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현숙 시인의 '詩의 아고라'(119) 복날, 한영숙

손현숙 승인 2024.03.02 12:15 | 최종 수정 2024.03.02 13:07 의견 0

복날

한영숙


아난다 사원 불상 앞
거기, 비루먹은 강아지
혓바닥 길게 빼물고
똥 묻은 발바닥을 천연덕스레 허공에 걸치고 있다
허연 배 드러내고
바람 솔솔 드나드는 통로 동점하며
게슴츠레 졸고 있다.

먼발치서 그윽이 웃고만 있는
붓다.

한영숙 시인(왼쪽)과 필자(왼쪽 세 번째)


시집 《카멜이 바늘귀를 통과한 까닭》을 읽었다. ‘여우난골’ 2024.

“아난다”는 “붓다”의 설법을 듣고 설파한 성인이다. 성인의 이름을 딴 사원에서 개 한 마리 편안하다. 자신의 본능과 삶을 지킨다. 본능은 폭력적이지만은 않다. 천연하게 자신의 생명을 누린다. 그리고 언젠가는 죽는다. 그렇게 “똥 묻은 발바닥”과 “허연 배”와 “졸고 있”음을 붓다는 “그윽이” 바라본다. 아마도 붓다가 보는 것은 아난다의 귀에 들어갈 것이다. 아난다는 붓다의 바라봄을 설파할 것이다. 시인은 어느 날 문득 복잡한 세계의 본질을 바라본다. 그게 우연이든 필연이든 중요하지 않다. 동일 시집에 수록된 〈회화나무〉 중에서도 시인은 이렇게 말한다. “그들이 들려주는 저 무언의 설법을 나는 조용히 받아 적는다.” 이제 이 시의 제목을 이해한다. “복날”과 “비루먹은 강아지”와 “붓다”는 다른 존재인가, 같은 존재인가.

손현숙 시인

◇손현숙 시인

▷1999년 『현대시학』으로 등단
▷시집 《너를 훔친다》 《손》 《일부의 사생활》《경계의 도시》(공저) 《언어의 모색》(공저)
▷사진산문집 『시인박물관』 『나는 사랑입니다』 『댕댕아, 꽃길만 걷자』
▷연구서『발화의 힘』, 대학교재『마음 치유와 시』▷고려대 일반대학원 문학박사(고려대, 한서대 출강)
▷현 조병화문학관 상주작가

저작권자 ⓒ 인저리타임,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