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해훈 시인의 지리산 산책 (10)고양이들과의 행복한 동거

조해훈 승인 2018.09.07 17:28 | 최종 수정 2018.09.07 17:46 의견 0
멀거이가 처음으로 친정에 데리고 온 새끼가 어미를 타고 노는 모습이다.
멀거이가 처음으로 친정에 데리고 온 새끼가 어미를 타고 놀고 있다. 사진=조해훈

아침에 일어나 보니 현관 앞 탁자 위에 ‘멀거이’와 못 보던 새끼 고양이가 놀고 있었다. 새끼는 사람을 보면 놀라 달아나므로 눈치 채지 않게 비켜서서 쳐다보았다. 멀거이 머리를 탔다가, 꼬리를 물었다가, 몸을 뒤채며 비비며 노는 모습을 보니 영락없이 멀거이가 어미이고, 그 놈은 멀거이의 새끼였다. 멀거이는 싫다는 기색이 하나도 없고 얼굴에는 행복한 웃음기가 가득하며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어 댔다. 자신의 새끼에게 저렇게 다정하고 자애롭게 대하는 고양이는 여태 보지 못했다. 그 모습을 보는 내 마음도 기쁨으로 그득해졌다. 새끼는 노랑색에 흰 무늬가 몸 군데군데 있었다. 완전 새끼가 아니라 좀 큰 놈이었다.

아니, 그런데 멀거이에게 웬 새낀가? 멀거이에게는 새끼가 없었다. 멀거이는 봄에 현관 앞 마련해준 자신의 집에서 새끼를 낳았으나 하필이면 그 무렵 날씨가 갑자기 추워져서인지 새끼 두 마리가 죽어버렸다. 아니면 멀거이가 새끼를 처음 낳아 경험이 없어 제대로 조치와 관리를 못해 죽었는지도 모른다.

멀거이의 새끼들을 뒷산에 묻어주었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가? 멀거이집 바로 옆 고양이집에 ‘점순이’라는 검정고양이가 멀거이와 같은 시기에 새끼를 두 마리 낳았다. 자신의 새끼가 죽자 멀거이가 점순이 집에 들어가 그녀의 새끼들을 돌보고 있지 않은가. 물론 점순이와 함께 말이다. 순간 “아, 멀거이가 모성이 너무 강한 고양이구나”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이틀 정도 있다 멀거이도 점순이도 그의 새끼들도 모두 사라졌다. 현관 앞은 사람들이 드나들고 해 새끼들을 키우기에는 부적합한 공간이었다. 하지만 현관 앞에 마련해준 몇 개의 고양이집에서 겨울을 난 고양이들이 다른 곳에 가지 않고 봄이 되어도 날씨가 추워서 그런지 그곳에서 새끼들을 낳아버린 것이었다.

내 집 고양이들을 보니 겨울에 새끼를 배어 봄에 출산을 하였다. 임신하고 있는 기간과 새끼의 성장 기간 등을 고려해보면 분명 멀거이의 친새끼가 아님이 분명했다. 누구의 새끼일까, 곰곰이 생각해보니 혹시 노랭이의 새끼일 가능성이 있었다. 노랭이도 비슷한 시기에 새끼를 낳았다. 그런데 노랭이는 현관 앞에서 새끼를 낳지 않고 아래채의 옥상 올라가는 계단 밑에서 새끼들을 낳아 길렀다. 하루는 노랭이가 계단 밑의 새끼들을 한 마리씩 물고 수돗가 뒤 텃밭으로 옮기는 것이 아닌가. 놀랄까봐 거실에서 가만히 그 과정을 지켜보았다. 목덜미를 물고 한 마리, 두 마리, 세 마리, 네 마리까지 옮겼다. 노랭이의 그 모성에 감동을 받았다. 그건 분명 어미의 본능이었다. 네 마리를 옮겼는데도 계단 밑에서 또 새끼의 우는 소리가 들렸다. 노랭이는 우는 그 새끼는 옮기지 않았다.

텃밭에 가보고서야 노랭이가 마지막 한 마리를 물고 오지 않은 이유를 알았다. 텃밭 가에 깨진 독의 일부를 덮어놓은 게 있는데 그 안에 새끼들을 넣은 것이다. 그런데 그 공간이 너무 비좁아 나머지 한 마리를 데려오지 못한 것이었다. 그 남은 한 마리를 어찌하면 좋을까 고민하다 집안에 들여서라도 살려야 한다는 생각에서 가보았다. 사람 발자국 소리가 다가가니 고양이 새끼의 울음이 멈추었다. 계단 밑을 들여다보니 없었다. 어디 숨은 모양이었다. “하, 이놈을 어쩌나?”라며, 그 주위를 계속 살피다 그 놈의 흔적을 찾을 수 없어 일단 그만두었다.

노랭이 새끼들이 녹차작업장 앞에서 놀고 있다.
노랭이 새끼들이 녹차작업장 문지방에서 놀고 있다.

