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6합창단과 박종철합창단이 화음으로 빚어낸 눈물의 '세월호' 기억과 위로

세월호 참사 10주기 '전국민주시민합창축전' 앞서 두 합창단의 연습무대 ... 눈물 참으며 '너' 합창

김해창 승인 2024.02.27 12:43 | 최종 수정 2024.02.27 14:23 의견 0
단원고 높은 언덕에 세워진 '노란 고래의 꿈' 세월호참사 추념공간. [사진=김해창]​​​

노래로 기억하고 다짐하고 행동한다.

2월 24일 낮 경기도 안산에서 박종철합창단과 4·16합창단이 한데 모여 오는 4월 14일 오후 안산 4·16생명안전공원에서 개최할 제8회 전국민주합창축전 준비를 위한 합동공연 연습시간을 가졌다. ‘4·16합창단’은 세월호 참사 유가족과 생존학생의 가족, 일반 시민이 함께 노래하는 합창단으로 참사 이후 200일이 되었을 무렵인 2014년 12월 작은 노래모임에서 탄생했다. 박종철합창단은 박종철 열사와 1987년 6월 항쟁의 정신을 기리기 위해 2016년 8월 창단된 부산지역의 남성합창단이다. 그해 12월 3일 부산 서면 촛불집회에 ‘레미제라블’로 데뷔 무대를 가진 이래 민주화운동 관련 기념식이나 추모제, 문화제 등 각종 행사와 집회에서 공연을 해왔다.

이날 박종철박종철합창단(지휘자 이민환, 단장 윤지형)은 부산 서면에서 새벽 6시반 단원 30여 명이 전세버스를 타고 오전 11시반 안산시 단원구 사단법인 4·16세월호참사가족협의회(대표 김종기) 사무실에 도착했다. 컨테이너 건물 몇 개에 4·16합창단을 비롯한 관련 단체 사무실과 2층짜리 ‘4·16꿈숲학교’ 건물이 있었다. ‘어둠은 빛을 이길 수 없다’ ‘단원고 2학년 6반 박영인·남현철 학생, 양승진 선생님, 그리고 권재근님과 아들 혁규군 등 미수습자 5명, 마지막 한명까지 가족의 품으로’ 라는 사진·글귀 패널이 붙어있었다.

4·16합창단과 함께 합동공연을 할 '너'를 부르는 박종철합창단 단원들.

4·16합창단 단원을 비롯한 40여 명이 박종철합창단을 반갑게 맞이했다. 이날 두 합창단의 만남은 ‘4·16세월호참사 10주기’를 맞아 기획된 전국 12개 민주합창단이 2개팀이 한곡은 같은 곡을 합창하기로 했기에 연습을 겸하여 안산을 방문한 것이었다.

필자는 박종철합창단 단원으로 알토파트를 맡고 있다. 4·16합창단(지휘자 박미리, 단장 최순화)은 2014년 세월호참사 이후 세월호참사의 진실을 알리기 위해 단원고 희생자 유가족과 생존자, 일반 시민으로 창단돼 지금까지 총 500회에 가까운 공연을 해왔다.

이날 이 두 합창단이 연습할 곡은 ‘너’였다. 대부분이 여성인 4·16합창단과 남성합창단인 박종철합창단이 60여 명의 대합창단으로 화음을 만든다. 연습에 들어가기 전 잠시 세월호 희생자들을 기리는 단체묵념을 했다.

4·16합창단 박미리 지휘자가 환영인사를 했다. “새벽부터 부산에서 먼 길 오신 박종철합창단 단원 여러분을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저희 4·16합창단과 함께 노래하게 되어 너무 감사드리고 든든합니다. 합창연습만이 아니라 남은 시간 안산에서 세월호 단원고 아이들의 흔적도 많이 담아가셨으면 좋겠습니다”라고 말했다.

박종철합창단 이민환 지휘자가 무대에 올랐다. “먼저 4·16합창단에서 우리 박종철합창단과 함께 합동공연을 했으면 좋겠다는 제안을 해주셔서 고맙습니다. 저희들도 반가운 마음으로 올라왔습니다. 오늘은 노래만이 아니라 우리가 안산, 4·16합창단의 마음을 함께 나누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두 합창단이 노래를 통해 교감하고 기억하는 하루가 됐으면 합니다.”

‘너(이남실 작사 이범준 작곡)’는 2021년 세월호참사 7주기를 맞이하여 4·16합창단이 낸 첫 창작곡이어서 더욱 뜻깊다.

