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성욱 원장의 체질의학 (7)사단론(四端論)3

허성욱 승인 2020.04.14 23:02 | 최종 수정 2020.04.15 19:45 의견 0
National Palace Museum / Public domain
맹자[National Palace Museum / Public domain]

본체인 성명을 유(有)·무(無)로 밝게 변별(明辯) 하여야 한다는 것은 ‘턱에는 주책이 있으면서(頷有籌策) 동시에 턱에 교만한 마음이 있다(頷有驕心)’고 하였는데 이는 턱에는 주책이 있는데, 턱에 주책이 있다는 것을 스스로 공부하여 밝혀 분별하면 있는 것이고, 그렇지 못하면 교만한 마음(驕心)이 있다는 의미이다.

즉 인간은 본래부터 성명을 깨달은 존재로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어리석고 부족한(愚不肖)한 존재로 태어나는데, 본성으로 내재된 주책을 밝게 변별(明辯)하지 못하면 턱에 교만한 마음이 있게 된다. 이는 인간에게 선성(善性)과 욕심(慾心)이 함께 존재하는 것과 같다.

이런 까닭에 동무(東武) 이제마 선생은 인체 내에 있는 하늘인 이목비구(耳目鼻口)와 인간 본성으로 세워진 폐비간신은 사람이 모두 요순 같은 성인이 되지만, 이미 성명(性命)으로 내재된 턱·가슴·배꼽·배(頷臆臍腹)와 머리·어깨·허리·엉덩이(頭肩腰臀)는 사람이 모두 스스로 요순 같은 성인이 되지 못한다고 하였다.

즉 턱·가슴·배꼽·배(頷臆臍腹)와 머리·어깨·허리·엉덩이(頭肩腰臀)에 내재되어 있는 성명을 밝혀 분별한 이후에 지행(知行)인 주책(籌策--性)과 식견(識見--命)으로 깨달아지기도 하고, 성명을 밝혀 분별하지 못하면 교만한 마음과 멋대로 하는 마음으로 왜곡되기도 한다는 것이다.

주책(하늘의 뜻을 계산하는 지혜)이 있으면 교만한 마음이 없고, 교만한 마음이 있으면 주책이 없게 된다. 그러므로 사람들은 본성을 밝게 변별하여 스스로 깨닫는 것에 의하여 주책과 식견이 온전히 갖추어진 성인(聖人)이 되기도 하고, 그렇지 못하면 폭군이 되기도 한다고 하였다.

“턱·가슴·배꼽·배(頷臆臍腹) 가운데 스스로 쉬지 않는 지(知--지혜,양심)가 있어 스스로 갈고 닦으나, 교만하고 뻐기고 함부로 하며 과장하는(驕矜伐夸)) 삿된 마음이 이것을 이기면 스스로 그 지(知)를 포기하여 넓게 두루 통하지 못하게 되고, 머리·어깨·허리·엉덩이(頭肩腰臀) 아래에 스스로 쉬지 않는 행(行)이 있어 밝게 빛나지만, 멋대로 하고 거만하고 게으르고 도적질하는(擅侈懶竊)) 욕심(慾心)이 이것을 억누르면 스스로 그 행(行)을 포기하여 바르게 행하지 못하게 된다.”

“사람들의 이목비구는 천(天--하늘의 차원)이니 천(天)은 지혜로우며(知), 사람들의 폐비간신은 인(人--사람의 차원)이니 인(人)은 어지다(賢). 나의 턱·가슴·배꼽·배(頷臆臍腹)는 나 스스로의 마음으로 삼지만 어리석음을 면하지 못하니, 내가 어리석음을 면하는 것은 나에게 있으며, 나의 머리·어깨·허리·엉덩이(頭肩腰臀)는 나 스스로의 몸으로 삼지만 부족함을 면치 못하니, 내가 부족함을 면하는 것은 나에게 있다.”

이는 턱·가슴·배꼽·배에 있는 교만하고, 뻐기고, 함부로하고, 과장되게 하는 마음(驕矜伐夸)과 머리·어깨·허리·엉덩이에 있는 멋대로 하고 거만하고 게으르고 도적질하는 마음(擅侈懶竊)을 밝게 변별하고자 노력함으로서 비로소 어리석음과 부족함을 면하게 되어, 일심(一心)의 호연지리(浩然之理)에 존재 근거를 둔 성인이 될 수 있음을 나타낸 것이다.

이와 같이 성명은 밝게 변별하느냐에 의해 호연지리로 드러나기도 하고, 일심지욕으로 드러나기도 하는데, 이는 턱에 주책(籌策)이 있다는 것은 일심(一心)이 무욕하다는 것과 통하고, 턱에 교만한 마음이 있다는 것은 일심(一心)이 유욕하다는 것과 통한다.

