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으로 본 세상-2] 한비자가 본 윤석열

불기 승인 2021.03.07 11:29 | 최종 수정 2021.03.09 18:52 의견 0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임기 4개월을 앞두고 직을 던졌다. 그가 언제 총장직을 던지는지가 세간의 관심사였다. 어차피 문재인 정권과 그는 같이 갈 수 없은 길을 걸어왔다. 유력 대권주자인 그는 이제 국민을 상대로 정치를 할 것으로 예상된다.

돌아보면 그는 철저한 검찰주의자다. 그는 ‘한 번 물면 놓지 않는다’는 특수부 검사의 기질을 나타내는 전형이었다. 그래서 박근혜 정권의 심장에 칼을 들이댔고 정권을 무너뜨리는 데 일조했다. 이 공으로 검찰총장직에까지 오른 그는 현 정권의 실세를 향해 칼을 겨눴다. 그가 밝힌 이유는 “수사할 필요가 있을 정도로 의혹이 있다”는 것이다. 조국 전 법무부장관에 대한 수사가 대표적이다. 조국 일가를 탈탈 털어 결국 조국 전 장관의 부인을 법정구속시켰고 실형을 받게 했다. 조국 동생인 조권 씨 역시 구속했다. 조국 전 장관의 딸은 그녀의 의사 면허까지 뺏어야 한다는 여론에 시달리고 있다.

윤 전 총장은 문재인 대통령의 주요 정책 중 하나인 탈원전 관련 사건에도 손을 대 월성원전 수사를 여당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밀어붙였다. 수사는 아직 종결되지 않았으나 백운규 전 산업부 장관에 대한 구속영장까지 청구했다. 결국 기각됐지만.

이 외에도 환경부 블랙리스트 사건, 손혜원 의원의 부동산 투기 의혹을 수사하며 현 정권에 대한 수사의 끈을 늦추지 않았다.

윤 전 총장은 검찰이 하는 수사를 성역이라고 생각한 듯하다. 심지어 살아 있는 권력이라도 이 같은 권위를 훼손한다면 그냥 둘 수 없다는 게 그의 생각인 것으로 보인다. 국정원 대선 개입 사건 이후 특별수사팀장에서 좌천돼 평검사로 근무하던 시절 수많은 로펌에서 스카우트하려고 했으나 이를 거절한 것에서도 알 수 있듯이 검사를 천직으로 생각한 인물이다. 이러다 보니 검찰 우선주의와 지상주의에 빠지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헌법에 보장된 수사권과 기소권은 주권자가 부여한 것이다. 그러니 주권자의 뜻이 무엇인지, 선택적 수사로 이의 정신을 훼손하지 않았는지 매일 자신을 되돌아봐야 하는 게 검찰이다. 워낙 막강한 권한을 쥐고 있다보니 선출된 권력마저 두려워하지 않게 되는 우를 범하지 않았을까. 선출된 권력은 일단 주권자인 국민의 뜻이 현실에 반영된 것이므로 이를 무시할 수 없다. 만약 선출된 권력이 주권자의 뜻에 어긋한 행위를 한다면 주권자가 부여한 검찰권을 행사하는 게 당연하다. 그럼 문재인 정부는 주권자의 뜻에 어긋나게 정치하고 있는가. 이 문제에 대한 해답은 명확하지 않다. 요즘도 대통령의 지지율은 40% 선을 유지하고 있다.

한비자

검찰권과 관련해 한비자의 생각을 음미해볼 필요가 있다. 한비자는 군주가 놓쳐서는 안 되는 것 중 하나가 형벌권임을 강조했다. 국가를 경영하는 데 신상필벌(信賞必罰)이 중요한데 형벌권을 신하에게 주고 자신이 행사하지 않으면 군주를 무시하게 돼 결국 신하로부터 배신을 당한다고 했다.

‘한비자’ 7편인 ‘이병(二柄)(두 개의 칼자루)’에서 군주가 형(刑)이라는 자루를 들고 있어야 권위를 잃지 않는다고 했다. 5편인 ‘주도(主道)’에서는 군주를 위협하는 다섯 가지 장애물을 밝혔는데 이 중 하나가 상벌권을 장악한 신하는 군주의 자리를 뺏는다는 것이다. 상벌권은 군주 한 사람만이 할 수 있는 것으로 신하가 조종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16편인 ‘삼수(三守)’에서는 군주가 지켜야 할 세 가지 원칙을 설명했다. 군주가 할 일을 신하에게 맡겨서는 안 된다고 한 것이 세 번째에 해당한다. 특히 백성을 살릴 수 있는 권한과 상벌을 움직이는 실권이 대신들의 손아귀에 들어가면 군주권을 무시한다고 밝혔다. 아울러 한비자는 군주가 신하들에게 위협당하는 세 가지 사례도 들었는데 세 번째가 형벌의 권한을 장악해서 위협하는 유형이다.

2200년 전 한비자가 오늘 살아 있다면 현재의 검찰에 대해 뭐라고 할까. 법과 원칙에 따라 검찰권을 행사했다고 윤 전 총장을 칭찬할까. 독자들에게 한비자를 읽어보며 이 물음에 대한 답을 찾길 기대한다.

<불기(不器) / 고전호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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