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은상 교수의 '중독 이야기' (7) 환각제

최은상 승인 2021.06.28 14:07 | 최종 수정 2021.06.28 14:38 의견 0

자극은 눈에 보이는 것, 귀로 들리는 소리, 혀로 느끼는 맛, 코로 맡는 냄새, 피부로 느끼는 다양한 감각들이다. 감각기관은 인체로 오는 자극을 신경신호로 바꾸어 뇌로 전달하는 역할을 한다. 뇌는 이 신호를 인식함으로써 인체로 오는 자극이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이해한다. 뇌가 제 기능을 하지 못하면 자극의 실체를 이해하지 못하게 된다.

환각제는 여러 감각 중에서도 특히 시각, 청각, 촉각에 대한 감각을 왜곡시켜 실제와 매우 다른 형태로 인식하게 하는 약물이다. 환각제에 의한 왜곡의 정도는 약물의 사용량, 약물 경험, 그리고 사용자의 인격(personality)에 따라 다양하게 나타날 수 있다.

메스칼린(mescaline), 실로시빈(psilocybin)은 각각 선인장과 환각 버섯의 활성 성분이다. LSD(lysergic acid diethylamide), DMT(dimethyltryptamine), 5-MeO-DMT(5-methoxy-dimethyltryptamine)는 합성 환각제이다. 이들은 뇌 안에서 분비되어 정서의 유지에 관여하는 신경전달물질인 세로토닌(serotonin)과 노르에피네프린(norepinephrine)의 구조와 비슷하다.

메스칼린은 페요테 선인장(peyote catcus, Lophophora williamsii Lemaire) (그림)의 환각 성분이다. 미국 남서부와 멕시코 북부가 원산지인 이 선인장은 가시가 없고 지면에 납작하게 붙어 있어서 키가 큰 산 패드로(San Pedro, Echinopsis pachanoi) 선인장과 비교된다. 말린 선인장 절편을 씹어서 얻은 환각 효과는 수 천 년 동안 그 지역 사람들의 종교의식이나 영적인 치유에 사용되어왔다.

페요테 선인장

메스칼린은 1898년 독일의 화학자 헤프터(Arthur Heffter)에 의해 분리되었으며 1919년 오스트리아 화학자 스패스(Ernst Spath)에 의해 합성되었다. 메스칼린은 1953년 영국의 작가 헉슬리(Aldous Huxley)가 멕시코 여행을 통해 자신의 약물 경험을 저술한 책 ‘인식의 문(The doors of Perception)’과 ‘천국과 지옥(Heaven and Hell)’을 통해 그 존재가 세상에 알려졌고, 1960년대 환각제가 인기를 끌게 된 계기를 마련하였다. 오늘날 메스칼린은 합성하는데 많은 비용이 들고 수요가 없어서 거의 사용되지 않는다.

실로사이베 속(屬)의 버섯(Psilocybe mexicana) (그림)은 환각 성분인 실로시빈(psilocybin)을 가지고 있다. 1958년 LSD를 합성한 스위스 화학자 호프만(Albert Hofmann)이 실로시빈을 분리하였다. 실로시빈이 포함된 환각 버섯은 주로 말려서 먹거나 차로 우려서 마신다. 실로시빈은 소화에 의해 실로신(psilocin)으로 대사되어 중추신경계에 작용한다. 파리지옥 버섯(fly agaric, Amanita muscaria)도 환각 물질인 무시몰(muscimol)과 이보테닉산(ibotenic acid)을 가지고 있다.

실로사이베 멕시카나

환각 버섯의 사용은 페요테 선인장의 사용만큼 긴 역사를 가지고 있다. 알제리의 동굴에서 발견된 벽화는 기원전 3,500년에 사람들이 환각 버섯을 종교 의식에 사용했던 모습을 표현하고 있다. 고대 아즈텍과 마야 문명도 환각 버섯을 종교 의식에 사용했던 기록을 전하고 있다. 아즈텍을 정복한 스페인은 종교적 목적을 위해 환각 버섯을 먹는 원주민의 문화를 박해하였으나 성공하지 못했다. 1957년 미국의 저술가 왓슨(Gordon Wasson)은 두 차례에 걸친 멕시코 여행을 통해 무속인(샤먼)이 신성 의식으로 사용하던 환각 버섯을 ‘라이프(Life)’지에 기고하여 그 존재를 세상에 알렸다.

