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老)시인 이득수의 「70년간의 고독」 - 아름다운 노랫말(18)   문주란 〈돌지 않는 풍차〉ⓛ

에세이 제1152호(2020.11.12)

이득수 승인 2020.11.11 10:36 | 최종 수정 2020.11.12 14:30 의견 0
스페인 라만차 풍차 [Lourdes Cardenal, CC BY-SA / 3.0]
세르반테스의 '돈키호테'의 무대 중 하나인 스페인 라만차 풍차 [Lourdes Cardenal, CC BY-SA / 3.0]

군사정권 아래서 나라경제가 조금씩 터를 잡아가던 60년대 중반의 우리가요계에 문득 걷잡을 수 없는 이변 하나가 나타납니다. 1966년 겨우 열여섯 살의 앳된 소년 문주란이 부르는 <동숙의 노래>가 전국을 강타한 것었습니다. 그건 지금껏 한 번도 접해본 일이 없는 낮고 느리고 거친 저음이지만 들을수록 중독성이 강한 목소리 때문이습니다. 또 마치 이 노래의 재현처럼 당시 구로공단여공이 배신당한 연인을 찔러버린 안타까운 사연을 담은 가사가 전국의 공단을 찾아 떠난 처녀나 그 가족들의 심금을 울릴 수밖에요.

그리고 몇 년이 지나 스무 살 안팎의 문주란이 <돌지 않는 풍차>라는 노래를 발표했을 때 사람들은 어떻게 저 어린 소녀에게서 저렇게 늙은 목소리가 나오는지 의아해했습니다. 그러나 그보다 더 신기하고 안타까운 것은 너무 일찍 가요계란 복마전에 나선 가수 문주란의 삶이 너무 많이 망가져 점점 그 슬픈 노래의 주인공을 닮아가고 있다는 점이었지요.

오늘 소개하는 노랫말 <돌지 않는 풍차>는 사랑도 해보고 미워도 해본 주인공이 사랑에는 웃고 미움에는 몸부림을 쳤지만 그냥 말없이 살아온 그 오랜 세월은 어쩐지 돌지 않는 풍차와 같다는 단순한 이야기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여기서 먼저 이 노래의 제목이자 핵심이 되는 풍차, 또는 돌지 않는 풍차에 대해서 알아보아야겠습니다.

지금의 70, 80대들은 소년이던 시절에 이발소나 미장원에 걸린 네덜란드의 풍차나 스위스의 목장 같은 유럽의 부자나라를 동경하며 자랐는데 그 대표적 상징물이 바로 가장 이국적 모습의 풍차였습니다. 그래서 저도 예순이 넘어 한창 해외여행을 할 때 일부러 네덜란드의 풍차를 구경하기도 했고 스페인의 안달루시아지방을 지나는 길에 세르반테스의 <돈키호테>에 나오는 라만차의 풍차도 빠짐없이 들렀습니다.

그러나 60년 넘게 동경했던 풍차는 그렇게 아름답거나 낭만적인 모습이 아니고 우리 어릴 적의 물레방아와 비슷한 원리로 그냥 곡식을 빻는 방아의 바람개비일 뿐이었는데 도정기술이 발달한 현대에는 어느 곳에도 방아도 찧지 않는 그냥 전시용 유물이었습니다. 

이 노래 <돌지 않는 풍차>를 이해하려면 먼저 이와 유사한 우리나라의 물레방아를 떠올려야 할 것입니다. 풍차가 바람을 이용한 도정기구라면 물레방아는 계곡물을 이용한 것인데 우리나라에는 그밖에도 사람이 직접 밟는 디딜방아가 있고 소나 말이 돌리는 연자방아에 한 사람의 여성이 곡식을 빻는 절구통도 있고 이와 유사한 맷돌도 있습니다. 이 모든 기구들은 결국 곡식의 껍질을 벗기고 알맹이를 먹기 좋게 빻는 도구인 것입니다. 

 그런데 당시 나이어린 가수 문주란이 암담한 자신의 처지를  토로하는데 하필이면 왜 풍차를 인용했을까요. 앞에서 제가 지루하게 예를 들었듯이 풍차와 물레방아와 디딜방아, 맷돌등 모든 방아는 확(確, 여성성)에 곡식과 물(사랑)을 넣고 방아공이나 절굿대(남성성)이 어우러져 알곡식을 생산하는 과정으로 이는 남녀의 교접으로 아이를 낳는 성희(性戲)의 과정과 동일합니다. 굳이 결혼식을 올린 화촉동방이 아니더라도 소 먹이던 갑돌이가 나물캐던 갑순이의 손목을 잡고 어느 숲속으로 들어간 야합(野合)이라도 한 생명을 창출하는 싱싱한 생명력의 발휘이자 우주의 리듬으로는 손색이 없는데 그 사랑의 절반인 여성성, 즉 풍차가 돌지 않는다는 것은 엄청난 비극이고 모순이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내일 계속)

<시인·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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