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하소설 「신불산」(5) 제1부 떠돌이 기출이 - 제2장 서촌댁 유복자

이득수 승인 2022.01.03 17:59 | 최종 수정 2022.01.07 13:26 의견 0
ⓒ서상균

2. 서촌댁 유복자 ②서촌댁의 오래비 곰쇠

마을아낙 몇이 빨래를 하다 흘낏 쳐다보고는 다시 빨래에 열중하는 앞새매를 모르는 척 지나쳤다.

이 마을사람이 된지 벌써 16년, 산천이 두 번 가까이 변했건만 여전히 마을사람들은 온천지가 새하얗게 눈에 덮인 한겨울의 봉당골에 홀연히 나타난 키가 엄청나게 크고 힘이 장사 같은 처녀, 어린 시절 무슨 일인가로 집안이 몰락해 유리걸식 떠돌다 얻어먹지를 못해서 조그만 덩치에 힘이라고는 못쓰는 약골 복성이의 아내가 되어 살림밑천이라는 큰 딸 귀남이를 비롯 선출이, 재출이, 또출이, 기출이의 5남매를 줄줄이 낳은 이 정체불명의 아낙을 아직 같은 마을사람으로, 특히 여인네들은 같은 또래로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았다.

그 위에 그 키 큰 아낙의 이름 또한 부처손이라는 듣도 보도 못한 낯선 이름이라 혹시 절간에서 태어난 공양주와 화부 사이에 난 자식인가 했지만 부처손이는 깊은 산속 높은 바위 사이에 바람에 날려 와 쌓인 모래에 뿌리를 박고 홍수 때 간간히 스쳐가는 빗물이나 이슬로 연명하는 아주 귀한 약초의 이름이라고 하며 경상도에서는 바위손이라 부르기도 한다는 해명을 들어도 어딘가 못마땅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첫딸 귀남이가 돌이 될 때까지 고향이 어디인지 무슨 일로 어떻게 이곳에 나타났는지 도무지 말을 않던 서촌댁이 이제 갓 걸음마를 배우기 시작한 귀남이가 어느 가을 날 고구마를 캐는 호미날 아래 커다란 그림자가 비치는 것을 보고 고개를 들다

“아이구, 오래비. 곰쇠오래비!”

소리치며 비호처럼 아이를 덮치면서 시작된 엄청난 놀라움에서 시작되었다.

그 날 비로소 며느리가 여태껏 처음부터 귀가 어두워 남의 말을 못 알아듣는 타고난 벙어리라고 생각하긴 해도 매사에 눈치가 빠르고 행동거지가 너무 반듯해 어쩐지 귀가 들리는지도 모른다고 의심하던 시어머니 차꼴댁이 까무러칠 듯 놀라 복성이를 불렀지만 복성이는 이미 모든 것을 알고 있는 듯 빙긋 웃기만 했다.

에라이, 빌어먹을 것들, 어쩌면 이 어미를 그렇게 이태가 되도록 감쪽같이 속였냐고 시어머니 차꼴댁이 다그치자 며느리는 다시 입을 다물었고 복성이는 사실 자신도 아이어미 부처손이가 벙어리가 아닌 것은 짐작은 했지만 실제로 말을 하는 것은 오늘 처음 보았다고 했다.

그럼 이름이 부처손인지는 어떻게 알았냐고 묻자 그 대답 또한 묘했다. 아무래도 벙어리가 아닐 것 같은 의심이 들어 작수성례, 첫날밤에 몸을 열어주던 경황없이 들뜬 각시에게 이름이 무어냐고 슬며시 물어봐도 긴장이 역력한 눈빛으로 말이 없던 사람이 첫아이를 가져 표가 나게 배가 부른 어느 날 잠자리에서 비로소 마음을 열었다고 했다.

복성이가 이제 곧 우리 둘은 아이어미와 아비가 될 터인데 서로가 서로를 알고 믿고 살아야 될 것은 아니냐? 당신의 내력이나 사정을 다 알지는 못하더라도 이미 부부가 되고 어미아비가 될 판에 이름이라도 말해달라고 졸랐던 것이었다.

그러자 한참이나 곰곰이 생각하던 그녀가 검지를 입에 대고 쉿, 혼자만 알고 있으라는 시늉을 한 뒤 복성이의 손을 당겨 손바닥에다 뭔가를 끄적거리기 시작했고

“자네, 글, 글을, 언문을 아나?”

