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득수 시인의 명촌리 사계(四季) 182 가을의 노래 - 후투티가 사는 마을

이득수 승인 2021.10.06 18:59 | 최종 수정 2021.10.13 10:13 의견 0
후투티
후투티 [사진 = 박홍재]

전에 후투티가 우리나라를 찾는 여름철새 중 날렵한 몸매와 회색과 갈색의 가로줄 무늬의 깃털이 아름다운 새이며 특히 커다란 수컷의 관(冠, 벼슬)이 엄청 화려하다고 이야기한 적이 있습니다.

명촌리에 귀촌 후 산책을 하다 산기슭은 물론 마을 어귀에서 심심찮게 그 귀한 후투티를 목격해 아내에게 이를 설명하면

“당신 또 소설을 쓰네.”

하고 외면했지만 같이 목격한 증인 마초는 끝내 말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하루는 데크에서 낮잠을 자다 무슨 기척을 느껴 텃밭을 바라보니 거기에 색동무니가 고운 암컷 후투티 한 마리가 조심스레 두리번거리고 있어 사진을 찍으려고 휴대폰을 들고 오니 사라지고 없었습니다.

그 후로도 여러 번 후투티를 목격하다 한번은 옆에 있는 아내에게 보라고 해도 워낙 은밀하고 빠른 새라 시력이 저만 못 한 아내는 여전히 아무 것도 못 보았다며 제 말을 믿지 않았고 놀러온 누님마저 반응이 심드렁해 저만 아내에게 양치기소년이 되고 말았습니다.

하도 답답해 같은 친목회의 매일 야외에 출사를 나가는 사진작가에게 이야기하니 경주 어느 공원 딱 한 곳에 사람을 별로 경계하지 않고 번식을 하는 후투티 한 무리가 있어 해 여름철엔 사진작가가 줄을 선다면서 자기도 한 번 못 본 귀한 새를 자주 보는 저를 많이 부러워했습니다.

그 후로 명촌리일대에 예사로 후투티가 출몰하며 <명촌농장>이라는 폐양계장에 후투티 여러 마리가 서식하는 것도 발견했습니다. 또 제 산책길에도 무려 7,8마리가 출몰하기도 하고 심지어 우리 집 바로 뒤 숲에도 둥지를 튼 듯 데크에 누워 음악을 듣다 눈을 들면 우리 화단과 밭 위로 예사로 후투티가 날아가는데 너무 빠르고 경계심이 많아 휴대폰 액정도 펼치기 전에 사라져버리니...

그런데 오늘 오전 고춧대를 뽑고 지쳐 서재의 책상에 앉아 꾸벅꾸벅 조는데 어디선가 들려오는 축축하고 음울한 울음소리에 살펴보니 놀랍게도 창밖의 오동나무가지에 후투티 수컷이 한참이나 머물다 날아갔습니다. 그 잘생긴데 비해 너무나 음치인 새를 처음으로 동영상을 찍기는 찍었지만 거리가 멀어 또렷하지는 않습니다.

아무튼 저는 후투티가 사는 마을 명촌리에 살고 있는 것입니다.

<시인, 소설가 / 2018년 해양문학상 대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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