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해훈 시인의 지리산 산책 (95) - 2022년 3월 인문학 초청특강 ‘옛책(고서) 장정의 이해와 실습’

고서 장정의 장인 팔령 강안구 선생 초청
고서 제작방법과 장정 방법 설멍 후 실습
참석자들, 다섯 구멍을 엮는 오침법 배워

조해훈 기자 승인 2022.03.26 15:09 | 최종 수정 2022.03.28 12:11 의견 0

지리산 화개동에 소재한 목압서사(木鴨書舍)가 매달 개최하고 있는 ‘2022년 3월 인문학 초청특강’이 25일 오후 6시 서사 내 연빙재(淵氷齋)에서 열렸다. 강의 주제는 ‘옛책(고서) 장정의 이해와 실습‘이었다.

지금까지 주로 인문학 전공 학자들을 초빙해 특강을 가졌으나 이번 강좌는 이론과 실기가 병행돼 참가자들로부터 호평을 받았다.

초청강사는 우리나라에서도 몇 안 되는 옛책(古書) 장정(裝幀) 장인(匠人)인 팔령(八嶺) 강안구(姜安求·62) 선생이었다.

2022년 3월 25일 오후 6시 특강을 시작하기 전에 팔령 강안구 선생과 목압서사 입구 현수막 앞에서 기념촬열을 하고 있다. 사진=목압서사 제공
2022년 3월 25일 오후 6시 특강을 시작하기 전에 팔령 강안구 선생과 목압서사 입구 현수막 앞에서 기념촬열을 하고 있다.
[사진 = 목압서사 제공]

강의를 한 날짜는 그동안 너무 가물다 비 소식이 있는 날이었다. 강의 시작 전에 비가 내렸다. 그러다 보니 참석하기로 했던 주민들이 대부분 불참했다. 게다가 봄철이어서 이곳 화개동 주민들은 누구나 할 것 없이 바쁘다.

팔령 선생은 우리나라 고서의 역사와 고서에 사용되는 한지 등에 대해 먼저 설명했다. 그런 다음 한지를 재단해 글자를 찍은 다음 장정을 하는 방법에 대해 본격적으로 강의를 했다. 고서를 장정하는 데 수십 번의 공정이 필요하다.

설명에 따르면 고서의 표지를 만드는 방법도 많지만 공정도 좀 복잡하다. 누런 표지의 경우 치자물을 들이고 그 위에 밀랍을 바른다. 문양을 낼 경우 내고자 하는 문양이 새겨진 나무판을 올린 다음 무거운 것을 그 위에 올려 꽉 눌러놓는다. 또는 나무판 위에 표지를 올려놓고 돌 등으로 문질러 문양을 내기도 한다. 표지를 다림질하는 과정도 빼놓을 수 없다.

팔령 강안구 선생이 특강을 하는 모습. 사진=조해훈
팔령 강안구 선생이 특강을 하는 모습. 사진=조해훈

내지의 경우도 정확하게 재단하는 것이 중요하다. 금속활자든, 목판본이든, 목활자본이든 글을 찍어냈다고 가정하면 이제 장정을 해야 한다.

이날 팔령 선생은 수강생들이 장정 실습을 할 수 있도록 미리 8명분의 실습 재료를 준비해 왔다. 하지만 4명만 참석해 아쉬웠다. 앞뒤 표지는 비단으로 장정하기로 했다. 책 크기는 일반 문집보다 작은 수진본(袖珍本·소매 안에 넣고 다닐 수 있을 정도로 작게 만든 책) 정도였다.

목압서사의 3월 특강 참석자들이 고서 장정 실습을 하고 있다. 사진=조해훈
목압서사의 3월 특강 참석자들이 고서 장정 실습을 하고 있다. 사진=조해훈

이제 책을 엮는 매듭 과정을 설명했다. 오침법(五針法)이다. 필자도 평소에 고서를 읽으며 표지 장정과 매듭에 대해 늘 궁금해 했다. 표지 앞뒤로 보면 분명 질긴 실(또는 끈)로 엮었는데, 그 실의 끝이 책 밖으로는 드러나지 않은 게 신기했다.

팔령 선생은 표지와 내지에 바로 실을 끼울 수 있도록 구멍을 뚫어 오셨다. 구멍을 뚫어놓은 부분이 수강생의 앞쪽으로 향하도록 했다.

