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의 재선 가능성과 4·3 보궐선거

조송원 승인 2019.04.05 15:48 | 최종 수정 2019.04.05 16:07 의견 0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 AFP=뉴스1 © News1 자료 사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 AFP=뉴스1 © News1 자료 사진

“내년 11월 대선에서 트럼프가 재선에 성공할 거라고 보느냐?” 워싱턴의 한 소극장에서 30여 명의 백인들에 물어봤다. 놀랍게도 20여 명이 손을 들었다. 트럼프의 국정 수행 지지율은 재선과는 거리 멀어 보이는 40%대 초반이다. 하지만 실제의 미국 공기는 여론조사와는 다를 때가 많다. “강아지라도 찍어주겠다”며 트럼프 혐오를 드러내는 사람이 있지만, “트럼프 꺾기 쉽지 않다”는 데에도 대다수가 공감한다.

세대, 성별, 인종, 이념 성향 등에서 다양한 15명의 민주당 대선 후보가 경합하며 흥행을 꾀하고 있다. 그러나 아직 이렇다 할 ‘트럼프 킬러’가 안 보인다. 반면 트럼프는 ‘전국에서 고른 지지’를 포기하고 핵심지지층을 공략하며 ‘대선 승리에 도움 되는 표’를 차곡차곡 다지고 있다. 트럼프는 2016년 대선 때 전체 득표율 46.1%로 힐러리 클린턴(48.2%)에게 지고도, 주별 승자독식이라는 제도에 힘입어 선거인단에서 승리(306명 대 232명)했다. 이번에도 그는 철저히 이 공식을 따라 경합주 공략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동맹국이든 라이벌이든 세계의 많은 지도자들은 내년 미국 대선 후 트럼프가 아닌 다른 새 대통령과 상대하기를 원한다. 트럼프는 국내적으로도 문제가 많다. 여론조사에서도 역대 어느 대통령보다 지지율이 낮다. 호감도가 50%를 넘긴 적이 없다.

그러나 일반적인 정치 수학에 트럼프에게는 적용되지 않는다. 물론 지금 트럼프의 재선가능성을 이야기하는 것은 동전던지기에 불과한 작업이다. 그렇지만 생각은 해볼 문제이다. 트럼프는 낮은 지지율로도 2016년 대선에서 승리했다. 46.1%를 얻었는데, 이는 모든 유권자의 26.8%에 지나지 않는다. 그는 2020년에도 같은 방식으로 성공할 수도 있다.

전국적으로 지지율이 낮지만, 공화당 내에서는 역대 어느 대통령보다 높은 지지를 받고 있다. 민주당후보가 강력하지 않다면, 압도적인 공화당의 지지만으로 재선에 성공할 수 있다.

재선에 기여할 또 하나는 그의 용의주도한 선거 전략이다. ‘민족주의적 대중영합주의(Nationalist Populism)’. 2016년 트럼프는 불법이민자들을 국가안보와 사회통합의 주요 위협으로 지목했다. 내년에도 트럼프는 민주당 후보에게 같은 전략을 펼 것이다.

트럼프의 계산은 이렇다. 민주당과 그 대통령후보에 “사회주의자”라는 딱지를 붙인다. 그러면 공화당원들은 더 많이 투표장으로 불러낼 것이고, 중도층도 공화당 쪽으로 끌어들일 수 있을 것이다. 그의 판단이 옳은지도 모른다. 유권자들은 민주당이 선거운동에서 계속 밀어붙이고 있는 진보적 아이디어에 관심이 없는 것은 아니다. 최근의 여론조사에 의하면, 미국인들은 약 70%는 극단적인 부자들(ultra-wealthy)에게 더 높은 세금을 물려야 한다는 걸 지지한다. 68%는 돈과 부가 훨씬 더 공평하게 분배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사회주의자란 단어는 많은 유권자를 등 돌리게 한다. 겨우 25%만이 사회주의자인 대통령 후보를 지지할 것이라고 한다.

트럼프는 민주당에 대한 이 공격 노선을 시험해 왔다. 그리고 이 전략이 먹힐 수 있다는 좋은 근거를 갖게 되었다. 민주당의 대선후보 선두주자인 버니 샌더스와 신예 알렉산드리아 오카시오코르테스는 자신들이 “민주사회주의자”란 꼬리표를 받아들이고 있는 것이다.

