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티븐 호킹의 유산 ②블랙홀 정보 역설

스티븐 호킹의 유산 ②블랙홀 정보 역설

조송현 승인 2018.03.17 00:00 | 최종 수정 2018.03.18 00:00 의견 0

우리은하의 위성은하인 대마젤란운( Large Magellanic Cloud, LMC) 앞의 블랙홀 시뮬레이션. 출처: 위키미디어 커먼즈(Alain R)

스티븐 호킹이 광막한 우주로 떠남으로써 그가 물리학계에 남긴 질문에 대한 관심은 더욱 높아졌다. 그가 제기한 질문은 이렇다. “정보가 우주에서 정말로 사라질 수 있을까?”

‘호킹의 역설(Hawking Paradox)’, 혹은 ‘블랙홀 정보 역설(Black Information Paradox)’라고 불리는 이 질문은 아이러니하게도 호킹의 가장 위대한 성취인 ‘호킹 복사(Hawking Radiation)’로 인해 생겨났다.

호킹의 생애 가장 유명한 논문은 44년 전인 1974년 과학학술지 네이처(Nature)에 게재된 ‘블랙홀은 폭발하는가(Black Hole Explosions?)’이다. 이 논문은 이전에 알고 있던 블랙홀에 대한 개념을 근본적으로 뒤흔드는 것이어서 물리학자들을 충격에 빠뜨렸다.

고전역학적 관점에서, 블랙홀은 모든 것을 흡수하지만 아무것도 방출하지 않는다(아무것도 블랙홀을 빠져나갈 수 없다). 그러므로 블랙홀은 완벽하게 차가워야 한다. 블랙홀은 차갑고, 침묵하며, 그래서 단지 존재할 뿐이다, 그것도 영원히.

이처럼 침묵하며 영원히 존재하는 블랙홀이 호킹의 1974년 논문에 의해 살아 있는 존재로 다시 태어났다. 동시에 그대가로 블랙홀은 죽음을 맞을 수도 있게 되었다.

블랙홀의 존재의 이 같은 극적 반전은 바로 블랙홀이 빛을 내뿜는 현상, 즉 ‘호킹 복사(Hawking Radiation)’에 기인한다.

호킹 복사의 개념도. 양자 진공 요동에 의해 입자-반입자가 생성, 소멸할 수 있다. 만약 하나가 블랙홀로 빨려들어가면 그 짝은 블랙홀의 에너지를 훔쳐 달아나는 것과 같은 결과가 나타난다.

호킹은 어떻게 이 같은 기상천외의 발상을 했을까? 그 비밀은 블랙홀 연구에 양자역학을 추가로 적용한 데 있다. 그 이전에는 블랙홀을 아인슈타인의 일반상대성이론으로만 다루었다.

호킹은 양자역학 효과를 고려했을 때 블랙홀은 온도를 가진 열적 물체이며 따라서 복사를 방출해야 한다는 것을 발견했다. 에너지가 방출되면 질량은 감소할 것은 당연하다. 따라서 복사를 방출하는 블랙홀은 수축하고, 수축하면 온도는 올라가고 이에 따라 더 빠르게 복사를 방출한다. 블랙홀은 실제로는 ‘검지 않다’고 이론적으로 보여준 것이다.

블랙홀이 자신의 모든 에너지를 방출하면 어떻게 될까? 호킹은 블랙홀의 증발(black hole evaporation), 곧 블랙홀의 죽음이라고 했다.

이 같은 호킹 복사는 새로운 심각한 문제를 야기했다. 호킹 자신의 계산에 따르면 블랙홀의 복사는 완벽하게 열적인(thermal) 것이다. 열적 평형 상태에 방출된다는 의미다. 따라서 이때 방출되는 복사는 원래 물질의 정보가 완전히 부서지고 헝클어진 상태에서 나오는 것이기 때문에 정보를 보유하지 못한다.

