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하소설 「신불산」(736) 제7부 돌아가는 꿈 - 제15장 폭발직전 버든마을(2)

이득수 승인 2024.04.26 08:00 의견 0

“아이는 언제라도 축복이지. 자연스레 주어지는 복이라면 굳이 거부할 필요가 없지. 영서에게도 동생이 생기고 아들이라도 낳으면 또 외동인 김서방네 대도 이어가고...”

하는 순간

“보소. 시방 당신 그 말 책임질 거요? 나중에 딴소리 하지 말고 아아는 당신이 다 키우소.”

어수선한 분위기로 대화가 끝이 났다.

15. 폭발직전 버든마을(2)

낮에는 가끔 구서동 밭에 나가고 저녁에는 산우회사무실에 가서 훌라를 치고 술이나 마시면서 조용조용 세월이 흘러갔다. 이제 글이라도 좀 써보고 싶었지만 이상하게도 컴퓨터 앞에만 앉으면 자신감이 없어졌다. 이러다가 다시는 글을 쓸 수 없는 사람, 늘 망설이기만 하며 무엇 하나 선뜻 해내지 못하는 소심한 사내, 표독한 사내 하나를 만나 멍든 가슴을 겨우 다스리다가 공직에서의 그 모든 희망의 결정체인 서기관 국장이 되어 비로소 마음을 놓고 아들 장가까지 보낸 그 순간 또 다시 엄습한 퇴진의 압박, 이미 공직에서 이룰 것을 다 이루고 가정에서 마무리할 것을 다 처리한 마당에 그냥 웃으며 떠나면 될 것을 종용하던 구청장과 자기 뒤를 이어 승진과 영전을 하려고 줄을 선 직원들, 겨우 한두 달 더 근무하고 제 5시집을 내어 출판기념회를 겸한 퇴임식을 하려던 것이 창졸간에 치르는 명예퇴임식으로 마무리 된 것, 당시의 구청장이나 간부들이 보기에는 뭐 전혀 아쉽거나 아까운 것도 없는 그 퇴직과 조그만 아쉬움이 그렇게도 가슴 깊이 상처가 되었는지, 자신이 그렇게도 소심한 사내였는지 생각할수록 어이가 없었지만 어쨌든 늘 마음이 싱숭생숭하면서 제대로 글 한 줄을 쓸 수가 없는 것이었다.

그런 하루 언양농업고등학교 동창 박을락이란 친구가 딸을 시집보내는 결혼식에 참석했다. 막내누님 덕찬씨가 시집간 장촌리와 태화강을 건너 마주보는 구늪이라는 마을출신으로 희고 깨끗한 얼굴과 <박을락 말락>이라는 별명 말고는 특별히 기억나는 것도 없는 친구였는데 40대가 넘어 동창회를 하면서 만나니 울산에서 경찰공무원으로 근무한다고 했다. 재학 중일 때와는 달리 매우 쾌활하고 분위기를 잘 이끌어가며 큰소리를 탕탕 치는 모습이 새삼스러워 옆자리에서 밥을 먹는 날

“친구야, 니는 잘 지내나? 공무원생활 할 만 하나?”

물어본 적이 있는데

“그래 가동장, 니는 공부 좀 하더니 벌써 사무관 되었다면서. 그까짓 동장 하면 뭐 하노? 순사하는 내손에 놀아나는 동장을...”

하는 것이었다.

“그러면 니 혹시 정보형사?”

열찬씨가 퍼뜩 당시 날마다 동장실로 찾아와서 온갖 잡담이나 하다 구의원 도회수씨 사무실에서 고스톱을 치다 중국집에서 유나짜장을 시켜먹고 돌아가던 덩치가 산만 한 허형사를 떠올리며

“그래 니는 인물도 좋고 눈치도 빨라 제격이겠다. 주로 어데 출입하노?”

“뭐. 관내의 관공서나 기업체를 두루 다니지. 그 중에는 동사무소에 출입하며 동장하고 술이나 마시며 지역동향, 주로 정치적 동향, 그러니까 지역국회의원이나 지방선거 동향을 파악하는데 퇴직할 때가 다 된 별정직 동장들이 내 얼굴만 보면 설설 매지.”

“설설 매다니? 나는 우리 허형사가 형님, 형님하고 따라다니는데.”

