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해훈 시인의 지리산 산책 (6)역사‧문화예술 소재의 보고(寶庫) 화개골

조해훈 승인 2018.07.18 00:48 | 최종 수정 2018.07.18 01:07 의견 0

역사‧문화예술 소재의 보고 화개골

화개골은 차 생산지로만 유명한 곳이 아니다. 이 지리산 깊은 골짜기에 많은 문화예술인들이 들어와 살고 있으며, 각종 예술활동이 그 어느 지역보다 활발하게 이루어지는 곳이다.

우선 필자가 알고 있는 화개골 거주 문화예술인들은 다음과 같다.

문인으로는 용강리가 고향으로 모암마을에서 차 농사를 지으며 시를 쓰고 있는 김필곤 시인을 먼저 들 수 있다. 시조시인이기도 한 그는 차 관련 저서를 내기도 했으며, 여러 권의 시집을 내었다. 10여권의 시집을 내 시인이라는 직함을 갖고 있는 필자도 지난 해 부산에서 이곳 화개골 목압마을에 들어와 차 농사를 짓고 있다.

신흥 삼거리에서 범왕 가는 길가에 ‘시인의 정원’ 펜션을 운영하는 권행연 선생은 시인이자 소설가이다. 남편은 원래 연극을 한 사람으로, 여러 권의 아동도서를 낸 아동문학가이다. 시인의 정원 펜션에서는 해마다 여름에 시집 『저문 강에 삽을 씻고』로 유명한 정희성 시인 등 전국적으로 알려진 문인들을 초청해 시낭송을 하거나 소설 낭독을 한다.

그 펜션 바로 위에 ‘클라우드 펜션’을 운영하고 있는 김용철 시인이 있다. 범왕마을이 고향인 김 시인도 여러 권의 시집을 간행하였다.

※사진설명①쌍계사 위쪽에 있는 불일폭포. 하동 10경 중 하나로, 폭포 인근은 옛 선비들에게 청학동으로 알려져 수많은 시의 소재가 된 곳이다.
쌍계사 위쪽에 있는 불일폭포. 하동 10경 중 하나로, 폭포 인근은 옛 선비들에게 청학동으로 알려져 수많은 시의 소재가 된 곳이다. 사진=조해훈

음악가로는 석문마을에 거문고 연주가인 율비 김근식 선생이 거주하고 있다. 명상음악가이기도 한 그는 젊었을 때엔 대중음악 활동을 하기도 했다. ‘산새소리’ 펜션을 경영하고 있는 최한익 선생은 색스폰 연주가로 화개골의 각종 행사 등에 재능기부를 많이 한다. 단천마을에는 수니 킴(본명 김연순)‧김성환 재즈 가수 부부가 살고 있다. 서울과 제주 등 전국은 물론 미국에서도 초청 공연 등을 갖는 이들 부부 가수 역시 틈만 나면 지역민들을 위해 재능기부를 하고 있다. 최근에는 모 지상파 방송의 4부작 다큐멘터리에 방영되기도 했다.

화개골에는 독특한 문화 인사도 있다. 쌍계제다를 운영하고 있는 김명곤 선생은 화개골의 차와 지역사, 인문학에 관심을 갖고 평생 연구하고 있다. 이와 관련해 『진감선사와 최치원』 등 여러 권의 저서를 냈다. 

쌍계사 다리 앞의 전통찻집 ‘녹향’ 대표인 오신옥 선생은 1981년부터 찻집을 운영하며, 이 지역을 찾아오는 외지인들에게 고집스럽게 화개골의 차를 알리고 있는 유명한 차인이다.

또한 목압마을에는 ‘목압서사’가 있어 화개골 주민들에게 한문 및 한시, 고전인문학 등을 가르치고 있다. 지난 3월에는 ‘목압서사 한시연구회’ 회원들이 한시를 지어 ‘한시 읊기 대회’를 갖기도 했다.

화개골에는 드물게도 널찍한 전시‧공연 공간이 있다. 2016년 5월 18일에 개관한 ‘흔적문화갤러리’기 그곳이다. 이 골짜기 정금마을 출신인 이말순 여사께서 고향의 문화예술의 활성화를 위해 만든 공간이다. 그동안 신순미‧김승희‧이수정‧정현자‧이정숙 등 전국적으로 활동하고 있는 작가 11명의 초대전을 가졌다. 열두 번째 초대전으로 오는 8월 15일까지 정국영 작가의 개인전을 열고 있다. 갤러리 옆에는 30여 년간 고미술품을 수집해온 이 여사의 남편인 김봉환 선생이 고미술 전시관을 운영해 화개골을 찾는 방문객들에게 다양한 문화적 볼거리를 제공하고 있다.

또한 쌍계사에는 국보 제47호로 통일신라시대 때 고운 최치원이 지은 진감국사대공탑비가 있고, 대웅전 위에 있는 금당에는 추사 김정희의 친필 현판이 두 점 있다. 쌍계사 뒤쪽에는 지리산 10경의 하나인 불일폭포가 있으며, 그 일대는 옛 선비들에게 신선이 사는 청학동으로 알려져 이를 소재로 읊은 한시가 많다. 범왕마을의 칠불사는 한 번 불을 때면 100일간 따뜻하다는 아자방(亞字房)이 유명하며, 초의선사가 『다신전』을 등초한 사찰이다.

화개골의 전시‧공연장인 흔적문화갤러리 내부. 오는 8월 15일까지 정국영 작가의 초대전이 열리고 있다.
화개골의 전시‧공연장인 흔적문화갤러리 내부. 오는 8월 15일까지 정국영 작가의 초대전이 열리고 있다. 사진=조해훈

또한 화개동천 바위와 인근에 쌍계석문(雙磎石門)‧세이암(洗耳岩)‧삼신동(三神洞) 등 최치원 선생의 글로 알려진 석각이 여럿 있다. 화개동천에는 추사의 부친으로 예조‧이조·공조·형조·병조 판서를 역임한 김노경이 경상도관찰사로 재임 중 산청‧안의 현감 등과 함께 화개골을 방문해 이름을 새겨놓은 바위도 있다.

게다가 우리의 아픈 역사이지만 이 골짜기는 1948년에 여순반란사건에 가담했다가 화개골로 쫓겨 와 최후를 마쳤던 산사람들과 한국전쟁 시기에 지리산에서 활동했던 남부군 빨치산들의 활동 근거지이기도 하다. 그 외에도 이곳에는 서산대사 출가지 등 수많은 역사적 팩트가 많다.

화개골은 이처럼 고대에서 근현대까지 다양한 문화예술과 역사를 접할 수 있는 문화의 고장이기도 하다. 필자는 우리나라에서 이 골짜기만큼 다양한 문화적 스펙트럼을 품고 있는 지역은 없을 것이라고 감히 단언한다.

<시인ㆍ한문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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