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은상 교수의 '중독 이야기' (1) 프롤로그 - 마약 중독, 남의 일이 아니다

최은상 승인 2021.04.23 16:50 | 최종 수정 2021.07.12 12:24 의견 0

 

우리의 일상에서 마약은 일부의 사람들이 불법적으로 사용하는 특별한 약물로 취급되고 있다. 그런데 주변을 돌아다보면 마약은 특별한 부류의 사람들만의 전유물이 아님을 금방 알게 된다. 놀랍게도 나를 포함한 우리 주변의 평범한 사람들이 카페인, 알코올과 니코틴이 포함된 커피, 술과 흡연을 습관적으로 즐기고 있지 않은가? 이들은 단지 법률적으로 허용된 마약일 뿐인데 우리는 이들이 마리화나(대마초)나 필로폰과 같이 우리의 정서(mood)를 변화시키는 중독성 약물(마약)이란 사실은 잘 인지하지 못하고 있다.

마약은 우리의 뇌 속으로 들어와 어떻게 정서를 바꿀까? 변화된 정서는 어떻게 중독자로 하여금 마약을 탐닉하도록 하는 것일까? 중독자가 사용한 마약은 혈류를 따라 뇌로 들어간다. 뇌에 도달한 마약은 뇌를 구성하는 신경세포(뉴런)의 전기, 화학적인 변화를 일으키게 된다. 그렇다면 마약은 어떻게 뉴런의 전기화학적인 변화를 일으켜 중독자들로 하여금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쾌락을 주고 이것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게 하는가?

90년대 말 시사 주간지 ‘타임’은 표지 모델로 사람 얼굴을 한 물고기가 낚시 바늘을 물려고 하는 인상적인 그림을 선정했다. 그 내용을 보면 중독자의 감정을 변화시키는 약물들은 뇌에서 도파민(dopamine)’이라고 하는 화학물질(신경전달물질)을 증가시킨다는 것이다. 아직도 마약이 어떻게 중독을 일으키는지 완전히 이해했다고 할 수는 없다. 그러나 마약 중독의 원인을 이해하고 극복하고자 하는 일은 뇌과학자들의 관심 대상으로 지금까지 많은 연구가 이루어져 오고 있다.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 표지. 1997년 5월 5일

마약은 약물 사용에 대하여 강한 의존성(dependence)과 함께 내성(tolerance)을 가지며, 약물의 사용을 중단하면 금단증상(withdrawal syndrome)과 같은 정신약물학적인 변화를 일으킨다. 다시 말해 마약 중독은 강박적인 약물의 사용, 약물의 확보를 위한 극단적인 몰두, 금약을 한 후에도 약물을 사용하던 당시의 상태 되돌아가는 경향인 재발(relapse)이 특징적으로 나타나는 약물 사용 행동 양식이다. 세계보건기구(WHO)는 이와 같은 정신약물학적 특성과 함께 개인이나 사회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약물을 마약으로 규정한다. 많은 국가에서 마약은 불법적인 것으로 통제를 하지만 알코올과 니코틴을 포함하는 주류와 담배 제품(궐련담배, 전자담배, 가열담배)은 법적으로 제제를 하지 않고 있다.

여러분은 학교 앞이나 전통 시장에서 ‘마약 떡볶이’나 ‘마약 김밥’집을 보고 잠시 음식 앞에 붙은 ‘마약’의 의미에 대해 생각을 해보신 적이 있는가? 아마 마약 성분이 들어있는 떡볶이나 김밥보다 한 번 먹어보면 막연히 알고 있는 마약처럼 중단할 수 없는 맛으로 이해했을 것이다. 담배와 술은 마약의 범주에 속하고 마약 떡볶이는 왜 그렇지 않은지 중독의 정의를 가지고 구분해 보자.

필자의 경험에 의하면, 담배는 흡연을 학습한 이후 궐련의 양과 흡연에 대한 의존성은 흡연을 할수록 증가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러나 떡볶이는 그렇지 않다. 떡볶이 맛집에서 한 접시를 먹는 사람이 서너 접시를 먹을 만큼 떡볶이를 먹는 양과 의존성은 크게 증가하지 않는다.

내성은 같은 양의 약물에 반복적으로 노출됨에 따라 약효가 감소하는 현상으로서 약물 사용량을 늘리게 하는 요인이다. 내성 때문에 중독자는 마약을 처음 경험했을 때의 황홀함과 같은 느낌을 받으려면 더욱 많은 양의 약물을 취해야 한다. 처음 음주를 했을 때의 느낌을 지금도 잊지 못한다. 그 후론 그런 느낌을 갖기 위해서는 술 한 잔으론 늘 부족했다. 떡볶이는 그렇지 않다.