그 간질간질한 느낌 속에서 부처손이라는 이름을 알아차린 복성이가 놀라서 묻자 다시 한 번 손가락으로 쉿 하는 시늉을 하며 빙그레 웃었던 것이었다.

그렇게 해서 봉당골에 나타난 복성이의 각시가 벙어리가 아니라는 소문이 큰 마을 버든은 물론 구시골과 진장만디까지 파다하게 퍼져나가 호기심 많은 할망구들이 일부러 찾아와 말을 걸어보기도 했지만 마지못해 한 마디 대답을 하는 그 커다란 아낙의 행동거지가 너무 차분하고 의젓해 허허벌판 봉당골에 의지할 데 하나 없던 차꼴댁이나 복성이가 이제 한숨을 돌렸구나, 이건 뭐 논고동 우렁각시도 아닌 엄청난 복덩이가 굴러들어왔다면서 탄성을 자아내었다.

이어서 마을에 제기된 의문은 그럼 그 커다란 각시는 어디서 왔으며 근본이 무어냐는 것이었다. 그러나 제 이름이 덩치와는 영 동떨어진 부처손이라는 것만 밝히고 더는 말이 없었다. 그러나 그 궁금증도 아장아장 걸음마를 시작한 귀남이가 파도, 파도 황토뿐인 시뻘건 봉당골의 밭에서 난생 처음 보는 굵다란 고구마를 만져도 보고 굴려도 보고 입에 대고 껍데기도 벗겨보는 해거름에 저절로 풀렸다.

한창 고구마를 캐느라고 엎드렸던 아이어미 부처손이가 허리를 펴다 물끄러미 귀남이를 바라보는 땅땅하고 목이 짧은 사내를 발견하고는 갑자기

“오매, 오래비!”

를 외치며 호미를 집어던진 것이었다. 바로 그녀의 오라비 곰쇠였던 것이었다.

그날 밤 곰쇠가 행장에서 엽전 몇 푼을 꺼내 모처럼 읍내 장터골목에서 소고기와 미역에 광어를 사고 막걸리도 한 말을 들여와 떡 벌어진 저녁상을 차리고 둘러앉았다.

차꼴댁과는 사돈의 예로, 복성이와는 처남매부의 예로 인사를 나누고 귀남이를 안아보려고 해도 아이는 그 이름 곰쇠처럼 우람하고 땅땅한 덩치에 시커먼 구레나룻의 외삼촌에게 아이는 좀처럼 다가오지 않았다.

ⓒ서상균

곰쇠가 왜 헤어지고 1년이 되는 지난 가을 약속장소 영남루로 나오지 않았냐고 묻자 부처손이는 그 때가 마침 해산달이 가까워 움직일 수가 없었고 남편도 몸이 약한 데다 바깥구경을 못한 사람이라 그러지 못했다는 대답이었다. 또 오라비가 죽지 않고 살아만 있다면 반드시 이 멀대같은 여동생을 찾아올 줄 알았다고 하자 그건 내가 생각해도 그렇겠다고 오라비가 받았다.

황토현에서 아버지의 시신을 찾지도 못한 그가 구례에서 출발해 섬진강을 넘어 하동, 고성, 함안, 창원, 김해를 거쳐 물금나루를 건너 양산 땅에 들어서자 그녀의 말대로 지난겨울 전라도 말씨의 키 큰 처녀를 보았다거나 아마도 통도사나 언양 쪽으로 갔을 것이라는 어렴풋한 이야기막을 얻어들을 수 있었다. 이어 양산 장에서는 재 너머 배내에서 온 숯장사 왈패 몇이 떡과 죽을 파는 시장골목에서 주린 배를 안고 서성대는 낮선 처녀를 집적대다 오히려 차례로 팔목을 잡혀 내동댕이당한 일이 있었다는 구체적인 소식을 들을 수가 있었다고 했다.

그렇게 소문 속의 누이를 찾아 다시 양산에서 이십 리를 걸어 내원사 아래 용연마을에 이르러서는 그 소문 속의 처녀가 언양 어딘가의 외진 오두막에 사는 가난한 모자를 만나 이미 그 아들의 아이를 가졌다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고 그날 점심 때쯤 통도사 절 앞의 새터(新平)장에 이르러서는 언양까지 갈 것도 없어 파발마와 보발이 다니던 치도를 따라 언양현의 덕천역과 장심배기고개 사이 봉당골 만디라는 평평한 야산의 움막에 살고 있다는 소리를 듣고 단숨에 달려왔다는 것이었다.