예를 들어 셰익스피어의 ‘햄릿’ 책이 블랙홀 속에 빨려 들어갔다고 치자. 그 책은 산산이 부서져 블랙홀의 일부로 있다가, 호킹 복사 현상에 의해 에너지(열)로 방출될 것이다. 책의 질량(에너지)은 방출되는 복사 에너지와 꼭 같다. 즉 에너지는 보존된다. 하지만 블랙홀이 방출하는 복사(열, 혹은 에너지)에는 특정 물질의 정보가 들어있지 않다. 그렇다면 책의 정보, 즉 책에 담긴 ‘햄릿’의 내용은 어디로 갔을까? 이것이 바로 ‘정보 손실’ 문제이다.

‘정보 손실’은 양자역학의 근본적인 규칙을 위반한다. 양자물리학은 모든 입자의 모든 미래와 과거가 인과적으로 파악될 수 있어야 한다고 요구한다. 다른 말로 현재가 과거에 대한 정보를 항상 보존한다는 단일성(Unitarity) 원리가 지켜져야 한다. 그러나 블랙홀은 ‘햄릿’이 인쇄된 책을 수프처럼 만들어버리고 ‘햄릿’의 내용을 복구 불가능하게 지워버린다.

물리학자들은 이를 '블랙홀 정보 역설(black hole information paradox)' 혹은 ‘호킹 역설(Hawking Paradox)'이라고 부른다. 이를 해결하려는 시도로 ‘양자 중력(quantum gravity)’ 연구가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 양자 중력 이론은 호킹이 타계하기 직전까지 매달렸던 이른바 ‘만물의 이론(The Theory of Everything)’이다.

요약하면 호킹은 ‘호킹 복사’와 동시에 ‘블랙홀 정보 역설’이라는 찬란하면서도 곤혹스런 유산을 남겨주었고, 후배 물리학자들에게 ‘양자 중력’ 혹은 ‘만물의 이론’을 향해 매진하라고 격려하는 것이다.

칼텍(California Institute of Technology)의 물리학자 존 프레스킬(John Preskill)은 1991년 블랙홀 정보 역설을 놓고 호킹, 킵손(Kip Thorn)과 내기를 했다. 호킹, 킵손은 ‘블랙홀에 빠진 정보는 파괴되어 절대 회수될 수 없다’ 즉 ‘정보 역설은 풀리지 않는다’에, 프레스킬은 ‘정보 역설은 풀린다’ 쪽에 걸었다.

물리학자들은 2004년 ‘블랙홀 상보성(black hole complementarity)’이라는 개념으로 블랙홀 정보 역설을 해결했다고 생각했다. 이 제안에 따르면, 블랙홀의 사건의 지평선을 가로지르는 정보는 밖으로 반사하는 동시에 내부로 들어가 절대 빠져 나오지 않는다. 한 사람의 관찰자는 블랙홀 지평선의 내부와 외부에 동시에 존재할 수 없기 때문에 아무도 두 상황을 볼 수 없고 따라서 모순은 발생하지 않는다.

이 제안은 정보 역설을 해소한 것처럼 여겨졌고, 호킹은 패배를 인정했다. 호킹은 2004년 7월 아일랜드 더블린에서 열린 회의에서 프레스킬에게 ‘내기의 대가’로 ‘Total Baseball : The Ultimate Baseball Encyclopedia’를 선물했다.

그러나 킵손은 패배 인정을 거부했다. 결과적으로 킵손은 옳은 판단을 한 셈이다. 2012년 캘리포니아대학(산타 바바라, UCS)의 물리학자 폴친스키 등에 의해 ‘블랙홀 방화벽 역설(Black hole Firewall Paradox)’라는 새로운 역설이 제기되었던 것이다.

