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하소설 「신불산」(732) 제7부 돌아가는 꿈 - 제14장 송도와 진주여자(40)

이득수 승인 2024.04.21 11:38 의견 0

그러면서 괜히 자신이 그 자리에서 시인으로 소개받고 싶은 공명심이 발동한 게 아닌가 싶어 쑥스러운 생각도 들었다. 자신이 문화관광시절 각종 축제의 개회식진행을 맡았을 때 지역에서 작은 감투를 쓴 별별 인사들이 다 자신의 이름이 호명되고 대중을 향해 절을 하고 손을 들어 보이는 것을 행사가 끝난 뒤 괜히 시간만 잡아먹고 아이들이나 젊은 사람들이 하품을 하며 싫어하는 모습을 보며 쓴 웃음을 띠다 겨우 소개가 끝났을 때 그새 도착을 했거나 참석은 했는데 명단에는 없고 그렇다고 빼먹으면 구청장에게 볼멘소리를 할 것이 빤한 전직 아무개씨들의 명단을 정병진씨가 넘겨주면 다시 소개하던 일이 생각나 실소를 금할 수가 없었다. 거기다 열찬씨가 영순씨가 알까 보아 입 밖에 내뱉지는 않았지만 힘들여 지은 열찬씨의 시를 버리고 중앙에서 이름이 뜨르르한 유명시인이나 교수의 시를 받아 사용한 지도 모를 일이었다.

14. 송도와 진주여자(40)

그날 저녁이었다. 여러 방송채널의 지역소식시간에 이태석 신부의 추모식이 열렸다며 추모시의 자막이 흘러가는 사이 앳된 여중생의 낭송목소리가 참으로 차분하게 가슴을 적셨다며 자막에 나오는 시인의 이름을 보니 반갑기도 하고 놀랍기도 하고 시가 더 정겹고 애틋하다는 전화가 여러 통이 와서 열찬씨와 영순씨가 비로소 가슴을 쓸어내리며 서로 엄지를 들어 보이고 잠자리에 들려는데

“국장님, 아니 형님, 대성공이었습니다. 시가 참 좋았습니다.”

윤석민 동장의 목소리에 술 냄새가 풍기는 것처럼 붕붕 뜬 것이 기분이 상당히 좋은 것 같았고 옆에서 들리는 소음으로 봐서 관계자들이랑 회식을 하는 모양 같았다.

“아, 그래요? 난 내 시가 변변찮아 누를 끼친 것이 아닌가 걱정했는데.”

“아, 아닙니다. 형님의 시가 하이라이트 그러니까 백미지요. 감사합니다.”

“그럼 천만다행이고.”

“그러고 보니 미처 형님을 초청하지 못 했네. 죄송합니다. 다음에 제가 식사라도 한번 모시지요. 형님 좋아하는 갯장어 하모회에 소주랑 말입니다. 하하하.”

하고 전화를 끊는데 옆에서 와아 웃음을 터뜨리며 술잔을 부딪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아, 그렇구나? 그게 그런 것이구나!)

열찬씨의 가슴에 써늘한 물줄기 하나가 흘러갔다. 상대가 야속하기보다는 수많은 축제를 주관한 그 자신도 그렇게 수많은 사람을 섭섭하게 하거나 다음에 만나 소주나 한 잔 하자고 약속을 하고는 가마득히 잊어버렸을 것이라는 자책감이.

과연 그가 현직 때 자주 범했을 것 같은 건성으로 하는 약속처럼 송도해안볼레길 스토리텔링이 고맙다고 식사나 한 번 하자던 구청장도 윤석민 동장도 다시 연락이 없었다. 대신 문득 자기 때문에 수도 없이 소외감을 느끼고 마음이 아팠을 옥자씨가 생각나 메일을 열어

옥자씨,

아주 통속적인, 그러나 리얼한 대중가요의 가사 중에

만나보면 시들하고

헤어지면 그리웁고

몹쓸 건 이내 사랑

믿는다, 믿어라 변치말자

누가 먼저 말했던가?

아아, 생각하면 생각사록

죄 많은 내 청춘.

좋다할 땐 뿌리치고

싫다할 때 달겨드는

모를 것 이 내 마음

봉오리 꺾어서 올려놓고

본 체 만 체 왜 했던가

아아 생각하면 생각사록

죄 많은 이내 청춘.

남인수의 <청춘고백>이라는 노래가사입니다. 18번은 아니지만 가끔씩 떠올라 불러보기도 합니다.

젊은 시절 한동안은 늘 내가 살아가는 현실이 나로서는 최선이며 어려운 여건 속에서 참으로 힘껏 투쟁한다고 생각했지만 중년에 그것이 꼭 그렇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의문이 들면서 교통사고, 좌천 등 수많은 좌절을 겪으며 나 역시 당신에게 몹쓸 짓을 한 것처럼 참으로 많은 업보를 지으며 그 업장을 지우며 살아야 한다는 생각이 들기고 했지요.

평범하지도 비범하지도 않지만 그런 데로 그럴듯하게 내 외형적 삶이 형상을 나타낼 때쯤 당신이 내게 다시 나타났고 내 생의 조용한 하산길이 번민의 비탈길로 변했습니다.

