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의 객기, 철인 제논이 고칠까?

김상일 승인 2020.10.26 20:19 | 최종 수정 2020.10.26 20:32 의견 0

윤석열이 국회 국정감사에서 “나는 법무부 장관의 부하가 아니다”란 뉴스가 나올 무렵 마침 가라타니 고진의 ‘철학의 기원’에서 엘레아의 제논(기원전 490-439)을 읽고 있었다. 제논은 아킬레스와 거북이의 경주의 역설로 유명한 철학자이다. 세상에서 제일 빠르다는 아킬레스도 경주에서 한 발짝 만 거북이보다 늦게 출발하면 결코 아킬레스가 거북이를 따라잡지 못한다는 역설로 유명세를 탔다. 이 역설은 수학의 미분적분과 양자역학을 가능하게 한 과학의 원동력이 되고도 남았다.

우리는 제논에 대하여 이런 괴짜 추상적인 논리학이나 말한 철인으로 알려져 있지만, 고진은 그의 진정한 철학은 제논의 사회철학에 있다고 하면서 철학사에서 잘 알려져 않은 제논에 관한 놀란 만한 일화를 소개하고 있다.

제논은 열혈 혁명가로서 60세가 되던 해에 참주tyrant 네아르코스를 타도하려다 붙잡혔는데, 은밀히 전할 말이 있다고 하며 참주에게 가까이 다가가 네아르코스의 귀를 물더니 칼에 찔려 죽을 때까지 놓아 주지 않았다. 피를 흘리면서 제논은 주위에 서 있는 사람들을 향해 “당신들의 비겁함에 질렸다. 당신들은 언제까지 두려움에 질려 참주의 노예가 되어 살 것인가” 말하곤, 그는 자신의 혀를 깨물어 잘린 혀를 참주의 얼굴에 내뱉고 죽고 말았다. 그러자 시민들이 분기하여 그 자리에서 바로 참주에게 돌을 던져 참주를 쳐 죽였다고 한다.

윤석열이 국정감사 자리에서 “나는 법무장관의 부하가 아니다”라고 했다. 윤석열이 어떤 참주 같은 장관 밑에서 부하 같이 살아 분하게 그동안 지냈는가보다 제논과 비교해 본다.

제논 두상

여기까지 제논과 윤석열을 비교해 보니 상관에게 대들었다는 데 까지는 같고, 귀를 깨무는 것까지도 두 사람이 매우 비슷해 보인다. 그런데 제논의 부르짖음은 성공했다. 제논의 말을 들은 군중들은 자기들이 지금 잘 못 살았고 참주의 노예로 사느니 저항을 하면서 제논 같이 죽어도 좋다고 생각한 것이다. 제논은 결국 사회 변혁을 성공시켰다.

그러면 과연 윤석열도 국감장에서 자기는 법무부 장관의 부하가 아니라고 한 단말마 같은 외침이 과연 제논과 같은 효과를 낼 수 있을 것인가? 그는 장관 앞에서 직접 대들지 않고 현장 중계가 되는 국감장에서 온 국민들이 다 보는 앞에서 자기 편을 들어달라고 부르짖음을 한 것이다.

사실 국감장에서 윤석열이 한 말 가운데 ‘부하’ 운운 보다 더 심각한 것은 자기가 옳고 법무부 장관이 법리에도 어긋나고 상식에도 벗어난 것은 “대부분의 법관들과 법률전문가들이 자기 말에 동의 하는 바”라고 한 것에 있다고 본다. 그렇다면 그 다음 윤석열이 했어야 할 행동이 하나 있다. 이것에 대해 생각을 더 해 보자.

윤석열은 김진애 의원이 가족 비리를 질문했을 때에 ‘문제 될 것 없다’라고 잘라 말했다. 그리고 일개 중범죄(김봉현)의 말을 듣고 장관이 자기 수사권을 빼앗았다고 했다.

