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老)시인 이득수의 「70년간의 고독」 - 아름다운 노랫말(18) 문주란 〈돌지 않는 풍차〉②

에세이 제1153호(2020.11.13)

이득수 승인 2020.11.12 14:13 | 최종 수정 2020.11.12 14:29 의견 0

사실 이 땅에 살다간 모든 여성들은 거의 모두가 아주 짧은 기간 또는 일평생을 돌지 않는 풍차로 살아야 했는데 그건 우선 흉년과 전쟁이 잦아 마음 놓고 치마끈을 풀 태평시대가 없었고 완고한 유교문화에 젖은 사내들이 저들은 축첩을 하고 외도를 하면서도 조강지처를 외면하거나 남편이 죽은 미망인의 개가를 막는 대명률(大明律)과 사회적인 질시로 조선의 여인인 우리의 할머니나 고모들은 거의 모두가 돌지 않는 풍차였던 것입니다.

특이한 목소리의 어린 가수 문주란을 사나운 이리와 승냥이 떼가 횡행하는 가요계는 고이 두지 않았습니다. 한 방송인을 사랑해 실연에 이른 것은 두고라도 뭍 사내들이 얼마나 고약하게 그녀를 괴롭혔는지 20대의 인기가수 문주란이 수중에 돈 한 푼 없이 한강에서 투신자살을 하려다 미수에 그친 일이 있었는데 그때 그녀는 이미 아이를 가질 수 없는 석녀(石女)로 변해버렸고 그리고는 <시집을 가본 일도 아이를 낳아본 일도 없다.>는 자조(自嘲)를 내뱉는 70대의 초로가 되고 만 것입니다.

얼마 전에 텔레비전에 나온 그녀의 근황은 한적한 야외에 집을 짓고 자주 산책을 하며 아직도 그녀를 추종하는 많은 팬들에 둘러싸여 비교적 안정된 생활을 하고 있고 혈색이나 건강이 모두 좋아보였습니다. 어쩌다보니 이번 회는 문주란이란 한 특이한 가수의 생애를 조명한 셈이 되었지만 어쩌면 동시대 많은 여성의 자화상일 수도 있습니다. 이 노래의 키포인트는  

말없이 살아온 그 오랜 세월은 
아아아, 아아아아 돌지 않는 풍차여.

입니다.

이는 여자의 가장 큰 권리이자 기쁨인 사랑과 출산의 상실일 뿐 아니라 어딘가 늘 압제당한 상실감 속에서 살아가는 이 시대의 상징이기도 합니다. 

거제도 바람의 언덕에 있는 풍차

세상이 복잡해지면서 힘들게 배운 기술이 쓸모가 없어지거나 무자비한 상관에 짓눌려 개성과 취향을 잃어버린 채 파리하게 살아가는 도시인, 멀쩡한 가족을 두고 노숙인이 된 사내들, 오로지 1등만 살아남은 세상에서 미끄러진 수많은 무명가수나 야구선수도 모두 돌지 않는 풍차이며 대학을 나오고 어학연수를 하고 대학원을 나오고 스펙을 수 없이 쌓아도 끝끝내 취업이 되지 못해 <돌지 않는 풍차>가 아니라 <돌아보지 못한 풍차>같은 미취업 젊은이들도 너무나 많습니다.

그 삶 전체가 잘 돌아가지 않든지, 아니면 어느 한 부분이 안 돌아가든지 요즘 세상에 아무 걱정 없이 살아가는 태평무사한 삶은 거의 없을 것입니다. 여러분은 어떤 아픔과 안타까움을 가지고 사는지, 한번쯤 <돌지 않는 풍차>를 되새겨보시기 바랍니다. 가사 1절을 돌립니다.

돌지 않는 풍차 / 작사 조흔파, 작곡 박시춘, 노래 문주란

사랑도 했다 미워도 했다 그러나 말은 없었다소낙비 사랑에는 마음껏 웃고미움이 서릴 때면 몸부림을 치면서말없이 살아온 그 오랜 세월은 아 아아아 아아아 아아 돌지 않는 풍차여울기도 했다 웃기도 했다그래도 한은 없었다.눈물이 흐를 때는 말없이 울고웃음이 서릴 때면 너털웃음 속에서넋 없이 지내온 기나긴 세월은 아 아아아 아아아 아아 돌지 않는 풍차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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