DMT와 5-MeO-DMT도 남미가 원산인 식물에서 발견된다. 브라질, 컬럼비아, 페루, 베네수엘라의 원주민 부족들은 이들 성분이 들어있는 식물을 코담배로 피운다. 아마존 강우림의 아야후아스카(ayahuasca, Banisteriopsis caapi)는 이 식물의 줄기에 있는 베타-카로텐(beta-carotene) 성분과 사이코트리아, 디프롭테리스 관목의 잎에 있는 DMT 성분을 섞어서 만든 환각 음료이다. 베타-카로텐은 모노아민 산화효소(monoamine oxidase)의 기능을 막아서 DMT를 파괴하지 않고 뇌에 이르게 하여 환각 효과를 일으키게 한다. 그런데 최근에는 아야후아스카 보다 ‘합성 DMT 유사체’가 더 인기가 있다고 한다. alpha-methyltryptramine(AMP)와 5-메톡시-디이소프로필트립타민 (5-methy-diisopropyltryptamine, 5-Meo-DiPT)이 대표적인 DMT 유사체들이다. 후자는 암 시장에서 폭시 메톡시(Foxy Methoxy)나 폭시(Foxy)로 알려져 있다.

1943년 호프만은 맥각(麥角) 알칼로이드인 리세르그산(lysergic acid)을 가지고 LSD(lysergic acid diethylamide)를 합성하였다. 그는 자신에게 LSD를 투약한 후 환각 증상을 경험하였다. LSD는 눈으로 겨우 보일 정도로 작은 크기의 결정 하나(0.05 mg, 경우에 따라서는 0.03 mg)만 사용해도 강한 환각 증상을 일으킨다.

1940년대 후반과 1950년대 초반 사이에 과학자들은 LSD가 세로토닌의 신경전달을 조절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 발견으로 LSD는 정신병 치료와 정신 분석에 매우 가치 있는 도구로 사용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였다. 그 중의 하나가 유럽에서 시행된 정신병 치료(psycholytic therapy)이다. 이 방법은 환자에게 투여하는 LSD의 사용량을 낮은 농도에서부터 점차 높여주면 억압된 환자의 기억이 열린다는 것이다. 이와 달리 영국, 캐나다, 미국의 정신과 의사들은 한 번에 고농도의 LSD를 환자에게 투여하는 방법으로 환자의 생각을 알아내려고 하였다. LSD를 이용한 정신병 치료는 실험 방법론의 문제로 인해 1970년대에 중단되었다.

환각제 중에서 효력이 가장 강한 것은 LSD 이다. LSD의 환각효과는 코카인의 100배, 메스암페타민의 300배 정도로 알려져 있다. 그 다음이 실로시빈, 메스칼린, DMT 순이다. 환각 효과는 약물의 농도와 사용자가 약물을 마지막으로 사용한 시간에 따라서 다르지만 대체로 약물의 투여 후 30~90분 안에 나타난다. LSD와 메스칼린은 환각 효과가 6~12시간 이상 지속되지만 환각 버섯의 효과는 금방 사라진다. 흡연으로 DMT를 들이마시면 수 초 안에 환각 느낌을 갖고 5~20분쯤에 최고조에 이르다가 1시간 안에 사라진다.

블로터

LSD의 사용 방법은 다양하다. 클럽에서는 주로 블로터(blotter paper)를 사용한다. 이 방법은 물에 녹인 LSD를 블로터에 흡수시킨 다음 건조시켜 한 조각씩 여러 명이 사용하기 좋게 만든 것이다. 작은 조각에는 아주 다양한 그림과 사진들이 들어있다(그림).

환각제에 도취된 상태를 트립(trip)이라고 한다. 약물을 했을 때 사용자의 의식이 다른 세계로 이동한 것과 같은 효과를 내기 때문이다. 트립이란 말을 약물 경험으로 생각하면 이해하기가 쉽다. LSD에 의한 트립은 약물을 취한 후 약 30분에서 1시간 정도가 지나면 강렬한 색감과 함께 기하학적인 패턴이 나타나고 한 눈을 감았을 때 사물이 다르게 보이는 것과 같은 시각의 왜곡으로 시작된다.

이런 도취감은 2시간 내에 일정한 상태에 이르게 되고 시각의 왜곡은 점차 강해진다. 3시간이 지나면 시각의 왜곡은 최고조에 이르고 그 효과는 2~3시간 동안 지속되어 약물 사용자는 다른 세계에 와 있는 느낌을 갖는다.

이 때 사용자는 공감각(共感覺, synesthesia)을 경험한다. 공감각은 사용자가 수많은 자극이 제어되지 않은 채로 동시에 뇌로 전달되는 것 같은 느낌을 갖는 것으로써 사용자는 ‘색이 들리고 소리가 보이는’듯 초월적이고 신비로운 상태를 경험하게 된다. 감각이 최고조에 이른 후 환각 효과는 서서히 낮아져서 약 2시간 정도 지나면 약물의 효과는 사라진다. 물론 사용자의 정신 상태가 정상으로 돌아오려면 다음 날이 되어야 가능하다.

