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리스토텔레스, "진공은 존재하지 않는다"

아리스토텔레스, "진공은 존재하지 않는다"

조송현 승인 2017.01.27 00:00 | 최종 수정 2018.07.17 15:24 의견 0

플라톤과 토론하는 아리스토텔레스(오른쪽). 출처: 라파엘로의 그림 '아테네학당'.

아리스토텔레스는 자연철학 강의를 집대성해 『피지카(physica)』를 펴냈습니다. ‘피지카’는 그리스어로 자연 physis를 연구하는 자연철학을 의미합니다. 자연철학은 자연을 연구하는 철학의 한 부문으로 근대 자연과학의 초석이 되고 있습니다. 오늘날 물리학을 뜻하는 영어 physics는 physica에서 유래된 것입니다. 근대 물리학이 고대에 탄생한 자연학에서 발전한 것임을 의미합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물질의 운동, 즉 역학(물리학)에 지대한 관심을 보여 자연학의 체계를 세웠습니다. 그는 물체의 운동을 ‘자연운동’과 ‘강제운동’으로 구별했다는 것은 앞에서 잠시 설명했지요? 아리스토텔레스는 자연운동을 “불이나 흙이 잠재적으로(potentially) 가진 것을 현실화하는 방향으로 움직이는 경우”라고 정의했습니다. 예를 들면, 물이 끓어 증기가 되어 상승하는 경우를 보겠습니다. ‘잠재적으로’ 증기였던 물이 열의 작용으로 기화함으로써 ‘현실적으로’ 증기가 되어 상승합니다. 이것이 바로 증기의 자연운동이라는 것입니다.

이에 반해 강제운동은 ‘무엇인가’에 의해 움직여지는 것입니다. 그 ‘무엇인가’, 즉 강제운동의 원인을 아리스토텔레스는 ‘동력인(動力因)’이라고 불렀습니다. 투석기로 돌을 던질 때는 투석기가 동력인이 되는 것이죠. 자연운동도 강제운동처럼 뭔가에 의해 움직이지만, 이때는 물체를 구성하는 원소의 성질에 의존한다는 점이 동력인에 의해 움직이는 강제운동과 다르지요.

이제 아리스토텔레스가 생각한 운동의 원인에 대해 자세히 알아보겠습니다. 자연운동이든 강제운동이든 물체는 ‘뭔가에 의해’ 움직입니다. 그 운동의 원인을 소급해가면 운동의 궁극적인 기원, ‘최초로 움직임을 일으키는 것’(원동자 元動者, the Prime Mover)에 도달하게 됩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이것을 ‘영원한 원운동을 불러일으키는 것’이라고 결론지었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자연계에는 형태상 네 종류의 운동이 있다고 분석했습니다. 변화, 수직운동, 수평운동, 천체운동이 그것입니다. 변화는 오늘날 물리학적 관점에서 보면 운동(공간적 이동)이 아니라 화학변화라고 할 수 있습니다.

수직운동은 ‘위로’의 운동이거나 ‘아래로’의 운동입니다. 이것은 물질 이론에서 설명한 대로 4원소의 기본 성질과 긴밀한 연관성을 가집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아무런 힘을 가하지 않고 물체를 놓으면 아래쪽으로 떨어진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또 어떤 것들은 위로 올라갑니다. 이런 현상이 나타나는 것은 물체의 본성 자체에 위나 아래로 운동을 하는 성질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라고 그는 생각했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물체의 종류에 따라 떨어지는 양상이 어떻게 나타나는지도 연구했습니다. 그는 무거운 물체가 가벼운 물체보다 빨리 떨어진다고 주장했습니다. 또 구슬이 공기 속에서보다 물속에서 더 천천히 떨어지는 것처럼, 매질의 밀도가 높으면 더 천천히 떨어지며, 특히 밀도가 높은 매질일수록 무겁고 가벼운 두 물체 사이의 낙하 속도 차이가 더 크다는 결론을 얻었습니다.

속도는 매질의 밀도에 반비례 ... 진공에서는 속도가 무한대 ... 고로 진공은 불가

아리스토텔레스는 또 매질의 밀도와 속도가 반비례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이 주장을 밀고 나가면, 진공 속에서는 모든 물체가 똑같은 속도로 떨어지며, 게다가 그 속도는 무한대라는 결론에 도달합니다. 그러나 아리스토텔레스는 이 사실을 받아들일 수 없었습니다. 속도가 무한대이면 하나의 물체가 동시에 두 곳에 존재할 수 있다는 뜻이기 때문이죠. 따라서 그는 완전한 진공은 불가능하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무거운 것이 더 빨리 떨어진다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주장은 '갈릴레이가 실시한 피사사탑의 실험'에 의해 사실이 아님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또 아리스토텔레스의 진공 부정론은 원자론자들의 비판을 야기하는 등 두고두고 논란을 불러일으켰으며, 심지어 과학적 사고의 발전에 걸림돌이 되기도 했다고 합니다.

