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 시대, 성장과 경쟁에 거리 두기

차연근 승인 2020.03.30 18:27 | 최종 수정 2020.03.30 22:21 의견 0
부산지역 시민사회 환경단체들이 ‘4.15총선 부산지역 기후환경에너지 10대 의제 공약’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갖고 있다. 

바이러스로 일상이 마비되었다. 학교는 문을 닫았고 거리에는 마스크를 낀 사람들이 서로 겁먹은 얼굴로 스치듯 지나간다. 발 디딜 틈조차 없던 놀이공원과 백화점, 공항, 유명음식점의 텅 빈 모습들이 TV나 뉴스에 등장하고, 물리적 이동이나 외출, 소모임도 자제하라는 소위 ‘사회적 거리 두기’를 환기시키는 안전문자가 하루에도 몇 번씩 울린다. 마치 기분 나쁜 꿈을 꾸고 있는 것 같다.

중국 우한에서 발생한 신종 코로나19 바이러스는 이웃인 한국을 넘어 전 세계로 확산되며 인류전체를 공포 속으로 몰아가고 있다. 그 첫 번째 원인으로 원시림과 숲의 파괴로 인한 야생 동물들의 서식지가 인간에게 강제적으로 노출되고 접촉당한 결과를 꼽고 있다. 질병은 대체로 환경문제이며, 인간에게 영향을 미치는 신종 감염병의 60%는 동물과의 접촉에서 비롯된다고 한다. 지난 50년간 신종 질병이 4배 증가하였는데, 주요 원인은 야생동물 서식지 침입의 증가, 특히 질병의 핫 스팟인 열대우림을 침입한 것이 문제였다.

질병 생태학자 피터 다스작(Peter Daszak)은 “지난 30~40년간 나타난 모든 질병은 인간들이 야생지대를 침범해 들어간 행위 그리고 인구학상의 변화로 초래된 것이다”라고 했다. 다시 말해 인간이 자연을 파괴하고 다른 생명을 착취한 결과라는 것이다.

코로나19는 사람들의 삶의 패턴을 급속하게 바꾸고 경제에도 직격탄을 날렸다. 2월 중순 이후 미국 증시는 30% 내외, 유럽 주요국 증시는 40% 내외 급락했다. 이대로 세계공황이 일어나는 것 아니냐는 우려까지 나오고 있다. 코로나19 사태는 우리 삶에 대전환이 필요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국가의 목표가 더 이상 경제성장이 되어서는 안 된다. 시민들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는 것을 최우선으로 해야 한다.

며칠 전 미국에서 살고 있는 친구로부터 전화가 왔다. 코로나19 바이러스로 사람들이 생필품을 사기 위해 진을 치고 마스크는 동이 나서 의료진이 쓸 것도 없다는 믿어지지 않는 이야기들, 미국이라는 거대 국가의 인구 800만 명이 넘는 대도시 뉴욕이 폐쇄되고 모든 것이 한순간에 무너져 내리는 공포를 실감하고 있다고 한다.

봄을 좋아하는 친구는 마당에 핀 예쁜 꽃들을 보니 더욱 슬프다고 눈물을 흘렸다. 

지난해 전세계 153개국 과학자 1만1000명은 국제 과학학술지 ‘바이오사이언스’에 공동성명을 내고, “지구를 보존하기 위한 즉각적인 행동을 취하지 않는다면, 기후위기는 인류에 막대한 고통을 가져올 것”이라며 세계 각국이 즉시 효과적인 행동에 나설 것을 촉구했다. 과학자들은 기후변화의 영향을 완화하기 위한 방법으로, 화석연료를 저탄소 재생에너지로 대체하고, 메탄 등 오염물질의 배출을 줄이며, 지구생태계를 보호하고, 육식보다는 채식 위주의 식사, 탄소제로경제 구축, 인구 억제 등의 방안을 제시하였다.

기후위기 하면 최근 홍수로 도시 전체가 물에 잠긴 베네치아나 섭씨 42.6도를 기록한 파리의 폭염, 허리케인에 시달리는 중남미가 떠오를 것이다. 사라져가는 북극 빙하나 불타는 아마존, 호주의 가뭄으로 인한 산불 역시 기후 위기의 상징적인 사건들이다. 머지않아 일부 지역에서 나타났던 기후위기의 실체를 이제 거의 모든 나라들이 겪게 될 것이라고 한다.