그렇게 꿈같은 남매상봉을 한 오라비 곰쇠는 이튿날 아침숟갈을 놓기 바쁘게 다시 지리산을 향했다. 그리고는 보름 만에 다시 나타났는데 괴나리봇짐 속에서 제법 많은 엽전과 여우가죽, 담비가죽 몇 장을 꺼내 각각 안사돈 차꼴댁과 여동생 부처손이와 또 아직 어리기는 하지만 생질녀 귀남이의 목도리로 쓰게 하고 명주와 무명을 몇 필 끊어 고부의 입성을 갖추게 했다.

또 동갑내기면서 제매가 되는 복성이가 춘추에 입고 벗을 바지저고리 두 벌에 핫옷과 두루마기에 조끼까지 일습을 갖추어주고 그들의 신혼 방에 덮을 깨끗한 이부자리는 물론 베개모서리에 한 쌍의 닭과 병아리 여러 마리가 수놓아진 두통베개와 옷을 걸 횃대 보에 조그만 손거울과 동백기름까지 사다주었다.

그러나 그 많은 물건들을 사와도 제대로 걸고 깔고 놓아둘 자리마저 없는 형편이었지만 당장 더 큰 문제는 오라비 곰쇠가 머물 방이 없는 것이었다. 원래 한간짜리 큰 방을 억지로 칸을 질러 시어머니 차꼴댁과 아들내외가 써왔는데 갑자기 나타난 곰쇠를 누이의 신혼 방에 재울 수도 없고 사돈마님인 차꼴댁과 한 방에 자게 할 수도 없었다.

기왕 이렇게 된 것 아랫마을 버든에 방 두간에 부엌이 딸린 삼 칸 홑집을 짓고 별도로 자신이 묵을 방과 헛간과 측간에 소를 키울 마구간까지 딸린 기다란 아래채까지 짓기로 하였지만 이미 초겨울 눈발이 날려 시작을 못하고 저녁마다 아랫마을 머슴들 방을 전전하다 어찌어찌 봉꼴산 아래의 향교에 마당을 쓸어주고 빈방에서 겨울을 나기로 했다.

이듬해 정월대보름이 지나 오후의 노란 햇살에 약간의 온기가 느껴질 때쯤 곰쇠는 읍내 장에서 기둥과 서까래, 연목을 사들이고 이웃들의 품을 사 억새와 짚으로 이엉을 역기 시작했다. 힘이 장사라 무슨 일이라도 시원하게 잘도 해치우는 곰쇠였지만 농사를 지어본 일이 없어 이엉도 잘 엮지 못 하자 사람들은 등신이 따로 없이 바로 영개도 엮지 못하는 저 태산 같은 곰쇠가 바보등신, 아니 제 코를 떼어가도 모르는 돌부처 벅수라고 웃어댔다.

그렇게 낮선 총각 곰쇠에게 날품을 팔고 한 두 말씩 넉넉하게 양식을 사고 간혹 소고기내장과 천엽을 후하게 넣은 국밥에 탁주를 얻어먹으면서도 마을사람들은 여전히 과연 저 덩치가 태산만 한 남매의 정체가 무엇인지, 어째서 저만한 돈을 가졌는지, 이 흉흉한 세상에 저 근본도 모르는 떠돌이와 어울리다 무슨 동티가 나거나 관재수가 나지 않을까 께름칙하여 늘 등 뒤에서 수군대기가 일쑤였다.

그러나 곰쇠는 자신이 대대로 전라도 구례의 달궁이란 깊은 산골에서 지리산의 호랑이나 곰을 잡던 왕(王)포수의 아들로서 어미는 오래전에 고뿔로 죽고 아비는 지지난 해 화승총을 매고 호랑이를 잡으러 나가 절벽에서 미끄러지는 바람에 오히려 호식을 당해 유골일부와 찢어진 옷자락과 화승총만 찾았다고 둘러대었다.

그리고 그 많은 돈은 그 동안 아비가 호랑이나 곰을 잡아 판 비싼 호피나 웅담의 값을 나중에 자신과 여동생 부처손이가 장성하면 산을 내려가 시집장가를 가고 집과 논밭을 마련할 밑천으로 쓰려고 땅을 파고 독에 넣어 묻어두었던 것이라고 말하자 안 그래도 차꼴댁과 부처손이의 여우와 담비목도리를 보아온 그들이라 믿지 않을 수도 없었다.