LSD 사용자는 환시, 환청, 공감각뿐만 아니라 비현실감(depersonalization)을 갖는다. 그의 정서는 유포리아 상태에서 두려움과 공포로 바뀌기도 하며, 논리적인 사고의 붕괴와 같은 광범위한 심리적 변화를 경험한다. LSD 트립에서 사용자는 좋은 경험(good trip)이나 공포스러운 경험(bad trip)을 할 수도 있다. LSD 트립의 결과는 예측할 수 없지만 사용한 약물의 농도, 사용자의 약물 사용에 대한 기대감과 약물 경험에 따라 다르게 나타날 수 있다.

환각제는 심리적인 변화뿐만 아니라 생리적인 변화도 일으킨다. LSD의 경우 교감신경을 자극하여 동공의 확대, 심장박동과 혈압의 증가, 체온의 증가를 일으킨다. LSD는 사용자에게 페요테 선인장이나 환각 버섯을 먹었을 때 일어나는 어지러움, 구역질, 구토 증세를 일으키기도 한다.

메스칼린은 신경전달물질인 노르에피네프린과 중추신경 흥분제인 암페타민과 화학적인 구조가 유사하다. 그렇기 때문에 암페타민과 암페타민 유사물질들(DOM, TMA)을 고농도로 오랫동안 투여하면 환각 증상을 일으킨다. 메스칼린, 암페타민, 암페타민 유사체를 모두 펜에틸아민(phenethylamine) 환각제라고 한다. 이들을 제외한 환각제는 세로토닌과 같은 인돌아민(indolamine) 환각제가 대부분이다.

환각을 일으키는 감각과 인지의 왜곡은 세로토닌 신경전달 뿐만 아니라 노르에피네프린 신경전달도 깊이 관여하는 것으로 생각된다. 이와 함께 환각은 전뇌, 선조체, 시상을 포함하는 뇌 영역에서 정보의 흐름, 그리고 시각과 청각 정보가 뇌로 전달되는 과정을 방해하여 일어나는 정서의 왜곡 현상으로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환각제가 뇌에서 어떻게 작용하는가에 대한 기전의 연구는 더 필요해 보인다.

환각제는 일반적으로 의존성이 없거나 중독되지 않는 것으로 생각한다. 그런 주장을 하는 근거는 사용자가 환각제를 수시로 사용하지 않으며, 아편, 코카인, 알코올, 니코틴과 같이 약물에 대한 갈망을 보이는 것도 드물다. 더욱이 환각제는 금단 증상과 같은 육체적인 의존성도 일으키지 않고 약물을 찾는 강화 효과도 없다는 것이다.

환각제가 중독성이 없다는 것은 논쟁의 여지가 있다. LSD 자가투여실험에서 실험동물은 LSD 투여에 대한 갈망을 나타낸다. 또한 대부분의 환각제는 빠른 내성을 일으키며 이들 사이에는 교차 내성도 존재한다. 또한 환각제 사용으로 인한 공포감과 공황 상태, 플래시백(flash back, 환각의 재현)은 결코 간과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LSD는 지금까지 중독이야기 연재를 통해 살펴보았던 의존성 약물들 못지않게 정신, 행동의 변화를 일으키는 강력한 마약이다.

이런 상상을 해본다. 2021년 6월 도심의 한 클럽 앞에 한 무리의 젊은이들이 모여 있다. 한 친구가 LSD 블로터 한 조각을 입에 넣으면서 다른 친구에게 권한다. 그 친구는 기다렸다는 듯이 블로터를 입에 넣는다. 현란한 조명 아래서 그들은 LSD 트립을 떠났다. 다음 날 그들은 탈진한 상태가 되어 돌아왔다. 그들이 환각 여행을 통해 경험한 세계는 무엇일까. 그들이 경험한 세계는 악몽을 꾸다가 아침이 되면 깨어나 안도할 수 있는 현실로 돌아올 수 있는 것이 아님은 분명하다. LSD의 남용으로 인한 정신병적 증상은 사용자에게 현실 속에서도 환각 경험을 계속하게 하는 고통만 안겨줄 뿐이다.

우리나라에서 LSD는 항정신성 의약품 '가'목에 해당하여 마약 중에서도 가장 형량이 무겁다. 젊은 세대가 LSD에 노출되어 있다. LSD의 사용이 창의력을 높인다는 일부 유명인들의 경험과 감성적인 주장은 반드시 따져보아야 한다.

<부산대학교 생명과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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