이 메시지를 증폭시키는 데에, 트럼프는 소셜 미디어의 효능을 다시 한 번 더 입증할 것이다. 소셜 미디어는 정책의 상세한 설명보다는 이데올로기적인 딱지를 붙이는 데 아주 적합한 무기이다. 다른 나라 선거에서도 증명된다. 브라질의 자이르 볼소나로(Jair Bolsonaro)는 소셜 미디어의 대가인 트럼프를 본받아 대선에서 깜짝 승리를 일궈냈다. 볼소나로의 승리는 페이스북을 통한 “브라질 우선주의(Brazil First)” 선거운동을 벌인 것에 크게 힘입었다.**

제 5 법칙. 문제는 지지자의 투표율이다. 문제는 누가 더 많은 지지자들을 투표장으로 불러내느냐다. 결국 투표가 관건이다. 좀 더 정확히 말하면 ‘지지자의 투표율’이 선거의 승패를 가른다. 지지층을 결집하고 동원하는 지극히 평범한 수만으로도 선거를 승리로 이끌 수 있다.***

정치컨설턴트 박성민의 주장대로라면, 트럼프는 ‘이기는’ 선거운동을 하는 셈이다. 더욱이 새로운 무기, 트위트로 이데올로기적 낙인을 찍는 무기를 능수능란하게 사용하니, 내년 11월 대선에서 세계인의 대다수가 반기지 않는 또 한 번의 깜짝 승리를 낚아챌 수도 있다는 게 과히 빈말은 아닐 것 같다.

이정미 정의당 대표와 여영국 더불어민주당·정의당 창원성산 국회의원 단일화후보 당선자가 3일 경남 창원시 성산구 선거사무소에서 손을 잡고 환호하고 있다. 2019.4.3/뉴스1
이정미 정의당 대표와 여영국 더불어민주당·정의당 창원성산 국회의원 단일화후보 당선자가 3일 경남 창원시 성산구 선거사무소에서 손을 잡고 환호하고 있다. 2019.4.3/뉴스1

4.3 보궐선거의 결과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예상대로였다. 일부 언론에서는 ‘진보의 성지’ 창원 성산에서 자유한국당이 선전하고, 통영·고성에서는 2018년 지방선거 때보다 완패한 결과를 두고, 보궐선거 민심은 ‘여권에 경고장’이라고 평가한다. 필자는 달리 해석한다. 특히 창원 성산의 ‘신승’에서 한국 정치의 희망을 본다. 대역전극의 과정을 음미해 보자.

개표가 99.98% 진행될 때까지 여영국 당선인은 한 번도 자유한국당 강기윤 후보를 앞서지 못했다. 한때 3000표 이상 벌어지기도 했다. 여 당선인은 자정이 가까워 오며 개표가 거의 끝날 무렵 격차를 무렵 격차를 좁히면서 막판 뒤집기에 성공했다. 밀리던 승부에 쐐기를 박은 것은 마지막에 개표한 사전투표였다.

지난달 29~30일 진행한 창원 성산 사전투표율은 14.53%로 비교적 높았다. 여 당선인은 사전투표에서 1만3696표를 얻어 1만872표에 그친 강 후보를 2824표 차로 눌렀다. 최종 표차는 504표. 당일 투표 열세를 사전투표로 만회한 것이다.****

이 ‘대역전극’의 함의는 무엇인가? 사전투표를 하는 사람은 한국정치에 적극 참여하는 ‘깨어 있는 시민들’이다. 결국 이 시민들이 한국의 정치 앞날을 결정한다. 따라서 우리나라에 이렇게 깨어 있는 시민이 건재하는 한, 역사의 퇴보는 있을 수 없다.

미국에서는 몰라도 트럼프 같은 무도한 정치가가 한국에서는 발붙일 수 없다. 한국의 정치 발전도 여기서 멈추지 않을 것이다. 이 ‘깨어 있는 시민’의 존재를 확인한 이상, 뭐가 더 두려울 것인가. 한국 정치현실도 오직 전진만이 있을 것이라 감히 단언한다.

※*황준범(워싱턴 특파원), 「트럼프의 잔여임기, 5년10개월?」, 『한겨레신문』, 2019년 3월 29일. **Ian Bremmer, 「Don't underestimate Trump in 2020」, 『TIME』, 2019년 3월 25일. ***박성민(정치컨설팅그룹 MIN 대표), 『정치게임에서 승리하는 20가지 법칙. 강한 것이 옳은 것을 이긴다』(웅진지식하우스, 2006), 20쪽. ****김정훈, 「여영국 ‘대역전극’ 주역은 막판 개봉한 ‘사전투표함’」, 『경향신문』, 2019년 4월 5일.

<작가·인저리타임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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