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해훈 시인의 지리산 산책 (91) - 큰 아들 조현일, 지리산 목압서사와 고향 산소 찾아

조현일 3월 2일부터 서울 서초동 소재 사무실로 출근
목압서사 첫 방문 및 출근 기념으로 마당에 홍매 식수
고향 문중 묘역 들러 조상님들께 인사하고 서울로 감

조해훈 기자 승인 2022.03.01 23:08 | 최종 수정 2022.03.02 18:57 의견 0

큰 아들 조현일이 2월 25일 왔다. 한동안 날씨가 엄청 춥더니 다행히 좀 풀린 날이었다. 서울남부터미널에서 이날 오전 9시 버스를 타고 낮12시 반쯤에 화개공용터미널에 도착했다. 아침도 먹지 못하고 버스를 타고 온 탓에 배가 고프다고 했다. 터미널에서 다리 건너 있는 화개장터 내 ‘대청마루’ 식당에 갔다. 현일이가 재첩국을 먹고 싶다고 해 재첩국 정식 1인 분과 청국장 정식 1인 분, 그리고 해물파전을 주문했다. 식당 주인인 손석태(68) 사장님은 식당 홀에, 사모님은 부엌에 계셨다. 손 사장님은 요즘 건강이 좋지 않으시어 술을 끊고 음식조절도 하시고, 돌담 쌓는 일도 하지 않으신다고 했다. 살이 몇 kg 빠져 얼굴이 좋아보였다.

큰 아들 조현일(왼쪽 두 번째)이 필자와 함께 화개제다에 가 홍순창(오른쪽) 대표와 차를 마시고 있다. 사진=화개제다 제공
큰 아들 조현일(왼쪽 앞에서 두 번째)이 필자와 함께 화개제다에 가 대표인 홍순창(오른쪽) 박사와 차를 마시고 있다. 사진=화개제다 제공

필자와 서로 안다고 사모님이 음식을 많이 주셔서 맛있게 먹었다. 화개장터 바로 앞 주차장에 접해 있는 편의점 하프타임에 갔다. 필자와 동갑 친구인 이종한 사장이 운영하는 작은 편의점이다. 그와 편의점 옆에서 홍매(紅梅)를 함께 샀다. 친구는 두 개를, 필자는 1개를 샀다. 하나에 1만 5천 원이었다. 현일이가 장터 내 화장실에 간 사이 도로가에서 기다리다가 화개제다 대표인 홍순창(64) 박사를 만났다. 현일이가 오자 홍 대표의 차를 함께 타고 인근에 있는 화개제다 제2공장에 갔다. 그곳에서 함께 화개제다의 차를 마셨다. 어릴 적부터 녹차를 마시고 있는 현일이는 “맛있다”라고 했다. 화개제다에서 나와 커피를 마시러 가면서 화개제다의 역사에 대해 간략하게 설명해주었다.

필자와 큰 아들 조현일(오른쪽 첫 번째)이 목압서사 입구에서 사진을 찍고 있다. 사진=목압서사 제공
필자와 큰 아들 조현일(오른쪽 첫 번째)이 목압서사 입구에서 사진을 찍고 있다. 사진=목압서사 제공

백혜마을의 루나카페에서 커피를 한 잔 마신 후 칠불사로 갔다. 칠불사에 얽힌 금관가야의 김수로왕과 허황후의 일곱 아들이 성불했다는 전설 등에 이야기를 해주었다. 그리고 이 절에서 초의선사가 『다신전(茶神傳)』을 등초한 내용과 화개골짜기의 차농사에 대한 이야기도 해주었다. 칠불사를 구경한 후 벽소령 올라가는 입구인 의신마을로 가 서산대사가 이곳 원통암에서 출가했다는 이야기와 임진왜란 당시 승병 총사령관으로 왜구와 싸운 이야기 등에 대해서도 설명해주었다. 그리고 여순사건의 주모자들이 이 골짜기로 숨어든 이야기와 6·25 전쟁기에 빨치산의 항전 및 토벌된 내용 등에 대해서도 간략하게 정리해주었다.

필자와 큰 아들 조현일(오른쪽)이 목압서사 내 연빙재 앞에서 기념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사진=목압서사 제공
필자와 큰 아들 조현일(오른쪽)이 목압서사 내 연빙재 앞에서 기념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사진=목압서사 제공

의신마을에서 집으로 왔다. 집에 왔다가 바로 하동 금남면 소재지에 있는 은송식당으로 저녁을 먹으러 갔다. 현실이가 회를 좋아해 회 작은 걸 한 접시 시켜 저녁을 먹었다. 남해대교와 노량대교가 바로 보이는 곳이다.