또한 성인의 마음은 욕심이 없고, 뭇 사람들의 마음은 욕심이 있다고 표현하여 있음(有)과 없음(無)으로 말하였는데 이는 ‘성명’은 천성(天性)이 나 자신에게 천명으로 주어져 있음을 밝게 분별하여 자각하면 있는 것이고, 분별하지 못하면 없는 존재라는 것이다.

모든 인간이 턱·가슴·배꼽·배에 보편적으로 타고나는 본성인 주책·경륜·행검·도량은 밝게 분별하여 내 자신이 가지고 있음을 알게 되면 있는 것이지만, 턱·가슴·배꼽·배에 교만하고 뻐기고 함부로 하고 과장하는 마음으로 채워지면, 천성으로서의 선한 본성인 주책·경륜·행검·도량이 없다는 의미이다.

생성·변화작용의 입장인 성정(性情)은 무엇인가?

동무 선생은 「사단론」에서 “애성(哀性)이 극도에 이르면 노정(怒情)이 따라 움직이고, 노성(怒性)이 극도에 이르면 애정(哀情)이 따라 움직이며, 낙성(樂性)이 극도에 이르면 희정(喜情)이 따라 움직이고 희성(喜性)이 극도에 이르면 락정(樂情)이 따라 움직이니” 라고 하여 성과 정이 서로 따라 움직이는 것이라고 하였다. 여기서 움직인다(動) 함은 생성변화하여 작용함을 뜻하는데, 움직임에는 순동(順動)과 역동(逆動)이 있다.

순동과 역동에 관해서는 「사단론」에서 “호연지기는 폐비간신에서 나오고, 호연지리는 심(心)에서 나오니, 인의예지 사단의 기운을 확충하면 호연지기가 폐비간신에서 나오며, 비천하고 얄팍하고 탐욕스럽고 게으른(鄙薄貪懦) 마음의 욕심을 밝게 변별하면 호연지리가 심(心)에서 나온다.”고 하였는데 인의예지 사단지기를 넓히고 충실하게(확충) 하면 호연지기가 폐비간신에서 나오는데, 이때의 호연지기가 순동의 기운이며, 사단지기를 넓히고 충실하게 하지 못하면 폭발(暴發)·낭발(浪發)하는 기운이 나오는 데 이것이 역동의 기운이다.

이에 대해 맹자(孟子)는 “측은지심, 수오지심, 사양지심, 시비지심의 사단(四端)이 나에게 있음을 알아 넓히고 충실하게 하면 불이 비로소 타고 샘물이 비로소 흐르는 것과 같을 것이니, 진실로 채우면 사해를 보전할 것이며, 진실로 채우지 못하면 부모도 섬기지 못할 것이다.”라고 하여 확충(擴充)이란 인의예지 사단지기가 나에게 있음을 알아서 키워나가는 것임을 말하고 있다. 즉 측은·수오·사양·시비지심을 올바르게 드러내어 행동해 나가는 것을 확충이라고 하였다.

즉 인간은 성명의 이치를 깨우침으로서, 자신에게 인의예지 사단이 있음을 알아, 이를 확충해 나감으로서 폐비간신에서 호연지기를 올바르게 드러낼 수 있을 것이며, 인의예지의 발휘가 마음의 건강의 바탕이 되며 이를 통해 몸의 건강이 이루어진다는 점을 설명하고 있다.

다시 말해 인간은 선한 성품을 타고 태어나는데, 태어날 때부터 완전한 존재로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완전자가 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는 존재로 태어난다. 그러므로 씨를 키워 열매를 이루듯이 본성 속의 선한 성품의 씨를 잘 확충하여 도덕성을 완성하면 조화된 인간이 되지만, 그렇지 못하면 소인이 되며, 아울러 생리 작용이 원활하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이와 같이 ‘성정’은 순동 또는 역동으로 드러나는 존재이지, 명변에 의해 유(有)하거나 무(無)하는 존재가 아니므로, 생성변화의 작용의 차원에서 말한 것이다.

허성욱 원장

위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동무 선생은 성명(性命)을 존재구조적 입장에서 인의예지를 밝게 분별했는지에 의한 유무(有無)의 문제로, 성정(性情)을 생성변화의 입장에서 애노희락의 마음작용을 넓히고 충실하게 했느냐의 순동, 역동의 작용의 문제로 구분하고 있다.

그런데 여기에서 ‘성명(性命)’에서의 성(性)과 ‘성정(性情)’에서의 성(性)은 서로 다른 차원이다.

「성명론」에서 언급된 성(性)인 주책·경륜·행검·도량은 널리 두루 통해 만인이 보편적으로 타고난 본연의 성품(本然之性)이라면, 「사단론」에서 언급된 성정은 희노애락의 성정으로 본연의 성품에 존재근거를 두고 있지만, 성격으로 드러나는 기질(氣質)이다. 그리고 이 기질(氣質)의 차이에 의하여 만인이 태소음양인의 사상체질로 나뉘게 되는 것이다.

<허성욱 한의원장·경희대 한의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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