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륜적 막말 포퓰리스트 홍준표

패륜적 막말 포퓰리스트 홍준표

조송현 승인 2017.03.23 00:00 | 최종 수정 2017.03.25 00:00 의견 0

22일 부산 해운대 벡스코에서 열린 자유한국당의 제19대 대통령후보선거 비전대회에서 연설하는 홍준표 경남지사. 홍 지사는 노무현 정부를 '뇌물공화국'으로 규정하는 등 자극적인 막말을 쏟아냈다.

포퓰리즘(populism)은 ‘대중의 견해와 바람을 대변하고자 하는 정치 사상 및 활동'을 말한다. 간단히 대중주의, 민중주의 혹은 다소 부정적으로는 대중영합주의, 대중추수주의로 불린다. 포퓰리스트는 포퓰리즘을 좇는 사람을 말한다. 그러나 포퓰리즘과 포퓰리스트를 한마디로 규정하기는 어렵다. 역사가 제법 깊고 의미의 층위도 다양할 뿐 아니라 그 양태가 계속 변화하기 때문이다.

강준만 교수의 ‘나의 정치학 사전’에 따르면 포퓰리즘은 19세기 말 러시아 사회를 풍미했던 나로드니키(narodniki)의 계몽운동과 1890년대 미국 농촌 사회에서의 농민운동에서 비롯되었다. ‘나로드니키의 계몽운동’의 영어 번역이 포퓰리즘(populism)이라고 한다. 전통적 농촌 사회에 존재했던 집단적 공동체생활에 대한 낭만주의적 동경과 더불어 기존의 지배계층과 조직에 반대되는 개념인 것이다. 이처럼 포퓰리즘은 엘리트, 주류 정치 그리고 확립된 제도에 대한 저항을 뜻하는 단어이다.

20세기 들어 포퓰리즘은 정치권에서 ‘반(反)엘리트주의적인 민중영합주의’라는 단순한 의미로 널리 쓰이고 있다. 미국의 정치 컨설턴트 딕 모리스는 미국의 정치를 ‘경제적 포퓰리즘’과 ‘사회적 포퓰리즘’으로 구분해 설명했다. 민주당 프랭클린 루즈벨트는 ‘경제적 포퓰리즘’의 실행자로 유명하다. 중산층과 블루컬러 계층을 공화당의 부유층 지지 세력과 맞붙게 만들어 성공한 것이다. 우리가 보통 포퓰리즘이라고 할 때는 선거에서의 ‘퍼주기 식’ 경제공약이나 복지공약 등 ‘경제적 포퓰리즘’으로 이해하고 있었지 않았나 싶다.

최근 유럽과 미국에서 포퓰리즘을 좇는 극우 포퓰리스트가 득세하고 있다. 프랑스의 국민전선 마린 르펜(Marine Le Pen) 당수와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대표적인 인물이다. 트럼프는 선거기간 이렇게 말했다. “엘리트들이 망쳐놓은 정치에 대한 유일한 대항 수단은 정치에 대중의 뜻을 불어넣는 것이다. 이 나라에 영향을 미치는 주요 이슈에 대해 대중들은 옳게 판단하고 지배 엘리트의 판단은 틀렸다.” 트럼프는 포퓰리즘의 정의를 해석하고 있다. 자신이 전형적인 포퓰리스트라고 천명하는 것이다.

포퓰리스트는 계속 득세할 것인가? 미국 외교정책 결정의 핵심인 ‘외교문제평의회(CFR)의 기관지 <포린 어페어스(Foreign Affairs)>가 전문가들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선진 민주국가에서 향후 10년간에도 포퓰리스트는 계속 득세한다‘로 나타났다.

그런데 최근 극우 포퓰리스트들이 대중에게 내세우는 이슈는 예전 루즈벨트나 빌 클린턴 대통령 시대의 ‘경제’가 아니라 ‘사회·문화적’인 것이 주류를 이룬다. 트럼프의 경우 이를테면 문화적 공포, 국가주의적 정서에 호소하는 이민 문제, 이슬람의 위협, 미국 기독교 전통 등을 중·저소득층의 뜻이라며 내세웠다. 이는 영국과 프랑스의 경우도 비슷하다. 선거에서 ‘문제는 경제야’라는 슬로건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는 것을 포퓰리스트들은 재빨리 감지한 것이다.

그렇다면 트럼프 같은 포퓰리스트가 ‘정치에 대중의 뜻을 불어넣는 수단과 방법’은 무엇일까? 수단은 가짜뉴스와 거짓말이며 방법은 반복이다. 트럼프는 자신의 트위터와 우호적인 사이트를 통해 끊임없이 가짜뉴스와 거짓말을 퍼뜨렸다. 백악관 수석전략가 겸 선임고문으로 임명된 스티브 배넌은 ‘브레이트바트 뉴스’라는 플랫폼을 이용해 트럼프의 나팔수 역할을 했다.

최근 로버트 라이시 UC버클리 교수가 밝힌 ‘트럼프가 거짓말을 진실로 만드는 10단계’는 트럼프가 대중에게 자신의 뜻을 주입하는 방식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이에 따르면, 트럼프는 거짓말을 하고, 언론이 이를 거짓이라고 비판하면, 트럼프는 언론이 정직하지 못하다고 되레 비판하면서 거짓말을 되풀이하고, 자신의 견해에 동조자들이 많다고 주장하는 등의 방식이다. 트럼프는 객관적 사실보다 감정과 신념이 여론 형성에 더 큰 영향을 미치는 '포스트 트루스(post-truth)' 시대에 편승해 이를 교묘하게 이용하고 동시에 가속화하는 희대의 포퓰리스트인 것이다.