집에 와 차를 마시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잠자리에 들었다. 이튿날인 26일 오전 9시 넘어 현일이가 일어나 함께 아침을 먹었다. 아침을 먹고 현일이에게 어제 산 홍매를 마당 텃밭에 심도록 했다. 3월 2일부터 서울 서초구 서초동 법원 인근 사무실에 출근하는 현일이의 출근 기념으로 식수를 하도록 한 것이다. 홍매 식수를 마친 후 현일이와 함께 고향인 대구시 달성군 논공읍 노이리 갈실마을로 출발했다. 광주~대구 고속도로에 있는 지리산휴게소에서 들어 한 번 쉬고 바로 갈실마을로 갔다. 천천히 가니 거의 3시간가량 걸렸다. 가면서 차 안에서 함안 조씨 중시조로 생육신 중의 한 분인 어계 조려 선생에 대한 이야기에서 시작해 단종에 대한 내용, 조선시대의 사화 등에 대해서도 설명해주었다. 현일이는 어릴 적부터 역사와 고전을 아주 좋아했다. 필자도 그래서 사학과로 진학했는데, 그 역시 한 때 사학과로 진학할까? 라고 고민한 적이 있다.

필자와 함께 큰 아들 조현일(오른쪽)이 필자의 자택이기도 한 목압서사 마탕 텃밭에서 홍매(紅梅)로 기념식수를 하고 있다. 사진=목압서사 제공
필자와 함께 큰 아들 조현일(오른쪽)이 필자의 자택이기도 한 목압서사 마탕 텃밭에서 홍매(紅梅)로 기념식수를 하고 있다. 사진=목압서사 제공

갈실마을회관에서 소주 2병을 산 후 함안 조씨 동계공파 갈실문중 묘역으로 갔다. 묘역 가운데 있는 제단에 먼저 절을 한 후 필자의 고조부모·증조부모·조부모·부모님의 합장묘에 각각 절을 했다. 현일이는 필자의 부모님인 할아버지와 할머니 산소에 절을 올린 후 “할머니가 보고 싶다”며 훌쩍였다. 그동안 공부 하느라 산소는 처음 찾아온 것이다. 산소에서 내려와 문중 총무로 필자와 동갑인 조호곤 집에 갔다. 마침 일찍 퇴근해 텃밭을 가꾸고 있었다. 잠시 차를 한 잔 마시고 나와 조근식(70) 형님 댁에 갔다. 형님이 끓여 주시는 믹스커피를 한 잔 마신 후 나왔다. 현일이는 동대구역에서 KTX를 타고 서울로 올라가야 한다고 했다. 동대구역에 도착하니 오후 6시 가까이 됐다. 현일이가 6시 13분 KTX를 예약했다. 저녁 식사가 어중간 해 토스트를 하나 씩 먹은 후 현일이는 바로 기차를 타고 출발했다.

필자의 큰 아들인 조현일이 대구시 달성군 논공읍 노이리 갈실마을에 있는 선산에서 조상님들께 인사를 드린 후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조해훈
필자의 큰 아들인 조현일이 대구시 달성군 논공읍 노이리 갈실마을에 있는 선산에서 조상님들께 인사를 드린 후 그의 조부모님 묘소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조해훈

현일이를 보내고 나니 마음이 아프고 허전했다. 경제력이 없다보니 맏아들인 현일이에게 별로 해준 게 없었다. 작은 아들 현진이는 다녀간 적이 있으나, 현일이는 그동안 서울에서 공부하느라 지리산 집에 처음 방문한 것이었다. 작은 아들 현진은 경북 김천에서 근무하다 지금 경기도 이천으로 발령받아 일을 하고 있다. 현일이는 물론 필자와 수시로 문자를 주고받고 핸드폰으로 통화를 하기는 했다. 동대구역에서 집인 하동군 화개면 맥전길4 목압서사로 출발했다. 부산일보 논설실장을 지낸 백태현 박사 부부가 먼저 집에 와 기다리고 있었다. 논공휴게소와 지리산휴게소 두 곳에 들렀다가 집에 도착하니 밤 9시가 넘었다. 백 박사 부부와 함께 저녁을 먹고 이야기를 나누다 새벽 1시쯤에 각각 잠자리에 들었다.

<역사·고전인문학자, 본지 편집위원 massjo@injurytim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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