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해창 교수의 '창조도시 부산' 소프트전략 (14)‘행복한 인생이모작 학교’-부산형 50플러스재단을 만들자

김 해창 승인 2019.06.10 15:10 | 최종 수정 2019.06.11 07:37 의견 0
사진1: (재)희망제작소의 ‘2008 행복설계 아카데미’ 웹포스터.
(재)희망제작소의 ‘2008 행복설계 아카데미’ 웹포스터.

“당신의 노후는 행복하십니까?” 보험회사의 광고문구 같은 이 말이 이제는 남의 이야기 같지가 않다.

UN이 정한 바에 따르면 65세 이상 노인인구 비율이 전체 인구의 7% 이상을 차지하는 사회를 고령화사회(ageing society), 14% 이상이면 고령사회(aged society), 20% 이상이면 초고령사회(post-aged society)로 구분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2000년 7월에 노인인구가 전체인구의 7.1%를 차지해 ‘고령화사회’에 진입했으며, 2017년에는 전체 인구의 14%를 넘어서면서(14.2%) 고령사회에 진입했다. 당초 통계청이 2020년경에 고령사회로 접어들 것이란 전망보다 3년 앞서 고령사회에 들어섰다. 물론 영국, 독일, 프랑스 등은 이미 1970년대에 고령사회가 됐고 일본의 경우도 1970년에 고령화사회, 1994년에 고령사회에 진입했다. 통계청은 우리나라의 초고령사회의 진입을 2026년(20.8%)으로 전망하고 있다.

고령화사회는 의학의 발달이나 생활환경의 개선으로 평균수명이 늘어나 생기는 선진국형 사회현상이지만 양극화의 심화로 빈곤·질병·고독감 등과 같은 심각한 노인문제를 필연적으로 낳게 된다. 더욱이 선진국에 비해 급속히 고령화사회를 거쳐 고령사회, 나아가 초고령사회로 치닫고 있는 우리나라는 노인문제가 저출산문제와 맞물려 커다란 사회이슈가 되고 있다.

일본의 단카이세대(団塊の世代: 2차 대전 후 1947년~1949년 사이의 베이비붐으로 태어난 세대)와 비슷한 우리나라의 한국전쟁 후 베이비붐 세대(1955년~1963년)의 은퇴도 이제 본격화한다. 필자를 포함해서 1955년에서 64년 사이에 태어난 우리나라 베이비붐세대는 약 900만 명에 이르면서 경제활동인구도 본격적으로 줄어들게 됐다. 통계청에 따르면 2016년 베이비붐세대가 전국 인구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14.2%인데 비해 부산시의 경우 부산시 인구의 16.1%를 차지해 전국에서 베이비붐세대 인구가 가장 많다.

60세 전후의 정년퇴직은 고사하고, 45세에도 퇴직하지 않으면 눈치를 모르는 ‘사오정’, 38세가 구조조정의 경계라는 ‘삼팔선’이라는 말이 회자된 지도 제법 오래된 오늘날, 문제는 명예퇴직을 하건 정년퇴직을 하건 앞으로 보내야 할 노후기간이 과거 세대에 비해 적어도 20~30년은 더 늘어났다는 것은 명백한 사실이다.

『정년 후의 80000시간』(강창희)이란 책을 보면 60세에 정년퇴직을 한다고 가정해도 80세까지 살면 정년 후의 인생이 20년이다. 정년퇴직을 하고 나서 잠자는 9시간, 식사하는 3시간, 화장실 가는 1시간 등을 다 빼더라도 하루 11시간 정도가 남는데 이를 20년간 계산하면 약 80,000시간이다. 우리나라 직장인들의 연평균 근로시간이 2,300시간인데 60세 정년 후의 80,000시간은 현역시절의 35년 일하는 것과 맞먹는 시간이라는 것이다.

서울대학교 생활과학연구소가 지난 2009년 통계청 가계동향조사 결과를 근거로 분석한 은퇴소득대체율은 42%에 불과했는데 이는 은퇴 이전 가령 100만 원의 월 평균 소득이 노후 진입과 동시에 42만 원으로 대폭 줄어든다는 것을 의미한다. 금전적 궁핍도 문제지만 지금까지 직장에서 일해 온 시간만큼이나 노후에 할 일 없는 `무위고(無爲苦)`는 더 큰 난제라 할 수 있다.