기후변화의 속도는 심각한 수준에 이르고 있고, 지구의 기온이 1.5℃ 이상 올라가면 돌이킬 수 없는 재앙이 벌어질 것이라는 경고는 오래 전부터 제기되었다. 얼마 전 '네이처'에는 기후위기가 되돌릴 수 있는 티핑포인트를 이미 넘겼다는 과학자들의 경고가 실리기도 했다. 현재 지구의 기온은 10년마다 0.2도씩 상승하고 있고, 산업화 이전보다 이미 1도가 상승했다. 이런 추세라면 1.5℃ 상승까지 30년도 채 안 남은 셈이다. 유럽을 비롯한 세계 각국은 ‘기후위기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하고, 2050년까지 온실가스 배출량 네트(Net) 제로로 하는 그린뉴딜 정책을 발표하며, 지구의 온실가스를 줄이기 위해 그야말로 총력을 다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 정부는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고 어느 누구 하나 관심조차 없는 듯하다.

한국의 온실가스 배출량은 목표부터 잘못 설정되어 있다. 최근 정부는 ‘2020 저탄소사회비전포럼’을 통해 2050년 CO2배출량을 2017년 대비 최소 40%, 최대 75% 감축 목표를 제시했다. 이미 온실가스 배출량은 2017년 7억9천만 톤으로 증가 추세이며, 온실가스 배출의 주범인 석탄화력발전소는 현재 60기, 추가로 7기를 더 건설 중이다. 이로 인해 한국은 온실가스 감축 노력도 개선 의지도 없는 ‘기후불량국가’라는 비난에 직면해 있다.

기후위기는 이제 정치의 영역으로 귀결되고 있다. 시민들이 에너지를 절약하고 녹색소비를 실천함으로써 해결할 수 있는 데는 한계가 있다. 부산지역의 시민사회 환경단체들은 3월 25일 오전10시 시청 앞에서 ‘4.15총선 부산지역 기후환경에너지 10대 의제 공약’을 촉구하는 기자 회견을 했다. 4·15 총선 부산지역의 10대 의제 중 기후 분야 의제는 다음과 같다.

- 기후위기비상사태 선포 및 온실가스 감축을 최우선 정책으로 실시하기 위한 대통령 직속 의 ‘기후위기대응 위원회’ 설립
- 석탄 화력발전소 조기 폐쇄 및 신규 발전소 계획 중단
- 도시텃밭과 농산물 직거래 장터 활성화
- 차 없는 거리 확대 및 도심의 혼잡통행세 신설
- 학교 및 시민들의 기후위기대응 교육 의무화 등

미래 세대에 미래가 없다. 2019년 1월 다보스 세계경제포럼(WEF)에서는 16살 스웨덴 소녀의 연설이 화제가 됐다. “어른들은 젊은이들에게 희망을 줘야한다고 말하지만, 나는 당신들이 주는 희망을 원하지 않습니다. 나는 당신을 공포에 빠뜨리려고 합니다. 내가 매일 느끼고 있는 두려움을 당신도 느끼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당신이 행동하기를 바랍니다.”

그녀의 이름은 그레타 툰베리다. 툰베리는 15살이 되던 해부터 스웨덴 국회 의사당 앞에서 ‘기후를 위한 등교거부 운동’을 벌이고 있다. 9살 때 알게 된 기후변화의 심각성과 두려움을 더 이상 참지 말고 행동하자고 결심했다고 한다. 그 후 그녀에게 영감을 받은 호주, 영국, 벨기에, 미국 등 전 세계 270개 지역 10만 명의 청소년들이 등교거부 운동에 함께하기 시작했다. 한국에서도 지난 해 청소년들이 ‘기후소송단’을 만들고 지속적으로 기후위기비상행동에 나서고 있다.

차연근

기후위기의 시대 우리는 과연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빠르고 편리한 생활 패턴 속에서 순환하지 않는 물질을 소비하고 쓰레기를 양산하는 문명은 지속가능할 수 없다. 제 식구인 자연을 파괴하고서는 우리도 살아 남을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어쩌면 기후위기가 새로운 생태적 저항을 만들어 낼 수 있는 좋은 기회일지도 모른다. 성장과 경쟁에 거리 두기를 하고, 물질 중심의 파괴적인 삶에서 지속가능한 제대로 된 세상을 미래 세대에게 물려줄 마지막 기회일지도 모른다.

생태적 전환의 사회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새로운 삶의 방식이 필요하다.

“어제와 똑같이 살면서 다른 미래를 기대한다는 것은 정신병의 초기 증세”라고 한 아인슈타인의 말을 우리는 이제 새겨보아야 하지 않을까.

<기후변화에너지대안센터 상임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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