여기서 윤석열은 절대 대다수의 국민들로부터 동의를 받아낼 수 없는 잘못을 실토하고 말았다.

윤석열은 지금 10%의 지지를 받는 대권 후보감이다. 그런데 그는 자기 주변의 법관들과 법률전문가들의 소리에 도취돼 있고, 자기와 자기 주변의 잘못에 대해선 전혀 인정하지 않으려 하는 태도를 여실히 백일천하에 노출하고 말았다. 자기는 지금 절대 다수의 지지를 받고 있고, 중범죄자의 말에 장관은 놀아나고 있어서 자기는 법리에도 맞고 상식적이라는 것이다.

윤석열은 법무부 장관과의 관계를 ‘부하’의 관계로 스스로 설정했다. 그렇다면 이 사실을 스스로 공포하고도 그 자리에 머문다면 부하인 것을 인정한 것이고, 그렇다면 자기가 자기를 그렇게 자리매김하고 그 자리에 있다는 것은 비겁자로 자인한 것이다. 법리에도 어긋나고 상식에도 어긋나는 짓을 한 상관을 더 이상 모신다는 것은 자기도 법리에 어긋나고 상식에서 벗어난 공범자라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 될 것이다.

자기 가정의 비리가 별 것인지 아닌지는 앞으로 법정에서 가려 지겠지만, 한 가지 평범한 상식을 가지고 보더라도 당장 1년 전 윤석열이 조국 전 장관 가족들에 적용한 법 잣대로 보면 윤석열 가족 건이 결코 문제되지 않을 수는 없을 것이다.

윤석열은 추미애 법무부 장관의 귀를 물어뜯으면서 제논과 같은 효과가 생겨 국민들이 자기편에 설 것으로 기대 했을 것이다. 그러자면 제논 같이 자기 목숨을 던지지는 못 할 지라도 검찰 총장 자리에 연연 정도는 하지 말았어야 할 것이다. 소병철의원이 과거 검찰총장 사퇴의 한 예를 제기하자 그 경우는 중범죄 건이었기 때문에 자기의 경우와는 다르다고 했다. 그래서 총장 자리를 고수하는 이유는 위에서 말한 대로 대부분의 법관들과 법률전문가들이 추미애 장관보다는 자기를 지지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과연 그럴까? 윤석열은 지금 자기에게 귀감이 될 수 있는 단 한 사람의 인물이 있다. 바로 제논이다. 법무부 장관이 그렇게 참주 같이 느껴진다는 것은 문재인 대통령이 그렇다는 말과 같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참주의 귀를 무는 행위까지는 했다. 또 그 다음의 선택이 있지 않는가? 자기 목숨을 던져야 한다. 목숨까지는 아니더라도 직위를 내려놓고 참주와 싸우는 투사로 변신을 해야 한다.

그리고 대중들이 자기편을 들게 하도록 열혈 투쟁을 해야 한다. 과거 박정희 전두환 치하에서 수많은 인사들이 그러했던 것과 같이 말이다. 그러나 윤석열은 정반대의 행보를 했다. 그것은 적폐 가운데 적폐들인 언론 수장들을 만나러 돌아다닌 것이다. 수사 대상이 되는 기관의 수장들을 만난 것을 두고 자기는 누구든지 만날 수 있는 자유인이라고 강변을 했다.

이제 윤석열은 국민들이 도저히 받아 드릴 수 없는 세 가지 논리를 펴고 있는 것이다. 자기 부인과 장모의 건은 별 것 아니고, 추미애 장관은 강력범의 말만 듣고 행동하는 비법리적이고 비상식적이라는 것, 그리고 자기가 수사의 대상이 되는 언론 기관장을 만나는 것은 자유인으로서 얼마든지 할 수 있고 있을 수 있는 일이라고.

이런 세 가지 일들이 엮어져 자기 합리화의 완결판이 된 것이 바로 자기는 법무부 장관의 부하가 아니란 발언이다. 그래서 ‘부하’ 운운 만 따로 떼서 거론하는 것은 순서가 잘못된 것이다.