『시골에서 찾은 인생 이모작』(김경래)은 시골이야말로 '인생 2모작 또는 3모작을 할 수 있는 경쟁자 없는 블루오션 시장'이라고 주장한다. 텃밭에 채소를 길러먹으니 먹을거리 걱정 없고, 차를 끌고 나가도 주차 걱정이 없는 곳이 바로 시골이며, 경쟁자가 없어 조금만 노력하면 내가 최고가 될 수 있고 도시보다 덜 벌어도 더 풍요롭게 살 수 있다는 것이다.

시대는 이제 한평생 한 두 직장을 다니다 은퇴하면 ‘인생이 종치는’ 삶이 아니라 이제는 은퇴 이후 새로운 인생을 활기차게 사는 ‘인생 이모작’이 절실히 요구되는 시대다. ′퇴직′은 피할 수 없는 운명일지 몰라도 ′은퇴′후의 삶만은 자기 마음먹기에 따라서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이다.

이처럼 인생 이모작과 관련해 은퇴 이후의 생활에 관한 책도 다양하게 나오고 있는데 그 내용은 주로 ‘노후의 재정적 안정’ ‘몸과 마음 건강 다스리기’ ‘사회변화에 따른 지식 재충전’ ‘주변사람 돌보기 및 지역 참여’ 등으로 요약된다. 이러한 인생 이모작은 기존의 학벌사회, ‘회사인간’의 연장이 아니라 ‘개성 발휘’ ‘지역 사회 공헌’이라는 새로운 패러다임 아래 ‘멋진 어른’의 모습으로 지역에 새롭게 ‘데뷔’하는 그런 삶이어야 한다. 남에게 행복해보는 것 같은 삶이 아니라 자신과 주변 사람이 진정 행복함을 느끼는 그런 삶을 살아야 하는 것이다.

김해창

그러나 이런 멋진 노년을 살고 싶은 마음은 꿀떡같지만 이러한 인생 이모작을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는 참으로 막막하다고들 한다. 베이비붐세대는 그동안 열심히 일하는 것만 배웠지 퇴직 이후의 삶에 대해선 제대로 생각할 기회조차도 갖지 못했던 까닭이다. 이러한데서 지자체나 교육청이 적극 나서 ‘인생이모작 학교’를 적극 지원할 필요가 있다. 이는 경쟁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한 ‘회사인간’이 아니라 은퇴 후의 삶도 한번쯤 생각할 줄 아는 ‘사회적 인간’를 키워내기 위해 필요한 사회적 틀거리이기도 하다.

이러한 퇴직자들의 새로운 인생이모작 학교의 모델들이 십여년 전부터 나오면서 이제는 지자체에 따라서는 아예 제도화된 사례도 많다. 그러나 아직 부산시의 경우 이러한 ‘인생이모작 학교’의 제도화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인생이모작학교를 처음 다룬 곳은 (재)희망제작소였다. 희망제작소는 2007년 대한생명과 함께 만든 전문직 퇴직자들을 위한 국내 최초 NPO입문 프로그램으로 ‘행복설계 아카데미’ 개설해 그 뒤 모두 13기 총 400명의 수료생을 배출했다. 이들 중 절반 가까이가 현재 지역 시민단체, 대안학교, 사회적 기업, 국제구호단체 등 다양한 비영리단체에서 상근활동가, 대표, 전문위원, 자원활동가 등으로 참여하며 제2의 인생을 설계하고 있다고 한다. 2010년부터 희망제작소는 ‘시니어 사회공헌센터’를 두고 행복설계아카데미 프로그램도 전문과정, 직장인 과정을 신설하고 개인 역량과 욕구에 맞춘 컨설팅에 나섰고, ‘시니어사회공헌사업단’을 꾸려 시니어들의 구체적인 경험과 능력을 비영리단체와 연결하고 시니어들의 사회혁신 활동과 단체설립을 지원하고 있다.

