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시대8-부산의 역사탐구】 부산의 어제와 오늘 - 박화진

박화진 부경대학교 사학과 명예교수

시민시대1 승인 2022.08.24 21:04 | 최종 수정 2022.08.26 09:04 의견 0

 

일본인 경제학자가 저술한 『근대식민지 도시 부산』[2007년, 桜井書店, 일본 도쿄]의 서문 속에 이런 문구가 있다. ‘잘 아는 부산 출신의 한국인의 “부산은 왜색이 짙은 거리로서 고유의 문화가 없다’라는 표현이 인용되어 있다. 정말 우리가 사는 부산에는 지역 고유의 문화가 없었을까, 아니면 혹 지역사에 대한 무관심에서 비롯된 오해이지는 않을까 하는 문제 관심으로부터 ‘부산의 어제와 오늘’이라는 이야기를 시작하고자 한다.

오늘날의 부산 인구

한국 최남동단에 있는 해양도시 부산은 15개 행정구와 1개 군[기장군]의 16개 구․군으로 구성되어 있다. 15개 행정구는 동래구 중구 서구 동구 남구 북구 영도구 부산진구 해운대구 사상구사하구 금정구 강서구 연제구 수영구이다. 일제강점기의 1914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부산부제釜山府制가 시행되어 부산부와 동래군으로 나뉘면서 ‘부산’이 ‘동래’라는 지명을 대신하게 되었다. 현재의 동래구 금정구 부산진구 사하구 해운대구 남구 북구 기장군 지역이 ‘동래군’에 소속되고, 현 중구 서구 동구 영도구 지역이 ‘부산부’에 속하게 되었다.

부산 인구는 1945년 해방 당시 약 28만 명이었으나 1948년에 50만 명, 그리고 1955년 무렵엔 100만 명을 돌파하여 광복 직후의 5배에 가까운 양적 증가했다. 그리고 부산이 직할시로 승격되고[1963년], 제3차 경제개발이 시작된 1972년 부산 인구는 급격히 증가해 200만 명, 1979년에는 300만 명으로 증가했다. 한때 약 400만 명을 자랑하던 부산 인구는 현재 약 333만 8167명으로 추계하고 있다[2022년 5월].

2. 조선시대 부산의 인구
조선시대 부산지역의 중심은 바다에서 떨어진 내륙의 동래지역이었다. 명종 2년[1546년]에 동래도호부로 승격되었는데 행정중심지의 읍치邑治 선정과 관련하여 전해오는 지명유래와 관련된 흥미로운 일화가 전하고 있다. 부산 내 여러 지역을 찾아가 물색하던 중에 제일 처음으로 방문하였다는 데에서 유래한 ‘초읍’이란 지명과, 그 다음 찾아간 지역 중에 지세가 좇지만 좀 더 두고보자 라는 뜻에서 유래한 ‘두구동’이란 지명이 그러하다.

동래도호부사가 거주한 동래부 읍치에는 둘레 17,291자, 높이 17자의 성곽[임진왜란 이전에는 둘레 3,090자, 높이 13자]으로 둘러싸였으며 동래읍성 안에는 충신당과 봉래관을 비롯하여 관사․청사․창고 등 690여 칸 건물들이 즐비하였다고 한다. 충신당은 동래부사가 공무를 집행하는 관청건물인 동헌東軒으로 모든 관청 건물의 중심이 되었으며, 봉래관은 궐패를 모셔두고 매월 1일과 15일에 망궐례를 올리는 동시에 왕명을 받들고 내려오는 왕명을 받들고 내려오는 관리들을 접대하고 유숙하게 했던 객사였다. 현재 동래 지역에는 동래읍성 북문을 비롯하여 동헌․향교․장관청․군관청․송공단․충렬사 등, 많은 역사유적들이 남아있다.

조선시대 부산 인구에 대해 세종실록지리지[세종14년:1432년]와 『동래부지』[1740년]를 참조하여 정리하면 <표 1>과 같다. 조선시대 초기의 인구는 는 약 3.043명이고, 조선시대 후기의 인구는 19.099명으로 추정된다. 다만 이 당시의 인구통계는 16세 이상 60세 이하의 사람만을 대상으로 하였으므로, 16세 미만이나 60세 이상의 사람이 제외되었고 또 조사에서 빠지는 사람도 적지 않았을 것으로 추정된다.

 조선시대 동래지역의 인구와 호수

3. 조선시대 동래도호부의 행정구획
조선시대 동래도호부의 행정구획이 구체적으로 몇 개의 면과 리·동으로 구성되어 있는지 잘 알 수 없으나, 동래부지[1740년]에 의하면 7개면面 22개동洞 79개리里이다. 이후 동래부사례[1868년]의 9개면 체제, 『경상도동래군가호안』[1904년]의 12개면 154개동 체제로 변모하고 있다. 동래도호부의 7개면은 읍내면, 동평면, 남촌면, 사천면, 동면, 서면, 북면인데, <그림 2>의 부산고지도를 중심으로 각 면의 지리적 위치에 대해 구체적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동래읍성 관청 건물배치도
동래읍성 관청 건물배치도

