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자론적 우주관 ... ➀비결정론

양자론적 우주관 ... ➀비결정론

조송현 승인 2017.11.01 00:00 | 최종 수정 2018.05.24 00:00 의견 0

 

양자론의 확률론을 주창한 막스 보른(가운데), 이에 강력하게 반대한 알버트 아인슈타인(왼쪽), 양자론의 핵심 본질인 불확정성 원리를 창안한 베르너 하이젠베르크. 출처: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양자론(양자역학)은 상대성이론과 함께 현대물리학의 양대 기둥입니다. 현대문명의 어떤 분야도 양자론의 수혜를 받지 않은 것이 없을 정도로 실험적으로 잘 입증되고 실용성도 뛰어난 이론입니다.

그러나 이 같은 놀라운 성과에도 불구하고 양자론은 인류 지성사에서 볼 때 여전히 수수께끼로 남아 있습니다. 그 이유는 양자역학이 내포하고 있는 철학이 과학자는 물론 일반인들이 수용하기 힘들기 때문입니다. 양자역학에 대한 철학적 해석이 아직도 뜨거운 논쟁이 되고 있는 것이 이 같은 상황을 설명해줍니다.

과학에 관심 있는 독자들은 양자역학이 뉴턴역학이나 상대론과는 다른 사상적 바탕 위에 세워져 있다는 사실을 이미 짐작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보어-아인슈타인 논쟁은 바로 이들 두 이론이 내포한 철학적 차이로 인해 발발한 학문적 사건이라는 것을 이해했으리라고 봅니다.

비결정론 - 신은 주사위 놀이를 한다?

“신은 주사위놀이를 하지 않는다.” 아인슈타인이 양자론을 비판한 이 말은 역설적으로 양자론의 철학적 의미(확률론 혹은 비결정론)를 가장 잘 알려주는 문구입니다. 이에 대해 보어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신이 주사위를 던졌는지 던지지 않았는지는 문제가 아니다. 다만 신이 주사위를 던졌다든가 혹은 던지지 않았다고 할 때 그것이 의미하는 바를 우리가 알 수 있는지가 문제이다.”

뉴턴역학과 상대론의 결정론

아인슈타인과 보어의 선문답 같은 논쟁을 이해하기에 앞서 뉴턴과 아인슈타인의 결정론에 대해 다시 한 번 살펴보겠습니다. 뉴턴역학의 가장 큰 철학적 의미는 뉴턴의 운동법칙이 내포한 인과론적 결정론이라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입니다.

아인슈타인은 뉴턴이 자연의 인과 관계를 수식화한 최초의 과학자라고 평가했습니다. 결정론이란 세상의 모든 일은 일정한 인과 관계에 따른 법칙에 의해 결정된다는 것입니다. 여기에 따르면 우주 역시 일정한 자연 법칙에 따라 운행됩니다.

이를 최초로 수학적으로 명확하게 구현한 사람이 뉴턴입니다. 그가 정립한 고전역학에 따르면, 임의의 시간에 어떤 물체의 위치와 운동량(속도)을 알면 이로부터 그 물체의 모든 과거와 미래의 위치와 속도를 알아낼 수 있습니다. 즉, 어떤 물체의 과거와 미래에 대한 모든 정보가 현재의 순간에 각인되어 있습니다.

뉴턴은 이 같은 인과율이라는 엄청난 비밀을 미분방정식이라는 수식으로 정식화했습니다.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도 시간과 공간의 개념을 미묘하게 바꾸긴 했지만 결정론적인 측면에서는 고전역학의 이념을 지지합니다.

고전역학에서 결정론의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물체는 정지해 있든, 움직이든 계속 그 상태를 유지하려고 한다.’라는 것은 뉴턴의 운동법칙 중 관성의 법칙입니다. 특정 시간에 이 물체의 위치와 속도를 알았다면 이 법칙에 의해 이 물체의 향후 위치를 알아내는 것은 어렵지 않습니다.

운동이 변하는 물체에 대해서도 주어진 힘을 알면 ‘힘과 가속도 법칙’(운동 제2법칙)을 활용해 속도의 변화를 계산할 수 있고, 이로부터 이 물체의 미래 특정 시각의 위치를 정확하게 알아낼 수 있습니다. 그리고 물체 하나하나의 상태를 정확하게 알면 이들의 총합인 우주의 일반 운행도 결정론적으로 알 수 있다는 것이 뉴턴과 아인슈타인의 물리학적 이념이자 철학입니다.

고전역학이라고 해서 확률론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볼츠만은 열역학 분야를 연구하면서 뉴턴역학의 한계를 느끼고 확률의 개념과 통계적 방식을 도입하였습니다. 열역학 제2법칙(무질서도는 시간의 흐름에 따라 증가한다는 엔트로피 법칙)은 운동의 필연성을 운동의 확률로 대체한 것입니다.