한국에 자칭 트럼프라는 정치인이 있다. 일부 언론에서는 그를 ‘홍트럼프’라 부르기도 한다. 자유한국당 대선후보 경선에 나선 홍준표 경남도지사를 두고 하는 말이다.

홍 지사는 한국에도 트럼프처럼 ‘스트롱맨’이 나와야 한다며 스스로를 스토롱맨으로 치켜세우기도 했다. 그러고 보면 홍 지사는 막말에서 트럼프와 닮은 점이 많다. 그런데 막말 중에서 패륜적 막말에서는 트럼프도 울고 갈 정도다.

그의 막말은 때와 종류를 가리지 않는데, 특히 이미 서거한 노무현 전 대통령을 직접 겨냥한 막말은 패륜적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지난달 28일 경남 창원에서 홍 지사는 “지금 민주당 1등 하는 후보는 자기 대장(노무현 전 대통령)이 뇌물 먹고 자살한 사람”이라고했다. “뇌물수수혐의에 대한 대법원 확정판결이 남아 출마에 걸림돌이 되지 않겠나” 하는 기자의 질문에 대한 대답으로 생뚱맞게 노 전 대통령을 끌어들인 것이다.

홍 지사는 또 지난 18일 대구 서문시장 대선 출마 선언식에서 "(대법원에서) 유죄가 나온다면 노무현 전 대통령처럼 자살하는 것도 검토하겠다"고 했다. 22일 부산 해운대 벡스코에서 열린 '자유한국당 부산·울산·경남 제19대 대통령 후보자 비전대회'에서는 "노무현 정부는 집권 초 안희정 뇌물로 시작해 박연차 돈 640만 달러를 받았고, 끝날 무렵에는 본인이 직접 뇌물을 받았다"면서 "뇌물로 시작해 뇌물로 끝난 정권"이라고 했다.

홍 지사의 ‘뇌물 먹고 자살한 사람’은 진실이 아니며, 사자에 대한 명예훼손이고, 패륜적 발언이다. 기본적인 예의와 염치를 아는 사람이라면 대통령을 지낸 망자에게 이런 막말을 할 수는 없다. 노 전 대통령에게 적용된 포괄적 뇌물죄 혐의에 대해 검찰은 증거를 제시하지 못했고, 대가성도 입증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뇌물 먹고'라고 단정할 근거가 없다는 말이다.

홍 지사가 패륜적 막말을 쏟아내는 이유는 분명해 보인다. 고 노무현 대통령을 공격함으로써 1위 후보(노 전 대통령의 비서실장을 지낸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전 대표) 반열에 오르려는 의도와 ‘노무현 트라우마’에서 벗어나지 못한 보수층을 결집하려는 목적, 그리고 자신의 뇌물죄 혐의를 희석시키고자 하는 의도로밖에 생각할 수 없다. 그의 패륜적 막말은 일단 정치적 선동술로써 일부 대중에게 크게 어필되고 있다는 점에서 홍 지사는 탁월한 포퓰리스트임에 틀림없다.

트럼프나 홍 지사는 ‘반 엘리트적 대중영합주의’를 취한다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다. 즉 둘 다 비주류 정치인이고, 막말을 반복함으로써 대중에게 어필한다. 트럼프의 대의가 미국우선주의라면 홍 지사의 대의는 좌파집권불허이다. 트럼프는 포퓰리스트의 본능으로 “나라에 영향을 미치는 주요 이슈에 대해 대중들은 옳게 판단하고 지배 엘리트의 판단은 틀렸다”고 했다. 그래서 그는 대중, 즉 미국의 중·저소득 백인을 위한 반이민정책 등의 이슈를 정확히 포착해 지지를 받았다.

그렇다면 홍 지사가 ‘대중이 옳게 판단하는 주요 이슈’는 무엇이라고 생각하고 있을까? 그는 ‘좌파가 집권하게 해선 안 된다’는 대의 외에 대중이 원하는 이슈를 아직 내놓지 않고 있다. 그는 노 전 대통령에 대한 패륜적 막말에 이어 “노무현 정부 말기의 ‘바다 이야기’ 사건을 재조사하겠다"고 했다. 이를 보면 홍 지사가 겨냥하는 대중은 ‘노무현 때리기’라면 무조건 속시원해하는 일부 보수층에 한정된 것이 아닌가 하는 의문마저 든다. 전체 보수층을 결집해 대선 승리를 노린다면 보수층 전체가 원하는 이슈를 내놓아야 할 것이고, 그렇다면 노 전 대통령을 향한 패륜적 막말만으로는 그들의 지지를 받을 수 없다는 것을 알 것이기 때문이다. 최근 한 조사에서는 홍 지사의 비호감도가 80%에 이른다는 사실을 모르지는 않을 것이다.

객관적 진실보다 개인의 감정과 신념에 호소하는 것이 여론 형성에 더 효과적인 ‘포스트 트루스’ 시대에 세계적으로 포퓰리스트의 득세는 당분간 계속될 것이다. 그렇다고 저급한 패륜적 막말 포퓰리스트가 집권할 만큼 대한민국이 망가지지 않았다는 것을 홍 지사가 역설적으로 보여주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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