윤석열이 아직도 제논의 길을 따를 수 있는 기회가 없는 것은 아니다. 그가 싸울 대상을 바로 발견하는 것이다. 그 대상들은 바로 저 적폐대상들이다. 그 가운데서 적폐 가운데 적폐는 언론들이다. 그리고 문재인 정부의 검찰 총장답게 변혁의 주체로 앞장 서는 것이다. 아직 늦지 않았다. 기회는 아직 있다.

그 기회는 삼손의 마지막 기회인 것이다. 삼손이 머리털을 잃은 다음에도 기회는 있었다. 저 적폐들이 사는 집의 기둥뿌리를 뽑아 버리고 자기도 죽는 것이다. 제논도 삼손도 그렇게 했다.

윤석열이 남겨진 마지막 역사에 자기 이름을 남길 마지막 선택의 기회이다. 저 알량한 법관들과 법률전문가들의 주변에 휘둘려 내부자의 논리에 의해 자기 자신의 잘 못을 도저히 볼 수 없는 지경이 된 윤석열,

진정으로 대권 후보가 되고 싶으면 문재인 정부의 사법 개혁에 적극 동참하기 바란다. 그러나 이렇게 생각하기에는 또 윤석열의 말에 좌절할 수밖에 없는 것이 또 있다. ‘중상모략’은 자기가 쓸 수 있는 최소한의 어법이라고? 이 말은 자신이 선출직이 아닌 줄의 한계를 모르고 지금 자신의 주변이 펴는 논리에 놀아나는 다시 말해서 객기客氣가 묻어져 나오는 자신이 대통령 위에 있다는 착각에 빠져 있구나 하는 생각이 앞선다.

조중동 주류 언론이 밀어 주고 이 사회의 기득권자들이 편들어 주면 대통령이 될 수 있다는 객기에 지금 파묻혀 있는 것 같다. 그러나 마지막으로 윤석열에 한 마디 권하고 싶은 말이 있다. 소귀에 경 읽기인 줄 알면서도 그래서 말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 앞으로 이 나라의 지도자는 ‘locally rooted’되어야 한다고. 다시 말해서 민초들의 풀뿌리 정신, 곧 ‘촛불 정신’ 말이다.

제논의 혁명정신은 바로 locally rooted 였다. 그것을 ‘지소미아’라 한다. 인류 역사상 우리 화백 정신과 같은 제도가 오랜 동안 국가를 유지한 적이 있었다. 그것이 바로 지중해 연안 이오니아 이었다. 이오니아는 그리스와는 달리 자유와 평등이 모두 실현된 참주가 없는 무지배자 사회인 지소미아가 실현된 사회였다. 철저하게 localled rooted 된 사회였다. 그러나 이런 이오니아가 페르샤에 정복되자 참주가 등장하게 되었고 참주의 가렴주구에 민중들은 처참하기 이루 말 할 수 없었다.

그래서 철인 제논은 과거의 지소미아를 회복하기 위한 열혈 투사가 된 것이다. 그가 할 수 있는 선택은 참주에 저항하다 잡혀 그의 귀를 물어뜯고 이를 본 민중들이 봉기하기를 바랐던 것이다. 모두 자기 몸을 던지는 계획된 일이었다.

윤석열에게 묻는다. 도대체 언론 수장들, 적폐들 가운데 적폐들인 그들을 만나 그들의 쓸모없는 귀를 물어뜯었어야 하지 않는가? 그러나 지금 윤석열 당신, 엉뚱한 사람의 귀를 그렇게 하고 있지 않는가?

부디 이 글을 읽을 기회를 가지셨다면 마음 다짐하고 언론 수장들 다시 만나시길 바라고, 문재인 대통령 언론 개혁 사법부 개혁의 선두에 서 주길 바란다.

<전 한신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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