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해훈 시인의 지리산 산책 (11)단풍으로 곱게 물드는 노고단 산행

조해훈 승인 2018.10.10 21:49 | 최종 수정 2018.10.16 01:38 의견 0
노고단으로 올라가는 길가에 단풍이 벌써 형형색색으로 물들어 있다.
노고단으로 올라가는 길가에 단풍이 벌써 형형색색으로 물들어 있다.

산행은 느지막이 시작되었다. 오후 1시에 산행 시작점인 안내소를 통과했다. 시작 전에 커피를 한 잔 마셨다. 성삼재 주차장이 바로 옆에 있어 요즘 사람들은 노고단 정상까지의 산길을 거의 산책 코스로 이용하고 있다.

통상 보통 사람 걸음걸이로 노고단 정상까지 가는 데 1시간30분 걸린다. 정상은 높이 1,507m로, 천왕봉(1,915m)‧반야봉(1,734m)과 함께 지리산 3대 봉우리의 하나이다. 백두대간에 속하며, 신라시대에 화랑국선(花郞國仙)의 연무도장이 되었고, 제단을 만들어 산신제를 지냈던 곳이다.

초입의 평탄한 길을 걸어가니 생각보다 단풍이 많이 들었다. 설악산은 지금 단풍이 절정이라고 하지만 피아골 단풍은 좀 더 있어야 된다. 떨어진 낙엽과 형형색색으로 변한 나뭇잎을 보니 갑자기 노래 「고엽」(Les Feuilles Mortes)이 생각났다. 필자는 이브 몽탕이 부르는 이 노래를 많이 들었다. 이 노래는 샹송의 대표라고 할 만한 불후의 명작으로, 시인 자크 프레베르가 작사하고 조제프 코스마가 작곡했다고 한다. 원래는 1945년 6월 15일 사라 베르나르 극장에서 초연되었던 롤랭 프티의 발레 「랑데 부」를 위해 만들어진 곡이라고 한다.

얼마 전 병원에 입원했다가 퇴원을 했으나 아직 몸이 완전 회복되지 않았다. 노고단에 오르면 컨디션이 다시 돌아올 것 같아 노고단 코스를 걷기로 한 것이다.

산행 온 사람들의 모습은 다양했다. 큰 목소리로 활달하게 떠들며 걷는 중년 여성들이 눈에 많이 띄었다. 꼬마의 손을 잡고 걷는 사람, 아예 아이를 뒤에 짐처럼 지고 걷는 젊은 아빠도 보였다. 필자가 지금처럼 단풍이 들 무렵 30대 초반에 큰 아들 조현일을 업기도 하고 목에 얹어 노고단을 거쳐 피아골로 내려간 기억이 떠올랐다. 현일이는 태어나기 전 엄마 배속에 있을 때부터 불일폭포 등 지리산 여러 곳에 데리고 다녔다.

노고단 고개에서 예약자 통과대를 거쳐 정상까지 연결되는 나무데크에서 선 필자.

곧이어 둘러가는 평탄한 길과 질러가는 나무테크 길이 나왔다. 운동 삼아 천천히 질러가는 길을 택했다. 둘러가는 길에 다시 올랐다. 좀 걸으니 또 평탄한 길과 질러가는 길이 나왔다. 역시 질러가는 길을 택했다. 올라가니 노고단대피소가 나왔다.

‘건물을 잘 짓기보다는 더 넓게 지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의자에 앉아 싸 갖고 간 커피와 떡 등을 먹었다. 옆 ’밥 짓고 나누어 먹는 곳‘의 공간에서 라면을 끓이는 냄새가 구수하고 맛있게 배어나왔다.

쉬면서 사람들을 구경하다 노고단 고개를 향해 돌길을 걸어 올라갔다. 가파른 데다 돌을 깔아놓아 걷기가 쉽지 않았다. 몇 번이나 쉬다가 올라갔다. 드디어 고갯마루에 도착했다. 저 앞에 반야봉과 그 너머 천왕봉이 손에 잡힐 듯 시야에 들어왔다.

