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촛불시위의 한국 현대사회문화적 의미 살펴보기

인저리타임 승인 2019.11.26 17:39 | 최종 수정 2019.11.26 22:48 의견 0

촛불시위는 한국사회에 커다란 영향과 함께 의미 있는 사회문화적 변혁을 초래했다. 특히 2016년 ‘최순실 사태’로 촉발된 촛불시위는 2017년 3월 10일 헌법재판소의 현직 대통령 파면 결정과 새 정부 탄생으로까지 이어졌다. 촛불시위는 한국 민주주의와 대중운동의 새로운 전환기적 사건임에는 틀림없다.

촛불시위는 1987년 민주화나 이전에 발생했던 수많은 민주주의를 위한 시위들과는 분명히 다른 의미와 변화를 내포한다. 한국사회의 전환기적 사건인 촛불시위와 그로 인해 발생한 현직 대통령의 탄핵 사태는 단순한 사회적 사건이나 일회성 이벤트로 보기에는 변화와 함의가 너무 크다. 여전히 진행형인 촛불시위 이후의 한국사회를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의 문제 역시 만만치 않다.

특히 2016년~2017년에 걸쳐 벌어진 촛불시위 기간 동안 전국적으로 1,700만여 명의 국민이 참여, 촛불의 역사적인 의미를 단순히 정권교체라는 정치공학적 의미만으로 축소·해석하기에는 한계가 분명히 있다. 더군다나 촛불시위를 통해 드러난 국민들의 요구사항이 단순히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이나 조기대선, 혹은 개헌과 같은 정치 일정이 아니라는 점에서 정치권력 투쟁이나 대통령의 선택 문제로 몰아가는 일반적인 분석이나 언론의 방향은 논쟁의 여지가 있다. 그런 이유 때문에 촛불 이후의 한국사회가 더욱 중요해졌다. 또한 우리는 촛불을 통해 무엇을 얻고자 하는 것인지, 촛불로 인해 우리사회의 무엇을 변화시키고자 하는지 등에 대해서 진지하게 고민하고 분석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촛불시위를 통해 본 사회문화의 변화 가능성

2016년 시작된 촛불시위는 2008년 촛불시위보다 비폭력적이라는 점, 다양한 문화적인 퍼포먼스와 함께 참여 국민이 함께 즐길 수 있는 축제의 장과 같은 형식이라는 점 등에서 2008년 촛불시위에 비해 훨씬 진화되었다. 비록 탄핵반대 맞불집회가 강화되었고, 극우 보수 진영의 공격 및 미국 트럼프 정부 출범과 같은 변수들로 인해 촛불시위의 사회문화적 변화양상이 약화되기는 했지만, 여전히 촛불시위로 인한 사회문화적인 변화는 크다.

가장 주목되는 것은 시위 참가자의 수와 규모이다. 총 23회에 걸쳐 1,700만여 명이 참가, 사회변혁의 열망이나 의미가 작지 않음을 짐작할 수 있다. 특히 모든 집회마다 다양한 소주제를 통해 집회의 의미를 분명하게 전달하고자 했고, 시위 참가자 누구에게나 참여의 변과 의견을 발표하게 했다. 새로운 유형의 시위와 내용이다. 관행이나 관습으로 인식되었던 한국사회의 오래된 잘못과 질서를 바로잡기 위한 국민들의 요구를 총합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기존 촛불시위나 노동이나 특정 집단이 조직해서 진행했던 집회와도 분명 다른 성격이다.

두 번째는 시위 참여의 주체. 기존 시위에서도 ‘국민’의 이름으로 참여 했던 경우가 있고, ‘민주화’나 ‘노동’ 혹은 ‘생존권’ 등의 목적을 가지고 집회를 조직하고 참여했던 사례는 많았다. 하지만 2016 촛불시위처럼 ‘국민’이 조직하여 ‘국민’의 열망을 시위 중 직접 담아 ‘국민’의 주권을 완성시킨 사례는 없었다. 다시 말해 어린아이부터 노인들에 이르기까지 거의 모든 연령층의 국민들이 참여함으로써 한국사회의 기성 질서와 적폐에 반대하는 성격을 가졌다. 더욱이 국민의 손으로 뽑은 제18대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 인용과 구속에까지 이르게 한 힘은 촛불시위에 참여한 ‘국민’이었다. ‘국민주권혁명’, ‘국민주권 민주주의’의 성격을 가진 집회로 평가할 수 있는 근거다.

