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개의 원자가 동시에 두 곳에 존재한다니!

조송현 승인 2019.10.06 21:16 | 최종 수정 2019.10.06 23:41 의견 0
Artistic illustration of the delocalization of the massive molecules used in the experiment (© Yaakov Fein, Universität Wien).
실험에 사용된 거대 분자의 간섭 현상 개념도. © Yaakov Fein, Universität Wien.

어떤 사람이 동시에 두 곳에 존재할 수 있을까요? 당연이 불가능합니다. 그렇다면 전자는 어떨까요? 양자역학은 “가능하다”고 말합니다. 바로 양자 중첩(superposition) 현상입니다. 양자 얽힘(entanglement)도 이와 직접 연관된 현상입니다. 

양자역학을 배우다 보면 우리의 상식과 직관으로 도무지 납득하기 힘든 걸 만나는데 대표적인 대목이 양자 중첩입니다. 양자의 상태는 여러 가능한 상태의 중첩으로 이루어진다는 얘긴데요, 고전역학으로는 설명할 수 없습니다.  이미 많은 실험에서 확인되었듯이, 전자 한 개가 파동처럼 간섭을 합니다. 이는 이곳의 전자와 다른 곳의 꼭같은 전자가 동시에 존재한다는 뜻입니다. 간섭현상은 최소한 두 개의 작용으로 나타나는 현상이니까요. 양자역학은 전자의 상태를 이곳에 전자 상태와 저곳의 전자 상태의 중첩으로 기술합니다.     

흔히 양자 중첩을 얘기할 때 ‘슈뢰딩거의 고양이’ 사고 실험을 떠올립니다. 이 사고실험은 원래 파동방정식의 창안자인 에르빈 슈뢰딩거가 보어의 코펜하겐 해석에 반대하면서 ‘양자역학의 불완전함’을 보이기 위해 고안한 사고실험입니다. “고양이가 살아 있으면서 동시에 죽어 있다는 게 말이 되느냐”고 공격한 것입니다. 하지만 슈뢰딩거의 당초 의도와는 달리 이 사고실험은 양자 중첩의 의미를 설명하는 상징적인 모델이 된 것은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습니다. 마치 양자역학의 태동과 성장에 엄청난 공헌을 한 슈뢰딩거가 양자역학의 저격수가 된 것처럼 말입니다. 

흥미로운 것은 양자 중첩이 확인되는 물체가 당초 미시세계의 입자인 전자에서 원자로, 다시 작은 분자에서 큰 분자로 점점 커진다는 점입니다. 즉, 양자역학이 적용되는 곳이 점점 거시세계로 다가간다는 말입니다. 그렇다면 양자역학과 고전역학의 경계는 어디일까요?

최근 물리학자들이 2,000개의 원자로 구성된 거대한 분자의 중첩을 확인하는 데 성공했다고 해서 화제입니다. 이 분야 연구에서 전통과 권위를 자랑하는 오스트리아 빈대학의 물리학자 야야코프 파인(Yaakov Fein) 교수팀이 그 주인공입니다. 이들의 논문은 ‘네이처 물리학(Nature Physics)’ 최근호에 게재되었습니다.

파인 교수가 중첩 확인에 성공한 ‘원자 2000개’의 분자는 이 분야 최고 기록입니다. 양자 중첩 현상은 그동안 개별 전자나 원자 혹은 작은 분자에서 수없이 실험으로 확인되었습니다. 중첩 실험을 확인하는 가장 간명한 방법인 간섭실험을 통해서입니다.

2013년 같은 대학 산드라 아이벤베르거 교수가 세운 원자 800개의 분자가 이전 최고 기록이었다고 합니다. 1985년에는 역시 같은 대학의 안톤 차일링거(Anton Zeilinger) 교수팀이 탄소 원자 60개로 구성된 풀러렌(Fulleren, 일명 축구공 분자) 분자의 간섭실험에 성공했습니다.

파인 교수팀은 이번에 중첩 현상을 가장 간명하게 확인하는 방법으로 물리학자들에게 친숙한 이중슬릿(double-slit) 실험을 사용했습니다. 리차드 파인만은 이중슬릿 실험에 대해 “양자역학의 모든 것이 이 실험 속에 함축되어 있다”고 언급했을 정도입니다.

(Johannes Kalliauer/Wikimedia, CC-BY-SA 3.0)
이중슬릿 실험 개념도(Johannes Kalliauer/Wikimedia, CC-BY-SA 3.0).

사용한 분자는 ‘플루오로알킬설판닐 체인(fluoroalkylsulfanyl chains)’으로 농축된 ‘올리고 테트라페닐포린(oligo-tetraphenylporphyrins)인데, 질량은 수소 원자의 2만5000배라고 합니다.

파인 교수팀은 특별히 만든 분자 빔을 이중슬릿에 발사하고 새로 고안한 물질파 간섭계( matter-wave interferometer)로 간섭 현상을 측정했습니다. 이 같은 실험을 통해 연구팀은 이 분자들이 양자 중첩 상태로 존재하면서 최대 7밀리초 동안 파동처럼 서로 간섭한다는 사실을 확인했다고 합니다.

파인 교수는 "우리의 실험은 양자역학이 놀랍도록 강력하다는 것을 확인한 것”이라며 ”앞으로 지금보다 훨씬 더 거대한 분자를 대상으로 한 실험도 성공할 것으로 낙관한다”고 말했습니다.

바야흐로 양자물리학과 고전물리학의 경계가 점차 흐려지고 있습니다.

#기사 출처 : ♠University of Wien, 2000 atoms in two places at once
https://medienportal.univie.ac.at/presse/aktuelle-pressemeldungen/detailansicht/artikel/2000-atoms-in-two-places-at-once/
♠Nature Physics, Quantum superposition of molecules beyond 25 kDa
https://www.nature.com/articles/s41567-019-0663-9

<'우주관 오디세이'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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