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CBS 과학 인사이드】상대론 오디세이 (1) 혁명적 천재 아인슈타인

조송현 기자 승인 2022.12.09 11:14 | 최종 수정 2023.01.11 09:31 의견 0

자.. 계속해서 
과학인사이드 이어갑니다.
과학교양서 우주관 오디세이의 
저자세요.  
웹진 인저리타임
조송현 대표와 함께 합니다. 

대표님, 어서 오세요~ 

안녕하십니까.


00. 지난주까지 
장장 7개월에 걸친
양자론 오디세이.. 
긴 여행을 마쳤고..
오늘부터는 또 새로운 
여정을 떠나봅니다. 
그런데 이 길에 
함께 할 인물이 있다구요?
'혁명적 천재'라고까지 
극찬을 해 주셨는데..
바로 
알버트 아인슈타인입니다~

-> 네. 양자론 오디세이에 
이어지는 여정
상대론 오디세이로
방향을 잡아봤는데요..
여기서 빼놓을 수 없는 
이름이 바로 아인슈타인입니다. 
제가 이 분에게
‘혁명적 천재’라는 수식어를 붙인 이유는 
그 업적이 그야말로 혁명적이기 때문입니다. 
현대물리학에서 상대론은 
양자론과 함께 양대 기둥 중 하나입니다. 
근데 양자론은 수많은 천재 물리학자들의 합작품인데 반해 
상대론은 아인슈타인의 단독 작품입니다. 
물리학의 두 기둥 중 하나를 단 한 사람, 
아인슈타인이 세웠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그를 혁명적 천재라고 부를 만하겠죠.


Q2. 그야말로 천재라는 표현에 
딱 부합하는 인물입니다. 
20세기.. 100년 동안
인류에게 가장 큰 영향력을
끼친 인물로 
선정이 되기도 했는데..
이 정도로 대단한 인물인 줄은 
또 몰랐어요. 

-> 예, 그렇습니다. 
미국의 《타임》이 1999년 밀레니엄(천년)을 분석하면서 
20세기 인물로 아인슈타인을 뽑았습니다. 
많은 역사가들은 지난 천 년 동안 
큰 영향력을 발휘한 100인의 인물 속에 
아인슈타인을 포함시킵니다. 
20세기의 인물이자 밀레니엄 인물로 평가받는 것이죠. 
그 이유는 그의 과학적 성취가 두드러질 뿐 아니라 
그것이 인간의 우주관과 세계관을 
크게 변혁시켰기 때문입니다. 


Q3. 단순히 물리학 분야에 
국한되지 않고.. 
인류의 인식체계에 
커다란 영향을 미쳤다.. 
이런 말씀이네요. 
자.. 이제부터 그 
커다른 전환의 흐름을 
차근차근 따라가볼텐데..
역시 아인슈타인에서부터
출발할 수밖에 없어요. 
아인슈타인의 생애부터 
시작을 좀 해 볼까요?
어릴 때는 문제아였다는
얘기가 있던데..
사실인가요? 
수학도 못했다고 하구요. 


-> ‘못한다’는 기준이 명확하지 않은데, 
모범학생이 아니었던 건 확실해요. 
김나지움에서 퇴학 처분하려고 해 
자퇴했을 정도이니까요. 
9년 과정의 김나지움은 우리 같으면 중학교+고등학교인데요, 
김나지움에서 퇴학시키려 한 이유가 뭐였냐 하면 
‘교사에 대한 존경심을 해친다’였어요. 
아인슈타인이 교사를 신뢰하지 않고 비판하고 
동료 학생들이 거기에 동조하니까 교사와, 
교장이 가만 둬서는 안 되겠다 싶었던 거죠. 
아인슈타인은 아주 명석하면서도 반항적이고 
자기멋대인 학생이었던가 봅니다. 
나중에 김나지움 졸업장 없이도 응시 가능한 
취리히공과대학에 응시했다 사실상 떨어졌는데, 
수학과 물리학 성적 워낙 우수해 대학 측이 ‘
아르가우 주립학교 수료(1년)’를 조건으로 
특별 합격을 시켜줬어요. 
그러니 아인슈타인이 
수학을 잘 못했다는 말은 사실과 다른 거죠. 

