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老)시인 이득수의 「70년간의 고독」 - 아름다운 노랫말⑩ 인순이 〈거위의 꿈〉

에세이 제1143호(2020.11.3)

이득수 승인 2020.11.02 14:55 | 최종 수정 2020.11.02 21:15 의견 0

혼혈가수 인순이는 결코 평범하다고 볼 수 없는 삶의 이력과 내공이 내재된 영혼을 분출하듯 혼신의 힘을 다한 열정과 율동으로 단숨에 관객을 사로잡습니다. 또 그녀의 대표작인 <거위의 꿈>을 들으면 수많은 젊은이들과 실직자, 병든 자, 노인들까지 열광할 수밖에 없는 엄청난 동력(動力)이 뿜어 나오는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가사입니다. <난, 난 꿈이 있었죠.>의 전제에 대한 부연설명이 너무 길어 듣는 이의 대부분이 중도에 진이 빠져 여간한 인내심을 갖지 않고는 그 대단원인   

난, 난 꿈이 있어요.  그 꿈을 믿어요, 나를 지켜봐요. 

가 나오기 전에 벌써 나가떨어지기 마련이고 저 역시도 그랬습니다. 그런데도 묘한 것은 인순이의 <거위의 꿈>이 참 대단한 노래, 대단한 마무리라는 생각을 떨칠 수 없어 딴청을 피우면서 한참을 기다려 기어이 그 결말을 듣고서야 비로소 후련한 마음으로 미소를 머금게 되는 것입니다. 

세상의 모든 시나 가사, 심지어 소설이나 논문까지 그 주재를 피력함에는 서두에 결론을 강조하고 그 사유를 풀어나가는 두괄식(頭括式)과 순서를 밟아 내용을 잘 설파하고 결말을 유도하는 미괄식(尾括式)이 있는데 <거위의 꿈>은 하나의 문장으로서는 최악의 미괄식으로 고등고시처럼 주관식 답안지라면 모든 채점자들이 중간에서 그냥 파기(破棄)했을 졸작입니다. 그렇지만  

 난, 난 꿈이 있어요.  그 꿈을 믿어요, 나를 지켜봐요. 

라는 이 두 줄의 가사가 나타나는 순간 비단 한 청년이 부모나 마음에 둔 처녀에게 하는 애원이 아니라 젊은 창업자가 자본주나 후원자에게, 귀촌한 농부가 도시적 아내나 외면하는 이웃에게 하는 호소일 수도 있고 심지어 주정뱅이 남편이 고생에 찌든 늙은 아내에게 지껄이더라도 그 말 자체만은 어떤 반발도 할 수 없는 만고불변의 명언이자 진리임을 느낄 수  밖에 없을 것입니다.

저도 수많은 사람들이 열광하는 이 노래를 지루한 노랫말 때문에 <아름다운 노랫말>에서 빼려다가 혼신을 다한 인순이의 열창모습이 떠올라 한참을 망설이다 그 작사가가 전문작사가가 아닌 싱어라이터 <이적>이란 사실을 알고 일단 넣기로 했습니다. 좀 길고 지루하지만 가사를 올립니다.


거위의 꿈 / 작사 이적, 작곡 김동율, 노래 인순이

난 난 꿈이 있었죠
버려지고 찢겨 남루 하여도
내 가슴 깊숙히
보물과 같이 간직했던 꿈
혹 때론 누군가가
뜻 모를 비웃음
내 등뒤에 흘릴 때도
난 참아야했죠
참을 수 있었죠
그 날을 위해
늘 걱정하듯 말하죠
헛된 꿈은 독이라고
세상은 끝이 정해진 책처럼
이미 돌이킬 수 없는 현실이라고

그래요 난 난 꿈이 있어요
그 꿈을 믿어요 나를 지켜봐요
저 차갑게 서 있는 운명이란 벽 앞에
당당히 마주칠 수 있어요
언젠가 나 그 벽을 넘고서
저 하늘을 높이 날을 수 있어요
이 무거운 세상도
나를 묶을순 없죠
내 삶의 끝에서
나 웃을 그날을 함께해요
늘 걱정하듯 말하죠
헛된 꿈은 독 이라고
세상은 끝이 정해진 책처럼
이미 돌이킬 수 없는 현실이라고

그래요 난 난 꿈이 있어요
그 꿈을 믿어요 나를 지켜봐요
저 차갑게 서 있는 운명이란 벽 앞에
당당히 마주칠 수 있어요
언젠가 나 그 벽을 넘고서
저 하늘을 높이 날을 수 있어요
이 무거운 세상도
나를 묶을순 없죠
내 삶의 끝에서
나 웃을 그날을 함께해요
난 난 꿈이 있어요
그 꿈을 믿어요 나를 지켜봐요

<시인·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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