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대통령의 ‘무모함’과 개성공단 재개

조송원 승인 2019.02.12 11:50 | 최종 수정 2019.02.12 13:26 의견 0
국정연설(State of the Union Address) 도중 북한 김정일 국무위원장과의 2차 북미정상회담 일정을 발표하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CNN 캡처 

한국은 2008년부터 2017년까지 지난 10년간 미국제 무기를 구입하는 데 67억3천만 달러를 썼다. 약 8조원이다. 106억3천만 달러의 사우디아라비아, 72억7천만 달러의 오스트레일리아에 이어 3위이다. 일본은 우리의 절반이 조금 넘는 37억5천만 달러에 불과하다.¹⁾

한-미 방위비분담금 협상이 1조308억 원 선에서 타결됐다. 전년보다 8.2% 증액된 금액이다. 증액 규모가 클 뿐 아니라, 기간도 1년이다. 몇 달 뒤 내년도 분담금 협상을 다시 벌여야 한다. 추가 증액을 요구할 게 뻔하다. 지난해 11월 미국 협상 대표단이 한국 정부와의 협상 끝에 ‘5년’으로 사실상 합의를 이뤘음에도 12월 갑자기 입장을 뒤집어 ‘1년’ 계약을 주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트럼프 대통령이 ‘안보 무임승차론’을 내세우며 막무가내로 압박한 결과다.

“미국은 ‘한국이 주한미군 주둔비용의 42%를 부담한다’고 밝히지만, 한국이 무상 제공하는 서울 용산 노른자위 땅의 임대로 등을 포함하면 한국의 실제 부담은 80%까지 올라 간다”고 지난해 5월 <월스트리트 저널>은 보도했다. 비슷한 시기에 한국국방연구원(KIDA)도, 한국이 분담금과 함께 토지·시설 제공, 각종 감세·감면 등 주한미군에 지원한 비용이 2015년 한해에만 5조 원이 넘었다고 발표했다.

미국의 각종 여론조사에 의하면, 트럼프 대통령의 직무수행 지지율은 40% 내외이고, ‘지지하지 않는다’는 응답은 55% 내외이다. 취임 이후 최저치의 지지율이다. 그러나 그의 일방통행식 행보에는 거침이 없다. 지난 5일 밤(현지 시각) 트럼프 대통령은 상·하원 합동회의장에서 ‘위대함을 선택하기’란 주제의 국정연설에서 “초당파적 협력과 화합”을 강조했다. 그러나 연설의 초반 상당 부분을 반세기 만의 최저실업률과 에너지 산업 활황, 감세와 규제완화 등 경제치적을 자화자찬했을 뿐이다.

하원을 장악한 민주당의 반응은 싸늘했다. 더구나 연방정부 셧다운(shutdown·부분 업무정지) 사태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민주당에 완패했다. 이는 트럼프 대통령이 국내 정책에서는 ‘우리에 갇힌 호랑이’가 되었음을 의미한다. 으르렁거릴 수는 있다. 트위터를 날릴 수도 있다. 그러나 민주당은 결코 굴복하지 않을 것이다.

외교정책은 대통령의 권한에 견제가 거의 없는 분야이다. 일반적으로 대통령은 국내 정치적 난관을 극복하기 위한 수단으로서 외교정책으로 눈을 돌린다. 국내 정치에서 우리에 갇힌 트럼프 대통령으로서는 김정은 국무위원장과의 정상회담은 좋은 기회이다. 정상회담으로 트럼프는 세계무대에서 자신이 대통령다워 보이는 이미지로 며칠간은 뉴스를 지배할 수 있게 된다. 더구나 그는 임기 초에 집중하기로 선택한 과제에 대해 실질적인 결과를 만들어 낸다는 것을 보여줄 기회로 정상회담을 이용할 수도 있다.²⁾

마침내 2차 북미정상회담이 27·28일 베트남 하노이에서 개최된다. 싱가포르에서의 1차 정상회담은 북한의 비핵화와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에 관한 포괄적이고 원칙적인 합의였다. 260일 만인 하노이에서의 2차 정상회담에서는 비핵화 행동과 상응조처를 주고받는 구체적인 합의물을 만들어낼 것으로 기대된다.

