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해훈 시인의 지리산 산책 (9)시인, 보우스님의 화개골 방문

조해훈 승인 2018.08.21 09:49 | 최종 수정 2018.08.21 10:11 의견 0

지난 18일 낮에 보우스님이 화개골 필자의 집을 방문하였다.

보우스님은 부산의 감천문화마을에 있는 관음정사에서 수행하고 있다. 스님은 1992년에 등단하여 『그 산의 나라』(1992), 『다슬기 산을 오르네』(2005). 『목어는 새벽을 깨우네』(2009), 『눈 없는 목동이 소를 몰다』(2017) 등 네 권의 시집을 낸 시인이다. 그는 현재 한시집(漢詩集) 발간을 준비하고 있다.

시인이자 동백시낭송회 회장인 배동순 선생과 동행했다. 현대시 낭송가이기도 한 배 시인은 스님으로부터 ‘한시읊기’를 배우고 있다. 스님은 다음 달 한시집이 발간되면 배 시인을 중심으로 시낭송 전문가들과 공공장소에서 한시읊기를 하여, 한시의 대중화를 꾀할 생각이다.

스님은 지난 3월 이곳 화개골의 호모루덴스 카페에서 열린 ‘목압서사 주최 제1회 한시읊기 대회’ 때 특별초청으로 와 한시 4수를 읊었고, 최근 화개골 흔적문화갤러리에서도 ‘차꽃사랑회’ 회원들과 지역민들을 대상으로 한시를 읊었다. 또한 지난 봄 감천문화마을 축제 때 시낭송 행사에 현대시와 병행해 한시읊기도 함께 가져 청중들의 관심어린 호응을 얻기도 했다.

-지난 18일 오후 보우스님(왼쪽)과 배동순 동백시낭송회장(가운데), 필자가 쌍계사를 둘러본 후 대웅전 앞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제공=조해훈
지난 18일 오후 쌍계사 대웅전 앞에서 보우스님(왼쪽)과 배동순 동백시낭송회장(가운데), 필자. 사진제공=조해훈

스님과 쌍계사 아래 쌍계석문 쪽에 있는 오남매식당에서 정식을 먹고 루나카페에서 커피를 한 잔 마셨다. 카페의 애완견인 루나는 스님을 만나자 합장하듯이 인사를 해 손님들의 눈길을 끌었다. 미니 카페인 이곳의 사장님과 사모님도 2년 전에 부산에서 귀촌하였다. 커피를 마신 후 스님과 필자의 집에 와 녹차를 마시면서 여러 이야기를 하였다.

스님은 신라 법흥왕 때 순교한 이차돈의 머리가 날아가 떨어진 곳이라는 경주 백률사에서 수행을 하시다 9년 전에 감천문화마을 옥녀봉 꼭대기 쪽에 수행공간을 정하였다. 그는 마을이 삭막하게 느껴져 골목에 시화를 내걸고, 마을 축제 때 시낭송을 시작해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다.

스님은 우리의 고전문학, 특히 한시가 점차 사람들로부터 관심을 잃어가는 데 대해 아주 안타까워했다. 우리나라에 한문이 들어온 것은 신라시대로 추정된다고 설명했다. 그때부터 근대시기까지 우리나라의 문학과 역사 등 모든 부문의 기록을 한문이 담당했는데, 이제는 과거의 글이 되었다고 외면당하는 현실이 문제가 있다고 지적하였다. 『조선왕조실록』과 『훈민정음해례본』, 『동의보감』 등 유네스코가 선정한 세계기록유산 16개 중에 한문으로 된 것이 대부분이라고 했다.

스님은 “한시를 짓고 읊어 과거의 시대로 회귀하자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고전을 이해하고 우리 문학의 깊이와 넓이를 좀 더 알려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많은 사람들이 한시를 중국의 문학이라고 단정을 한다”며, “물론 중국에서 들어온 문학의 형식이지만 오랜 세월 우리 민족의 삶과 정서를 담았기 때문에 우리의 문학으로 봐야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또 “한문으로 된 문학을 제외해버린다면 조선시대 일정시기까지 우리나라는 문학은 물론 문화의 암흑기”라며, “부산 소재 대학 중 사립대의 한문학과는 모두 폐지돼 국립대인 부산대에만 겨우 존치하는 실정”이라고, 학문 분야에서도 한문이 퇴출되는 것에 대해 애석해했다.

사진설명- 루나카페의 애완견인 루나가 보우스님을 보자 합장하듯 앞발을 모아 흔들며 인사하고 있다.
루나카페의 애완견인 루나가 보우스님을 보자 합장하듯 앞발을 모아 흔들며 인사하고 있다. 사진=조해훈

스님은 또한 “한시를 짓는 데도 운자와 평측 등 지켜야할 규칙이 여럿 있지만, 한시를 읊은 데도 규칙이 있는데 가끔 시조창이나 판소리하듯이 읊는 사람들이 있다”며, “이왕 읊을 것이면 제대로 했으면 좋을 것”이라고 조언을 했다.

스님은 어머니를 통해 한시를 배워 짓게 되었지만, 은사 스님도 한시를 하는 분이어서 한시 창작의 맥을 계속 잇게 되었다. 차인이기도 하는 그는 봄에 차를 법제해 마신다.

그의 철학과 사유를 읽을 수 있는 시 한 수를 보자.

별빛을 지고
밤새 먼 길 가는 다슬기는
먼동의 끝자락에 둥지를 찾고

바람에 스친
개울물 소리

물빛에
비친 산 그리매
다슬기 산을 오르네.

(시 「다슬기 산을 오르네」 전문)

위 시는 물에 비친 산 그림자의 능선을 따라 다슬기가 이동하는 모습을 보고 지은 작품이다. 스님의 심상에는 다슬기가 물속에서 움직이는 형국이 마치 산을 오르는 것으로 보였다.

그는 “수행이란 이처럼 물에 사는 작은 다슬기가 산에 오르는 것에 다름 아니다”라고 말했다. 쌍계사와 칠불사에 들렀다가 화개장터를 구경한 후 인근에서 함께 저녁을 먹고 어둑해져서야 스님은 부산으로 향했다.

<시인‧인저리타임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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