또 방화벽 논문이 나오기 몇 년 전 오하이오주립대학(Ohio State University)의 끈이론 물리학자인 사미르 마투르(Samir Mathur)는 새로운 블랙홀 개념인 ‘퍼지볼(black hole fuzzball) 추측’을 제안했다. 퍼지볼은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블랙홀처럼 빈 구덩이가 아니라 끈들(끈이론의 종류)로 가득 차 있으며 사건의 지평선도 없다. 특히 포지볼 또한 복사의 형태로 열을 발산한다.

마투르가 발견한 복사의 스펙트럼은 호킹 복사와 일치한다. 그는 “사건의 지평선이 없는데 어떻게 정보가 지평선을 넘어가 손실될 수 있는가?”라고 반문하며 ‘정보 역설’의 해소를 주장한다. 물론 이것은 물리학계에 널리 수용되지 못했다.

호킹 자신도 정보 역설이 곤혹스럽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이를 해소하려고 무진 애를 썼다. 그가 말년에 쓴 가장 극적인 논문은 고전역학적으로 이해되어온 블랙홀은 전혀 존재하지 않는다고 제안하는 내용이다.

2007년 4월 26일 대서양 상공에서 항공기 실험실에서 무중력 체험을 하는 스티븐 호킹. 출처: 스페이스닷컴, 크레딧: ZERO-G

2014년에 출판된 ‘블랙홀을 위한 정보 보존 및 일기 예보(Information Preservation and Weather Forecasting for Black Holes)’ 논문에서 호킹은 아무것도 도망칠 수 없는 블랙홀의 ‘사건의 지평선(event horizon)’이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다고 제안했다. 대신 정보를 지평선 일시적으로 가둬두는 ‘겉보기 지평선(apparent horizon)’이 있다고 주장했다.

‘겉보기 지평선’에 있던 정보는 결국은 빠져 나오지만 결코 해석될 수 없을 정도로 마구 헝클어지는 형태로 나온다. 호킹은 이것을 일기예보에 비유했다. “우리는 며칠 이상 더 앞의 날씨를 예측할 수 없다.”

결국 '겉보기 지평선'은 정보를 일시적으로 가둬두기는 하지만 결국 풀어주므로 '정보 역설'을 해소하는 데는 역부족이었다.

또 호킹은 불과 2년 전인 2016년 ‘블랙홀 정보 역설’의 해소를 시도하는 새로운 논문을 발표했다. 케임브리지대학의 물리학자인 말콤 페리(Malcolm Perry), 하버드대학교 물리학자 앤드류 스트로밍거(Andrew Strominger)와 공동으로 ‘블랙홀의 부드러운 머리칼(Soft Hair on Black Holes)'을 출판한 것이다.

이 논문에서 호킹은 “블랙홀이 ‘연약한’ 혹은 ‘0의 에너지’ 입자로 둘러싸여 있다”고 주장했다. 연구팀은 이들 입자를 머리카락이라고 불렀다. 그 머리카락은 블랙홀의 경계 영역을 넘어 있는 ‘홀로그램 판(holographic plates)’에 블랙홀에 의해 방출된 입자의 잃어버린 정보를 저장한다. 그러므로 정보는, 고향에서 멀리 떠난 실향민 신세이긴 하지만 결코 사라지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홀로그램 판’ 개념은 물리학자들에게 완전히 수용된 것은 아니다. 하지만 호킹의 이 논문은 정보 역설을 푸는 새로운 유용한 도구를 제공했다는 의미를 갖는다. 학계에서는 호킹의 2014년 논문을 수용하는 데는 주저하는 반면 페리, 스트로밍거와 함께 쓴 2016년 논문은 활발하게 논의하고 있다.

시카고 로욜라대학의 물리학자인 로버트 맥니스(Robert McNees)는 “블랙홀 정보 역설은 양자 중력을 연구하는 물리학자들에게 가장 중요한 질문”이라면서 “아직 답을 찾지 못했기 때문에 이것은 호킹 박사가 남긴 가장 흥미로운 숙제”라고 말했다.

#기사출처: Live Science, Quanta Magazine, Natu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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