동이고 어느 때는 입자의 성질을 띤다’는 점을 귀뜸해주었다고 합니다.

어쨌든 드 브로이는 특히 물질파 개념을 통해 보어의 양자조건의 근거를 훌륭하게 설명했습니다. 보어의 양자 가설과 양자조건은 원자의 방사 현상을 설명해주긴 했지만 왜 전자가 특정 궤도에 있어야 하는지에 대한 이유를 설명하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드 브로이는 보어의 양자 가설은 물질파에 대한 하나의 서술로 이해되어야 한다고 제안하면서 이를 설명한 것입니다.

원자핵 주변을 도는 파동은 기하학적 이유 때문에 언제나 정지된 파장으로 있어야 합니다. 다시 말해 궤도 주변에 파장의 정수배로 존재해야 합니다. 즉 전자가 원자핵 주변을 궤도 운동하는 것이 아니라 전자 자체가 파동이므로 정상상태를 유지할 수 있도록 원자핵 주변에 걸쳐진 상태로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함으로써 뭔가 답답해 보였던 보어의 양자조건에 대한 근원이 시원하게 밝혀지면서 양자론은 후에 슈뢰딩거의 파동역학으로 정립되는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되었습니다. 드 브로이는 이와 같은 양자역학의 수학적 기초를 다진 역할을 인정받아 1929년 노벨물리학상을 받았습니다.

이제 드 브로이의 물질파를 보어의 원자모형에 적용해보겠습니다. 파동이란 입자와 달리 특정 위치에 존재하는 게 아니라 일정 범위 안에 걸쳐 있습니다. 따라서 원자 주변의 전자는 전자파동으로서 원자핵 주위에 펼쳐진 상태로 존재합니다. 게다가 파장이 원자 주변에 폐곡선을 형성하지 못하면 사라지게 됩니다.

전자파동이 원자핵 주변에 있다고 가정할 때, 파동의 마루와 마루, 골과 골이 겹쳐지지 않으면 간섭원리에 의해 사라집니다. 이것은 곧 전자파동의 마루가 원자핵 주변에 정수 개 존재해야 한다는 것, 다시 말하면 전자파동의 길이는 파장의 정수배라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이는 곧 보어의 양자조건의 다른 표현입니다.

보어가 양자조건을 내세우면서 그 이유를 설명하지 못했으나, 드브로이는 물질파 개념으로 보어의 양자조건의 이유를 말끔하게 해결했습니다. 다시 설명하면, 전자의 궤도에 양자조건이라는 기묘한 조건이 붙는 것은 전자가 파동이라는 데 기인한 것입니다. 고전물리학에서는 전자를 입자로만 여겼기 때문에 양자조건을 도무지 설명할 방법이 없었던 것입니다. 드 브로이의 물질파 가설은 이런 방식으로 근거가 불투명했던 양자조건으로부터 파동과 입자를 연결하는 훌륭한 교량역할을 했습니다.

물질파는 실체인가 - 다시 이중슬릿 실험

그러나 입자가 파동적인 성격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입증할 만한 실험결과는 그때까지 단 한 건도 발표된 적이 없었습니다. 그러다가 미국의 데이비슨(Clinton Davisson)과 거머(Lester Germer)에 의해 이 놀라운 가설은 결국 사실임이 만천하에 드러나게 되었습니다.

데이비슨은 당시 벨전화연구소에서 연구하던 과학자였습니다. 그는 1926년 여름 영국으로 휴가를 갔다가 옥스퍼드에서 열린 영국과학진흥협회 학술회의에 참가했는데, 여기서 막스 보른의 강연을 통해 드 브로이의 물질파이론과 슈뢰딩거 파동역학을 접했습니다. 보른의 강연에 자극을 받은 그는 이미 1923년에 시도한 바 있던 전자산란에 관한 초보적인 실험을 다시 한 번 정교하게 재연해 보기로 마음먹었습니다. 1927년 3월 데이비슨과 거머는 니켈 금속의 표면에 전자빔을 쪼이는 실험으로 드 브로이 물질파를 실험적으로 입증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한편 스코틀랜드 애버딘대학의 자연철학 교수였던 G. P. 톰슨(George Paget Thomson, 전자를 발견한 Joseph John Thomson의 아들)도 1926년에 열린 영국과학진흥협회 학술회의에 참가한 뒤 보른의 강연에 흥미를 갖고 드 브로이 물질파이론을 실험해 보기로 했습니다. 톰슨은 1927년 11월 알루미늄, 금, 셀룰로이드 등의 고체표적에 음극선 빔을 발사해 전자가 회절하는 모습을 사진 건판에 담는 데 성공했습니다.