내게 당신은 무엇으로, 나는 또 당신에게 무엇으로, 우리는 왜 만났으며 어디로 가는 것인지...

그 난감한 질문 속에 한 가지 분명한 건 나보다는 당신이 더 힘들었으며, 더 외롭고 쓸쓸했을 것이란 점에서 가슴이 많이 아팠습니다.

이제 내게 당신은 거대한 벽이며 벅찬 짐이며 풀지 못 할 화두(話頭)입니다. 그러나 살아있는 한 넘어 다녀야 하고 번민해야하고 맴돌아야할 그 무엇입니다.

또 그 가운데서 옹달샘이나 오솔길 같은 작은 위안이나 갈피를 찾도록 노력해야겠지요.

이번에 이태석 신부의 삶을 보면서 내 자신의 보잘 것 없고 통속적인 삶에 많이 실망하고 또 절망을 느꼈습니다.

그러나 나는 이미 너무 오랫동안 통속에 젖어 살아온 것 같아 다시 순수의 길로 가기에는 무척 힘들 것이라 생각됩니다.

아아, 아주 귀한 보석일수록, 귀한 사람일수록 손에 쥐면 두렵고 내려놓으면 아쉽답니다. 며칠 전 부산 남부민동 출신으로 남수단의 성자가 된 이태석 신부의 1주기를 맞아 개최한 송도성당의 추모제에 낭송할 시를 위촉받아 제가 쓴 <울지 마 톤즈>라는 시 한편을 보냅니다. 이기적인 내 자신이 단 한 번도 베풀어보지 못한 것만 같은 사랑과 용서, 차마 그걸 당신에게 구걸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이 시를 읽고 당신의 마음이 조금이라도 풀렸으면 좋겠습니다.

이 봄이 당신에게 아주 작은 생활의 기쁨이라도 많이 베풀어 당신생애에 좋은 나이테로 남기를 기원합니다.

2011년 벽두에

평리공 가모불출이가

그럭저럭 새해가 지나가고 사람들은 실질적 명절 설날준비를 한다고 여념이 없는 어느 날이었다. 이제 드디어 환갑의 해를 맞이하는구나 싶어 뭘 좀 써보려고 컴퓨터를 켜다 이상하게 이메일이 궁금해 열어보는데 앗차! 생각이 들었다 목록 중에 가슴으로 받은 씨앗이란 제목의 전옥자란 이름이 들어있는 것이었다. 재빨리 더블클릭을 해 열어보니

가슴으로 받은 씨앗

오래전에 씨앗 하나를 가슴으로 받았습니다.

더 이상 심을 수도 없었기에

더 이상 꽃을 피울 수도 없었기에

더 이상 열매로 결실을 거두지도 못한 안타까운 씨앗이었습니다.

그러나 가슴속의 씨앗을 실망으로 보관한 적은 없었습니다..

태풍이 지나가도 가슴속의 씨앗은 피해가 없었습니다.

높은 심산에 가서도 가슴속의 씨앗은 묻을 수가 없었습니다.

깊은 눈물 강에도 가슴속의 씨앗은 빠트려 지지가 않았습니다.

도심의 공해에도 가슴속의 씨앗은 산화되어 없어지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하늘을 나는 비행기속에서는 밤하늘의 별로 수놓아 졌습니다.

2011. 1. 24

Written by Okja-

시도 수필도 아닌 묘한 형식의 글이었다. 그러나 그 내용이 열찬씨를 용서한다는 메시지 같으면서도 절대로 그 기억을 지울 수 없고 그 불쌍한 생명을 지키지 못한 자신을 자책하며 아직까지 그 태어나지도 못한 그 불쌍한 생명을 잊지 못하고 자신이 가졌던 단 하나의 생명체에 대한 끝없는 연민과 후회를 반복하다 그래도 심정적으로는 그 아이를 단 한 번도 가슴에서 떠나보내지 않았다는 걸, 그래서 여태 있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암시하는 것 같았다.

가슴이 철렁해진 열찬씨가 조심스레 안방을 들여다보니 마침 영순씨는 텔레비전을 틀어놓은 채 가늘게 코를 골며 잠들어 있었다. 비로소 안심을 하고 거실을 건너 서재의 의자에 앉아 전화를 해도 받지 않고 뚜뚜 소리가 나는 걸 보아 일부러 꺼둔 것 같았다. 이튿날, 그 이튿날 몇 번이나 다시 시도해도 여전히 받지 않아 어디 해외나 멀리 여행이라도 간 것인가 싶었다. 그리고 한 달 두 달 자꾸만 시간이 흘러도 여전히 저쪽에선 달리 연락이 없었고 전화를 해도 받지 않았다. 여행을 갔더라도 하마 돌아왔을 텐데 메일의 끝에 보낸 사람 이름까지 영어를 쓰는 것으로 보아 차라리 영어공부에 매몰되어 만사를 잊는 것인지도 모른다고 짐작하기도 했다.

※ 이 글은 故 平里 이득수 선생의 유작임을 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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