Q4. 전형적인 위인전식 네러티브로군요. 
사람들은 성장드라마를 좋아하니까요. 
하지만 아인슈타인은
출발선에서부터 비범한 인물이었어요. 
이미 10대에 
상대성 이론의 싹을 띄웠다구요? 

-> 네. 아인슈타인이 상대성이론 창안의 재능을 보인 건..
김나지움을 자퇴하고 집에서 재밌게 놀 때입니다. 
물론 학교 공부를 안 했을 뿐이지 책은 엄청 읽었죠. 
그때 뮌헨대학 의대생 막스 탈무트가 가정교사였는데, 
그는 아인슈타인의 천재성을 알아보고 
기하학부터 물리학, 문학, 심지어 
칸트의 순수이성비판 같은 철학책에 이르기까지 
많은 책을 소개하고 토론했다고 해요. 
그중 아론 베른슈타인의 『교양 자연과학(Popular Books on Natural Science)』이란 
책이 있었는데, 
아인슈타인은 후에 그 책에 대해 
“숨이 멎을 듯 집중해서 읽은 책”이라고 술회했어요. 
이 책에는 신비한 전기에 관한 이야기가 있었는데, 
이는 아인슈타인에게 운명적인 영향을 주었어요. 
지은이 베른슈타인은 독자들에게 
‘전깃줄 속에서 엄청난 속도로 
전기신호와 함께 달리는 광경을 상상해보라’고 했던 것인데요. 
이 문장에 영감을 얻은 아인슈타인은 
“빛줄기와 함께 달리면 빛은 어떻게 보일까?”하고 의문을 가졌죠. 
그가 16세 때 품은 이 의문은 
10년 후 세상을 깜짝 놀라게 한 
특수상대성이론 창안으로 직결 됩니다.   

Q5. 10년 뒤라고 해도.. 
겨우 스물여섯인데요. 
청년 아인슈타인은 
또 어떤 모습이었을까요?
이 때도 
반항기 가득한 
문제아였을까요? 

-> 네. 대학생이 된 아인슈타인..
이 때도 교수들을 무시하는 건 여전했지요. 
근데, 아인슈타인 입장에서 보면 
교수들이 능력이 없었기 때문이죠. 
당시 맥스웰의 전자기이론이 새롭게 부상하는 등 
물리학에 혁명의 바람이 불고 있는데 
교수들은 여전히 200년도 더 지난 
뉴턴의 고전물리학에 안주하고 있었던 거죠. 
자연히 아인슈타인은 교수와 대학에 의존하기보다 
혼자 공부하느라 수업을 자주 빼먹었는데, 
교수들의 눈에는 게으름을 피우고 
교수를 우습게 아는 문제 학생으로 비쳤겠지요. 
그래서 졸업 때는 조교도 되지 못하고 
교수들이 아무도 추천서를 써주지 않아 취직을 못해 
한동안 실업자 신세를 면치 못했죠. 


Q6. 세상과 불화하는 반항아..
하지만 그 속에서는 
무시무시한 천재성을 감추고 있고.
마치 무슨 만화주인공 같은데..
여기서 또 멜로가 빠질 수 없죠. 
같은 과 여학생과 
사랑에 빠진다구요? 

-> 그렇습니다. 물리학과 급우 밀레바 마리치(Mileva Marich)인데요, 1
세르비아인이었죠. 
아인슈타인이 열렬하게 사랑한 여성이죠. 
두 사람 사이에 오간 연애편지가 430통이 넘는다고 해요. 
하지만 밀레바는 비운의 여인으로 기억되네요. 
졸업시험에 두 번이나 낙방해 물리학을 중도에 포기한 데다 
아인슈타인과 결혼했으나 
나중에 버림받았거든요. 
물론 아인슈타인의 ‘나쁜 남자’ 기질 때문이었지만요.