데이비슨과 톰슨의 실험으로 드 브로이 물질파이론과 슈뢰딩거의 파동역학은 분명한 실험적 증거를 얻게 되었습니다. 이들의 실험은 앞에서 말했던 이중슬릿 실험과 비슷한 방식으로 진행됐는데, 다른 점이 있다면 이중슬릿이 뚫린 판을 니켈로 만들었다는 것과, 빛 대신 전자빔을 사용했다는 것뿐입니다. 슬릿을 향해 발사된 수많은 전자 중 운 좋게 슬릿을 통과한 전자는 그 뒤에 놓여 있는 인광성 스크린에 도달하여 조그만 점들을 흔적으로 남겼습니다.

그런데 데이비슨과 거머는 실험 도중 놀라운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간섭무늬가 스크린에 나타났던 것입니다.

이것은 전자라는 입자가 파동의 특성을 갖고 있다는 드 브로이의 가설을 입증하는, 실로 놀라운 발견이었습니다. 마치 물결의 마루와 마루, 혹은 골과 골이 서로 겹쳐서 상쇄되듯이, 그들의 스크린에는 전자가 전혀 도달하지 않은 검은 영역이 규칙적으로 배열되어 있었습니다. 발사되는 전자의 양을 급격히 줄여서 10초에 한 개씩 내보내는 경우에도 스크린에는 여전히 간섭무늬가 형성되었습니다. 그렇다면 개개의 전자도 광자와 마찬가지로 자기 자신과 간섭현상을 일으킨다는 것을 사실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습니다. 다시 말해서 입자가 파동성을 갖고 있다는 뜻입니다.

데이비슨과 거머의 실험 이후 중성자, 원자의 간섭실험 등 유사한 실험들이 속속 성공하면서 결국 물리학자들은 모든 물질(입자)이 파동성을 갖고 있다는 다소 황당한 가설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경험하고 있는 실제 세계의 견고한 물질들, 이를테면 자동차, 건물들은 아무리 심증을 갖고 살펴봐도 파동을 닮은 구석이 전혀 없습니다. 독자들은 혹 이렇게 생각할 수 있다. ‘전자의 크기가 워낙 작으니까 파동처럼 행동할 수도 있지 않는가. 그게 뭐 그리 대단한 일인가?’ 과연 그럴까요?

1985년 스위스 출신의 실험물리학자로 빈 대학실험물리연구소 안톤 차일링거(Anton Zeilinger) 교수팀은 풀러렌(Fulleren, 일명 축구공 분자) 분자의 간섭실험에 성공했습니다. 가장 간단한 풀러렌 분자는 탄소 원자 60개가 5각형과 6각형 모양으로 결합돼 흡사 축구공 모양입니다. 이것의 질량은 전자의 100만 배가량입니다. 앞으로 실험기술이 발달하면 이보다 더 큰 분자의 간섭현상도 관찰할 수 있을 것으로 과학계는 전망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입자의 파동성과 간섭현상은 전자처럼 기본 입자에만 국한된 것이 아님은 분명합니다.

그리고 이 세계는 궁극적으로는 미시세계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도대체 미시세계와 현실세계의 경계는 어디쯤일까요? 드브로이는 모든 물질이 파동적 성질을 갖고 있으며, 그 파장은 플랑크 상수에 비례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좀 더 정확하게 표현하자면 물질파의 파장은 플랑크 상수를 그 물체의 운동량으로 나눈 값입니다. 그런데 플랑크 상수가 너무 작은 상수인 데다가 일상적인 크기의 물질들은 운동량이 매우 크기 때문에 물질파의 파장이 관측될 수 없을 정도로 작았던 것입니다.

또 이것은 미시적 스케일에서 물질의 파동적 성질이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물체의 운동량이 플랑크 상수와 비슷한 수준으로 작아지면 물질파의 파장이 상대적으로 커지는 것입니다. 빛의 속도가 너무 빨라서 시공간의 실체가 오랜 세월 동안 가려져왔던 것처럼(상대성이론 편에서 보듯 시공간이 온 우주에 걸쳐 균일한 것처럼 보이는 것은 빛이 인간의 지각능력에 비해 워낙 빠르기 때문이다.) 플랑크 상수가 너무도 작은 값이기 때문에 일상적인 물질들의 파동성이 우리의 눈에 감지되지 않았던 것뿐입니다.

전자의 파동성 입증과 관련해 재미있는 일화를 소개하는 것으로 물질파에 대한 설명을 마치겠습니다. 데이비슨은 이 실험의 결과로 1937년 영국의 G. P. 톰슨(George paget Thomson)과 함께 노벨물리학상을 수상했습니다. 톰슨도 얇은 금박에 전자빔을 쏘아 간섭무늬를 확인했는데, 그는 다름 아닌 전자를 발견해 1906년 노벨상을 수상한 J. J. 톰슨(Joseph John Thomson)의 아들입니다.

부자가 노벨상을 받는 것도 드문 데다 아버지는 입자인 전자를 발견한 공로로, 아들은 그 입자가 파동임을 확인한 공로로 각각 노벨상을 받았다는 사실은 아이러니이면서 과학사 중에 극히 흥미로운 일로 꼽힙니다.

<'우주관 오디세이' 저자·인저리타임 편집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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