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 에세이] 아인슈타인에 관한 어느 노신사와의 대화

조송현 승인 2018.09.23 21:29 | 최종 수정 2020.06.17 12:47 의견 0
1921년 4월 3일 처음 미국을 방문한 아인슈타인과 부인 엘자. 출처: Harris & Ewing Collection, Library of Congress
1921년 4월 3일 처음 미국을 방문한 아인슈타인과 부인 엘자. 출처: Harris & Ewing Collection, Library of Congress

국제신문 [과학 에세이] 아인슈타인에 관한 어느 노신사와의 대화 / 2018-09-17

얼마 전 어느 노신사로부터 이메일을 받았다. 그는 미국에 사는 70대 한국인이고, 소일 삼아 물리책을 읽으며 짧은 글을 쓰기도 한다고 했다. 구글 검색을 하다 ‘인저리타임’의 ‘아인슈타인의 방정식은 뭘 말하는 걸까?’라는 제목의 기사를 읽고 이메일을 쓴다고 했다. 인저리타임은 필자가 운영하는 웹 사이트다. 거기에는 필자의 졸저 ‘우주관 오디세이’를 130여 편의 독립 기사로 나뉘어 올려놓았다. 그 노신사는 ‘아인슈타인’이나 ‘아인슈타인의 중력장 방정식’ 등을 검색하다 나의 기사를 본 모양이다.

웹 사이트는 본질상 거리 개념과 무관한 것인 줄 알면서도 미국에서 나의 사이트 기사를 봤다니 기쁨이 솟았다. 게다가 주인공이 70대 노신사라니, ‘본론이 뭘까’ 하는 호기심이 편지를 읽는 도중에 일었다.

그는 “아인슈타인의 10년 고생(중력장 방정식 만드느라)에 대해 조 선생이 체계적으로 정리해줘서 단편적이고 산만했던 쪼가리 정보가 정리되었다”고 고마움을 표시했다. 그리곤 “글의 말미를 장식한 ‘일반상대성이론과 아인슈타인 방정식에 관한 최고의 명언’은 한 번도 읽은 적이 없다”면서 “이 부분을 인용해도 될는지요? 그리고 그 대목의 출처를 알려주실 수 있는지요?”하고 정중하게 물었다. 

순간 감동과 부끄러움이 함께 밀려왔다. 감동을 한 것은 노신사의 성실한 마음가짐이 느껴졌기 때문일 것이다. 글을 쓰면서 특정 문구를 인용할 때 저자에게 물어보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 또 출전을 묻는 데서 노신사의 아인슈타인과 상대성이론에 대한 앎의 욕구가 얼마나 강한지 짐작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동시에 출전 문의는 곧 나의 글이 노신사의 강한 앎의 욕구를 충족시켜주지 못했음을 방증하는 것이라는 생각에 미치자 부끄러움에 얼굴이 확 달아올랐다. 부리나케 인저리타임에 들어가 그 기사를 찾았다. 노신사가 언급한 대목은 예상한 대로 바로 이 대목이었다.

“과거에는 우주에서 물질적인 모든 것이 사라져도 시간과 공간은 남아 있을 거라고 믿었습니다. 그러나 나의 새로운 상대성이론에 따르면, 물질과 함께 시간과 공간도 사라집니다.” 새삼 그 의미가 또렷하게 다가왔다. 아무리 자신의 이론이라지만 어떻게 이토록 함축적이면서도 간명하게 표현할 수 있을까.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뉴턴은 시간과 공간은 서로 분리되어 있고, 물질과 에너지도 따로따로라고 생각했다. 뉴턴에 따르면 공간은 물질을 담는 그릇이다. 

하지만 아인슈타인은 특수상대성이론을 통해 시간과 공간이 서로 얽혀 있을 뿐 아니라 물질과 에너지도 한 몸(E=mc²)임을 밝힌 데 이어 일반상대성이론(중력장 방정식)에서 물질(에너지)에 의해 시간과 공간이 형성된다는 사실을 보여주었다. 공간은 물질을 담는 그릇이 아니라 물질 그 자체인 것이다.

필자는 평소 아인슈타인의 “과거에는 … 물질과 함께 시간과 공간도 사라집니다” 발언을 ‘일반상대성이론과 아인슈타인의 방정식에 관한 최고의 명언’으로 평가해왔으며, 해당 기사에도 그렇게 썼던 것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표현은 학술회나 강의실에서가 아니라 어수선한 장소에서 기자의 질문에 대한 답으로 나왔다. 1921년 아인슈타인이 처음 미국을 방문했을 때다. 일반상대성이론이 발표된 지 6년, 에딩턴이 일식 관측을 통해 일반상대성이론이 예측한 ‘별빛의 휨 현상’을 확인한 지 2년이 지난 시점이다. 아인슈타인은 과학계 아이콘으로 떠올랐다. 그가 가는 곳마다 기자와 시민들로 북새통을 이뤘다. 하지만 정작 상대성이론을 이해하는 기자와 시민은 드물었고, 심지어 ‘성(性)이론’으로 아는 사람도 많았다고 한다. 

그런 상황에서 아인슈타인은 한 기자가 “상대성이론이 뭡니까?”하고 툭 던진 질문에 아주 진지하게 그렇게 대답했다. 그 대답은 일반상대성이론을 가장 적확하게 표현한 최고의 명언이 되었다. 부끄럽게도 이런 명언에 출전을 밝혀놓지 않았다니! 노신사가 속으로 혀를 끌끌 찼을 거야. 빨리 답장을 보내야겠다.

“이대길 선생님께, … 선생님께서 물으신 대목은 아인슈타인 전기 작가 데니스 브라이언(Denis Brian)의 ‘아인슈타인 평전(Einstein : A Life)’(북폴리오, 2004) 250쪽에 적혀 있습니다. 도움이 되길 바랍니다. 건안하십시오.”

웹진 인저리타임 대표·동아대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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