Q7. 아인슈타인하면 
혀를 쑥 내밀고 장난치는 천진한 이미지를 
많이들 떠올리시는데
여자를 울리는
'나쁜 남자'였다니
또 뜻밖입니다. 
나중에 밀레바를 버리고 
사촌 누나와 재혼했다는
얘기도 언뜻 들은 것 같은데..
나중에 기회닿으면
뒷얘기도 짚어보면 좋겠고..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보죠. 
실업자 아인슈타인..
이후의 행보는 어떻게 되나요? 

-> 아인슈타인은 조교를 거쳐 박사학위를 받고 
교수가 되는 길을 생각하고 있었는데, 
모교 교수들한테 밉상으로 찍히는 바람에 
대학에는 발을 붙일 수가 없었고요. 
대학을 21세인 1900년 졸업하고 2년 뒤 
특허국의 말단 기술심사원으로 취직합니다. 
그것도 친구 부친의 도움으로요. 
그 친구의 이름이 마르켈 그로스만인데, 
그가 경제적으로 가장 어려울 때 직업을 구해준 은인이자 
학문적 동반자이면서 평생의 친구였죠.

Q8. 그럼 아인슈타인이 상대성이론을 
발표할 때도 특허국 직원신분이었던 건가요? 
연구소나 대학에서 연구에만 전념한 것도 아닌데, 
취업해서 딴 일을 하면서..
어떻게 이런 위대한 업적을 이룰 수 있었을까요?

-> 그렇죠. 놀라운 일입니다. 
그래서 물리학계에서는 1905년을 ‘기적의 해’로 부르는데, 
이 한 해에 아인슈타인이 엄청난 논문 4편을 발표했죠. 
전문가들은 이들 4편 중 평생 한 편만 써도 노벨상 받고 
물리학의 거장이란 소리를 듣는다고들 합니다. 
근데 아인슈타인은 대학을 졸업한지 5년 만에, 
그것도 취업난에 시달리며, 
혹은 힘든 직장에서 다른 일을 하면서 해냈으니 
그런 의문을 가질 만하네요. 

Q9. 과연 비결이 뭘까요?
그저 범접할 수 없는 
'타고난 천재성'의 발현이었을까요?
특허청에 근무하던 3년 사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요?


-> 아인슈타인 자신이 한 말이 있어요. 
그곳은 ‘세속적 수도원’이었다고. 
기도하기 좋은 수도원은 아니지만 
연구하기 좋은 세속적 수도원이었다는 거죠. 
기술심사원 업무는 숨겨진 세 가지 장점이 있었다고 해요.
첫째, 어떤 발명의 배경에 
숨은 물리학적 근본 원리들을 찾도록 해주었고, 
둘째 많은 특허들이 발전기와 모터 등 
전기를 이용한 기계장치였는데, 
전자기학에 대한 이해를 한층 높여주었고, 
셋째 이 직장 덕분에 그는 쓸데없는 일들에서 벗어나 
빛과 운동에 대한 오랜 의문을 숙고할 수 있었다는 게 그것입니다. 
그는 자주 업무를 재빨리 해치우고 
남은 시간 동안 어렸을 때부터 끈질기게 
물고 늘어져온 공상에 젖어들곤 했다고 해요. 
그 공상이란 바로 ‘빛줄기와 함께 달리면 빛은 어떻게 보일까?’ 였죠. 
아인슈타인 얘기는 이것으로 줄이고 
다음 시간부터 그가 기적의 해인 1905년 내놓은 시간과 공간에 대한 
혁명적인 발상부터 상대론 오디세이를 본격 시작하겠습니다.


00. 네. 역시 '그는 천재였다..' 
이렇게 귀결되는군요.
씁쓸하기도 하지만
이런 독보적인 천재성이 
오늘날 아인슈타인을
물리학계의 슈퍼스타로 
시대의 아이콘으로
밀어올린 동력이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자..  
오늘은 상대론 비긴스라 하고 해야 할까요?
상대론의 시작이자 끝이라고 할 수 있는
아인슈타인의 생애 초반부까지 
함께 짚어봤습니다. 

다음주는 예고해주신대로 
기적의 해.
1905년으로 함께 가 보죠.

오늘 말씀 감사합니다.

예,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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