그렇게 해서 그 해 봄에 대충 공사가 끝나자 마을사람들이 모처럼 숨을 돌리고 하루를 쉬는 단옷날을 이삿날로 잡고 복성이와 부처손이의 도둑결혼으로 내지 못한 성골례(成婚禮)라 부르는 잔치 술도 낼 겸 제법 그럴듯한 마을잔치를 벌렸다.

모처럼 국밥과 탁주는 물론 돼지수육과 잡채에 단술과 묵과 고추를 말려 튀긴 부각까지 실컷 먹은 마을사람들은 지리산 왕포수네의 집들이가 걸기는 참으로 왕창도 걸다, 그 지리산 호피와 웅담이 과연 비싸고 값진 것이구나, 호들갑을 떨다가 마침내 이참에 새댁 귀남어미의 택호(宅號)를 짓자고 제안하고 곧 의논에 들어갔다.

누군가가 우선 그 출신지가 지리산 달궁계곡의 외딴집이라 달궁댁이라고 부르면 되겠다고 했지만 다른 누군가가 그 궁(宮)자는 대궐을 뜻하는지라 그만한 힘을 갖추지 못한 농사꾼이 함부로 쓰다가는 동티가 날 뿐더러 궁상을 면치 못하고 궁기에 시달릴 우려가 크다는 바람에 허사가 되었다.

다음 나온 것이 지리산댁에 구례댁, 또는 왕포수댁 등이 거론되었지만 무언가가 허술하고 생뚱맞아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는데 어릴 때 서당에서 글줄이나 읽었다는 토박이 신씨 집안의 누군가가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며 손뼉을 탁 쳤다.

섬진강 너머 전라도 땅, 그러니까 서쪽에서 왔으니까 서편댁으로 하자는 것이었다. 그 참 그럴듯하다고 생각한 사람들이 모두들 수긍하는 눈빛으로 쳐다보는데 제안자의 사촌형이 되는 사람이 택호란 주로 마을이름인 촌(村)이나 동(洞), 마을, 곡(谷), 꼴등이 들어가야 하는 만큼 서편댁보다는 점잖게 서촌댁으로 하자는 말이 나오자 여기저기서 박수가 터져 나왔다.

그렇게 귀남어미가 서촌댁이 되고 복성이가 서촌양반 또는 서촌이손으로 불리고 곰쇠가 서촌댁오래비로 확정이 되고 분위기가 한껏 무르익어 모두가 술이 얼큰하고 얼굴이 불그죽죽한 해질녘에 또 한 가지 경사가 터졌다. 바로 곰쇠가 장가를 들게 된 것이었다.

그동안 비록 전라도지리산에서 온 무식한 포수네 자식이지만 복성이네 집을 짓는 몇 달 동안을 겪어보니 덩치가 크고 우직한 데다 심성도 좋고 마을어른을 대하거나 씀씀이가 모두 무던한 대다 누이동생의 집을 짓고 대추나무껄 서마지기의 논을 마련해주는 것으로 보아 우선 먹고살기가 무난한 것 같은 곰쇠를 마을에서 제법 행세께나 하는 중농 들내양반이 진작 마음을 두었다고 했다. 마침 그 집이 읍내에 드나드는 길목인지라 곰쇠와 그 집의 열일곱 살 난 딸도 몇 번 눈이 마주치자 문득 명실 공히 곰 같은 곰쇠가 번개처럼 번쩍하는 느낌이 지나가고 벼락을 맞은 고목처럼 먹먹한 가슴이 되는 지라 무심결에 들내댁과 딸에 대해 여기저기 물어보고 관심을 가져 눈치 빠른 평동댁 할마시가 중매를 들어 마침내 그날 들내양반의 승낙이 떨어진 것이었다.

그렇게 흘러들어온 오누이가 오라비는 웃각단에 삼간 겹집을, 누이는 아래각단에 삼간 홑집을 짓고 서툰 농사일에 적응하면서 피차 대여섯 자식을 낳아 기른 지 벌써 15년이 된 것이었다.

이득수 시인

◇이득수 시인은

▷1970년 동아문학상 소설 당선
▷1994년 『문예시대』 시 당선
▷시집 《끈질긴 사랑의 노래》 《꿈꾸는 율도국》 《비오는 날의 연가》 등
▷포토 에세이집 『달팽이와 부츠』 『꿈꾸는 시인은 죽지 않는다』 등
▷장편소설 「장보고의 바다」(2018년 해양문학상 대상 수상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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