“니는 행정사무관이라서 그런데 그 사람들은 별정직이라서 그렇지. 특별한 자격조건이 없으니 여론이 안 좋으면 바로 잘릴 수가 있지.”

“뭐로? 그렇게 까지나.”

하고 웃고 말았는데 차츰 세월이 지나면서 동창회 전면에 나서면서 발언권이 세어지며 어느 새 중심인물로 자리 잡고 있었다. 청첩장을 받던 날 2,3학년 2년간 짝지를 했던 울산에 사는 심명섭이란 동창에게 지금은 뭘 하는지 물어보니 이제 승진을 해서 파출소장을 한다고 했다.

7급인 경위파출소장이라면 공로연수 없이 만 60세가 정년퇴직이니 그 해가 바로 정년인데 아슬아슬하게 현직에서 자녀하나를 출가시키는 셈이었다.

집안이 넓어서 그런지 정보형사를 하면서 출입처가 많아서 그런지 일개 파출소장의 잔치에 얼마나 많은 하객들이 몰려들었는지 기다란 줄 뒤에서 한참이나 기다려

“축하하네.”

“응, 왔나?”

딱 2,3초 얼굴을 마주보고는 뒤 사람에 밀려 봉투만 접수시키고 돌아서는데

“언양농고 친구들은 따로 점심을 먹는다. 이따 식 시작하면 바로 식장입구에 모여서 출발한다.”

심명섭동창의 전갈을 받고 집결지에서 열다섯쯤의 동창을 만나 인사를 하며 찾아봐도 가장 친했던 단짝, 같이 빵집에 다니던 친구 조용호는 없었다. 모처럼 한번 만났으면 좋았을 텐데 성질이 괄괄해서 웅변대회 사흘을 앞두고 갑자기 신청을 하고는 열찬씨 더러 무조건 웅변원고를 써달라고 하던 일, 덕천고개를 넘고 작천정을 지나 화천마을까지 순영씨의 집을 찾아간다고 나서서 정작 마을입구에 닿자 집이 어느 골목으로 들어가는지도 차마 못 물어보고 돌아선 친구, 실연한 휴학생으로 몸도 마음도 다 지친 육군하사가 되어 휴가를 왔을 때 술과 밥을 사주고 담배를 사주던 친구, 고속도로 현장에 실습을 나간 것이 인연이 되어 도로공사의 간부가 되고 서울에서 번듯하게 자리 잡아 살면서 정석이의 결혼식에 참석하고 열찬씨자신도 서울대학을 나온 그 집 딸 결혼식에 참석했던 단짝친구가 안 보여 전화를 해보니 집안의 결혼식이 있어 못 온다는 이야기였다.

삼삼오오 짝을 지어 승용차에 분승하고 문수체육관을 지나 부산방향으로 출발하면서

“문수산 등산 가는 길 망해사 옆에서 우회전해서 올라오면 맨 꼭대기에 백숙집이다. 각자 알아서 도착하기다.”

하고 하나가 출발하자 나름 친한 친구의 차를 타고 제가끔 출발했다. 대로에서 벗어나 문수산방향의 소로에 접어들자 새파란 논배미에서 문득 개구리 우는 소리가 다 들렸다. 몇 개의 자연부락과 새로 지은 조그만 공장들을 지나 구불구불 한참이나 올라가 막바지의 백숙집에서 고기를 뜯으며 술을 마시는데

“우리 을락이친구 결혼식 하객 좀 보아. 아직도 경찰의 끗발이 대단한 모양이야. 아마 돈도 꽤 벌었다지.”

“돈이야 소 먹이는 종석이가 더 많겠지. 200마리나 먹인다고 하니.”

“아니야. 걔는 이번에 마을이 뜯기면서 보상금이 수십억 나온다는 말이 있어. 아마 우리 동창 중에 제일 부자일 걸.”

“그래. 부산에서 공장하는 진순호도 만만찮을 걸.”

“그런가?”

동창회를 하면서 가끔 부부동반 산행을 해서 열찬씨는 영서를 키운다고 지친 영순씨를 두고 혼자 딱 한번 동참을 한 일이 있었는데 이제 그 등산멤버들이 따로 친목회를 구성해 친하게 지내는 모양으로 단연 좌석을 주도 했다. 그렇게 한참이나 떠들며 한참이나 술을 마시던 친구들이

“어이, 가열찬시인은 오늘 우째 조용하노? 퇴직하고 글은 좀 쓰는가?”