이는 2019년 10월 현재 검찰개혁과 공수처 설치를 외치는 서초대전과 광화문 촛불문화제로 이어지고 있다.

촛불시위의 사회문화적 의미

2016년과 2017년 4월까지 이어졌던 촛불시위는 2008년에 진행되었던 촛불시위와는 분명한 차이와 특징을 나타냈다. 2008년 촛불시위 양상은 생활정치의 연장선에서 국민권리의 회복운동이라는 성격을 보여주었다. 이전에는 볼 수 없었던 새로운 유형의 정치운동이자 국민적 권리의 회복 운동이라고 규정할 수 있다. 2016년 촛불시위는 민주주의의 퇴행과 기존 사회질서에 대한 국민적 저항 등이 어우러져 새로운 사회와 민주주의를 열망하는 국민의 자발적 의사와 참여라는 성격을 갖는다.

더욱이 이명박 정부와 박근혜 정부로 인해 발생한 사회적 양극화나 민주주의의 퇴행을 겪으면서 국민들이 직접 이를 수정하고 멈추고자 했다는 점은 2008년 촛불시위와도 확연히 다른 모습이다. 촛불시위를 통해 민주주의 퇴행과 부패하고 불공정한 사회를 바로잡고자 하는 국민들의 시도와 노력이 성공함으로써 새로운 정치권력과 사회질서의 토대를 마련했다는 의의를 갖는다.

촛불시위는 기존 이론적 틀이나 개념으로는 분석하기 어렵다. 최근 새로운 두 가지 개념과 방향에서 논의된다. 첫 번째 개념은 총 23회에 걸쳐 1,700만 명의 국민들이 참여한 촛불시위는 기존의 정치사회 질서를 바꾸려는 국민의 주권회복 성격을 갖는다는 점에서 그람시(Gramsci)가 제기한 '대항 헤게모니(counter-hegemony)'이다. 대항 헤게모니 개념은 후기 마르크스주의자로 헤게모니 이론으로 유명한 그람시가 제기한 것으로 기존의 독점적이거나 기득권의 헤게모니를 깨드리기 위해선 기득권에 맞설 ‘대항 헤게모니’를 구축해야 한다는 개념이다.

여기서 그람시의 헤게모니 이론을 잠시 살펴보면, 그는 지배계급이 강압적인 힘뿐만 아니라 피지배계급의 동의를 얻어야 사회 통치가 가능하다고 보았다. 즉, 헤게모니 개념은 바로 대중의 동의를 얻은 상태의 사회 통치 및 지배라고 할 수 있다. 대중문화는 바로 지배계급과 피지배계급의 투쟁과 타협의 산물로 탄생한다. 주목할 점은 대중이 단순히 헤게모니에 동의하면서, 지배이데올로기에 대항하는 '대항 헤게모니'도 갖는다는 걸 전제한다는 것이다. '대항 헤게모니'는 사회의 지배 체계에 대항하는 힘으로, 헤게모니와 긴장 관계 속에서 공존하게 된다.

이처럼 그람시는 대중의 능동성을 강조한다. 대중의 실천에 따라서 대중문화가 변화할 수 있는 여지를 심어준다. 알튀세르가 대중을 이데올로기에 수동적인 '주체'로 규정했다면, 그람시는 그러한 구조 속에서 인간의 실천을 강조했다. 대중은 문화 텍스트를 단순히 받아들이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이를 비틀고 전복을 꾀하기도 한다. 이 과정에서 대항 헤게모니가 발생하고, 이론 인한 하위문화가 탄생한다. 우리 주변에서 볼 수 있는 힙합·히피 문화 혹은 레게 음악 등이 바로 이에 해당된다.

주권재민 이념을 구현하는 한국적 민주주의(?)

주권재민이라는 국민주권설은 동서고금을 아우르는 최대의 민주주의 가치이다. 역사적으로뿐만 아니라 실질적으로 근대국가 형성 과정에서 나타난 민주주의의 원칙은 이를 어떻게 제도화하고 보장하느냐의 문제였다. 이는 국민의 주권 실현 방식에 대한 제도화와 내용 보장을 위해 오랫동안 극단적인 투쟁까지도 불사하게 만든 원인이었다. 참정권 확대는 이러한 과정에서 나온 정치적 권력을 장악하고 있던 지배계급과 정치적 권력에서 소외되었던 무산계급과 일반 국민과의 타협적 산물이었다.