그런데 멀거이 새끼를 보니 그때 그 노랭이의 다섯 번째 새끼일 거라는 확신이 들었다. 흰 반점이 노랭이 새끼들보다 좀 많지만 크기나 생김새가 그놈들과 비슷했다. 다행이다 싶었다. 멀거이는 내 집이 아닌 다른 곳에서 그놈을 키우고 있다가 이렇게 처음으로 친정에 데리고 온 것이다. 순간 멀거이에게 너무나 고맙다는 생각이 들었다. 건강하게 자란 새끼를 마치 나에게 보여주려고 탁자 위에서 함께 노는 것 같았다. 멀거이는 점순이와 매일 내 집에 와서 밥을 먹는다. 그들이 새끼 때문에 내 집에서 나가기 전에는 여기서 살았던 것이다. 멀거이와 점순이는 생긴 것도 착하게 생겼지만 너무 순하다. 아침이면 현관 앞에 와서 밥을 달라고 “냐옹” “냐옹”하면서 운다. 밥을 그릇에 담아줄 때 내 손이 그들의 몸이나 입에 닿기도 하는데 전혀 놀라거나 싫어하는 기색이 없다.

노랭이는 내 집 부엌과 연결된 ‘녹차작업장’에서 새끼들과 산다. 새끼가 네 마리에서 줄어 세 마리뿐이다. 한 놈이 어미에게서 젖을 제대로 못 얻어먹어서인지 가장 작고 힘이 없더니 어느 날부터 안타깝게도 보이지 않는 것이다. 물론 녹차작업장에는 없다. 다른 짐승에게 물려간 것인지 아니면 비실대다 굶어죽었는지 알 수가 없다. 한 배에서 같이 났어도 크기와 영양 상태가 달랐다. 가장 큰 놈이 멀거이가 키우는 새끼와 닮았는지 흰 반점이 많다.

지난 해 이 집에 이사 오니 녹차작업장에 노랭이와 예쁜이가 제 어미와 셋이서 함께 살고 있었다. 노랭이와 예쁜이에게 녹차작업장은 친정이었다. 하지만 지난봄부터 녹차를 만들 때는 고양이들이 들어오지 못하도록 틈을 모두 막았다. 그러다 녹차 작업을 다 마치자 기다렸다는 듯이 노랭이가 새끼들을 데리고 작업장에 들어와 보금자리를 꾸민 것이다.

코가 붉은 예쁜이는 새끼 때부터 겁이 많아 노랭이에게 늘 치였다. 그러다보니 새끼 세 마리를 키우고 있는데 작업장에 들어오지 못하고 내가 자는 큰 방의 창문 바깥 화목보일러가 있는 공간 뒤에서 산다. 노랭이 새끼들의 애비는 한 번도 나타나지 않아 어떤 녀석인지 알 수가 없지만, 예쁜이 새끼 애비는 내 집에서 살던 ‘점박이’로 제 새끼들 주변을 거의 떠나지 않고 빙빙 돌며 여전히 여기서 매일 밥을 먹는다. 점박이도 너무 착하고 순하다. 그러다보니 지 애비를 닮아 몸에 줄무늬가 있는 예쁜이 새끼들도 착하게 생겼고, 겁이 많다. 반면 노랭이 새끼들은 제 어미를 닮아서인지 가끔 현관 앞이나 수돗가에까지 와서 밥을 먹는다.

노랭이와 예쁜이를 처음 봤을 때 예쁜이는 생긴 게 예쁘게 생긴 데다 겁이 너무 많아 암놈인줄 알았으나, 노랭이는 생긴 것도 수놈처럼 골격이 큰 데다 겁이 없어 지금의 제 새끼 크기 때부터 수돗가에 와 밥을 먹어 용감하고 씩씩한 수놈으로 알았다. 어느 정도이냐 하면 겨울에는 내 집 수돗가에서 밥을 먹는 고양이들이 12, 13마리였다. 그런데 노랭이가 다 큰 고양이들이 밥을 먹고 있으면 다가가서는 앞발로 “비켜”라는 듯 툭 치고는 아무도 그 밥그릇에 오지 못하게 하곤 밥을 먹었다. 그랬으니 당연히 수놈으로 생각했는데, 어느 날부터 배가 불러오기 시작한 것이었다.

예쁜이 새끼 한 마리가 자기들이 사는 공간에서 나를 쳐다보고 있다.
예쁜이 새끼 한 마리가 자기들이 사는 공간에서 나를 쳐다보고 있다.

내가 외출했다가 돌아오면 노랭이 새끼들이 온 마당이 자기들 놀이터인양 장난치고 놀다가 놀라 얼른 녹차작업장으로 뛰어 들어간다. 제 어미를 닮아서인지 예쁜이 새끼들과는 달리 맹랑하고 용감하다. 도망가는 그 뒷모습이 또 얼마나 귀여운지 모른다. 작업장에 사는 노랭이 가족들이 내년 봄 녹차 작업을 시작할 때쯤이면 다 자라 독립을 할 것이다. 그러면 작업장을 봉쇄해도 어디 가서 굶거나 얼어 죽지는 않을 게다. 나는 내 집에 동거하는 고양이들 뿐 아니라 지나가는 고양이들도 들어와서 주린 배를 채우고 가라고 늘 여분의 밥을 그릇에 담아놓는다.

사람은 아니지만 지금 내 집에 사는 길고양이들은 정서적으로 ‘가족’인 것이다. 지난 해 봄부터 1년 반을 동거해온 고양이들에 대한 이야기와 추억은 많다. 이 글을 쓰는 지금도 예쁜이와 그 새끼들, 그리고 점박이가 창밖 화목 보일러 위를 뛰어다니며 노느라 “털썩”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내일 아침이면 내가 눈을 뜨기도 전에 현관 앞에서 멀거이와 점순이가 밥을 달라고 “냐옹” “냐옹” 소리를 내며 나를 깨울 것이다.

<시인‧인저리타임 편집위원>

저작권자 ⓒ 인저리타임,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