‘태어나던 날 처음 잡던 손 목소리를 알아듣던 너/ 세 살 적 기찻창에 매달려 세상을 바라보던 너/ 일곱 살 벚꽃을 보며 팝콘이 떠진다고 말하던 너/ 열 살 적 같이 본 노을 엄마 늙지 말라 하던 너/ 날마다 고마웠어 매순간 사랑했어/ 날마다 고마웠어 매순간 사랑했어/ (반주)/ 열두 살 깁스를 하고선 사인을 해보라던 너/ 열넷 은행잎을 주워 선물이라고 내밀던 너/ 열여섯 방문을 닫고 음악을 크게 틀던 너/ 열여덟 수학여행 간다고 짐 싸며 들떠 있던 너/ 날마다 고마웠어 매순간 사랑했어/ 날마다 고마웠어 매순간 사랑했어/ (반복)/ 매순간 사랑했어’.

박종철합창단 단원들도 합창을 하면서 어느 부분에서는 목이 메거나 눈물을 참으면서 끝까지 노래했다. 4·16합창단의 여성단원 성부와 서로의 호흡을 조절하며 화음을 맞춰갔다. 이렇게 두세 번을 부르며 합동공연의 큰 흐름은 잡았다. 마칠 즈음 4·16합창단이 박종철합창단이 4월에 소개한 ‘딸의 편지’를 들려달라고 요청해 아직 연습 중인데다 악보도 없었지만 다들 마음을 다해 불렀다. ‘딸의 편지’는 강은교 시인의 글에 이민환 지휘자가 곡을 붙인 것이다.

‘엄마 여긴 추워요 엄마 여긴 진흙이 너무 많아요/ 진흙이 내 팔을 휘감고 있어요/ 내 입술을 꼼짝달싹 못하게 하고 있어요/ 아 나를 진흙이 먹고 있어요 숨을 쉴 수가 없어요/ 버려진 심장들 가득한 바다의 저 방/ 물의 검은 터널 속 터널의 검은 입속/ 허우적이는 미처 눈 못 감은 피톨들/ 어른들은 나를 두고 가버렸어요 이제 이제 나는 떠나가요 (중략)/ 노란 종이배들이 떠와요/ 파도 가득 노란 리본들이 달려와요/ 난 그 종이배를 타려하지만 난 그 노란 리본들을 잡으려 하지만/ 아 이 진흙을 치워주세요 이 검은 파도를 치워주세요/ 저 노란 종이배를 타고 싶어요/ 엄마의 뜰 송이송이 노란 리본의 나무 아래 서고 싶어요/ 저 노란 리본의 정원 거닐고 싶어요/ 엄마 빛의 젖꼭지를 주세요 엄마 평화의 눈을 주세요/ 엄마 천국의 뺨을 주세요 엄마 나를 꼭 껴안아 주세요/ 저 배의 날개 일어설 때 까지/ 안녕 안녕’.

4·16합창단과 함께 있던 많은 분들이 눈물을 흘렸다. 흐느끼는 소리도 들렸다. 세월호참사 이후 이들 유가족이 흘린 눈물은 얼마나 될까 참 먹먹했다. 이어서 4·16합창단이 ‘동백섬’을 답가로 불러줬다.

‘우리는 함께 노래를 불렀다 그해 겨울바다 끝난 곳에서/ 외로이 앉아 고개를 젖히고 그저 노래만 불렀다/ 때로는 허리 굽혀 해를 지우고 달을 살라 별빛하나 가슴에 담고/ 그래 온산앞 바다 동백섬 오늘도 외로이 섰다/ (중략)/ 오늘밤 그 누구라도 별 하나 볼 수 있다면/ 그러면 착한 시인 하나 불러 다시 여기 오게 하리라’.

4·16합창단 단원들이 ‘바다’라는 말만 들어도 눈물과 오열의 트라우마에서 이제는 조금은 벗어났기에 이 노래를 부를 수 있었다고 지휘자는 말했다. 노래를 통해서 아픔을 치유해왔다는 말이다. 박종철합창단과 4·16합창단의 이날 합동연습 시간은 사랑과 생명·평화의 지순한 교감의 시간이자 치유의 시간이었다. 아름다운 노래가 눈물을 이겼다. 어느새 우리는 가족이 되어있었다. 산 이와 죽은 이가 함께 하나가 되는 자리였다.

윤지형 박종철합창단 단장은 “4·16합창단이 박종철합창단에게 함께 노래를 하자고 손을 내밀어준 것은 참 고맙고 뜻깊은 일이며 오늘 만남을 통해 노래가 눈물이 되고, 눈물이 노래가 되는 눈물의 참뜻을 알게 됐습니다. 우리 박종철합창단은 앞으로도 노래로 기억하고 다짐하고 행동할 것입니다”고 말했다.