1차 정상회담 이후 북미 협상이 교착상태에 빠진 것은, 북한의 제한적 조처에 상응하는 미국의 의미 있는 행동이 없었기 때문이다. 미국 정치권의 분위기는 냉랭하다. 회담 결과에 대한 비관적인 전망이 우세하다. 회담 결과 구체적인 수확물이 없을 경우 민주당의 공격을 트럼프는 막아낼 수 없을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미국 내 이런 정치지형이 회담 결과를 낙관하게 하는 근거이다.

최소한 북한은 영변 핵시설을 폐기하고, 미국은 상응 조처로 인도적 지원 재개, 종전선언, 북-미 연락사무소를 설치할 것으로 예상된다. 나아가 북한은 과감히 영변 이외의 핵시설까지 폐기하고 제재 해제를 요구할 수도 있겠다. 제재 해제는 2차 북미정상회담의 핵심이다. 미국은 경제 제재로 북한이 협상 테이블로 나올 수밖에 없었다고 판단한다. 북한은 경제 건설의 긴급성 때문에 기꺼이 핵을 포기하려 한다.

여기서 개성공단 문제가 등장한다. 2차 북미정상회담 후에도 개성공단의 문이 열리지 않는다면, 이 정상회담은 맹탕임을 방증하는 것이 될 것이다. 거대담론인 북한의 비핵화와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 과정은 일단 접어두자. 실질적으로 보통 시민이 2차 정상회담의 성공여부는 개성공단의 문이 열리느냐, 닫힌 채로 있느냐로 판가름할 수 있을 것이다.

북한의 비핵화는 ‘어음’이고, 개성공단 재가동은 ‘현찰’이다. 일부 수구 정치인이나 언론이 북한에 퍼주기란 가짜뉴스를 유포하지만, 한마디로 개성공단은 ‘퍼주기’가 아니라 ‘퍼오기’다.

개성공단은 2004년 생산을 시작해 2016년 문을 닫기까지 누적생산액이 총 32억3천만 달러에 이른다. 개성공단에서 남쪽 기업은 1달러를 투입해 4.6달러의 산출물을 얻었다. 최종소비자 가격을 기준으로 하면, 20~30배의 투자가치를 거뒀다. 개성공단 입주 기업들은 “물과 공기를 뺀 모든 원·부자재는 물론 구내식당에서 쓰는 채소와 양념까지 남쪽에서 공급했다. 개성공단 생산액 중 임가공료인 5% 가량만 북한에 줄 뿐 나머지 95%는 남쪽 몫이었다”고 설명한다.³⁾

“최고의 지성은 마음속에 대립하는 두 가지 개념을 동시에 간직하는 능력이고, 그 능력이 제대로 기능할 수 있도록 유지하는 능력이다.” <위대한 개츠비>를 쓴 소설가 F. 스콧 피츠제럴드(F. Scott Fitzgerald, 1896~1940)의 통찰이다.

개성공단이 터무니없는 이유로 폐쇄되고, 부랴부랴 쫓겨난 입주기업인들의 처절한 몸부림을 텔레비전 다큐멘터리에서 볼 때 문득 떠오른 말이다. 자국의 대통령이 가당찮은 이유로 사업을 봉쇄하여 피눈물을 쏟았다. 한데 이제 희망을 갖게 되었다. 대부분의 미국 전문가들은 트럼프가 시리아 철군 같은 무모한 행동을 할까봐 두려워한다. 트럼프의 그 무모함이 북한과 핵협상을 타결 지을 수 있다. 그에 따라 개성공단도 재개될 것이다. 개성공단 입주기업인들은 억지로나마 이미 ‘최고 지성인’의 반열에 올라 있는지도 모른다.

아무쪼록 2차 북미정상회담이 순항하여, 125개 개성공단 입주기업인들이 활짝 웃는 모습을 보고 싶다.

※1)「S. Korea 3rd-largest importer of US weapons」, 『The Korea Herald』, 2019년 1월 28일. 2)Robert J. Fouser(전 서울대 교수), 「Dangers in the US-NK summit」, 『The Korea Herald』, 2019년 1월 30일. 3)권혁철(한겨레평화연구소장), 「개성공단 재개는 북한에 퍼주기?···“5% 주고 95% 퍼오기”」, 『한겨레신문』, 2019년 2월 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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