그러나 실제로 이와 같은 참정권의 확대만으로 민주주의의 원칙과 내용이 실질적으로 보장된 것은 아니었으며 국민의 뜻을 충분히 살리고 전달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우리나라에서 제대로 운영되고 있다고 말하기도 어렵다. 가장 중요한 통로이자 제도인 정당 정치 역시 그다지 제 역할을 한다고 보기 어렵다.

결국 대의제 민주주의의 한계는 국민의 주권 행사의 유효성에 대해 고민하게 했고, 국가의 중요한 정책 결정과정에서 문제가 노정될 경우 다음 선거를 기다리는 수밖에는 별다른 도리가 없었다. 국민발안이나 국민소환과 같은 제도를 보장하고 있는 나라도 있지만, 우리나라의 경우 시위나 탄원제도 외에는 그다지 적절한 직접 민주주의의 형식이나 제도가 존재하지 않는다. 결국 대의민주주의는 국민의 주권이 제대로 전달되지 않는 한계와 문제점을 드러냈다.

그러나 최근 몇 년 전부터 중요한 사회적 중요한 이슈를 두고 종종 자발적으로 조직된 촛불시위는 직접 민주주의 요소를 가미한 '한국적 민주주의'라는 새로운 내용과 형식을 가져온 것으로 평가된다. 2008년 촛불시위 역시 그러한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었고, 2016~17년의 촛불시위는 그러한 특징을 완성한 시위라는 점에서 더욱 중요한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

특히 ‘적폐청산’으로 대표되는 시위의 목적이 단순히 정권교체나 박근혜 전 대통령만을 주목한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이번 촛불시위 발생 전후로 인터넷과 언론 등에서 자주 인용되었던 사건과 내용을 정리해보면 그러한 의미를 분명히 이해할 수 있다. 산케이 신문 지국장 명예훼손 혐의 사건·박근혜 세월호 7시간 행적·정윤회국정 개입 의혹·정유라 이화여자대학교 특혜·체육인재육성재단 해산 사건·평창동계 올림픽 개입 의혹·늘품체조 기획·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국민연금공단 삼성 특혜 의혹·문화체육관광부·미르재단·비덱스포츠·삼성그룹(삼성전자 승마단)·자유한국당·통일교·신천지·영세교·전국경제인연합회·차병원·한국동계스포츠영재센터·K스포츠재단·박사모·어버이연합 등의 사건이나 명칭들은 한국 사회의 구조적 문제와 폐해를 그대로 보여준 것들이다.

이들 사건과 명칭이 의미하는 바는 우리 사회의 모든 사회적 적폐와 기득권의 질서유지를 위한 부정부패와 불공정한 사회의 모습을 모두 내포한다는 점이다. 이러한 불공정하고 부정부패하며, 오랫동안 축적된 모순과 폐해들을 바꾸고 소멸시키고자 하는 국민적 열망이 촛불집회를 통해 표출되었던 것이다. 국가를 위해 헌신하고 희생하였던 국민들이, 자신들이 선출했던 국가권력을 소환하고 파면한 사건은 대한민국 헌법 1조에 명시된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라는 헌법적 질서를 확인시켜준 전환기적인 정치적 사건이었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촛불집회의 정신이 2019년 10월 현재 문재인 정부의 중요공략인 누구에게나 공평하고 공정한 나라를 위한 검찰개혁과 공수처 설치를 외치는 국민적 열망이 서초대전과 광화문 촛불문화제로 불타오르고 있어 또 하나의 새로운 대한민국의 민주공화국 역사로 자리매김하리라 생각한다.

<참고자료>
#김종법(2019), 촛불시위의 사회문화적 의미와 한국사회, 동북아연구, Vol.34 No.1.
#이정은(2003), 한국현상 촛불시위의 철학적 고찰, 시대와 철학, Vol.14 No.2
#전효관(2008), 촛불시위의 세대특성과 그 문화적 함의, 황해문화, Vol.60 No.                      

<한채운 / 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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