합동연습을 마치고 4·16합창단 단원들의 안내로 맞은 편의 ‘4·16꿈속학교’를 둘러보았다. 거기에는 단원고 학생 희생자 250명의 꿈이 담긴 캐릭터 타일이 한 벽 가득 붙어있었다. 소방사가 꿈인 친구, 유치원 원장이 꿈인 친구, 수학 교사가 꿈인 친구…. 오는 4월 전국민주합창축전에서 단원 한명이 희생자의 한명씩 이름을 노래 형식으로 부르기로 돼 있는데 내가 맡은 학생은 2학년 4반 진우혁이다. 우혁이는 만화가와 시각디자이너가 꿈이었다. 아무 일이 없었다면 지금은 스물여덟의 건장한 청년이 되었을….

2층 복도 벽에는 세월호참사 추모조형물 ‘다시 일어서는 꿈’이 있었다. ‘세월호 참사 하나의 참사 아닌, 304명이 스러져간 304개의 참사’라는 글이 눈에 띄었다. ‘문득 불어온 바람으로 온 너/ 하늘을 지키는 별로 빛날 너/ 세상에 곱고 예쁜 건/ 모두 250명 너희들이라고 생각한다/ (중략)/ 너희들이 어디에 무엇으로 있던/ 반짝이며 잘 지내주기를!’.

차를 타고 인근 ‘경기도교육청 4·16민주시민교육원’으로 갔다. 거기에는 ‘단원고 4·16기억교실’이 있다. 우여곡절 끝에 원래 학생들이 공부하던 단원고 2학년 교실이 아닌 별도의 장소로 옮겼다. 그나마 유가족들의 노력으로 당시 단원고 2학년 10개 반 교실과 교무실의 책걸상 게시판 등 학생·교사의 유품을 그대로 옮겨놓아 당시 교실의 분위기를 느낄 수 있게 해놓았다.

세월호 유가족으로부터 4·16기억교실에 대해 설명을 듣고 있는 박종철합창단원들.

이날 마이크를 잡고 안내를 해준 분은 4·16기억저장소 전인숙 운영위원으로 고 임경빈 학생의 어머니이다. “당초 단원고에 기억의학교를 제대로 남기지 못하고 쫓겨나오듯 이곳으로 옮겨와 장소성은 다르지만 그래도 학교에 있던 천장 칠판 책상 게시물 하나 그대로 옮겨놓았습니다. 우리 아이들을 기억해주시는 것이 이 아이들을 영원히 살게 하는 것이라 믿습니다”라며 거듭 고맙다는 말을 했다.

단원고 4·16기억교실에서 희생자 학생 책걸상에 앉아 메모노트에 소감을 쓰고 있는 박종철합창단원들. [사진=김해창]

합창단원들은 각반을 돌며 아이들의 책상을 둘러보았다. 나는 특히 2학년 4반 진우혁 자리에 앉아 우혁이의 사진과 파일을 보고 한마디 글을 남겼다. “우혁아, 박종철합창 단원인 김해창 아저씨야. 만화가 시각디자이너의 꿈을 별나라에선 마음껏 펼치길 빈다. 영원한 평화와 안식이 있기를". 아이들이 수학여행에 들떠 재잘거리는 모습이 아른거렸다. 우리사회가 도대체 이 아이들에게 무슨 짓을 한 거지. 교무실에 가니 당시에 순직한 교사들의 사진과 교무수첩이 가슴을 아프게 했다.

4·16합창단 사무실이 있는 컨테이너 건물에 붙어있는 미수습자 5명이 가족 품으로 오길 바라는 사진 글귀 패널.
세월호 참사 당시 단원고 2학년 학생들이 수업하던 교실을 그대로 옮겨놓은 4·16기억교실의 칠판 등 교실 분위기. [사진=김해창]

다시 차에 올라 간 곳이 단원고이다. 단원고는 단원구에 있는 남녀공학의 공립학교로 원래 단원이란 지명은 단원 김홍도에서 딴 것이라고 한다. 언덕에 자리잡은 단원고로 올라가는 길에 전 운영위원이 가슴 아픈 말을 했다. 단원고가 4·16지우기를 해왔단다. 예전에 4·16세월호유가족들이 학교에 붙여놓은 노란리본까지 모두 지우고, 유가족들이 존치를 원했던 기억의 교실을 재학생 학습권 이야기를 하면서 공간부족 이유로 불허했는데 정작 그곳엔 다른 건물을 세웠다는 것이다. 학교의 높은 언덕엔 ‘노란 고래의 꿈’ 정원이 만들어져 있었다. 희생된 학생·선생님들의 꿈이 이뤄지길 바라며 승천하는 고래와 노란리본을 형상화한 것이라고 했다. 4·16세월호 참사 추모자명단이 대리석 담장에 빼곡히 새겨져 있었다. 단원고 홈페이지에 들어가보니 4·16세월호참사에 대한 언급은 학교 연혁에조차 보이지 않았고 4·16 관련 행사는 보이지 않았다. 대입중심의 우리나라의 교육현실의 축소판이었다. 단원고는 좀 달랐으면 했는데….