먼저 실을 책 크기의 2배 정도 길이로 잘라 첫 번째 구멍 위에서 바느질 하듯이 차례로 다섯 개 구멍을 통과시킨다. 그리고 양 방향 실 길이를 똑같이 맞추어놓은 다음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엮어 나간다. 그런 다음 중앙 구멍에서 두 실을 만나게 해 책 속으로 넣어서 매듭을 짓는다.

이걸 좀 더 쉽게 설명하겠다. 실을 바늘에 끼워 맨 위쪽 구멍에 아래로 넣는다. 바늘이 꽂힌 실의 경우 6, 7cm정도 구부린 후 사용해야 했다. “고서는 어떤 책이든 구멍이 다섯 군데”라고 설명을 하셨다. 책 아래에서 바늘을 빼 아래에서 두 번째 구멍에 또 바늘을 넣었다. 그렇게 다섯 구멍에 바늘을 차례로 넣는다.

다음은 실에서 바늘을 빼 실의 반대쪽에 바늘을 꽂았다. 책의 아래쪽 구멍에 역시 바늘을 꽂았다. 그런 다음 아래에서 바늘을 빼 책의 옆면으로 돌려 한 번 더 그 구멍에 바늘을 꽂았다. 그런 후 실을 옆 구멍에 바늘을 꽂았다. 그러니까 책의 아랫면을 고정하는 것이다. 그 작업을 한 후 이제 책의 앞 뒤 표지를 연결한다.

그렇게 한 후 그 바늘을 표지와 내지 한 장을 90도로 바로 세워 그 구멍으로 바늘을 넣었다. 그러면 그 실은 표지와 내지 한 장의 안쪽으로 자리한다.

쉬운 일이 아니었다. 참석자들 모두 처음 해보는 작업이라 제대로 하지 못해 각자 몇 번이나 팔령 선생께 물어보고 잘못 한 걸 바로 잡았다. 필자도 직접 해 보았지만 정말 어려웠다. 팔령 선생은 “바늘은 한 구멍에 세 번 이상 들어가면 안 된다”고 주의를 주셨다.

그렇게 한 후 반대 쪽 실도 앞표지와 내지 한 장을 들어 그 사이 구멍으로 바늘을 꽂아 실을 빼낸다. 이제 양쪽의 실을 한 번 묶는다. 그런 다음 실을 잘라내 보이지 않도록 밀어 넣거나 나비모양으로 매듭을 해도 된다.

그렇게 하면 책의 매듭 묶기가 끝난다. 필자가 한 것도 그렇지만 팔령 선생처럼 매듭이 책을 꽉 조여 주는 것이 아니라 실이 느슨하다. “하면서 실을 당겨 책이 고정되도록 해야 한다”고 수차례 지적하셨다. 엮는 것도 힘든 노릇인데, 그렇게까지 하는 건 불가능했다.

바깥에는 비가 여름 소낙비처럼 많이 내렸다. 차와 과일을 먹으면서 팔령 선생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시간이 많이 돼 팔령 선생께서 돌아가셔야 했다.

참석자들이 고서 장정을 완성해 들어보이고 있다. 사진=조해훈
참석자들이 고서 장정을 완성해 들어보이고 있다. 사진=조해훈

참석한 송승화(41) 씨는 “정말 귀한 실습을 했다. 저는 제가 만든 이 책에 한시를 적어야겠습니다.”라고 감사의 인사를 했다. 그렇게 2022년 3월의 목압서사 인문학 초청특강은 막을 내렸다.

목압서사의 ‘인문학 초청특강’은 지난 해 10월부터 매달 화개동 주민들을 대상으로 열고 있다. 2021년 10월 21일 오후 6시30분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아동문학가인 배익천 선생을 초청해 ‘아이들에게 무엇을 읽히고, 어떻게 읽힐 것인가?’ 주제의 특강을 가졌다. 11월에는 최영호 동아대 교수를 초청해 ‘팔만대장경과 하동’을 주제로 특강을 했다. 12월에는 17일 오후 6시 30분에 조해훈 박사의 ‘지리산 유람록(遊覽錄)’ 주제의 특강을, 2022년 1월 21일 오후 6시 30분에는 조해훈 박사의 ‘조선시대 하동지역의 학맥(學脈)’을 주제로 각각 특강을 했다. 지날 2월에는 당초 김정선 동아대 교수의 특강이 예정돼 있었으나, 오미크론의 확산으로 특강을 갖지 못했다. 그리고 3월 특강은 2월 25일 팔령 강안구 선생이 한 것이다.

<역사·고전인문학자, 본지 편집위원 massjo@injurytime.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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