금단증상으로 담배를 끊기로 하고 며칠 금연을 했을 때와 떡볶이를 먹지 않았을 때를 비교해보자. 담배를 피우는 사람은 흡연을 지속하다 중단하면 왠지 모를 불안함과 초조함에 휩싸인다. 그러나 떡볶이를 한동안 먹지 않는다고 해서 조금 아쉬운 마음은 있을지언정 불안한 느낌은 들지 않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흡연에 중독된 사람은 개인적으로 건강을 잃게 되는 것은 물론이고 그로 인해 흡연자가 불행한 미래를 맞이하리라는 것은 어렵지 않게 예측해 볼 수 있다. 흡연으로 인한 각종 암과 호흡기 질환은 사회적으로 막대한 비용을 요구한다. 떡볶이는 과식을 하면 조금은 고통스럽지만 흡연처럼 개인이나 그가 속한 집단에 사회경제적으로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지는 않는다.

이제 우리는 명확하게 주류와 담배제품들은 마약으로 판단할 수 있고 떡볶이는 마약이 아닌 기호 식품으로 구분할 수 있겠다. 이들 외에 언론을 통해 우리에게 익숙한 마리화나, 필로폰, 코카인, 아편류, 진정제들 모두 마약으로 구분하여 설명하는 것은 어렵지 않을 것이다.

중추신경 흥분제 ... 니코틴, 코카인, 필로폰, 카페인
중추신경 억제제 ... 알코올, 진정제
환각제 ... 마리화나(대마초), LSD
진통제 ... 헤로인, 모르핀

마약은 일반적으로 네 종류로 나눌 수 있다. 사람의 중추신경계에 작용하여 과도하게 흥분 효과를 일으키는 약물을 중추신경 흥분제라고 한다. 여기에 속한 약물을 의존성이 큰 것부터 나열하면 각종 담배에 포함되어 있는 니코틴, 코카인과 필로폰, 카페인을 들 수 있다. 중추신경 흥분제와 달리 중추신경계를 억제하여 마약의 효과를 나타내는 것을 중추신경 억제제라고 한다. 사람의 뇌는 대체로 흥분성과 억제성 뉴런의 상호 작용을 통해 정서를 조절한다. 알코올과 진정제는 대표적인 중추신경 억제제로써 억제성 뉴런을 억제함으로써 흥분성을 증가시킨다. 환각제는 약물 사용자로 하여금 환시, 환청과 같은 왜곡된 감각을 갖게 하는 것으로서 마리화나와 LSD가 대표적이다. 그 외 마약으로 사용자에게 진통효과를 주는 헤로인과 모르핀이 있다.

마약은 사용자로 하여금 중독을 일으킨다. 사람의 정서는 뇌에서 항시 일정하게 분비되는 도파민을 포함한 다양한 신경전달물질들에 의해 유지된다. 마약은 정서의 변화를 일으킨다. 마약의 사용에 의한 정서의 변화와 밀접한 뇌의 영역을 보상계(reward system)라고 한다. 보상계는 뇌의 전전두엽, 측좌핵, 선조체로 구성되어 있다. 그 외 소뇌, 해마, 변연계 등도 마약 중독과 밀접한 뇌의 영역이다.

도파민은 정서의 유지와 변화에 주요한 역할을 한다. 마약을 전혀 경험하지 않은 사람의 보상계에서 도파민은 일정하게 분비되어 정서를 유지한다. 중독자가 사용한 마약이 혈류를 따라 보상계에 도달하면 도파민의 분비는 크게 증가하여 마약 사용자는 황홀감과 같은 보상감을 맛보게 된다. 다시 말해서 마약 중독자가 얻게 되는 보상감은 도파민의 분비가 증가되기 때문이다.

마약의 사용이 도파민 분비를 증가시켜 사용자로 하여금 이루 말할 수 없는 황홀감과 같은 보상감을 준다면 중독은 오히려 인간의 정서를 바꾸는데 도움이 되는 것은 아닌가, 라고 반문할 수 있겠다. 단연코 그렇지 않다. 사람의 정서는 긍정적인 것과 부정적인 것을 동시에 가지고 있다. 황홀감과 같은 긍정적인 정서를 ‘유포리아’라고 한다. 반면 불안함, 초조함과 같은 부정적인 정서를 ‘디스포리아’라고 한다. 사람의 정서는 서로 상반되는 정서가 균형을 유지하지 못하고 어느 한쪽이 오랫동안 지나치게 증가하거나 감소하는 상태로 변화가 일어나면 정신병적인 상태에 이르게 된다. 마약의 장기적인 사용은 정서의 균형을 파괴하여 정신질환 또는 정신병적 장애에 이르게 하는 행위인 것이다. 대표적 중독성 약물인 코카인과 니코틴의 작용을 통해 중독과 중독에 의한 장애를 좀 더 깊이 있게 알아보자.

코카인 중독자의 뇌를 상상해보자. 비강으로 흡입한 코카인은 혈류를 따라 삽시간에 뇌의 보상계로 전달된다. 보상계에서 코카인은 일정하게 분비되는 도파민의 순환(도파민 신경전달)을 차단하여 도파민 농도를 과도하게 증가시킨다. 물의 흐름을 막아 저수량을 늘리는 댐의 기능을 생각하면 코카인의 역할을 쉽게 이해할 수 있겠다. 코카인과 달리 니코틴 또한 혈류를 따라서 보상계에 이르면 도파민 뉴런의 말단에 존재하는 니코틴 수용체와 결합하여 도파민을 과도하게 분비한다. 이들 두 마약이 작용하는 방식은 서로 다르지만 결과적으로 도파민의 분비를 증가시키는 면에서 이들의 약물학적 작용은 동일하다.