그러나 여기서 중요한 것은 열역학의 확률은 근본적인 우연성과 비결정론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즉, 열역학적 대상의 운동이 너무 복잡하기 때문에 기술적인 방법의 하나로 확률과 통계를 도입한 것일 뿐입니다. 이들 개개의 대상은 원리적으로 여전히 결정론적인 성격을 갖고 있는데 인간의 인식능력의 한계로 말미암아 확률을 사용하는 것일 따름입니다.

양자론의 비결정론과 확률론적 결정론

양자론은 확률을 자연을 이해하는 방법으로서가 아니라 자연 그 자체의 성격임을 주장합니다. 양자역학적 대상을 기술하는 파동함수를 보겠습니다. 우리가 입자의 위치를 알고자 할 때 이 파동함수는 입자가 어느 곳에서 발견될 확률을 알려줄 뿐입니다. 우리가 직접 관측을 하면 특정 위치에서 발견됩니다.

그렇다면 이 파동함수가 알려주는 입자의 다음 위치는 어디일까요? 우리는 알 수 없습니다. 다만 파동함수가 나타내는 것은 입자가 다음 위치에서 발견될 확률입니다. 파동함수는 측정 전후 상태가 매끄럽게 연결되어 있지 않고 파동의 붕괴를 거치는 불연속적인 성격을 갖고 있습니다. 미래의 상태를 확률적으로밖에 알지 못한다는 것은 결정론의 본질과 어긋납니다.

양자론에서는 미래 예측은 고사하고 불확정성 원리에 의해 현재 상태마저 정확하게 알 수 없습니다. 고전역학에서는 입자의 현재 위치와 운동량을 정확히 알면 미래의 상태를 정확히 결정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양자역학의 대상들은 불확정성 원리에 의해 위치를 정확히 알려고 하면 속도의 값을 정확히 알 수 없습니다. 반대로 속도를 정확하게 측정하면 파동의 어디에 입자가 있는지를 모르게 됩니다. 이처럼 양자역학에서는 현재 상태를 정확하게 알 수 없는 만큼 미래의 상태를 정확하게 예측할 수 없는 것은 어쩌면 당연합니다.

이 같은 불확정성의 원인을 추적해보면 최소한 수학적(물리적)으로는 플랑크 상수(h)라고 하는 작용양자의 존재에 귀착됩니다. 이 작용양자는 만유인력 상수처럼 자연에 내재되어 있다고 생각되는 일종의 자연상수입니다. 이 상수들의 존재가 존재론적이든 아니면 공리적이든지 관계없이, 이들 상수를 통해서만 자연 현상의 수학적 설명이 가능합니다.

따라서 양자 세계의 불확정성은 인간의 제약된 인식 능력에도 그 원인이 있을 수 있겠지만, 작용양자에 의한 자연 자체의 한 모습인 것입니다. 다시 강조하지만 이것은 인간의 인식의 한계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자연의 진정한 모습’입니다.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수소원자에서 전자가 에너지를 받아 들뜬 상태에 있다가 어느 순간 빛을 방출하며 안정 상태로 전이합니다. 이 과정에서 언제, 어떻게 전자가 전이하는가 하는 문제는 일정한 인과율 없이 완전히 우연에 의해 결정됩니다.

또 ‘슈뢰딩거의 고양이’에서처럼 ‘방사성 물질이 언제 어떻게 붕괴할 것인가.’ 하는 문제도 우연과 확률의 문제입니다. 즉, 우리는 1시간 안에 붕괴할 확률이 50%라는 것을 알 뿐이지 언제 어떻게 붕괴할 것인지에 대해 전혀 모릅니다. 다만, 이러한 확률이 정확하게 50%가 되더라는 것은 실험과 관측에 의해 틀림없는 사실로 드러났습니다. 자연, 특히 양자역학의 대상 계에는 우연과 확률이 본질로 자리잡고 있습니다.

인과율이란 어떤 사건의 원인이 있은 다음 결과가 발생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원인과 결과 사이에 최소한 빛의 속도에 해당하는 시간 경과가 전제되어야 합니다. 이를 아인슈타인의 국소적 인과율이라고 합니다. 이를테면 원인과 결과가 즉각적으로 혹은 동시에 발생한다면 이는 국소적 인과율을 위배하는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 양자론은 국소적 인과율을 위배합니다. ‘EPR 논쟁’에서 살펴보았듯이 양자론에서는 아인슈타인의 국소적 인과율이 성립하지 않습니다. 한 입자에 대한 관측 행위가 공간적으로 떨어져 있는 그 입자의 쌍입자에게 즉각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기묘한 현상이 발생합니다. 이처럼 양자론에는 고전역학과 상대론의 인과율을 적용할 수 없는 것이 분명합니다. 따라서 일정한 인과법칙이 성립하지 않는다면 이에 따른 결정론을 기대하는 것은 무리입니다.

그러나 양자론에서는 인과율이 전혀 성립하지 않는다고 말하기도 힙듭니다. 인과율이 전제되지 않은 자연과학은 성립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다만 양자론은 고전역학과 상대성이론과는 다른 새로운 패러다임의 인과율, 즉 확률에 근거한 ‘확률론적 인과율’과 ‘확률론적 결정론’을 내포한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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