수평운동과 수직운동이 결합된 발사체(projectile) 운동은 아리스토텔레스가 이해하기 어려운 문제였습니다. 이 운동의 원인(동력인)은 분명합니다. 그것은 돌을 발사하는 투석기이거나 던지는 사람의 손입니다. 문제는 투석기에서 나온 돌을 계속 움직이도록 하는 것이 무엇이냐 하는 것입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이 문제에 대해 다음과 같이 결론내렸습니다. “돌의 앞면이 양쪽으로 밀어낸 공기가 돌의 뒤로 돌아와 돌이 앞으로 나아가면서 생긴 빈 공간을 채우고(진공을 만들지 않도록 하기 위해) 이 공기가 돌을 다시 앞으로 민다.” 물체를 던지면 이러한 과정이 시작되고, 한 번 시작되면 이 과정이 저절로 계속된다는 것입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이런 생각은 엉터리라는 것을 우리는 이미 압니다. 그의 결정적인 오류는 관성의 원리를 몰랐다는 데 있습니다. 물체는 관성에 의해 (저항을 받지 않는다면) 계속 운동하는 것이 자연법칙이죠. 아리스토텔레스의 물리학 가운데 가장 먼저 도전을 받은 것이 바로 관성과 관계된 부분입니다.

아리스토텔레스에게 원동자(the Prime Mover)는 ‘최초로 움직임을 일으키는 것’이며, 자연계에서 일어나는 모든 변화의 궁극적인 원인입니다. 그러나 그는 원동자를 신학적 의미에서의 ‘창조자’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미리 가능태와 현실태를 구분함으로써 다음과 같은 결론에 도달했습니다. 즉 운동이나 변화의 발생을 설명해주는 유일한 방법은 현실적인 어떤 것이 모든 가능적인 것에 '논리적으로' 선행해야 한다는 결론이었습니다. 변화는 현실적인 어떤 것을, 다시 말해 가능태가 섞이지 않은 '순수한' 현실태를 전제해야 합니다. 아리스토텔레스에 따르면 부동의 동자는 힘을 발휘한다는 의미에서의 '작용인'도 아니며 '의지'를 표현하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왜냐하면 그러한 행위들은 가능태를 전제하기 때문입니다.

한편, 그는 『형이상학』에서 사물의 생성과 변화에 대해 ‘가능태(可能態 dynamis)’와 ‘현실태(現實態:energeia, actuality)’라는 상대개념을 내세워, 사물은 가능적 존재(가능태)에서 현실적 존재(현실태)로 발전한다고 설명했습니다. 변화를 말할 때는 현실적인 어떤 것을, 다시 말하면 가능태가 섞이지 않은 ‘순수한’ 현실태를 전제해야 합니다. 이를테면, 도토리는 참나무의 가능태이지만, 도토리에 선행해 순수한 현실태인 참나무를 전제해야 하는 것입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또 그 원동자를 운동의 ‘이유’나 ‘원리’로 채용했습니다. 이러한 이유에서 그는 원동자를 운동의 ‘영원한’ 원리라고 이해했습니다. 또한 원동자를 통한 운동 가설에 따르면 최초 운동이 시작되기 이전에는 '시간'도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이런 이유에서 아리스토텔레스는 시간 내에 ‘창조’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부정했습니다. 최초의 운동이 '창조'이며 그 순간이 바로 시간의 시작이기 때문입니다.

비록 아리스토텔레스의 여러 문장들 속에는 명백히 종교적이며 신학적인 색채가 존재하지만 원동자에 관한 그의 사상은 종교적이라기보다 과학적입니다. 그의 사상에는 운동 및 내재적 형식에 관한 무의식적인 원리가 존재했으며, 그것은 바로 원동자였습니다. 그것은 몇 세기 뒤에, 특히 13세기 토마스 아퀴나스에 의해 기독교의 신을 철학적으로 설명해줄 수 있는 도구가 되었습니다.

힘은 접촉해야 전달된다 ... 진공은 존재하지 않는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생각한 이 같은 힘의 작용방식, 즉 근접작용에서는 진공의 부정은 필연적입니다. 그는 “움직여지는 것과 움직임을 일으키는 것은 연속해 있거나 서로 접촉하고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물리적인 효과가 직접적인 접촉에 의해 전달되어야 하므로 진공에서는 힘이 전달되지 않습니다. 따라서 모든 공간은 물질로써 채워져 있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러므로 세계는 근본적으로 허공 속의 원자로 이루어져 있다고 가정하는 원자론자들의 비판은 피할 수 없었습니다. 가령 자석은 지상의 존재로 ‘최초로 움직임을 일으키는 것’이 아니면서도 다른 것으로부터 움직여지는 일이 없이 다른 물체를 움직입니다. 이 같은 사실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이론에 의하면 불가사의한 것임에 틀림없습니다.

훗날 데카르트가 아리스토텔레스의 주장과 같은 이론으로 무장해 원격작용을 전제한 뉴턴의 중력이론을 공격했습니다. 하지만 원격작용이란 개념은 뉴턴의 중력이론과 더불어 200년 넘게 살아남았습니다. 그러다 20세기 초 양자역학이 나오면서 상황은 또다시 반전되었습니다. 오늘날 물리학의 표준모형에서는 완전한 진공의 존재도 부정되고 있으며, 예전에 원격작용으로 전달된다고 여겼던 힘을 매개입자의 상호작용으로 해석하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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