이러한 희망제작소의 해피시니어사업은 2004년 당시 박원순 희망제작소 상임이사(현 서울특별시장)가 독일여행 중 우연히 만난 루거 로이케(Rudger Reuke) 씨로부터 영감을 얻었다고 한다. 로이케 씨는 35년간 독일 정부기관 DED(독일개발원조기구)에서 근무하다 은퇴 후 해외원조 민간단체인 ‘저먼워치(German Watch)'에서 일을 시작했는데 정부 연금을 받고 있기 때문에 매일 출근해 일할 곳이 있는 것만으로도 행복하다며 이 단체로부터는 1유로만 받기로 하고 기쁘게 일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행복설계아카데미는 바로 ’한국판 1유로맨‘을 만들기 위한 행복한 인생 이모작 프로젝트였던 것이다.

그 뒤 인생 이모작을 고민하는 정부 차원에서 노력도 있었다. 한국직업능력개발원은 2011년 ‘제2의 인생설계 지원프로그램’을 운영했는데 이는 정부 차원에서 연구한 최초의 은퇴 지원 프로그램이다. 4개월 동안 진행되는 프로그램은 자기이해→생애계획 수립→직업탐색→합리적 의사결정→효과적 실행 및 준비→사내 외 교육 및 기타 활동→마무리 등 7단계로 구성됐다. 이 프로그램을 개발한 한국직업능력개발원의 김수원 박사는 ‘인생설계 전문가 양성이 시급하다’고 강조하고 ‘직업훈련기관들 간의 네트워크 구축이 필요한데 특히 노동부 산하 종합고용센터에서 이러한 일을 하는 것이 효율적’이라고 제안했다.

이렇게 보면 기존의 노인대학도 프로그램만 잘 짜면 가장 좋은 ‘인생이모작 학교’로 변신할 수 있을 것이다. 인생 이모작이란 강령을 내걸고 2005년 3월 설립된 인천광역시 부광노인대학는 2011년 1월 30일 제4회 대학 및 제2회 대학원 졸업식을 가졌다. 이날 졸업생은 151명으로 졸업식장의 야외 홀에서는 별도 ‘졸업작품전’이 열렸다. 학과도 한글학과, 일어학과, 영어학과, 중국어학과, 합창학 노래교실학과, 서예학과, 우리 춤 체조학과, 하모니카학과, 치료레크레이션학과, 건강체조학과, 게이트볼학과, 수지침학과, 배드민턴학과, 스포츠댄스학과, 생활요가학과, 탁구학과, 컴퓨터학과, 장기학과, 성경이야기학과, 꽃꽂이학과, 원예학과 등 23개 학과나 된다고 한다(http://blog.daum.net/salamstory/15860462). 이러한 노인대학의 변신도 아름답지 않은가.

서울특별시는 박원순 변호사가 시장이 된 이후 2016년 4월 ‘서울특별시 50플러스재단을 만들었다. 이 재단은 서울시 장년층(만50세~64세)의 은퇴 전후의 새로운 인생 준비 및 성공적인 노후생활을 위한 사회참여 활동 지원하기 위해 서울시의 출자출연기관으로 ‘서울특별시 50플러스재단 설립 및 운영에 관한 조례’에 따라 설립되었다. 그리고 서울시50플러스 중부캠퍼스(공덕역), 서부캠퍼스(불광역), 남부캠퍼스(천왕역)를 갖고 있다.

2016년 12월에는 충남도도 베이비부머 지원 '인생이모작지원센터'를 열었다. 홍성군 충남노인회관 1층에 자리잡은 이 센터는 인생 설계 아카데미, 카운슬러 양성, 이모작 열린 학교 등의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이 센터는 한국노인인력개발원의 ‘60+교육센터’ 운영기관으로도 선정됐다(충청뉴스, 2019.4.2).

