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해훈 시인의 지리산 산책(148) 지리산 남부 끄트머리에 우뚝 솟은 하동 악양 형제봉 등산

부춘마을~활공장~형제봉~성제1·2봉~구름다리
악양들판과 굽이져 흐르는 섬진강 조망 가능
쉬면서 구름다리까지 가 되돌아오는 데 3시간

조해훈 승인 2024.05.10 12:15 의견 0
부춘마을 들머리 차밭에서 차를 따는 사람들

지난주말 필자는 매주 한 차례씩 고전공부를 하는 분들과 함께 경남 하동 악양면에 소재한 형제봉으로 산행을 갔다.

오전 11시쯤 하동~화개 지방도에서 승용차로 부춘마을로 올라갔다. 부춘마을 올라가는 들머리에는 한밭제다에 차(茶) 체험을 온 분들이 길가 차밭에서 찻잎을 따고 계셨다. 원부춘(元富春) 마을회관을 지나 한참 굽이굽이 산길을 따라 활공장(해발 1,050m)으로 올라갔다. 주차장에는 차들이 가득했다. 전망대에서 겹겹의 웅장한 지리산을 바라보다 섬진강을 내려다보았다. 몇 사람이 패러글라이딩을 하려고 준비를 하고 있었는데, 한 사람이 먼저 활공을 했다. 큰 새가 나는 것 같았다. 저렇게 하늘을 날아 저 아래 섬진강 백사장에 내려앉는다고 했다.

형제봉 활공장에서 페러글라이딩을 하려고 준비하는 사람들

주차장 옆에서 점심을 먹고 출발하기로 했다. 점심을 먹은 후 조금 쉬었다가 낮12시 20분에 형제봉으로 출발했다. 오늘 산행은 활공장~형제1봉(1,108m)~성제1봉(1,112m)~성제2봉(1,108m)구름다리로 가 활공장으로 되돌아오는 코스다. 오늘 함께 산행하는 도반들은 지난해 봄에 악양 강선암에서 형제봉과 성제1봉, 구름다리를 산행한 적이 있다. 필자는 일이 있어 산행에 참가하지는 못하고 산행이 끝난 후 합류했다.

활공장 자체가 주능선에 위치해 있어 형제봉으로 가는 길은 그다지 난코스는 아니다. 능선 아래쪽은 악양 들판이 부분적으로 보이고 모래가 많이 퇴적돼 있는 섬진강도 저 아래에 굽이져 흐르고 있다. 섬진강 너머는 전남 광양 쪽의 산들이 이어져 있다. 산행을 하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았다. 산악회에서 단체로 온 등산객들이 주를 이루는 것 같았다. 아무래도 전망이 뛰어난 데다 산행코스가 어렵지 않고 짧기 때문일 것이다.

형제봉(1,108m)까지는 천천히 걸어 30~40분 소요됐다. 형제봉을 거쳐 성제1봉(聖帝1峰)에 도착하니 오후 1시 10분이었다. 주능선에 암벽이 많지는 않으나 성제봉 정상은 바위로 이뤄져 있었다. 활공장에서 출발하여 40분가량 걸은 셈이다.

필자는 스무 살 때부터 지리산을 산행하였다. 그 시절에 집안은 너무나 가난하여 차비는 고사하고 라면도 끓여 먹을 수 있는 처지가 아니었다. 세속과 거리를 둔 선비로서의 삶을 고집한 선친의 신념 때문에 집안의 재산을 모두 잃어버리고 부산 내의 송도로, 사상으로 전 가족이 옮겨 다니며 단칸방 생활을 할 때였다. 그런데 어찌어찌하여 필자는 지리산을 계속 탔다. 특히 군대 제대하고 복학을 하고서는 지리산 산행을 더 자주 하였다. 국제신문 기자시절 산행을 담당할 때는 취재 목적 이외에도 가까운 산꾼들과 지리산을 자주 찾았다. 특히 백두대간 종주를 할 때는 지리산 서북능선뿐 아니라 워밍업을 한다고 소위 산꾼들조차 찾지 않는 코스를 많이도 다녔다.

성제1봉에서 필자(왼쪽)와 함께 산행한 남곡 여기성 선생.

성제1봉에 서서 겹겹의 지리산을 둘러보니 지나온 세월만큼이나 지리산에 찍힌 필자의 발자국들이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갔다. 우리가 소위 ‘형제봉’이라 일컫는 이 산에서 가장 높은 곳이 지금 서 있는 성제1봉인 것이다. 해발 1400m 이상인 지리산 주능선에 비하면 고도는 낮지만 지리산 남쪽에 떨어져 우뚝 솟아 있다. 악양 들판 너머의 저 봉우리는 구재봉(龜在峰·768m)이다. 하동 악양면과 적량면, 하동읍의 경계에 자리한 구재봉은 원래 구자산으로 불렸다. 구재봉은 악양 들판과 섬진강을 조망하기에는 사실 형제봉보다 월등하다. 그 넓은 악양 들판을 한 눈에 다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여하튼 성제1봉에서 10분가량 어기적거리며 걸어가니 또 다른 성제봉이 나타났다. 일명 성제2봉(1,108m)이다. 성제봉 표지석에는 1, 2봉 구분이 없으나 이 산을 찾는 사람들은 통상 그렇게 1, 2봉으로 나눠 호칭한다.

형제봉 철쭉

해발이 높다보니 철쭉은 이제야 조금씩 피어나고 있었다. 성제2봉에서 헬기장 등을 지나 50분쯤 가니 구름다리에 도착하였다. 이 구름다리는 해발 900m에 2021년에 설치되었으며, 길이는 137m이다. 악양 어디서든 형제봉의 이 구름다리가 보인다. 잘 모르는 사람들은 “저 산꼭대기에 웬 구름다리이지?”라고 궁금해 하지만, 수많은 사람들이 이 구름다리를 찾는다.

해발 900m에 설치돼 있는 구름다리.

구름다리에서 호연지기(?)를 기르다 이제 왔던 길을 되돌아간다. 사실 구름다리를 포함해 형제봉으로 오르는 데는 여러 길이 있다. 필자가 오늘 부춘마을에서 올라온 길 외에 악양의 강선암에서 올라오는 길이 있고, 악양의 노전마을에서 올라오는 길도 있다. 돌아올 때는 등산객들이 더 많아 ‘붐빈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형제봉과 성제1·2봉을 거쳐 구름다리까지 갈 때는 계속 쉬면서 갔지만 되돌아올 때는 잠깐 잠깐 쉬고 계속 걸었다. 출발했던 활공장에 도착하니 오후 3시20분이었다. 그러니까 오늘 설렁설렁 3시간을 산행한 것이다. 이제 몸이 풀리는 것 같다. <글/사진 = 조해훈>

<역사·고전인문학자, 본지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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