나는 생각했다. 지금 단원고 2학년 재학생들이 4·16세월호참사 희생자 선배와 매칭해서 4·16 10주기 때만이라도 전교생 교직원 학부모가 하나가 돼 희생자의 이름과 꿈을 말하는 그런 행사를 펼치면 얼마나 좋을까. 그날 희생자 유가족들이 지금의 재학생과 일대일로 만나 서로를 안아주는 그런 사회적 치유가 필요하지 않을까. 그런데 우리 정치나 행정, 심지어 교육까지도 이러한 아픔에 대한 사회적 심리적 배려가 없다는 것이 안타깝기 그지 없다. 아직도 일각에서는 세월호참사를 ‘일개 교통사고’ 운운하는 병든 영혼도 적지 않지만.

4·16기억전시관에 걸린 희생자들의 캐릭터가 그려진 기억함 [사진=김해창]

단원고를 나와 아이들이 등하교 하던 ‘소중한 생명길’을 따라 학교 인근의 ‘4·16기억전시관’으로 갔다. 이곳 전시관은 304개의 기억함과 작품들이 전시돼 있었다. 그곳의 안내자는 양옥자 4·16기억저장소 사무국장으로 고 허재강 학생의 어머니라고 했다. 양 사무국장은 “현재 세월호참사 4·16기억교실 기록물류는 국가기록물로 지정돼 있고, 이들 기록물류에 대해 2015년부터 세월호 세계기록유산 등재를 추진하고 있습니다. 혹 4·16세월호참사 당시나 그 뒤에라도 세월호 관련 일기를 써놓은 게 있으면 저희 사무국으로 보내주시면 고맙겠습니다”라고 말했다. 4·16기억저장소 홈페이지(http://www.416memory.org)에 들어가면 세월호참사 전체를 이해하기 쉽다. 세월호 참사 관련 일기가 있는 분은 416archives@gmail.com으로 보내주길 희망했다.

이날 합창단원이 마지막으로 들린 곳은 단원고 인근 화랑유원지로 이곳은 ‘4·16생명안전공원’이 들어설 곳이다. 생명안전교육과 청소년 시민 모두를 위한 복합문화시설 및 희생자들을 위한 추모공간으로 건립될 예정인데 아직도 부지만 정해져 있을 뿐 진척이 없다. 이곳 넓은 뜰에서 세월호 10주기를 추념해 4월 14일(일) 오후 제8회 전국민주합창축전이 열릴 예정이다.

돌아오는 길에 세월호와 함께 2022년 10·29 이태원참사 희생자와 유가족 가슴에 들어왔다. 내려오는 길 참 찹찹한 마음과 함께 지치지 않는 세월호 유가족들의 용기와 힘이 다시 주먹을 불끈 쥐게 했다.

이 글을 쓰는데 SNS에 ‘세월호참사10주기위원회’와 ‘세월호부산대책위’가 오는 3월 1일 전국시민행진단 부산시민참여선포 기자회견을 한다는 내용이 올랐다. 부산 광복로 시티스팟에서 기자회견을 한 뒤 오전 10시반부터 부산역까지, 오후 3시반부터 북구 화명동 일대에서 시민행진이 이어진다. 전국시민행진단은 지난 25일 제주를 출발해 26일 팽목항 기억의숲에서 시민행진을 했으며 3월 16일까지 20박21일의 시민행진을 할 것이라고 한다.

4·16세월호참사가족협의회 사무실 앞에서 함께 한 박종철합창단과 4·16합창단 단원들

세월호 참사 10주기, 진실을 인양하라

전국시민행진은 7가지 기본요구를 하고 있다. △세월호참사 국가책임 인정·사과, 사회적참사특별조사위원회 권고 즉각 이행 △세월호참사 정보 완전공개 및 추가 진상조사 △세월호참사 책임자 엄중처벌 △4·16생명안전공원 조속한 건립 △생명안전기본법 제정 △재난참사 피해자 권리보장 혐오모독 중단 △이태원참사진상규명법 제정
우리 사회는 아직도 세월호참사나 이태원참사 등에 진상규명조차 하지 못하고 있다. 참사로부터 제대로 교훈을 얻지 못하니 이런 참사가 우리 미래에 되풀이되지 않는다고 누가 보장할 수 있을까. 더 이상 떼죽음을 방치하는 그런 야만이 팽배하는 사회가 되도록 놔둬선 안 된다.

단원고 높은 언덕에 세워진 '노란 고래의 꿈' 세월호참사 추념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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