마약에 의해 과도하게 증가한 도파민은 유포리아를 증가시키지만 시간의 흐름에 따라서 도파민은 비활성화되어 그 결과로 유포리아는 감소한다. 도파민의 부족은 중독자에게 디스포리아를 일으키고 그 정도는 시간의 경과에 따라 증가한다. 마약 사용자의 의도와 달리 도파민의 감소에 의해 나타나는 불안감, 초조함, 공포감을 갖는 디스포리아는 중독자에게 도파민의 양적인 증가를 일으키는 마약의 재사용에 대한 갈망을 일으킨다.

의존성의 형성과 동시에, 체내 약물 대사의 증가, 뉴런의 민감도가 변함에 따라 마약 중독자의 유포리아는 줄어든다. 마약 사용에 의한 내성의 증가는 중독자로 하여금 많은 양의 마약 사용에 의존하게 한다. 중독자는 도파민의 증가에 의한 유포리아를 느끼기 위해 마약의 재사용에 대한 갈망을 갖게 되고 자기 의지와 관계없이 마약을 사용하게 되는 것이다. 중독자의 마약 사용이 증가할수록 유포리아는 처음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작아지고, 디스포리아는 커지는 정서의 역전현상, 즉 도파민의 감소에 의한 정서의 항상성은 파괴되어 정신병적 장애가 일어나는 것이다.

마약에 의해 증가된 보상계의 도파민 분비는 기저핵 회로(basal ganglia circuit)를 통해 대뇌 피질로부터 보상계로 글루타메이트(glutamate)의 분비를 증가시킨다. 결국 코카인이나 니코틴에 의해 증가한 도파민 분비는 연쇄적으로 글루타메이트 분비의 증가를 일으키는 물질로 작용하여 마약 중독자로 하여금 유포리아와 함께 마약의 의존성을 심화시켜 마약을 취하고자하는 갈망(craving)을 극대화 한다.

실험동물을 이용한 연구 결과에 의하면 코카인을 경험하지 않은 동물은 도파민과 글루타메이트를 일정하게 분비함으로써 정상적인 정서와 행동을 나타낸다. 실험동물이 처음으로 마약을 경험하면 도파민의 분비가 급격하게 증가하며 보상감은 커진다. 실험동물에게 마약을 반복적으로 투여하면 도파민과 글루타메이트 분비가 모두 증가하면서 약물에 대한 갈망이 커진다.

따라서 마약 중독은 마약을 사용한 후 시간이 지남에 따라 수반되는 도파민 분비의 감소에 의한 의존성(보상으로서 황홀감에 대한 기대감)의 감소와 내성의 증가를 극복하기 위해 약물을 사용하는 행위로 설명할 수 있겠다. 또한 보상계의 기저핵 회로를 통해 증가한 글루타메이트의 분비는 마약에 대한 의존성을 심화함으로써 마약의 사용을 갈망하는 행위를 초래하는 것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마약의 사용은 중추신경계에서 도파민과 글루타메이트의 양적인 증가에 따른 정서의 변화를 일으키는 중독의 형성뿐만 아니라, 말초신경계에서는 내장신경(자율신경)인 교감신경의 기능이 증진되어 소화기능의 억제, 성적인 기능 등이 강화되는 등 부작용이 일어난다. 마약의 사용에 의한 내장신경 기능의 왜곡은 마약이 살 빼는 약, 수험생들에게 머리 좋은 약으로 둔갑되어 유통이 되는 탓으로 특히 미성년자의 건강에 심각한 영향을 미친다. 또한 마약의 사용은 성폭행, 폭력과 같은 반윤리적인 범죄의 원인을 제공하는 점에서 사회적으로 그 심각성은 이루 말할 수 없다.

마약의 강한 의존성과 내성 때문에 마약을 취하고자하는 강한 욕구는 더 이상 개인의 의지로 조절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마약 중독은 황홀감 같은 보상감과 함께 중독자에게 약물에 대한 갈망, 강박감, 환각, 수면장애와 같은 정신병적 고통을 강요한다.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마약은 도파민의 순환을 방해하여 장기적으로 도파민 뉴런을 파괴하는 구조적인 문제를 일으킨다. 도파민 뉴런의 약화는 뇌신경계 전체의 장애를 초래한다. 그 결과 정서의 파괴, 기억의 소실과 같은 인지 장애뿐만 아니라 보행 장애, 노화의 촉진, 뇌혈관의 파괴와 같은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초래한다.

동서를 막론하고 고귀한 생명들이 마약 중독으로 사라져 가고 있다. 마약 중독은 생명현상을 유지하는 정보전달의 항상성이 파괴되어 일어나는 무서운 뇌질환이다. 교육을 통한 마약 중독의 예방 그리고 국가적 차원의 치료와 재활에 대한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

<부산대학교 생명과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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