읍내면邑內面은 동래읍성 내의 지역이란 의미에서 유래한 지명으로 오늘날의 동래구 지역과 금정구 일부를 포함하여 모두 17개동 8개리로 구성되었다. 행정적으로는 다시 동부와 서부로 나뉘어지는데, 동부는 호현리 충렬사리 안락리 염창동 구향교동 신향교동 합지동 역동 휴산동 당하동 지동 수문동 남문 동변동의 10개동 3개리, 서부는 남문 서변리, 서문 노상리, 서문 노하리 북문 노상리, 북문 노하리, 당동, 옥미, 정동, 대정동, 서문외동, 범어동, 야정동, 객달동 등의 7개동 5개리이었다. 동래읍성에는 동·서·남·북 4개의 성문이 있어 각 성문에 문장과 문지기가 아침저녁으로 성문을 여닫고 통행인을 검색하였다. 지리적 위치는 동쪽은 동면, 서쪽은 서면, 남쪽은 남촌면, 북쪽은 북면에 각각 접해 있었다.

동면東面은 현재의 반여동․재송동에서부터 해운대 지역에 이르는 지역으로 3개동 9개리로 이루어져 있었다. 자연마을로는 명장리, 반여리, 재송리, 오륜대리, 지경리, 신천리, 해운대리, 우동리, 중동, 좌동, 서동으로서 동쪽은 기장현, 서쪽과 북쪽은 양산군에 접하고, 남으로는 바다에 면해 있었다.

남촌면南村面은 현재의 수영구 수영동․광안동․남천동에서 남구 대연동․용호동․용당동․감만동․우암동에 이르는 지역으로 1개동 15개리로 이루어져 있었다. 자연마을로는숭정리․동부리․서부리․북문외리․남문외리․감포리․칠포리․포이포리․남천리․대연리․석포리․분포리․용당리․감만리․우암리․축산동으로서, 경상좌수영[둘레 9,198자․높이 13자 성곽]과 4개의 수군 만호영[축산리․감포리․칠포리․포이포리]이 있었다. 동쪽과 남쪽은 바다에 면해 있고 서쪽은 동평면, 북쪽은 읍내면에 접해있다.

동평면東平面은 현재의 부산진구 당감동․가야동에서 동구 범일동․좌천동․수정동․초량동에 이르는 지역으로 13개리로 이루어져 있었다. 자연마을로는 고대리․부현리․감물리․당리․와요리․가야리․부산 성내리․범천1리․범천2리․좌자천1리․좌자천2리․ 두모포리․해정리 등으로서, 부산첨사영[성내리]과 수군 만호영[두모포], 두모포왜관이 설치되어 있었다. 동쪽은 남촌면, 서쪽은 사천면, 북쪽은 서면, 남쪽은 바다에 면해 있다.

조선시대 부산의 고지도
조선시대 부산의 고지도

사천면沙川面은 현재의 사상구 모라동․덕포동․괘법동․주례동 일대와 사하구 장림동․다대동, 그리고 서구와 중구 전 지역에 이르는 지역으로 모두 15개리로 이루어져 있었다. 행정구획상 크게 상단과 하단으로 나뉘어져, 상단은 주례리․모라리․괘내리․덕포리․장문리․엄광리 등 6개리, 하단은 신초량리․구초량리․대치리․다대리․서평리 등의 9개리이다. 그리고 초량왜관[신초량리]과 수군 만호영[서평리], 다대 첨사영[다대리] 등이 설치되어 있었다. 동쪽은 동평면, 북쪽은 양산군에 접하고, 서쪽과 남쪽은 낙동강과 바다에 면해 있다.

서면西面은 현재의 북구 만덕동, 연제구 거제동, 부산진구 양정동․초읍동․연지동․전포동을 비롯한 지금의 서면 일대에 이르는 지역으로 11개리로 이루어져 있었다. 자연마을로는 산저리․여고리․석사리․대조리․거벌리․초읍리․양정리․연지리․범전리․전포리․만덕리 등이 있다. 동쪽은 읍내면, 서쪽은 양산군, 남쪽은 동평면, 북쪽은 북면에 각각 접하고 있다.

북면北面은 현재의 금정구 부곡동․장전동․두구동 일대에 이르는 지역으로 모두 1개동 8개리로 이루어져 있는데. 자연마을로는 부곡리․두구리․남산리․장전리․산성리․구세리․소산리․작장리․선동 등이 있다. 동쪽은 동면, 서쪽은 양산군, 남쪽은 읍내면, 북쪽은 기장현에 접하고 있다.

우리가 사는 부산의 고유문화에 대해 찾아가는 작업은 옛날 이 지역에서 살며 꽃피웠던 선조들의 지혜를 다양한 관점에서 21세기 세계화 시대의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살릴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박화진 교수

◇박화진 교수

▷부산대학교 인문대학 사학과 졸업

▷일본 도쿄대학교 대학원 일본사학과 박사학위 취득(문학박사)

▷현) 부경대학교 사학과 명예교수

▷저서 『부산의 역사와 문화』(2003), 『해양도시 부산이야기』(2018), 『해양도시 부산의 역사와 문화』(2019) 등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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