비로소 말을 붙이는데

“아니, 뭐 그럭저럭.”

“부산의 서기관 국장이면 대단한데. 울산서 국장지낸 이모선배는 총동창회회장을 수락했다지 않아?”

“아니야. 그 선배는 퇴직하기 얼마 전에 혈압으로 죽었어. 스트레스가 많았던 모양이야.”

“아깝제? 퇴직하면 지방선거에 나와 군수나 광역시의원하나는 따 놓은 당상이라 들었는데.”

“그래 우리 국장님은 정치적 포부가 없나?”

“우리 열찬이친구는 정치꾼이기 보다는 문학도잖아? 여상에 순영씨를 짝사랑하는...”

하던 친구가 말을 끊고 슬며시 열찬씨의 눈치를 보자

“그래 잘 가주고 놀다가 지 자리 갖다 놔라이.”

씩 웃어보던 열찬씨가 밖으로 나왔다. 더 앉아있기도 민망했지만 올 때 요란하게 개구리가 울어대던 논배미로 나오고 싶었던 것이었다.

오후 두 시에 결혼식을 마치고 또 한참 시간이 걸려서 그런지 벌써 문수산꼭대기에 해가 설핏했다. 휴대폰의 시간을 보니 다섯 시가 넘어있었다. 조그만 공장건물을 돌아 논물이 찰랑찰랑한 논둑을 타고 한참 걸어가니 나지막한 야산이 있고 그 안에 무덤 한 쌍이 있고 외부인이 출입을 막는 철조망이 쳐져 있었다. 어딘가 많이 본 모습이란 생각이 들다가

“아아, 사외이갓! 아아, 전옥자, 옥자씨!”

그만 열찬씨의 가슴이 덜컹 내려앉았다. 어느 가을날 출장길에서 만났던 두 사람, 누가 먼저라 할 것도 없이 반가워 손을 잡고 눈을 빛내며 살그머니 철조망을 들고 노랗게 낙엽이 떨어진 솔밭으로 들어가 한 쌍의 무덤 앞에 이르러 열찬씨의 잠바를 벗어 바닥에 깔고 옥자씨의 바바리코트와 스웨터를 벗겨 소나무에 가지에 걸던...

... 그 가엾은 여인은 지금 무엇을 하고 있을까? 뜻밖의 오해를 사고 봉변을 당한 열아홉 살의 사내, 그 한 살 아래의 고등학생에게 몸을 내어주고 마침내는 버림을 받고 혼자서 어둡고 차가운 철 침대에서 아이를 뗀 가엾은 여인, 그 쓰라린 기억으로 인해 다시는 남자를 사귀지 못하고 한 평생을 홀로 늙은 여인, 자신이 희롱하고 자신이 버린 여인, 그리고 태어나지도 못 하고 어둠속으로 사라진 죄 없는 핏덩이 하나...

눈물이 핑 돌면서 억장이 무너졌다. 전화를 해볼까, 말까 망설이다 겨우 마음잡고 사는 사람을 또 다시 마음 상하게 해서 무엇 하겠나 싶어 휴대폰의 주소록에 전옥자를 찾아놓고 하염없이 상념에 빠졌는데

“열찬아, 니 여 있나? 여서 뭐 하노?”

친구 명섭씨가 찾아 나왔다.

“와? 친구들이 하는 말이 섭섭하더나? 왕년에 공부 좀 하던 가열찬이는 아직도 가난하고 돈푼이나 번 자기들이 최고라고 하던 말이.”

“아니, 그게 아니고...”

그렇다고 옥자씨 이야기를 할 것도 아니라 머뭇거리는데

“그렇지만 나는 아이다. 시집을 여러 권 낸 시인이 어데 흔하나? 그리고 공무원사회에서 서기관이면 군인으로 치면 거의 장성급이라면서. 나는 그런 니를 제일로 친다. 절마들은 없는 집안에서 태어나 저만큼씩이라도 출세한 것이 자랑인 모양인데 나는 그래도 우리 동창 중에서는 마 친구 니가...”

“마, 됐다. 내러가자.”

※ 이 글은 故 平里 이득수 선생의 유작임을 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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