한경비즈니스(2017.3.21)는 남경아 서울시50플러스 서부캠퍼스 관장을 인터뷰한 기사를 보냈다. 남 관장은 ‘앙코르 커리어’의 중요성에 대해 이야기했다. 앙코르 커리어는 미국의 비영리단체 ‘시빅벤처스’의 설립자 마크 프리드먼이 그의 저서에서 은퇴 이후 제2의 인생을 앙코르 커리어라고 정의한 데서 비롯된 것으로 ‘3P(사회공헌·Purpose, 개인적 성취·Passion, 소득·Paycheck)’를 갖춘 사회공헌 일자리를 의미한다. 남 관장은 50플러스 세대에게 “제2의 커리어는 제1의 커리어의 연장선처럼 생각하지 말라”고 조언했다. 또한 여유를 가지고 인생을 재설계한다는 각오로 새롭게 배우고 도전하는 것이 중요하며 8세가 되면 초등학교에 가듯이 인생의 중반기에도 또 한 번의 배움의 과정을 거쳐 경험과 역량을 살릴 수 있는 일자리를 가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사진2: 일본의 ‘숙년 성년식’ 행사를 알리는 홈페이지.
일본의 ‘숙년 성년식’ 행사를 알리는 홈페이지.

이웃나라 일본의 경우 몇몇 지자체나 노인단체에서 60세, 80세에 성년식을 다시 하는 ‘숙년(熟年) 성인식’ 행사가 호평을 얻고 있다. 니가타현 쓰바메(燕)시는 노인연합회 주관으로 1995년부터 매년 일본 성인의 날인 1월 10일에 80세를 4번째 성인식이라고 생각해 80세가 되는 노인들을 대상으로 건강과 장수의 축하연을 베풀고 있다. 숙년성인식은 청년시절 전쟁 기억밖에 없었던 세대들에게 ‘청춘 돌려주기’ 사업으로 시민단체가 발상을 한 것으로 지금은 ‘80세까지 건강하게 살아 숙련성인식 축하를 받자’는 말이 노인들 사이에 돌고 있다고 한다.

야마구치현의 아지스(阿知須)정에서는 ‘제2의 성인식’ 행사로 회갑을 맞는 시민을 대상으로 숙년성인식을 갖는데 ‘숙년의 파워를 결집해 기쁨 넘치고 서로 배려하는 마을 만들기와 지역사회 발전에 공헌하자’는 선언도 하고 있다. 사이타마현의 도코로자와(所沢)시는 생활정보지 ‘숙년만세’와 공동으로 환갑을 맞는 시민을 대상으로 자신의 재능을 선보이는 ‘숙년만세’ 콘서트를 매년 개최하고 있다. 이러한 면에서 우리도 회갑의 의미를 새롭게 보고 이날을 지역 봉사자로 데뷔하는 날로 삼으면 어떨까 싶다.

그런데 이러한 인생이모작학교의 발상이 우리 부산에는 잘 보이지 않는다. 부산시와 교육청, 상공회의소나 시민단체가 지혜를 모아 ‘행복한 인생이모작학교’를 지역에 많이 만들면 좋겠다. 이를 보다 체계적으로 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부산형 50플러스재단’ 설립이 절실하다. 이러한 실버인력의 재능을 최대한 활용하기 위해서는 부산지역의 구․군별 또는 동별로 ‘실버은행’이나 ‘실버 마이스터제’ 등을 도입해 지역의 실버 계층의 능력을 체계적으로 키우고 이들을 지역사회에 적극 참여시키는 사회적 일자리 만들기에 힘을 모았으면 좋겠다. 이러한 제도적인 뒷받침이 되면 ‘행복한 인생이모작학교’는 ‘취미+건강+정보사회 이해+지역공헌’ 등을 실천하는 지역 실버 활동가도 길러낼 수 있을 것이다.

미국의 생태주의 철학자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Henry David Thoreau)는 ‘인생은 여행이지 머물러 있는 정거장이 아니다’라고 했다. 은퇴 이후에도 ‘어릴 적 꿈’을 잃지 않는 ‘아름다운 은발’의 힘을 지역에서 마음껏 펼칠 수 있는 장을 만드는 것이 고령화시대 지자체의 최대 과제 중의 하나가 아닐까 싶다.

<경성대 교수·환경경제학자, 소셜디자이너>

저작권자 ⓒ 인저리타임,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