마음 같아서는 반야봉까지 갔다가, 반야봉까지 가지 않더라도 피아골 삼거리를 거쳐 피아골로 내려갔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조만간 몸이 회복되면 그렇게 하리라 마음먹었다. 그런데 예기치 않은 문제가 생겼다. 노고단 정상에 가려면 예약을 해야 한다고 했다.

검색대처럼 통과대를 설치해놓고 예약을 한 사람만 명찰을 목에 걸고 들어가도록 했다. 예약을 하지 못한 다른 사람들도 들어가지 못해 구시렁대고 있었다. 국립공원관리공단 여직원 한 분이 “이 자리에서 핸드폰으로 예약을 해도 된다”며, 하는 방법을 가르쳐주고 있었다. 한참동안 어찌어찌 해 예약을 하고 명찰을 받아 목에 걸고 들어갔다.

이제부터 정상까지는 나무데크이다. 정상까지 오르막으로 되어 있는 이 데크는 거의 예술적이다. 사진을 찍으면 아주 멋있게 나올 것 같다. 데크 좌우는 큰 나무가 없이 키 작은 나무와 풀들이 있어 사방이 확 트였다.

노고단 정상 표지석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는 필자.
노고단 정상 표지석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는 필자.

풍경과 나무네크의 미적 감각을 감상이라도 하듯 한 걸음씩 천천히 쉬엄쉬엄 올라갔다. 정상 가까이 가니 올라가는 사람은 오른쪽 길로, 내려오는 사람은 왼쪽 길로 가라는 표지판이 있다. 오른쪽 길로 해서 올라서니 저 아래로 펼쳐진 풍광은 사진을 보듯 아름다웠다. 섬진강이 마치 몸을 뒤척이는 것처럼 번뜩였다.

왼쪽으로 방향을 트니 ‘老姑壇’(노고단)이라는 글자가 새겨진 큰 표지석이 서 있다. 바로 정상인 것이다. 표지석 옆에는 제단이 있다. 지금도 제사를 올리는지는 모르겠지만, 돌로 된 제단이 있다. 제단 뒤를 도니 반야봉이 노고단 고개에서 본 것보다 더 가까워, 두 팔을 벌려 안으면 바로 안을 수 있을 것 같다. 반야봉이 말 그대로 둥그스름하게 생겼다. 천왕봉도 더 가까이 보였다.

11월 초에 친구와 노고단에서 천왕봉까지 종주 할 계획을 갖고 있지만, 얼마 있다 혼자서 종주를 먼저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1박이 2일이 무리면 2박3일쯤 잡아도 될 것이다. 1박2일이면 세석대피소에서 자고, 2박3일이면 연하천대피소와 세석대피소에서 각각 1박씩 하면 어떨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면 연하천대피소와 장터목대피소에서 자고 청학동으로 하산해도 될 것이다. 예전에는 화엄사를 거쳐 걸어 올라오는 코스를 택해 2박3일 코스로 곧잘 종주를 했다.

노고단 정상에서 바라버먄 품에 안길 듯 앞에 반야봉이 둥그스럼하게 펼쳐져 있고, 그 너머 뽀족하게 천왕봉이 서 있다. 사진=조해훈
노고단 정상에서 바라보면 품에 안길 듯 앞에 반야봉이 둥그스럼하게 펼쳐져 있고, 그 너머 뾰족하게 천왕봉이 서 있다. 사진=조해훈

하산은 둘러가는 길만을 택해 평탄한 길로 천천히 걸어 내려왔다. 노고단대피소에서 조금 내려오니 오른 편 산 쪽에 오래된 건물의 잔해가 남았다. 입간판이 있어 읽어보니 1920년대 외국인 선교사들이 풍토병 예방 차원에서 수십 동을 지어 생활하다 여순사건과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대부분 사라지고 현재는 흔적만 남아있다고 적혀있다. 왕시루봉에도 이런 건물의 흔적이 있던 것으로 기억한다.

하산하여 입구에서 커피를 한 잔 마시면서 노고단 산행을 마무리 했다. 몸이 부실하여 피곤기가 많이 몰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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